
책읽기모임 | 『이주, 경계, 꿈』 조선족, 국가와 자본을 넘어설 꿈
2025년 11월 7일
한국인에게 조선족 이주노동자는 어떤 존재일까?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가끔 마주치는 조금 어눌한 한국어를 쓰는 직원, 우리와 같은 민족이지만 절대 같을 수는 없는 타자, 비교적 싼 값에 부릴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 친밀해서 더 쉽게 착취할 수 있는 하층 노동자…. 저마다의 위치와 정치적 견해에 따라 같은 조선족 이 주노동자도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반대로 조선족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일까? 한국에서 경험한 이주노동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문화인류학자 권준희의 『이주, 경계, 꿈』은 이렇듯 한국에서 기존에 조선족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던 것과 조금 다른 시점으로 조선족 이주노동자를 이야기한다. 플랫폼C는 10월 25일 『이주, 경계, 꿈』 책읽기모임에서 경계인으로서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꾸려나가는 삶, 그리고 한국인이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본의 경계에 갇힌 꿈들
이날 책모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쟁점 중 하나는 조선족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을 통해 달성하려는 ‘꿈’이 왜 넓은 집, 최신식 가전제품 같은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놓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기본적인 의식주 등 최소한의 물질적인 여건이 충족될 때에야 또 다른 종류의 꿈을 꿀 수 있는데, 그런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이 여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연변을 떠나는 것이기에 이주 결정에 경제적 요인이 굉장히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물질적 성취와 무관한 꿈이 존재하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가령 ‘엄청나게 많은 책을 집에 쌓아놓고 집에서 책만 읽는 삶’을 꿈꾼다고 할 때, 그 꿈에는 ‘많은 책을 쌓아둘 수 있는 넓은 집’이 전제되어 있지 않냐는 것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물질적이지 않은 꿈조차 물질적 풍요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주노동이 바꾼 삶의 리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저자는 H-2 비자제도가 만든 '1-3-2' 리듬이 조선족의 삶에 새로운 시간성을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미등록 조선족에 대한 일종의 사면조치로 도입된 H-2 비자제도가 체류기간을 3년으로 규정하고 있어(재고용 시 최대 1년 10개월까지 체류기간이 연장된다), 1년간 중국에 머물렀다가 돌아온 후 3년간 한국에서 일하고 다시 입국해 2년을 일하는 식으로 조선족들의 삶이 재구성됐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비자제도 변경 때문에 중국에서 쉬는 시간을 강제적으로 겪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코리안 드림’ 이후의 새로운 꿈 꾸기
이날 책모임에는 저자도 참석해 책이 다룬 2006~2016년 이후의 변화를 설명했다.
변화의 한 측면은 ‘조선족 이민자들이 주민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가족을 초청할 수 있게 하는 등 영주의 가능성이 넓어지는 방향으로 한국 정부가 조선족의 영주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등의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영주의 가능성이 점차 열리는 상황이 10년간 전개돼왔다.
- 💡[편집주]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조선족이 겪는 공식적, 비공식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재외동포(F-4) 취업활동 제한직업 비취업 서약서는 많은 조선족의 단순노무직 취업을 금지하거나 규모를 제한하고, 이를 어길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많은 경우 사업장이 필요에 의해 조선족을 저임금 단순노무직으로 고용해 왔으나,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선족 노동자를 미등록 체류자로 만들 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역시 허점이 많다. 특정분야에 취업해 일하고 있는 조선족 노동자가 적지 않은 돈을 주고 1년에 한두 번 뿐인 자격시험을 보지 못하면 미등록 상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국가와 자본의 필요에 의해 차별을 '조정'하는 한국정부가 조선족을 한국사회의 '주민'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또한, 최근 조선족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근거없는 낙인과 혐오선동 등을 볼 때, 현재 조선족 이주민이 정주민과 동등한 관계로 살고 있다고 말하긴 더욱 어려워졌다. 앞으로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측면은 ‘코리안드림’이 더 이상 지배적인 꿈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연변에서는 비이동이 점차 ‘풍요’와 ‘안정’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동에 대한 논쟁도 점점 더 다각화되고 있다.”(230쪽) 이처럼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크게 변한데다가 한국의 변화, 중국의 변화, 한중 관계의 변화 등까지 더해져 조선족의 ‘꿈’이 변했고, 이제는 대다수 조선족에게 꿈이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하지만 저자는 꿈이 없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낸 다. 국가화된 꿈, 물질적인 꿈 같은 기존의 꿈들을 끊어내고 파괴할 수 있는 역량이 경계인에게 있고,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며 꿈의 다양화, 꿈의 다변화를 이뤄낼 주체가 조선족이라고 저자는 역설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코리안드림’, ‘차이나드림’ 등 국가권력에 귀속되는 형태의 꿈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꿈의 존재를 이 책이 보여줬다고 말한 어느 참가자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조선족은 정말로 국가와 자본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는 새로운 종류의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런 새로운 꿈은 한국인들의 꿈과 어떻게 접속하고, 연결될 수 있을까. 내게는 그런 화두를 남긴 책읽기 모임이었다.

글 : 김경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