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공공 노조운동을 위하여 | 단체교섭의 재구성
2025년 11월 5일
이 글은 『공공이 미래다』 6호에도 실렸습니다.
현행 단체교섭체제의 문제점
미국의 노동운동가 사리타 굽타(Sarita Gupta)가 제시한 가상의 사례에서 시작해 보자(Smiley & Gupta, 2022: 178).
지역사회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창출하는 대규모 화학 공장이 있다. 정부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 배출된 폐기물이 지역 상수원을 오염시키고 있고, 그로 인해 지역 아동들(그러니까 이 공장 노동자들과 그 이웃의 자녀들) 다수가 소화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공장의 노동조합은 사용자측과 단체협약 갱신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랬을 때 이 협상에서 조합원들의 최우선 필요/욕구(need)에 상응하는 의제는, 보다 안전한 폐기물 처리 방안을 찾도록 사측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단체교섭 관행, 또는 ‘단체교섭체제’(collective bargaining regime)는 이 자명한 예상과 충돌한다(McCartin, 2014: 2). 이 체제하에서 교섭 의제의 범위는 임금과 노동조건, 기껏해야 사업장에 국한된 사안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교섭사항을 의무적(mandatory), 임의적(permissive), 위법적(illegal)인 것으로 나눈다(Smiley & Gupta, 2022: 15~16). 한국에서도 널리 원용되는 이 구분법에 따르면, 위 사례의 의제는 임금 및 노동조건에 해당하지 않고, 사업장을 넘어서는 ‘외부효과’를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사측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따라서 단체교섭 불응시 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의무적 교섭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임의적 교섭사항, 심지어 위법적 교섭사항으로 구분될 공산이 큰데, 통상 생산 설비 및 기술 채택에 관한 의사결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편익-비용 판단은 경영의 배타적 권한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단체교섭체제에서는 위 사례처럼 노동자와 주민의 공적 관심이 높은 사안들이 단체교섭의 의제에서 배척되거나 사용자의 재량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섭 범위가 제한된 단체교섭체제는 민간부문 노조보다 공공부문 노조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 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역대급 불황과 재정적자에 직면한 각급 단위 정부 다수는, 공공부문 노조를 희생양 삼아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McCartin, 2013: 54~62). 한때 민간부문 노동자들, 곧 납세자들보다 임금과 조직률, 단체협약 적용 등에서 열세였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제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신특권계급’이 되었고, 이들의 고임금과 단체협약 때문에 재정적자가 초래되었다는 식의 참주선동(僭主煽動)이 전면화됐다.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이 같은 공세에 맞서려는 공공부문 노조의 발목을 잡았다. 한편으로 노조와 지역사회·이용자의 동맹을 촉진하는 사안은 위법적 교섭사항으로 배척당하고 탄압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은, 법적으로는 허용될지 모르나 재정위기 상황에서 성과를 내기 어려웠고, 설사 성과를 낼지라도 ‘납세자들의 고혈로 자기 배를 불리는 이기적 특권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 전투의 승리가 전쟁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렇듯 공공부문 노조가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에서, 전투적 반노조 성향을 띤 일군의 공화당 정치인이 주지사 등에 당선되었고, 이들은 혹독한 긴축 정책과 함께 공공부문 노조를 체계적으로 공격했다. 그 선봉에 위스콘신 주지사 스콧 워커가 있었는데, 그는 대다수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유일한 예외인 임금의 경우에도 물가인상률을 넘는 인상안 요구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여, 결국 당선 넉 달만인 2011년 3월 주 상원의회에서 법안을 기습통과시켰다(McCartin, 2018: 173). 이 같은 극단적 형태는 아니지만, 민주당이 집권한 지방정부에서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한하는 이런저런 조치가 나타났다.
요컨대 교섭 범위 제한을 강제하는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노조(특히 공공부문 노조)를,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낙인찍혀 고립될 것인가, ‘불법 정치파업’을 일삼는 세력으로 탄압당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 상황에 몰아넣는다. 설상가상으로 노조 조직률 하락 및 노조가 포괄하기 어려운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 증가가 맞물리면서, 노조는 무용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 소수인) 조직노동자와 (상대적 다수인) 미조직 노동자 간 불평등을 강화한다는 통념이 힘을 얻는다. 오늘날 단체교섭, 결국 노조가 아닌 다른 형태의 노동자 이해대변(worker interest representation)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Smiley & Gupta, 2022: 15).

현행 단체교섭체제에 맞선 역사적 도전들
하지만 단체교섭이라는 무기를 쉽게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에 따르면 단체교섭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엘리트와 기업의 권력에 맞설 수 있게 해 주고, 노동자 가족들이 스스로의 경제적·사회적 미래를 빚어낼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McAlevey, 2020: 1; Smiley & Gupta, 2022: 19).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단체교섭의 확대는 노동자 전반의 생활 개선과 부의 재분배, 결국 불평등 감축 효과를 냈고, 특히 국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나라들에서 그 보충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것이다(Smiley, 2018: 235; Smiley & Gupta, 2022: 18~19).
이들은 정세로 인해 단체교섭의 중요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단체교섭 이외의 노동자 이해대변 방식에는 소송과 (입법 및 법집행을 아우르는) 법적 접근, 캠페인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보수 세력의 집권과 맞물린 사법부 보수화, 요구 관철에 필요한 자원 및 전술의 부재·미흡 등으로 인해 그 실효성이 크게 반감되고 있다는 것이다(McAlevey, 2020: 2~3).
현실적인 고려도 작용한다. 조합원들의 노조 활동 참여가 가장 활발한 것은 어쨌든 단체교섭 시기인바, 단체교섭시 높아진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는 노조 재활성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Sneiderman & McCartin, 2018: 223). 아울러 단체교섭은 노조의 본질적 기능인바, 현재와 같은 노조의 자원·역량 부족 상황을 감안할 때 단체교섭과 별개로 의미 있는 활동을 벌이기 어렵고, 역으로 단체교섭이라는 본질적 기능을 지렛대로 삼는다면 통상의 조직화 모델에서처럼 중앙집중적이고 자원집약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노조 재활성화에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된다(Ashby & Bruno, 2016: 104; Sneiderman & McCartin, 2018: 229).
물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행 단체교섭에 여러 문제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단체교섭 일반의 문제라기보다 특정 단체교섭체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게다가 이 단체교섭체제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는데, 아 래에서 짤막하게 살펴볼 두 도전은 다른 단체교섭체제가 가능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첫 번째 도전은 1945년 11월 21일 노동자 320,000여 명의 파업 돌입으로 시작하여 113일간 지속한 제너럴모터스(GM) 파업이었다(Smiley & Gupta, 2022: 178~179; Minchin, 2024). 미국 사회 전체를 뒤흔든 이 역사적 파업 당시, 전미자동차노조(UAW) GM지부는 ‘지역사회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전진하는’ 파업 또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파업’을 표방했는데, 이 같은 정신을 집약하는 핵심 요구는 자동차 가격 인상 없는 임금 30% 인상이었다(Minchin, 2024: 370). 이 요구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전후 사회 재건을 위해서는 전반적인 구매력이 회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임금 인상이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가 상승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낮아지는 문제를 방지하려면, 임금 인상 비용을 사측이 온전히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측이 재정 상황을 이유로 임금 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장부를 열어’ 자신들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요구도 함께 제시하였다.

업종을 막론한 노동자계급과 공중 다수는 노조의 요구와 논리를 적극 지지하였다. 하지만 사측은 판매 가격과 이윤을 단체교섭의 의제로 삼는 것, 아울러 이를 공개하는 것이 경영권의 근본적 침해라고 주장하며 완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Minchin, 2024: 385). 이렇듯 당시 진정한 쟁점은 임금인상 자체나 인상액이라기보다, 사용자의 경영권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호하면서 좁은 의미의 임금과 노동조건만을 교섭 의제로 허용하는 단체교섭체제 자체였다. 결국 사측의 완강한 거부와 파업 장기화에 따른 연방 정부의 개입으로, 경영의 배타적 권한이 약화된 단체교섭체제를 수립하여 노조의 요구와 공익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야심찬 시도는 좌절되고, 시간당 18.5센트 임금 인상으로 파업은 일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지금과 다른 단체교섭체제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그에 맞선 도전을 억압한 결과 형성된 역사적 세력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공공부문 노조를 중심으로 일어난 두 번째 도전에서 재차 확인된다. 미국의 공공부문에서 단체교섭체제가 확립되기 전,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철학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중심으로 단체교섭·단체행동을 벌였다. 가령 교사노조는 학급 규모, 훈육 정책, 교육 프로그램 등에 영향을 끼치고자 했다. 1965년 뉴욕시의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파업 당시 복지수급자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이들의 요구를 단체교섭 의제로 포함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급자들에게 피복수당을 자동지급하는 것이었다. 뉴욕시의 관리들은 이 요구가 시 당국의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들어 단체교섭의 주제가 될 수 없다고 격렬히 거부했지만, 결국 노조는 투쟁을 통해 요구를 관철시켰다(Burns, 2019: 79~80). 이렇듯 공공부문에서 단체교섭체제가 확립되기 전에는, 공공부문 노동자 특유의 공적 심성과 공명하고 공공선에 들어맞는 교섭 의제들이 등장하곤 했다(Burns, 2019: 83). 민간부문을 본떠 공공부문에서 확립된 단체교섭체제는, 이 같은 흐름의 억압과 배제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렇듯 현행 단체교섭체제가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에서 확립되는 와중에 나타난 도전들은, 앞서 살펴본 이 체제의 위기 앞에서 단체교섭에서 철수하기보다 단체교섭을 확장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로써 노동자와 이용자, 노조와 지역사회 간 호혜적 동맹을 구축하려는 현재적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 흐름 중 하나가 바로 ‘공유재/공동선을 위한 교섭’(Bargaining for the Common Good, 이하 BCG)이다.
BCG는 작업장 행동주의와 지역사회 연계를 대립시키면서 전자를 후자로 대체하지 않는다. BCG의 중심은 단체교섭(의 재구성)에 있고, 따라서 작업장에 기반을 둔 투쟁 지향적 노조주의의 전통을 계승한다. 아울러 광범위한 계급기반 쟁점 중심의 조직화를 선호하면서 노조운동, 나아가 노동운동 일반을 폐기하는 시도와도 확연히 다르다(Burns, 2014: 86~87). 미국의 노조 조직가 고 맥클리비의 용어를 빌리자면, BCG는 ‘얕은 동원’(shallow mobilizing) 모델이 아닌 ‘깊은 조직화’(deep organizing) 모델과 친화적이다(McAlevey, 2016: 54).
아울러 BCG는 단체교섭의 유기적 일부인 단체행동, 특히 전투적 단체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BCG를 표방하는 공공부문 노조들은 그간 주객관적 이유로 경원시되던 파업 전술을 위력적으로 부활시켜 큰 성과를 거뒀는데, 개중에는 공공부문 노 조의 파업 자체가 불법인 지역도 있었다. 즉 BCG는 전투성을 포기하기보다, 전투성은 유지하되 이 수단으로써 쟁취하려는 목표를 바꾸었다. BCG는 시민들의 지지를 좌우하는 것이 수단 자체가 아니라 그 수단을 통해 쟁취하려는 목표이며, 그런 목표의 수단으로 사용된 전투적 전술은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대중적 지지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였다(McCartin, 2018: 176).

교섭 범위의 확대와 새로운 단체교섭체제
BCG의 요점은 교섭 범위의 확대를 통해 현행 단체교섭체제에 도전하고 대안적인 단체교섭 관행을 개척하는 데 있다. 이때 교섭 범위의 확대는 다양한 양상을 띤다.
첫째, 교섭 의제의 범위가 확대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교섭 의제의 범위를 임금과 노동조건에 한정하는데, 이는 노조를 지역사회의 동맹세력들과 분할하는 효과를 낸다(Sneiderman & McCartin, 2018: 222). 반면 BCG는 교섭 의제의 범위를 넓혀 지역사회 단체들의 요구, BCG의 표현에 따르면 ‘공유재/공동선’적 요구를 교섭 의제로 삼음으로써, 단체교섭을 노조와 지역사회 간 동맹 형성의 계기로 배치한다(Smiley, 2018: 239). 이는 동맹 형성을 위한 실용적 거래를 뛰어넘는다. 그보다는, 노조의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는 세력이, 학교와 대중교통 같은 공적 제도들을 허물고, 가계 부채 증가에서 이익을 얻으며, 기후변화와 환경불의에 이 바지하는 정책을 만들어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바로 그 세력이라는 것, 즉 노조와 지역사회는 공동의 적을 직면하고 있다는 객관적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Smiley & Gupta, 2022: 61~62).
둘째, 교섭에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필요/욕구의 범위가 확대된다. BCG가 교섭 의제를 확대한다고 할 때, 이는 노동자와 주민을 별개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각각의 필요/욕구를 병렬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노동자들 자체가 ‘교차적’(intersectional) 존재라는 점, 즉 노동자들은 ‘피용자’(employee)일 뿐만 아니라, 예컨대 세입자이고 채무자이며 소비자이기도 하는 등(또는 자가소유자이고 저축자이며 자영업자를 가족으로 두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정체성과 필요/욕구를 가진다는 점을 고려한다(Smiley & Gupta, 2022: 61~62).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노동자들의 필요/욕구를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작업장에 한정함으로써, 교차적 존재로서 노동자들이 갖는 다양한 필요/욕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반면 BCG는 피용자로서의 노동자가 소지한 단체교섭권을 발판 삼아 노동자의 다양한 필요/욕구를 대표하고자 한다. 즉 단체교섭은 노동자들의 다양한 필요/욕구를 다루기 위한 장기적 전략과 운동의 일부로 배치된다(McCartin, 2016: 133).
셋째, 교섭 상대의 범위 역시 확대된다.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교섭 의제 및 교섭에서 다루어지는 필요/욕구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교섭 상대도 근로계약관계상의 사용자로 한정한다. 하지만 기업의 조직구조가 하나의 기업 안에 ‘고용자’와 ‘사용자’, 또는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가 통합되어 있는 ‘단일 사용자 모델’에서, 고용주와 사용자,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가 분화하는 동시에 접착되는 ‘공동 사용자 모델’로 전환됨에 따라, 근로계약관계상의 사용자가 많은 경우 ‘바지사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윤애림, 2022: 109~115). 이 때문에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사용자에게도 교섭의무를 부과하는 식으로 교섭 상대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세계 노조운동의 오랜 요구였고, 한국에서 그 요구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다. BCG는 이 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즉 임금과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 전반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존재, 가령 사용자만이 아니라 임대인, 은행자본, 상인, 정부 관리 등을 교섭 상대로 지목하는 가운데, 이들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부과하고자 한다(Smiley & Gupta, 2022: 74). 즉 단체교섭권의 소지자와 수범자를 확대함으로써 (피용자로 한정되지 않는) 노동자가 자신들의 삶에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사용자로 한정되지 않는) 자본 및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 수단으로 단체교섭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Smiley & Gupta, 2022: 74). 그런 점에서 BCG는 권력 및 권한이 있는 자들에게 실질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와 법률을 만들려는 큰 흐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Smiley & Gupta, 2022: 74).

물론 이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단체교섭의 본질 자체가 바뀐다고 할 수도 있다(Smiley & Gupta, 2022: 61).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유지되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노조의 자주성이다. 현행 단체교섭체제는 자본에게 유리하게 규정된 교섭의 의제와 범위, 교섭 상대를 노동자에게 강제하고, 자신의 노동조건과 삶의 개선을 위해 이를 넘어서려는 노동자의 자주적 판단과 노력을 억압한다. 노동자들은 이에 끊임없이 맞섰지만 어쨌든 자본이 주도하는 단체교섭체제는 존속하였고, 그 결과 노조운동은 다양한 방면에서 위기를 맞았다(Burns, 2019: 86). 이 위기를 극복하고 노조를 재활성화하는 출발점은,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전략과 동맹대상, 그에 맞는 단체교섭의 의제와 범위,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주적 결정권을 되찾는 것이다. BCG의 가장 큰 의의는 여기에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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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진범 (사회학 박사/플랫폼C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