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타난 이유
2025년 8월 24일
문화학살 공모자인 이스라엘 범죄대학의 문화유산 심포지엄 참가 비판 기자회견을 실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복수 게재되었다.
24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매표소 옆 계단에는 이른 오전부터 초록, 검정, 빨강, 그리고 하얀색의 커다란 깃 발이 자리했다. 바로 팔레스타인 국기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팔레스타인 국기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62개 한국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CIPA(국제문화유산기록위원회) 2025 국제심포지엄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이 참가하는 점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은 로봇공학, 자율 시스템, 군사용 AI 등 이스라엘 군사작전에 쓰이는 기술을 개발해 온 곳으로 현재 6만 명이 넘게 살해당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전쟁 범죄에 공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ICOMOS) 팔레스타인 지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35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지 중 3분의 2 이상을 파괴했다. 이런 이유로 집단학살은 물론이고 문화유적 파괴에도 앞장선 이스라엘의 대학이 문화유산 보존을 논하는 심포지엄에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팔레스타인 고고학자 "문화학살 공모자, 문화유산 심포지엄에 설 자격 없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ICOMOS 자문의원이기도 한 팔레스타인 고고학자, 마흐무드 하와리 교수가 성명을 보내와 대독이 이뤄졌다.
"저는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을 CIPA 2025 심포지엄에서 배제하라는 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천명한 하와리 교수는 "테크니온 대학은 군산복합체와의 연구 및 협력을 통해 가자에서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직접 공모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반인도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CIPA와 ICOMOS의 사명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CIPA 2025에서 테크니온 대학을 초청하는 것은 집단학살, '문화학살' 및 '학술학살', 즉 교육기관과 대학, 고고학 유적지와 유물, 문화유산의 기억을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표적화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관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CIPA와 후원 단체들, 특히 ICOMOS가 전쟁 범죄에 대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테크니온 대학의 워크숍을 취소하지 않은 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우리 학문이 누군가의 무덤이 되게 하지 말라" KAIST 연구자의 외침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해당 심포지엄을 공동주최하는 KAIST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KAIST 연구자 모임의 김태형 연구자는 "연구자로서 묻고 싶다. 과학기술이 정말 가치중립적인가.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직접 무기가 되지 않는다고 책임이 없는가"라고 물으며 "전 쟁과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대학과 학술 교류를 이어간다면, 우리도 결국 폭력 정당화에 힘을 보태게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테크니온을 비롯한 이스라엘 대학들은 단순한 방관자일 뿐 아니라, 집단학살의 적극적인 공모자"라며 "테크니온은 군사 기업 및 군과 협력해 자율 무기, 드론, AI 기반 매핑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며 테크니옥 대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을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학술보이콧을 마주해야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학술보이콧이 학문 윤리에 기반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한 김 연구자는 KAIST 구성원에게 "전쟁과 학살에 연루된 기관에 우리가 무대를 내어줘도 괜찮은가? 테크니온과 같은 대학이 학술 교류의 장에 서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폭력과 학살을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학술보이콧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장 평화로운 저항"이라며 "KAIST는 생명 편에 설 것인지 죽음의 기술에 손잡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KAIST가 학살의 공범이 되기를 선택한다면, 그 오명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무덤 위에서 연구하지 말라. 우리 학문이 누군가의 무덤이 되게 하지 말라"며 KAIST가 테크니온 대학을 보이콧할 것을 촉구했다.
행동에 나선 시민사회는 이날 목소리를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국제 학술교류와 문화행사 현장에서 이스라엘 전쟁범죄 연루 기관의 참가를 막기 위한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드러냈다.
글 : 박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