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 비리에서 사면까지 | 조국 사태가 드러낸 민주주의의 균열
2025년 8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일반 형사범 1,920명과 부패 정치인들, 재벌 범죄에 가담한 초고위 관리자들에 더해, 노동자·농민 등 활동가 184명이 포함된다. (행정감면 대상 83만4,499명, 민생·신용 회복 대상 324만 명에 대한 감면 및 회복 조치도 있다.)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투쟁하다 기소 된 활동가들의 사면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반해,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착취와 억압을 심화시켜온 장본인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한 것은 부당하다. 사면 리스트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신뢰·법치의 기준선·세대 간 공정 감각에 직격탄을 날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명징한 평가와 기록이 필요하다.
공적 질서 붕괴의 신호
스스로를 “강남 좌파”(다른 말로, ‘리무진 리버럴’이나 ‘브라만 좌파’도 있다)라 칭하던 조국 전 장관은 오늘날 ‘강남 엘리트 계층’의 특권적 일상과 구조적 부패를 대표적으로 드러낸 인물 중 하나다. 특히 자녀 입시 과정에서의 허위 서류 제출·문서 위조·부당한 논문 저자 등재 등은 법원 판결을 통해 명백히 유죄로 확정됐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위해 제출한 허위 표창장, 서울대 의전원 지원 시의 허위 인턴 증명서, 단국대 의대 연구논문 제1저자 등재, 아들의 허위 수료증과 수상 경력 등은 모두 업무방해와 사문서 위조로 인정됐다. 이러한 범죄 행위는 단순한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재생산의 핵심 경로인 교육·입시 체계가 어떻게 왜곡·남용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지난 5~6년간 청년 세대의 정치 감정 형성 과정에서 가장 큰 환멸과 박탈감을 남겼다. 입시 비리는 단순한 ‘공정성’ 문제를 넘어 계급 재생산의 핵심 구조를 드러내는 영역이며, 특히 경쟁적 교육환경 속에서 사회 이동의 주요 통로가 입시로 제한된 한국 사회에서 청년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단순한 도덕적 분노를 넘어 정치적 회의와 냉소로 이어진 바 있다. 특히 ‘조국 사태’는 이후 정권교체의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민주당 문재인 정권은 지지율 급락을 경험했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던 원내 진보정당은 내부 논쟁으로 큰 홍역을 겪고, 리더십 붕괴와 분열로 이어졌다.
조국 사태 초기부터 청년층은 뚜렷하게 비판적인 여론 양상을 보였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고, 입시비리가 폭로되던 2019년 9월 초, 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응답자들은 ‘임명 반대’ 34.6% vs ‘찬성’ 25.3%로 반대 우세를 드러냈다. 같은 시기 30대는 상대적으로 찬성이 높았으나(30대 찬성 54%, 반대 40.2%), 세대 내 균열의 시작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20대 지지층의 이탈이 뚜렷했다. 시간이 더 흐르며 20·30대의 시선은 더 차가워졌고, 이는 세대화된 공정 담론의 폭발로 이어졌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나아가 극우의 청년 조직화 프로젝트에 정치적 기회를 안겨주었다.
이번 사면에 대해서도 20·30대의 비판은 도드라진다. 7월 말 정기조사에서 전 세대에 걸친 여론은 팽팽(찬성 45.8% vs 반대 45.4%)했지만, 20·30대는 반대 응답이 더 높았다. 8월 둘째주 조사에선 20대 반대 54.1% 및 30대 반대 69.2%로, 부정 여론이 또렷해지고 있다. 요컨대 2019년부터 20대는 ‘공정’ 이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령대의 폭이 확장됐다. 누적된 청년층의 불신을 한 번 더 확인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면을 옹호하는 일부 논리는, 마냥 “죄다 조작된 것”이라며 ‘부정’으로 일관하거나, (강남 엘리트들 중에서는) 다들 그렇게 해왔는 데 ‘조국 일가한테만 너무 심하다’며, 조국 사면 문제를 ‘형평성’의 문제로 환원한다. 이는 한국의 엘리트계층 내 진보주의자들이 빠진 자기 모순을 확인케 한다. 옹호론자들의 주장대로 강남 엘리트들 사이에서 동일한 행동 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흔하다면, 그것은 이들 엘리트 계층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방증할 뿐, 범죄자 개개인에 대한 처벌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더 많은 비판과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확인할 근거가 되어야 한다.
현실에선 발각·수사·재판의 결과에 따라 개별 사건 처벌의 결과가 다르게 귀결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규범이 보강된다. 반면 이번 사면 논란에 동원된 상대화 논리는 범죄 처벌의 정당성을 훼손하며, 부패한 엘리트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하는데 기여할 뿐이다.
정치적 거래
당연히도 조국 등의 사면 조치는 거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광복절 사면 논의가 있기 직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송언석은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에게 안상수 전 인천시장 배우자, 정찬민·홍문종·심학봉 전 의원 등에 대한 사면·복권 요청 문자를 보냈다. 이에 대해 강훈식 비서실장은 “이게 다예요?”라며,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답장을 보냈다.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이 언론사 카메라가 찍혀 논란이 되자, “(사면 일정 등과 관련해) 통상 대통령실에서 비공식적으로 명단 요청을 하면, 각 당이 사면 대상자를 모아 전달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의구심이 남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특별사면 명단에는 정찬민(용인시장 시절,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3억5,000만 원 상당의 뇌물 수수)·홍문종(사학재단 75억 원 횡령 및 IT업체 대표들로부터 8,200만 원의 뇌물 수수)·심학봉(중소기업 지원 대가로 2,770만 원과 7,000만 원 상당의 금품 수수)이 모두 포함됐다.

이를 통해 우리는 거대 양당이 꽤나 오랫동안 모종의 ‘사면 청탁’이란 형식으로 정치적 거래를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이전투구를 반복하지만 결정적 국면에서는 뒷거래를 서슴지 않는다. 이를 ‘협치’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기만이다.
기득권 정치는 철저한 거래 관계로 이뤄지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조국 전 장관과 지지자들에겐 좋은 소식으로 여겨질 지 모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민주당이 지지율 급락 등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얼마든 ‘윤석열 사면’과 같은 뒷거래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과 극우 세력은 이 사면을 활용해 “민주당도 똑같다”는 프레임을 강화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의 도덕적 기준선을 더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 이미 여론은 “사면 남용” 프레임과 결합해 대통령·여당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편, 이 국면의 최대 수혜자는 이준석이다. 지난 대선에서 ‘젊은 극우’이자 ‘혐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지 없이 드러낸 바 있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번 사면에 대해 “자기 진영에만 포괄적이고 시혜적”이라면서, 타 세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엄벌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조국 전 대표 내외의 사면은 조국혁신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뒷거래로 볼 수밖에 없다”며, 정치 거래의 정황을 강하게 의심했다. 조국혁신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것에 대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개혁신당 이외에도 노동당과 정의당 등 원외 진보정당들이 사면 비판 목소리를 냈다. 반면 위성정당 노선을 밟아온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은 아무 입장도 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조국 사면 결정은 거대 양당들에 실망한 ‘지지정당 없음’ 또는 ‘냉소자’들에게 개혁신당을 부각시켜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혐오 정치세력에게 정치적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