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이후, 대학생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윤석열 파면 이후, 대학생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윤석열 파면 이후, 대학사회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극우의 공세와 자치의 위축이라는 이중의 도전 속에서도, 동덕여대의 본관 점거부터 동맹휴강까지 학생들은 다시 길을 만들고 있다. 오래된 구조의 균열과 새로운 가능성이 교차하는 지금, 대학과 사회운동의 연결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글은 대학 안팎에서 이어진 움직임들을 통해 학생자치의 의미를 되짚고, 다시 연결되고 연대하는 운동의 방향을 모색한다.

2025년 7월 3일

[읽을거리]대학학생운동, 대학, 사회운동, 윤석열퇴진

플랫폼c에서는 대학교 학생운동/자치 단위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서로 활동 상황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모임으로서 ‘작당모의’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작당모의'에서는 학생운동에 관심있는 개별 활동가들이 모여 정기모임과 워크샵, 각종 사업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은 <작당모의 워크숍> 2부 발제 중 일부로 작성되었으며, 사회운동단체 ‘전환’ 발행 웹진 「도모」에 게재된 「극우의 캠퍼스 공격: 대학에 다시 풀뿌리 민주주의를」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새로운 공세, 오래된 제약 | 학생 극우조직의 대두와 반향

12.3 내란사태와 윤석열 퇴진운동 국면을 거치면서 한편에는 ‘2030 응원봉’, ‘말벌’들이 생겨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조직된 청년ㆍ학생 극우운동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들은 전국 30여 개 대학에서 ‘자유대학’이라는 조직을 건설하고 (다분히 전광훈의 ‘자유마을’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참여자를 모으고 있다.

이전에도 일부 대학생들의 간헐적인 혐오선동이 있었지만, ‘자유대학’은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기존에 캠퍼스 안에서 마주하던 혐오세력은 에브리타임과 같은 커뮤니티의 익명성을 빌린 사이버불링, 혹은 극우적인 개인의 혐오발언 및 폭력행동으로 그 규모와 영향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유대학은 2월-3월 동안 전국의 수십여 개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윤석열지지ㆍ탄핵반대 극우 집회와 시국선언을 조직하고 진행했다. 지난 3월 1일에는 혜화역에서 '전국 대학생 연합 시국선언 대회'를 열었다. 윤석열이 파면된 후 대선국면에서도 여러 방면의 활동이 이어졌다. 4월 17일에는 ‘윤 어게인’이라는 구호 아래에서 수백여명이 ‘과잠’을 입고 뚝섬에서 집회를 한 뒤 건대 양꼬치거리까지 행진하며 “짱×, 북괴, 빨갱이들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는 노래를 부르며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선동했고 지금도 유사한 집회를 연이어 개최하고 있다. 이들은 4~5월에는 ‘자유대학신당’이라는 정당건설을 시도하기도 하고, 조기대선국면에서 ‘문수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운동을 조직하는 등 정치적 구심점을 형성하고자 노력중이다. 사회운동의 용어로 말하자면 풀뿌리 조직을 형성하고 전국적인 연대체를 건설하는 중인 것이다.

학생운동이 전통적으로 싸워온 대상인 국가기관과과 대학본부의 탄압도 이어지는 중이다. 학내 극우세력의 성장은 여러 학교본부로 하여금 학생들의 활동을 보장하기보다는 양비론 뒤에 숨어 ‘안전’을 핑계로 학내 자치활동을 제약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물리적 충돌부터 시작해서 극단적으로는 방화까지 이어진 극우집회의 폭력적인 행동은 오히려 ▲ 학내집회 관련해 필요한 시설물 사용을 불허하거나 외부인을 통제하는 조치 (다수 대학) ▲ 집회하는 학생들에 대해 총장 등 학교 관계자가 협박성 발언을 하거나 (충북대), ▲ 학내집회에 대해 사전신고제를 도입 (서울대) 하는 등의 결과로 이어졌다.

2025년 현재진행형인 탄압 사례로 동덕여대를 빼놓을 수 없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피할 수 없는 정세 속에서 동덕여대는 구성원 합의 없이 밀실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했다. 이에 학생들은 본관점거, 학생총회, 래커시위로 대학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학교는 학생들을 학칙상 징계는 물론 법원을 통한 본관 점거ㆍ현수막 부착ㆍ구호/노래 제창ㆍ근조화환 설치 등 행위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 (이는 집회시위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위헌적인 요구였으므로 법원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학생에 대한 형사고소, 최대 54억에 이르는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으로 탄압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법적 대응을 남발하고 손해배상ㆍ가압류로 조합원 개개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자본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한 것이다. 반년이 넘는 학생들의 투쟁의 결과로 학교는 법적 조치들을 취하했지만, 경찰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면서 학생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 내 독립영화관인 아트하우스 모모는 지난 5월 한국퀴어영화제에 대한 대관을 취소했다. ‘이화여대의 창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영화제’라는 민원이 다수 제기되었다는 이유, 그리고 2월에 있었던 학내 극우집회 이후 ‘캠퍼스가 분쟁과 충돌의 장소로 사용되는 것을 막고 교내 구성원들을 심리적·물리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학교본부가 학내에 입점한 영화관에 영화제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결과였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의를 폐강시키려는 시도가 진행중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일부 다른 수업보다 수요도 많고 공급을 담당할 강의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수요와 공급’의 논리가 들먹여진다는 점이다. 학문의 다양성, 대안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공격함에 있어 시장논리가 객관적 근거라기보다는 맹목적 선전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비록 학생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대학을 이념ㆍ종교의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은 향후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있어서도 분명히 제약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존립기반의 침식 :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학생회의 공격

학내에 대안적인 주체가 생겨난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강력한 반동이 새로 피어나는 싹을 짓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학생운동이 자라온 토양이자 과거 학생운동의 유산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 온 학생회는 어떠할까? 학내외에 넘실거리는 공격의 물결에 맞서 학생회도 함께 투쟁하기를 기대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기존에도 학생회 산하기구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인권 관련 사업, 사회정치적 연대활동이 학생사회 일각으로부터 공격받는 일은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고려대 총학 산하 특별기구들, 성균관대 여성주의교지 정정헌,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그리고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을 둘러싼 사안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공통점은 그 자체로 학생자치단체인 학생회가 산하의 학생자치기구를 공격하고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학생회는 겉으로는 예산ㆍ활동인원ㆍ서류구비ㆍ사업미비 등 절차적 문제를 내세우고 판단과정에서는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그 이면에 대학생의 주체적인 자치활동을 억압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활동 제약 조치는 겉으로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더라도 실제로는 하나의 정치적 입장일 수 밖에 없다. 여학생ㆍ소수자 인권사업, 민주학생기념사업, 생활도서관 사업 등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가 존재하는 이유는 ▲ 매년 새로 선출되는 각 단위 대표자들이 전문성을 가지기 어려운 사업들에 있어서 이를 보조하고 ▲ 매년 새로 선출되는 학생회의 기조들이 바뀌더라도 학생사회의 주요한 가치(자치, 민주, 평등, 공존 등)를 지키기 위한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 등에 있다. 학내 자치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도 이 과정에서 학생사회의 각종 의제에 관해 지속적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감시하기 위함이다. 구성원 모두의 권리는 공적인 자산을 들여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내 자치기구와 자치언론에 대한 공격은 공적인 것을 지우고 모든 것을 개인의 것으로 치환하려는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특별기구들의 존재이유는 종종 생리대비치사업, 배리어프리사업 담당으로 축소되고, 이 사업을 이미 학생회가 하고 있으니 특별기구가 더 이상 필요없다는 논리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이 사업들이 자리잡은 이유는 여성의 생리를 개인의 부끄러운 문제가 아닌 공적인 건강권의 문제로 접근하여 학생회비라는 공적 자산을 투입하여 이를 권리로서 보장하게 만든 논의, 장애접근성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 가장 취약한 자에게 안전한 환경이 모두에게 안전한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를 보장하는 것 또한 공동의 책임이라는 논의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기구와 학내 자치언론은 지속적으로 학생사회 내에서 강연ㆍ캠페인ㆍ실천사업 등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논의를 촉발시켜 왔다. 학생회칙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학생회비를 활용하여 운영되는 이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매년 대표자가 교체되는 학생회가 해당 사업들을 학생회의 의무로 인식하기에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학생회비 지원을 중단하고 기구들을 통폐합시키는 행위는 이러한 배경과 맥락을 지우고 학생회의 산하기구로서 특별기구가 그간 해 온 역할과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의 역할과 책임을 부정하고 모든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치환하는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에서 벌이는 공공성 축소ㆍ민영화ㆍ구조조정의 모습과 닮아있다.

학생사회 탈정치화ㆍ소비자화

그러한 점에서 오늘날 학생운동이 맞닥뜨린 적대적인 조건의 기저에 학생사회의 탈정치화ㆍ대학생의 소비자화 경향성이 존재한다는 꾸준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발 더 나아가 학생사회 구성원들이 학생자치를 사고하는 관점도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학생회의 기능을 바라봄에 있어서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존재하는 공동체의 기능이 강조되보다는 규칙을 입안해서 벗어난 이들을 벌주는 국가기관처럼 사고한다거나, 비용절감을 추구해야 할 기업과 같이 사고하는 경향성이 강해지는 상황이다.

학생사회의 탈정치화라는 현상은 학생운동의 쇠퇴ㆍ대안적 논의의 축소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대안사회를 상상할 역량이 사라진 결과 학생사회에서 모든 변화의 시도는 정치적인 것으로 매도되어 삭제되었다. 정치적 갈등에 대한 회피심리로 기계적 중립만 강조된 결과 학생회에는 징계에 대한 공포에 기반해서 유지되는 앙상한 규율집행의 역할만이 남았다. 이마저도 표면적으로는 ‘회칙’이 동원되지만 그 해석과 집행에 있어서는 주체들의 편견과 편향이 그대로 반영된다. 한편으로는 극우집회와 이를 규탄하는 집회 양측을 불허한 학교본부(행정실)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아, 안전관리라는 명목으로 학생회가 학생자치활동을 억압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치기구 탄압에 앞장선 학생회들은 학생들에게는 회칙을 들먹이며 징계를 언급하고, 더 큰 권력과 자원을 가진 학교본부로부터는 그 권력을 나눠받아 대리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모습은 학생사회에서만 관측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사법화 경향성은 점점 심화되어 왔다. 제도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보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국가기관이 사회운동세력과 소수자를 탄압할 때 흔히 법치와 질서를 표면적 명분으로 내걸면서 실제로는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법해석을 동원하곤 하는 장면들은 더이상 생소한 것이 아니다. 지금 대학에 재학하거나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은 성장기에 이러한 장면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또 경험한 세대이다. 따라서 오늘날 학생자치 대표자들이 보여주는 억압적인 모습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위를 활용함에 있어 대표자의 역할,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새로이 학습하고 고민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채로 그동안 자신이 보아온 내용을 그대로 수행하고 재현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을 등록금과 수업ㆍ졸업장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으로 보는 소비자주의는 학생회를 학생회비와 간식ㆍ축제 연예인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으로 보는 관점으로도 이어졌다. 대학 및 대학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공적인 것’이 자리잡을 영역이 없어지자 학생회비는 학생사회라는 ‘공공’을 위해 쓰여야 할 공적 자산이 아닌 학생 개인과 학생회 사이 거래대금으로 변했다. 학생회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업의 사업 제휴를 따오며 제휴비를 받아 학생회비에 충당하거나 집행부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활용한다. 일종의 공동구매 대리인이 되어버린 학생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리 따위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탈정치화ㆍ소비자화된 학생사회의 학생회는 억압기구이자 공동구매 및 생활서비스 대행업체의 역할을 연습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안으로 조직하고 바깥으로 연대하자

지금까지 학생운동이 맞닥뜨린 조건을 살펴보았다. 대학 내 극우세력이 조직되고 극단적인 실천을 벌이는 가운데, 전통적인 탄압이 이를 핑계삼아 되살아나고 있다. 학생운동이 만들어냈고 학생운동과 함께하며 쇠퇴한 학생운동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도 하던 학생회는 이제 신자유주의화된 대학 체제의 일부이자 첨병이 되어 학생자치를 스스로 공격하며 자신의 존립기반을 허물고 있다.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체계가 다소 무너져도 학생자치라는 이념에 대한 합의가 유지된다면 대내외의 탄압과 공격이 있어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잃어버린 학생자치를 스스로 되찾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학생회 의결기구에 모인 학생사회 대표자들이 수시간의 회의동안 아무런 부끄럼없이 무지성 찬성표를 던지거나 기권표 뒤로 숨고, 혐오적이고 폭력적인 발언,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모욕을 눈치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대표자 개인의 페미니즘 및 소수자담론에 대한 적대감과 적극적 무관심은 직접적 원인이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을 견제할 대안적인 여론과 세력이 학교에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관심이 없거나 적대적인 경향성을 가진 이가 대표직에 있더라도 이를 견제할 세력과 집단이 있다면 지금과 같이 적극적인 백래시를 거리낌없이 저지르기는 힘들 것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10대부터 주로 온라인을 통해 극우매체와 혐오문화를 접하며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중등교육과정은 청소년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중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성인으로서의 사회화를 경험하는 대학에서라도 학생회, 동아리와 같은 풀뿌리 단체가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 온라인이 아닌 일상생활공간에서 결속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사회는 대안적인 사회화의 기회와 논의공간을 제공하는 공동체의 역할을 상실했다. 결국 개인이 학생회 대표자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번도 학생자치란 무엇이며 왜 하는 것인지, 학생사회의 지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담론에 노출될 일이 없고 논의해 볼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학생운동이 마주하는 반동은 보수화된 대학생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다.

과별 소모임과 동아리에서, 학생회에서, 각종 모임과 자치단체에서 주변의 학생들과 접촉하며 학생자치와 학내민주를 말뿐이 아닌 실제 사업으로 실현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이란 무엇인지, 대학에서의 학생자치란 무엇인지, 학생회와 대학생들의 자생적인 모임이란 무엇인지, 그들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가 사회에서 더욱 많이 논의되고 그런 논의가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는 채널로 유통되어서 침묵하는 다수에게도 흘러들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생자치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모습과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대학생 담론은 서로 순환관계에 있다. 학생운동과 학생자치가 쇠퇴하면 다시 대학과 대학생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퇴보하고, 이는 대학에 입학하는 다음 세대의 학생자치로부터의 원심력을 강화하는 악순환에 놓인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오늘날의 대학 현장에서 대학생 스스로의 운동을 고민하는 주체들만이 끊어낼 수 있다. 다시 대학을 조직화의 장으로 만들고 크고작은 모임에서 논의와 실천을 생산하고 서로 연대하며 백래시에 맞설 때, 조그만 승리와 선례들이 남아 다음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실천적인 근거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아래에서는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학생운동이 만들어 낸 성과사례들을 단초삼아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캠퍼스에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난 겨울, 윤석열 퇴진운동 국면에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미리 조직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기존에 사회운동과 관련이 없어도 책모임을 하고 스터디를 하던 사람들, 친구들끼리 카톡방에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광장으로 모였다. 대학이라고 다를 수 없다. 동덕여대는 사학비리와 불통행정에 맞선 오랜 역사가 있고 지난 10년간 8번이 넘는 학생총회를 성사시킨 경험이 있다. 학교측의 일방적인 공학전환 시도가 드러났을 때 학생회가 앞장서 학교와 투쟁하고, 개인들이 대자보와 집회시위를 조직해 온 역량은 결코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렇듯 일상에서의 조직화가 곧 더욱 많은 정치적 상상력의 물질적인 근거가 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많은 대학에서 학생자치 혹은 풀뿌리 민주주의는 허약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조직화의 토양이 존재한다고 판단할 낙관적 근거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란 정세에 맞선 윤석열 퇴진 운동에서 주목받은 것은 단연 급진화된 젊은 층의 집회 참가였다. 머뭇거리던 대학가 총학생회는 학내 여론에 등떠밀려 학생총회를 열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다만 그 결의사항의 집행에 대해서 비판적 평가가 많은데, 이는 기존 일상의 조직화에 공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향후 학생운동이 보완해야 할 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자보 한장 붙기 힘들던 학교에서도 대자보가 수십장씩 붙는 현상이 일어났다. 학교별로 퇴진집회 참여 모임, 집회 참여자 오픈카톡방이 기존 학생운동단체에 의해, 혹은 자생적으로 조직되었다.

광장의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젊은 여성과 성소수자가 연이어 연단에 올라 발언하고 박수받았다. 장기투쟁사업장마다 ‘말벌동지’가 생겨났고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누구나노조지회에는 600명 넘는 사람들이 가입했다. 이들이 모두 대학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에서 드러난 열망은, 보수화된 대학 곳곳에도 마음 속으로 함께 할 동지들을 만날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 캠퍼스의 침묵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줄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어볼 만한 충분한 근거들이다.

대학별로 구체적인 사정은 다를 것이다. 이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단체나 동아리가 있는 학교라면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함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미 그런 단체에 속해 있다면 품이 크게 들지 않는 수다모임, 산책동아리, 영화상영회와 같은 행사를 통해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 학생들과의 접촉면을 넓혀볼 수 있다. 역량이 된다면 신학기 홍보사업과 맞물려서 오픈세미나나 집담회, 학내 오픈마이크, 상품을 건 부스행사나 SNS 이벤트와 같은 사업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화생활도서관 @ewhalivelib 과 서강대 노고지리 @nogojiri_sogang 의 인스타그램, X에서 많은 좋은 예시들을 볼 수 있다) 나 혼자라도 괜찮다. A4용지 크기의 작은 대자보도, 쇼츠나 릴스도 괜찮으니 내 주장을 알릴 방법을 찾아 무엇이건 써서 붙이고 찍어서 올려보자. 중요한 것은 대학 안에서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라도 늘리고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윤석열 퇴진 직후인 4월 말 작당모의 정기모임에서 윤석열 퇴진운동을 계기로 진행한 조직화의 예시들이 많이 공유되었다. 일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강대학교 노고지리에서는 윤석열 퇴진운동의 시기, 100여 명에 가까운 ‘민주사회를 꿈꾸는 청년서강’ 집회참가단 톡방 만들기, 수다모임 운영, 깃발대회 개최, 유인물 작성ㆍ배포, 대자보ㆍ현수막 부착, 집회발언 및 철야농성 참여, 몸짓ㆍ민중가요 배우기 등을 진행했다. 이런 역량은 2월 서강대학교에서 극우 시국선언이 열렸을때 지역사회와 함께 연대하는 맞불 기자회견을 긴급히 그러나 성공적으로 조직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공동의 투쟁 경험은 신입부원의 수적 증가를 포함해, 구성원들이 단체 활동에 대해 높은 참여율, 소속감, 결속력을 보이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영남대 민주학생연대의 경우 계엄 직후 결성되었지만 대구지역 퇴진지역 집회 참여, 성서공단 등 지역 현안 사업장 및 지역 선전전 연대, 에브리타임 내 여학생 이용자 소모임 조직, 3.8 여성의 날 부스행사, 대자보 및 포스터 부착 등 다양한 사업형태를 통해 기존에 학생운동 단체가 없던 영남대에서 20명 넘는 회원을 신규 조직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비상계엄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단체이지만, 파면 이후에도 울산 이수기업 정리해고 투쟁에 연대하고, 민주노총 지역본부 및 교내 비정규교수노조와 함께 생활법률 상담을 주최하는 등 여러 활동을 통해 ‘파면 이후’의 세상을 함께 그려갈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연결될수록 우리는 강하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개별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다른 비슷한 모임 및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매년 입학ㆍ졸업을 거치고 편입ㆍ교환학생ㆍ취준 등을 이유로 구성원이 쉽게 변동되는 대학사회에서 개인 혹은 소수의 인원이 모임을 꾸준히 운영하려다 보면 막막함ㆍ외로움 등을 마주하기 십상이다. 운영진은 향후 단위를 책임질 후배 양성, 단위 내외로 벌어지는 각종 갈등상황의 해결, 개인적인 진로전망에 대한 고민도 감당해야 한다. 대학 사회 내에서조차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시대에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부터도 멀어지기 어렵다. 혼자서는 일탈이지만 함께 하면 힘이 된다는 말은 개인 간의 모임에도, 단체들의 연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캠퍼스 내에 외롭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동지가 필요하듯이, 모임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도 더욱 동지가 필요하다. 사안이 있을 때 연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일상 속에서 서로를 만나 단체운영 노하우와 학습ㆍ활동 자료 공유, 진로전망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이 소중한 시점이다.

다행히 윤석열 퇴진광장에서 만난 수많은 깃발들은 우리 서로가 사회에 외딴 섬으로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학생운동도 서로를 만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했다. 연대는 학내의 여러 모임에서, 학교 간의 여러 모임에서 가능하다. 내란에 맞선 퇴진광장에서 내내 나부낀 것은 11월부터 먼저 투쟁을 해오고 있던 동덕여대 학생들의 깃발이었다. 겨우내 이어진 동덕여대 학생들의 집회에 시민들은 연대의 행렬로 화답했다. 이렇게 학생들이 학교 바깥으로 나서 직접 일궈 낸 사회적 여론은 동덕여대 학생들이 5월 학교의 법적 조치에 맞서 거둔 성과의 바탕이 되었다. 앞서 언급된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의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취소에 맞선 연서명과 항의행동은 ‘이화권리단위연대체 이음’이 진행했다. 해당 연대체에는 이화여대 내에서 활동하는 노학연대모임, 여러 학생자치기구, 중앙동아리, 자치언론, 대학원생노동조합 등이 모여있다. 모임의 형태와 구성원을 따지지 않고 함께 대화하며 모여있던 결과, 대응해야 할 사안이 생겼을 때 신속하게 또 더 넓은 대중을 상대로 현안을 알리고 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대학교에서는 ‘민주적 학생사회를 위한 고려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져서 학생자치기구 통폐합ㆍ재인준부결, 감사위원회 설치 등 에 대해 이의제기서 제출ㆍ기자회견ㆍ학내외 연서명 진행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기존 학내 자치기구ㆍ동아리들로 결성되어 정기적 논의를 진행하던 학내인권단체협의회가 보다 폭넓게 개인ㆍ대학원생 참여자 등을 받아들여 결성한 것이다. 아무리 4개 자치기구에 대한 활동 제약 시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모여있지 않았다면 공동의 대응을 기획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공대위 활동 도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계엄을 희화화하고 내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주점을 진행하려고 하자 입장을 바로 발표하는 등의 기민한 대처를 할 수 있었던 점은 여러 단위의 역량과 고민이 모여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서로 학교가 달라도 ‘같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면 모여서 함께 목소리내고 행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오히려 서로에게 힘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많은 사례들이 보여준다. 학생회 산하 자치기구가 공격받는 국면에서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생활ㆍ자치도서관으로 구성된 생활자치도서관 네트워크는 학교 담장을 넘어 공격받는 각 자치기구에게 연대하며 생활도서관 운동의 의의를 살려내고 있다.

작당모의에서는 지난 3월 윤석열 퇴진운동 막바지 국면, 탄핵심판에서 파면이 선고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담아 3월 27일 시민총파업에 맞춘 <동맹휴강>을 했다. 동맹휴강은 35개의 학생단체가 공동주관하였는데, 각 학교별로 포스터 부착, 수업담당 교수자에 메일, 교실 스크린에 띄우기, 강의실발언, SNS 홍보 등으로 홍보가 진행되었다. 학우들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은 채 속으로 가지고 있던 불안감과 분노, 절박감을 조직해 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그 결과 오픈카톡방에는 100여 명 넘는 인원이 입장했고, 사전집회부터 본행진까지는 200여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는 여러 학교들에서 호응을 얻었으며 연합뉴스, 경향신문에 보도되고 윤석열퇴진ㆍ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측에도 결과가 공유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서 조직할수록 다른 학교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동맹휴강 다음날에는 <뚫어, 학생운동! 집담회>를 진행했다. 극우가 대학가를 돌면서 탄핵반대 시위를 열고, 대학 등록금 인상과 민주화 투쟁이 벌어지는 상황. 이에 더 넓고 강한 학생 운동의 필요성. 그 길을 같이 고민하고 모색하는 자리였다. 당시 여러 학생단체의 활동가, 그리고 소속이 없는 개인 학생들, 특히 기존 작당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학과 대학생단체에서도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남긴 평가는 ▲ 서로가 자신의 고민과 사례를 이야기할 기회 및 공간에 대한 갈증이 컸었다는 점, ▲ 따라서 이를 공유하는 것 그 자체로부터도 효능감을 느꼈다는 점이다. 이 지점들은 작당모의가 지난 3년간 진행해 온 월례모임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학생단체들이 연대해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동시에 연대할 때 채울 수 있는 개별 단위 활동의 공백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윤석열 파면 이후 대학 학생운동이 맞닥뜨린 난점의 현황과 원인,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성과와 기반을 살펴보았다. 80년대 학원자유화 국면과 총학생회 부활 이후 숱한 논쟁과 실험 속에서 이어져온 대학가의 학생회 체제는 이제 그 뼈대만 남아있다. 이를 오늘날 대학사회의 현실에 맞게 고쳐갈 수 있을지 아니면 바닥부터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지의 논쟁과 실천, 시행착오 속에서 다음 세대의 대학자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가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의 대학은 왜이리 가혹하냐고, 광장에 모였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 간 것이냐고 울분 섞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그 답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2015년 메갈리아 사태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촉발시킨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박근혜정권 퇴진에 대한 열망과 맞물려 대학사회에는 페미니즘 학회가 곳곳마다 생겨났다. 대학가의 악폐습은 권위적ㆍ반여성주의적이라는 비판 아래에 폐지되거나, 적어도 기존의 현상이 문제적이라는 감각이 널리 공유되었다. 사건이 사람들을 모으긴 하지만, 모인 사람들의 힘을 모을 구심점이 마련되지 않았더라면 변화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십년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차별과 폭력에 맞서 온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 온 담론과 실천이 바로 그 역할을 해주었다.

윤석열의 내란에 맞선 광장은 그 어느때보다 급진적이고 해방적이었다. 광장은 안전한 곳이라는 감각 속에서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냈다. 도시에서는 잊혀진 것 같았던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이 주체로 다시 등장했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침묵했던 일상 속의 혐오ㆍ차별, 모두의 삶에 어둡게 드리운 기후위기가 주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함께 느꼈던 서로의 힘은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주체가 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이 함께 만들었던 대안사회의 경험은 앞으로 그들의 삶에서 잊혀질 수도 지워질 수도 없다. 지금 학생운동이 마주한 곤경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과 학교 곳곳에 흩어진 광장의 목소리를 불러모으는 것은 다른 과정일 수 없다. 꿋꿋이 이어져 온 학생운동의 역사와 광장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주체가 어느때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당장의 막막함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세대 운동의 성패는 당장 맞닥뜨린 정세의 승패로 판가름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오직 이어지는 싸움의 과정에서 마침내 우리가 그 만남을 이루어냈는지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안으로 조직하고 바깥으로 연대하며 우리 스스로가 희망이 되자.

글 : 임현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