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 쿠데타 이래 1,648일… 골리앗 군부에 맞선 시민불복종운동의 현황과 전망

미얀마 | 쿠데타 이래 1,648일… 골리앗 군부에 맞선 시민불복종운동의 현황과 전망

우리가 미얀마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국경을 넘어 확장’하는 것이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점증하는 권위주의적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2025년 7월 30일

[동아시아]미얀마시민불복종운동, 소수민족, 미얀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그랩, 쿠데타

오늘날의 미얀마 내 민족 간 갈등은 1948년 독립 이후 다민족 국가를 무리하게 일원화하고 인위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지만, 그 역사적 연원에는 영국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있다. 만약 영국이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통해 미얀마를 식민통치하지 않았더라면, 미얀마 민중 스스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조직하고 근대국가 체계에서 어떻게 다양한 공동체들이 서로 관계 맺을지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비극의 연쇄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분할 통치 전략 : 식민지 통치자들이 피지배 민족이나 집단 내부의 기존 분열(종교, 민족, 계층, 지역 등)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거나 심화시켜, 이들이 단결해 저항하는 것을 막고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정책.

1962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가를 통제해 온 군부 정권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공동체들과 지속적으로 충돌했고, 동시에 광범위한 인권 유린을 자행해 왔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아홉 번째 군부 쿠데타로 전복시켰다. 이 쿠데타는 광범위한 ‘시민불복종운동’을 촉발했으며, 이에 따라 국민통합정부(NUG)와 그 무장 조직인 국민방위군(PDF)이 결성됐다.

10.27 작전 이후 전황

영국 BBC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얀마 군부는 전국 영토의 약 21%만을 통제하고 있으며, 반군 및 소수민족 무장 단체가 약 42%를 장악하고 있다. 2021년 30만 명에 달했던 군부 병력은 2024년 약 13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군부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3개월 사이 서로 밀고 밀리는 전개가 지리멸렬하게 반복되고 있고, 그에 따라 군부에 맞선 저항군들의 기세는 상승 혹은 하강 곡선을 긋고 있다. 가령 시민방위군(PDF)의 병력은 2022년 6만 5천 명에서 2024년 8만 5천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또, 주요 소수민족인 카레니족 반군은 흘파송(Hpasawng) 타운십에서 전략적 요충지인 군부 산하 134, 135보병대대의 준거지를 점령했다. 이에 더해, 군부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상당한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만달레이(Mandalay) 인근 지역에서는 저항군이 중국산 무기를 대량 노획하는 사례도 있었다.

2023년 10월에 시작된 '1027 작전'은 내전의 판도를 바꾼 주요 전환점이었다. 이 작전을 통해 형제 동맹(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 MNDAA, 따앙민족해방군 TNLA, 아라칸군 AA)은 북부 샨 주와 중국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마을과 수백 개의 군부 기지를 점령했다. 이 작전은 군부의 취약점을 노출시켰으며, 저항 세력 간 전례 없는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 군부에게 심각한 군사적, 경제적 타격을 입혔고, 중국의 묵시적 승인이 작전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군부는 심각한 병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이는 시민방위군과 소수민족 반군들로하여금 무장 투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다. 병력 부족에 직면한 군부는 2024년 2월 강제 징집을 시행해 약 3만 명을 징집한 바 있고, 이는 다시 저항에 소극적이었던 젊은 세대 시민들의 대규모 이탈과 시위를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군부는 영토를 유지하기보다는 주로 공습과 장거리 포격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영토를 장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1027 작전 이후 2개월 동안의 미얀마 북부 정세의 변화를 나타내는 지도
1027 작전 이후 2개월 동안의 미얀마 북부 정세의 변화를 나타내는 지도

“축복의 물 대신 죽음이 닥쳤다”

한데 이 격동의 한복판에 참혹한 지진이 발생했다. 2025년 3월 28일 미얀마 중부를 강타한 규모 7.7의 지진은 사가잉(Sagaing) 북부 등 여러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고, 그 여진 피해가 태국 방콕에 다다랐다. 많은 마을이 파괴됐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사회 기반 시설들도 손상됐다. 5,400명 이상의 사망자, 11,400명의 부상자, 538명의 실종자가 발생했고, 피해액 규모는 110억 달러에 이른다.

UN(유엔)은 중앙긴급대응기금(CERF)에서 5백만 달러를 긴급 지원했고, 이어 총 9천3백만 달러 규모의 인도주의 원조 계획을 수립했다. 유엔 프로젝트 조달 기구(UNOPS)는 2025년 5월 1일까지 약 2천5백만 달러를 동원해 생명 구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약 50만 명에게 지원을 제공했다. 한국 정부 역시 2백만 달러 규모의 긴급 인도적 지원을 UN 및 국제기구를 통해 제공했으며, 추가 지원도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다.)

한데 미얀마 군부는 저항 세력이 장악한 지역으로의 지진 구호품 전달을 의도적으로 막음으로써, 국제 원조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했다. 군부는 지진 피해 지역에 외부 인도주의 단체가 진입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고, 이를 통해 국내외 구호팀의 활동을 사실상 차단했다.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국민통합정부(NUG)는 자신들이 통제하는 구역에서 지진 피해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분배하고자 노력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더구나 6월 중순부터 군부는 지진 피해 지역인 사카잉-쉐보(Sagaing-Shwebo) 마을을 급습했고, 밍군(Mingun) 같은 불교 순례지를 공격하는 등 군사 작전을 전개했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주민들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사가잉주 북부 마을들에서도 12,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지진 피해와 군부의 맹공격으로 인해 구호품에 접근하지 못했다.

국제앰네스티와 UN 인권사무소, OCHA(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등은 공습 중단과 원조 제한 철회를 촉구하며 국제사회를 압박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번 지진이 미얀마의 새해 축제인 띤잔(Thingyan) 직전에 일어나 재앙적으로 전개되자, 적지 않은 미얀마 인들은 “축복의 물 대신 죽음이 닥쳤다”고 말했다.

2025년 3월 28일 규모 7.7의 지진으로 무너진 만달레이 건물 (사진: AFP)
2025년 3월 28일 규모 7.7의 지진으로 무너진 만달레이 건물 (사진: AFP)

국제원조 축소와 아세안의 한계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 미국은 해외개발원조(ODA)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금을 대대적으로 삭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추세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빈민과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자연재해와 군부 공격으로 인한 빈곤 심화, 장기적인 피난, 심리적 트라우마, 질병 확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 증가, 국방비 지출 증가, 그리고 해외 원조에 대한 대중의 지지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한다. 이는 미얀마와 같은 ‘취약 국가(failed state)’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얀마가 속해 있는 지역질서인 ‘아세안(ASEAN)’의 경우에는 “내정 불간섭” 원칙과 회원국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미얀마 사태에 대해 통일되고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태국은 “인도주의적 교류”를 명목으로 미얀마 군부와 회담을 주최했는데, 저항 세력은 이를 기만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아세안에서 심화된 모호성을 악용해 자신들의 정권에 ‘합법성’을 부여하려는 국가들과는 선별적으로 교류하고, 비판하는 국가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적 관계는 군부가 지역적 압력 없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아세안의 결속력은 역으로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NUG와 소수민족 공동체들 등 여러 저항 세력들이 아세안으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악조건에서 민족통합정부(NUG)를 비롯한 저항 세력이 군부에 맞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국제연대를 구축하고 있을까? 미얀마 정세를 분석해 온 데이비드 스콧 매티슨은 이라와디(The Irrawaddy)에 기고한 칼럼에서 “NUG의 대외 전략이 비효율적이며, 국제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면서, “전략적 메시징보다는 상징적인 활동에 치중”하고 있고, 부적절한 인사들을 임명하는 일들은 “NUG의 외교적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NUG가 “서방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지역 내에서 다양한 형태의 조용한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아세안의 방식은 그저 '쓸데없는 짓'을 뜻할 뿐"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하는 미얀마 노동자
"아세안의 방식은 그저 '쓸데없는 짓'을 뜻할 뿐"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하는 미얀마 노동자

군부의 반격과 내부 분열

최근 상황은 미얀마 군부에게도 심각한 위협임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군부는 중국의 군사기술 제공과 외교적 역량을 적극 활용해 저항 연대를 분쇄하고, 북부 샨주에서 반격과 통제 회복에 성공하고 있다. TNLA를 비롯한 저항 세력들을 향해 대규모 공중기 폭격, 드론·미사일·포병 공격 등으로 제압해 주요 도심을 제압했고, 이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나웅키오(Nawnghkio)를 재탈환했다. 나웅키오는 미얀마-중국 접경의 무역로와 만달레이(Mandalay)로 이어지는 물류 도시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위한 전문가 그룹 SAC-M(미얀마 특별자문위원회)은 최근(2025년 7월 15일)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국영 방산기업인 남방공업(中国南方工业集团有限公司), 전위그룹(湖南前卫集团有限公司), 장안공업(重庆长安工业) 등이 군부 주도 DI‑21 공장에서 250~500kg급 폭탄, FAE, 클러스터 폭탄 등 제작 기술과 핵심 부품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군수 지원은 미얀마 군부의 민간인 대상 공습·공격에 직접 연결되고 있다.

<이리와디 신문>과의 대담에서 미미 윈 버드(DRမီမီဝမ်းဘတ်) 박사는 샨주 북부의 기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카렌주 등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저항군의 상당한 활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화력보다 인민의 힘, 전략, 그리고 싸우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며, “군부 병사들은 싸우려는 의지가 부족한 반면, 저항군은 연방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령 카렌니주에서 카렌민족방위군(KNDF)은 군부의 FTC-2000G 전투기를 격추했는데, 쿠데타 이후 군부 전투기가 격추된 것은 이번이 13번째다.

미얀마 군부의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2025년 12월 또는 2026년 1월에 총선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선거를 출구전략 삼아, 국제사회와 자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통치를 합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2월 1일 쿠데타 당시 군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총선 실시"를 약속한 바 있고, 지난 7월 18일엔 이를 근거 삼아 “합법적인 조직을 설립하고 협력해 달라”는 뜬금없는 제안을 발표했다. 시민불복종운동을 대변하는 국민통합정부(NUG)는 이 제안을 “가짜 선거”를 합법화하고 반대파를 분열시키려는 기만적인 전략으로 즉시 일축했다. 군부는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태고, 군부에 맞선 저항은 거세다.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리라 예상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군부 내부에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내부 분열 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우선,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 무장 단체 및 친민주주의 인민방위군(PDF)과의 전투에서 전례 없는 손실을 입고 있다. 샨 주 북부와 라카인 주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이후, 군대의 사기는 급격하게 떨어졌고, 병력 문제도 심각하다. 강제 징집을 시도하자 많은 청년들이 도시를 떠나기도 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자,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온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 근거다. 군부 내부에서도 전투 경험이 없는 인물들을 승진시키고, 경험 많은 지휘관들을 해임하거나 체포하는 등 결속력과 효율성을 약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무능력으로 인해 “우유부단하다”는 식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반군부 언론들이 보도한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고위 장성들 사이에서 민 아웅 흘라잉을 “군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라 부르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민 아웅 흘라잉은 자신에 대한 잠재적인 음모를 막기 위해 군 고위 간부들을 반복적으로 교체하고, 지휘 실패나 불복종을 구실로 고위 장교들을 기소했다. 쿠데타 이후 100명 이상의 고위 장교를 교체하거나 해임했으며, 50명을 체포했다. 이는 군 내부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민 아웅 흘라잉의 측근들
민 아웅 흘라잉의 측근들

시민불복종운동의 난관

2021년 쿠데타 이래 공무원, 교사, 의료인, 법조인 등 20여만 명이 CDM에 참여하고 있다. NUG 기관인 CRPH(의회 대표위원회)는 CDM에 참여하는 공무원들을 보호하고, 군정에 협력한 이들을 징계 대상으로 하는 법률(Civil Servant Law)을 제정하기도 했다. 실효성이 있진 않지만, 정당성을 확인하는 싸움에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시민방위군과 그밖에 소수민족 반군들의 무력 저항도 지속되고 있다. Katha 전투(3월), Bhamo 전투(1~5월), Depayin 탭지 방문 학교 폭격(5월) 사례 등에서 전투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CDM 참여자들은 꾸준히 공공서비스와 구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에 저항해 온 시민불복종운동(CDM)과 NUG는 난맥상에 빠져 있기도 하다. 약 3만 명의 정치범이 억류되어 있으며, 그중 최소 130명이 구금 중 사망했다. CDM에 참여하는 교사 및 공무원들의 생계는 매우 열악하며, 그 구성원들은 심각하게 분산돼 있다. NUG는 여전히 체계가 없다.

지난 7월 22일 <이라와디 신문>의 한 칼럼에 따르면, “NUG가 정당성과 대표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단적이거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결단력과 책임 있는 리더십의 부족이 반복된 패착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가령 적지 않은 시민불복종운동 지지자들은 PDF(시민방위군)이 군부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정치적으로 그 성과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구도가 반복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갈등을 극복하려면 투명성 강화와 명확한 지휘 체계 확립, 민-군 관계의 재정립, 연방민주헌장(federal democratic charter: 2021년 4월에 임시 헌법으로 발표됐으나, 정식으로 성립되진 않음)에 기반한 개혁 등이 필요하다.

샨주 타웅지에서 열린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NUG 지지 팻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 / AFP
샨주 타웅지에서 열린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NUG 지지 팻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 / AFP

미얀마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기대와 지지를 받고 있는 혁명가 테이자르 산(Tayzar San) 박사는 지난 7월 9일 긴 영상 연설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영상에서 그는 NUG가 PDF·PDO 군사 조직 체계의 재정비, 자금 관리 및 행정 능력 강화, 신뢰 유지 등을 위한 규율 확립을 지체한다면 혁명의 동력을 잃고 조직 정체 상태에 빠질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그는 “지난 5년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NUG의 성과와 능력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2024년 NUG 대통령이 개혁을 약속했지만 “실질적 변화는 미진했으며, 이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과 책임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토를 통제하고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이를 혁명을 위해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런 비판은 시민불복종운동의 체계적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을 방증한다.

앞으로 NUG는 도시 외곽 및 저항 지역으로 네트워크를 확장 및 유지하고, 자신들이 통제하는 지역에서의 기초적 공공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을 중심으로 한 국가승인 시도에 집중하기보다는, 국제연대 사업을 다각화하고 보다 다양한 민간 지원 체계를 쌓아야 한다. 현 상태에서 각국 정부가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단절하고 NUG와의 배타적 관계를 승인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국에 체류하는 미얀마 이주민 및 공동체들과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하고, 그곳의 사회운동 간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할 것이다.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하는 한, 저항 운동 역시 국제화할 수 없다.

이 투쟁은 다윗(시민불복종운동)과 골리앗(군부)의 싸움이다. 저항군이나 민병단 역시 전쟁법 준수를 위한 작전 지침, 교육, 내부 감시 체계가 필요하며, 중앙집권적 명령체계 대신, 지역 공동체 수준에서 민간인 보호 규범을 내재화할 수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 민중으로부터 폭넓게 지지받을 수 있는 저항만이 승리할 수 있다.

PDF에 의해 구금된 군부 소속 군인들 / Min Htet San
PDF에 의해 구금된 군부 소속 군인들 / Min Htet San

다시, 8888항쟁을 기억하며

곧 8월 8일이 다가온다. 8888운동(1988년 8월 8일 미얀마 민주항쟁)은 미얀마 현대사에서 매우 상징적 대중 저항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수만 명의 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이 군부 독재에 항거해 거리로 나섰고, 전국적 항쟁으로 번졌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중의 투쟁은 당시 군부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됐고, 수천 명이 학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이후 계속해서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열망을 이어가는 정신적 유산으로 남았고, 오늘날까지 ‘불복종’과 ‘저항’의 출발점으로 회자된다. 8888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미얀마 민중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증거다.

2025년, 미얀마는 여전히 군부의 폭압 속에서 전쟁과 학살, 통신 차단, 정치범 탄압, 지진 피해 속 의료 방치 등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다. 지금 시기 시민불복종운동,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방위군, 지역 자치 공동체들, 해외 망명 공동체 등 다양한 층위에서 1988년 8월에는 ‘불가능했던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8888항쟁을 다시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다. ‘계속되는 항쟁의 오늘’을 확인하는 일이자, 역사와 현재를 잇는 윤리적 책임의 표현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쿠데타 이후 멈추지 않고 미얀마 민중과 연대해 왔다. 한국에서 8888항쟁을 기억하고 연대하는 것은 동시대 동아시아 민중의 고통과 꿈을 공유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우리가 미얀마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국경을 넘어 확장’하는 것이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점증하는 권위주의적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선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미얀마는 팔레스타인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이다. 미얀마 민중과 손잡고 연대하자!

참고 자료

글 :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