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의 작은 희망, 어떻게 싹 틔울 것인가 | 2025년 대선 평가
2025년 6월 27일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열어낸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대선이 있던 6월 3일은 마침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지 딱 6개월이 된 날이었다.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일찌감치 예상되었지만, 극우 대중운동의 부상과 부정선거론의 확산이라는 우려스러운 변화, 어느 때보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드러낸 윤석열 퇴진 광장이 보여준 희망이라는 상반된 흐름이 대선 결 과로 어떻게 반영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6월 3일 치러진 대선에서 이재명은 49.42%를 득표하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한편 국민의힘 김문수는 41.15%, 이준석은 8.34%를 획득했다. 유일한 진보대통령 후보였던 권영국은 0.98%, 34만 여 표를 득표했다. 2025년 대선 결과가 보여준 사회운동의 과제는 무엇일까.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의 시도와 0.98%의 지지율
광장의 에너지와 다르게 진보정치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2016-17년 박근혜 퇴진 투쟁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6.17프로(200만 표)를 득표했던 정의당(심상정)은, 2024년 총선에서 원외정당이 되었다. 대신 위성정당에 참여한 진보당이 원내로 진입했다. 2024년 총선만 보면 정의당이 진보당에 비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지켜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정의당 역시 야권연대를 위한 후보 중도사퇴, 노동조합과 사회운동과의 거리두기를 주요 노선으로 유지해왔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원외정당이 되면서 겪게 된 자원 부족, 상당시간 동안 누적된 노동운동‧사회운동과의 신뢰 부족 등으로 인해 독자적으로는 후보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동당‧녹색당과 같은 다른 진보정당도 독자적으로 대선대응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광장 이후의 대선임에도, 진보 후보의 출마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악조건을 뚫고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세 정당과 노동조합, 노 동‧사회운동단체가 모여 ‘사회대전환 대선대응 연대회의’를 구성했다. 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후보의 인지도도 낮았던 객관적 조건을 고려하면, 1% 득표도 쉬운 조건은 아니었다. 민주노동당원이 아님에도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의 노력, TV토론이라는 소중한 기회, 진보당의 불출마로 인해 명실상부 ‘유일한 진보 후보’로 표상된 선거구도 등이 맞물려 34만여 표를 얻었다. 0.98%는 이런 활동들의 성과다. 출구조사에서 20대 여성유권자의 5.9%가 권영국에게 투표했다고 답한 것, 당선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간 받은 표가 TV토론권 확보로 이어졌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사표론에 대한 대항논리가 좀 더 생긴 것도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조직적 조건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광장 이후의 대선이라는 점에서 2~3%의 득표율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0.98%는 아쉬운 숫자다. 1%의 지지율에 머문 이유는 첫째로, 내란청산이 곧 이재명의 압도적 승리라는 도식을 대중적으로는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영국에게 오는 표 역시 내란세력 심판을 위한 표일 수밖에 없다는 점, 개혁적 정책을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왼쪽의 득표율이 높아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 설득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3년 전 0.7% 차이로 윤석열이 당선되었다는 사실과 김문수의 지지율 상승 추이가 불안감을 가중시킨 것도 한 원인이었다.
다음으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낮은 득표율의 한 원인이다. 빚이 많고 정당보조금이 없는 상황에서 치르는 대선이라는 점 때문에 처음 계획이 소극적으로 제출되었고, 선거대책위원회는 현수 막 게시나 공보물을 최소화했다. 현수막 게시량은 점차 늘어나기는 했지만 공보물이 1차에 양면으로 나간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애써 발표한 공약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원들에게 너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노동조합 현장간담회 등 유의미한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진보정당의 분열의 긴 역사를 지켜봐 온 조합원들에게 일시적인 선거연합이 아니라 분열된 진보정당의 공동행보의 시작이라는 점을 보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한편 광장에서의 민주노총의 헌신을 민주당으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평범한 조합원들에게는, 민주당과 구분되는 진보의 가치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데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었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는 명확한 방침을 정하지 않고, 민주당 지지를 열어둔 것도 문제였다.
김문수의 41.15%, 이준석 8.34%
이재명은 내란 심판이 곧 자신의 압도적 승리라는 점을 계속 주장했고, 과반 득표율을 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대 대선 중 최다득표(1729만여 표)를 기록했고, 김문수에게 여유있게 승리했다. 삼자구도에서는 과반 득표가 어렵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49.42%의 득표율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참고로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은 전체의 41.08%(1342만 여표)득표에 그쳤다. 그러나 홍준표 24.03%, 안철수 21.41%, 유승민 6.76%, 심상정 6.17%로 새누리당이 크게 패배했다.) 하지만 내란 심판의 성격을 가진 선거에서 국민의힘 김문수가 41.15%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 혐오정치의 표상인 이준석이 8.34%를 얻어, 두 후보의 득표율을 합쳤을 때 근소하게 이재명을 앞선다는 점은 우려를 자아냈다. 내란 지지 세력의 압도적 패배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김문수와 이준석의 높은 득표율을 선거구도 때문으로 이해할 것이냐, 대중의 정치이념의 변화로 이해할 것이냐의 쟁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도의 영향은 분명히 있다. 거대양당은 서로에 대한 혐오의 감정으로 표를 끌어모았다. 6월 1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문수 투표 이유로 ‘이재명이 싫어서’가 30%에 이른다. 내란에 동조하는 극우세력도 물론 김문수에 투표했겠지만, 내란에는 동조하지 않지만 민주당에 표를 주기 싫은 사람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에 투표했던 이들도 김문수에게 표를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 즉 김문수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이 모두 내란을 지지하거나 극우정치에 공감한다고 해석하며 너무 크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준석에게 투표한 유권자 역시 모두가 혐오 논리에 적극 동조한다고 볼 수는 없을텐데, 이준석을 거대양당에 대한 비판의 의미나, 막연히 청년들을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지지한 이들도 있다. 또한 국민연금을 둘러싼 잘못된 구도가 청년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을 이준석에 대한 지지로 표현한 이들도 많다. 이는 현재의 연금개혁이 기성세대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 보험료와 연금기금 소진시점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것 등을 알리는 과정에서 해소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구도로 인한 득표율을 그대로 대중의 정치이념의 반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한국 정치 지형의 우경화 경향, 청년세대의 보수화 경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극우의 성장 자체가 2016-17년과는 다른 이번 선거의 구도를 만들어 낸 배경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이 분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재명과 김문수 양강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는데, 이 뒤에는 극우 대중운동의 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보수정당이었던 국민의힘이 극우정당화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정당들도 대중보다 더 빠르게 우경화하면서 전체적인 지형을 오른쪽으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극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민의힘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국민의힘이 오른쪽으로 이동하자 더불어민주당도 중도 보수를 표방하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거대양당을 비판하는 개혁신당은 계엄에 반대했다고 하지만 자본 친화적이고 소수자 배제적인 일부 공약은 어떤 점에서는 국민의힘보다 더 극우에 가까운 대안우파다. 우리는 극우 대중운동의 성장 속에서, 또 이전보다 더 우경화한 정치지형에 맞선 사회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대선 이후 우리의 과제
우경화한 정치지형 속에서 1%의 작은 희망의 싹을 어떻게 더 큰 가능성이 틔워낼 것인가. 크게 두 가지 방향의 과제가 제기된다. 정치적으로는 좌파의 시대인식과 사회 변화의 방향을 더 명확히 하고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이다. 민주당은 ‘잠재성장률 3% 진입’과 ‘증세없는 복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성장 우선을 내세우며 재계의 목소리를 대폭 수용하면서 불평등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위와 같은 선언이 불발되었을 때, 한국 사회의 우경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주식, 코인, 부동산과 같은 지대 추구 행위가 불평등을 강화한다는 점, 공정성을 요구하며 사회연대를 해체하는 것이 모두의 삶을 경쟁과 고통으로 빠뜨릴 것이라는 점 등을 설득력 있게 알리고 확산해야 한다.

조직적으로는 여러 세력 간 연대의 기초가 마련된 지역에서부터 체제전환 풀뿌리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우파의 성장은 혐오와 갈라치기의 논리로만 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수 개신교계는 국가가 채우지 못하는 돌봄 공백을 담당하며 교인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테두리로서 기능하고, 한국사회에서 형해화된 공동체의 역할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들었다. 좌파 운동 역시 진보적인 가치를 알리는 캠페인만으로는 사람들의 삶 속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풀뿌리 운동을 바탕으로 대중운동을 조직하면서 한국사회의 극우화에 맞서야 한다. 권영국 후보 득표율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지역사회에서 진보적인 운동이 존재했던 곳에서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역에 뿌리내린 운동은 구체적인 힘이 있다. 사회운동의 가치와 내용을 들고, 풀뿌리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
글: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