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대선, 다시 광장을 세우자! | 권영국 후보 지지선언
2025년 5월 23일
윤석열 정권이 계엄령을 공포한 지난 12월 3일 밤, 플랫폼C 회원들은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군사 독재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와 극우세력의 준동 앞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절박한 과제가 됐다. 그런 긴장 속에서 넉 달 동안 쉬지 않고 투쟁했다. 거리와 광장에서 함께 노래 불렀고, 일터와 삶터에서 함께 하자고 호소했다. 123일이 지난 4월 4일, 우리는 윤석열을 파면시켰다. 민주주의의 중대한 고비를 평범한 사람들의 힘으로 넘어선 순간이었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승리를 단순히 대통령 하나 끌어내린 사건으로만 기억해선 안 된다. 우리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월 3일 이전부터 이미 우리 사회가 ‘계엄 상태’와 다를 바 없다고 온몸으로 느껴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자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착취,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공정 담론, 소수자에 대한 체계적 차별 — 이 모든 것은 계엄령 못지않게 사람들의 삶을 옥죄어 왔다.
광장의 목소리는 일시적으로 터져나온 저항이 아니다. 노동조합 탄압 반대, 성소수자 차별 반대, 여성차별 반대… 이런 목소리들은 우리 삶의 지속가능성과 존엄에 대한 요구였고, 그 자체로 '정치'였다.
제도정치는 이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비상계엄 시도에 맞서 광장에 모였던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단일하지 않았다. 지향도, 위치도, 목소리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 광장의 가장 앞줄에 있었던 것은 여성, 성소수자, 싸우는 노동자와 농민들이었고, 광장을 지탱한 말이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사실 말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조기 대선을 맞은 지금,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분노와 절박함은 제도 정치에 닿을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정작 대선 국면에서는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진보 정치”의 언어가 너무도 희미해졌다. 대신 대통령 후보를 자임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반복해서 들은 건 “내가 진짜 보수다“, “ 빨갱이였다가 정신 차린 보수”, “원조 보수”, “중도 보수”, “개혁 보수” 같은 말들이다.
‘보수 뽐내기 대회’로 전락한 대선은 최악과 차악의 각축장이 됐다. 광장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의 투쟁이 만들어낸 힘은 기득권 정치를 흔들고 있는가? 대통령 선거는 중요한 논쟁의 장이지만,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에서 그친다면 이 혼돈을 온전히 극복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는 퇴진 광장에서 함께 싸웠던 존재로서, 다시 묻고 힘을 모아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빛의 혁명을 완성해야 한다는 취지를 살리고자, 첫 유세 콘셉트를 '광장의 유세'로 정했다”면서도 ‘중도보수’ 선언을 했다. 그리곤 진심으로 보수화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시위에서 여성 청년들의 투쟁을 ‘빛의 혁명’이라 치켜세웠지만, 정작 여성 의제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동덕여대 인권 침해를 규탄하려던 기자회견을 하루 전 취소했고, 일부 남성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성평등 의제를 회피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친기업, 성장 중심의 우클릭 노선도 강화하고 있다. 5대 자본가단체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업 중심 국가를 주장했고, 규제 완화와 다주택자 양도세 감면, 상속세 완화 등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줄줄이 발표했다. 심각한 자산 불평등에 대한 해법 없이 기득권 중심 정치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장에 함께 했던 일부 세력들은 ‘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를 만들어 ‘정권교체’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민주당 중심의 단일화를 추진했다. ‘광장’의 이름으로 ‘광장의 목소리’를 묵살한 셈이다.
진보당을 포함한 일부 ‘진보정당’이 이에 동의해 이재명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독립성과 가치, 대안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선거 전략이 최소한의 원칙마저 압도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더 큰 보수에 흡수되고 말 것이다. 아니, 별도의 진보정당을 구성하거나 선거에 출마할 이유도 설명할 수 없다. 향후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게 되면, 내내 단일화와 후보 사퇴 압박에 강하게 시달릴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기 필요한 것은 윤석열 퇴진 이후의 체제전환을 예비하는 독립적 정치세력 성장이지, 기득권 거대 양당의 부속물이 아니다.
‘정권교체’만 외치는 보수화된 시각은 불평등을 감축하고 차별을 막기 위한 보다 진보적인 요구를 “무리한 주장”이라고 몰아붙인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외면받고, 여성과 성소수자는 정치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이윤보다 생명, 경쟁보다 돌봄을 말하는 정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며, 고립된 생존 경쟁의 일상을 바꾸고자 하는 갈망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지금껏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유보해 왔다. ‘정권 바뀌면 해결될 거야’,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나중에 하자’는 말들로 유보된 시간이 만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우경화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원내의 군소 진보정당들의 민주당 캠프 합류는 자기 자신의 미래를 갉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 윤석열 집권으로 이어진 이 현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광장의 목소리를 제도 정치로 우겨 넣는 것이 아니라, 제도 정치가 광장의 목소리 를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이들이 “좌파 후보에게 표를 주는 건 사표”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얻는 표는 단순히 선거 승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구를 찍느냐의 문제는 결국 어떤 언어를 살리고 어떤 미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보다 나은 진보정당에 던질 표는 “광장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이며, 기득권 정치를 압박하고, 사회운동의 미래 발판을 만드는 힘이다. 진보정당 후보가 받는 표의 수만큼 그 발판은 더욱 두터워지고 진보정치의 기반도 확장될 것이다. 대통령 당선 여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플랫폼C는 체제전환의 동력이 거리와 일터에서 싸우는 민중, 그 투쟁의 정치적 독립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윤석열 파면 이후의 대안 질서를 모색하는 지금, 사회운동은 민주당의 ‘변형된 기득권 정치’가 아닌, 진보정치 내부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여성·노동·기후·반전평화·성소수자 등 각자의 자리에서 싸워온 이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깝게 반영하는 유일한 후보다. 그는 과거의 실천에선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했고, 이번 대선에선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고 공공성을 확장하는 정책들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권영국 후보와 함께, 진보정치의 자립성과 사회운동의 투쟁성을 연결하며 이후를 준비하는 길에 설 것이다.

2025년 5월 23일
플랫폼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