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에서 부동의 성교죄로! | 일본 형법개정의 의미와 과제

강간죄에서 부동의 성교죄로! | 일본 형법개정의 의미와 과제

한국의 ‘강간죄’는 가해자가 반드시 폭행이나 협박을 해야 범죄가 성립되어, 그 기준이 지나치게 협소하다. 약물 등으로 의식이 없는 피해자, 강압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저항하기 어려운 피해자, 공포로 인해 몸이 굳어버린 피해자들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서 저항은 쉽지 않다. 피해자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성폭력을 외면하는 이 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2025년 5월 7일

[읽을거리]페미니즘여성, 페미니즘, 성폭력, 사회운동, 일본, 여성

2023년, 일본에서는 기존의 '강간죄'를 '부동의성교죄'로 법 개정이 있었다. 이 개정을 만들어낸 일본의 시민단체 SPRING을 초대해 일본 형법 개정의 의미와 한국 사회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광장의 힘은 마침내 민주주의를 파괴한 윤석열을 파면시켰다.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파면 선고가 이뤄진 다음 날인 4월 5일, 승리를 축하하는 집회 1열에 커다란 현수막이 펼쳐졌다.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라는 문구는 실로 통쾌했다.

윤석열은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이전부터 소수자 차별을 방치하고, 심화시키며 민주주의를 파괴해 왔다. 대표적으로 윤석열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밀었고, 임기 내내 성차별적 행보를 지속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의 이름으로 "윤석열 파면"을 외쳤다. 그리고 끝내 이뤄냈다. 그렇기에 파면을 이룬 힘은 성평등한 세상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비동의강간죄(일본 형법에서 '부동의 성교죄') 관련 형법 개정운동은 성평등을 이뤄내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강간죄’는 기준이 너무 협소해 가해자가 반드시 폭행이나 협박을 해야 범죄가 성립된다. 다시 말해, 피해자가 격렬하게 저항했을 때에만 강간범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약물 등으로 의식이 없는 피해자, 강압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저항하기 어려운 피해자, 공포로 인해 몸이 굳어버린 피해자들에게 물리적 저항은 쉽지 않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앞서 말한 경우들은 강요된 성폭력이 명백하지만, 현행법상 처벌이 어려워진다.

이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몇 년 성폭력 피해자들과 여성운동단체들은 계속해서 “강간죄에서 비동의강간죄”로 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일본에서 2023년 부동의성교죄로 법개정을 이끈 시민운동단체 SPRING을 초대해, 일본 형법 개정의 의미와 한국 사회의 과제를 나눈 토론회가 지난 4월 15일 열렸다.

일본 형법 개정의 의미

2023년 형법 개정 전 일본의 ‘강제성교 등 죄’ 역시 피해요건이 매우 협소했다. 피해자가 폭행·협박을 당했거나, 심신 상실·항거불능 상태 둘 중 하나의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이로 인해 강간죄 판결에서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거부한 것이 인정될 때조차도, “더 저항할 수 있었는데 저항이 부족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기 일쑤였다.

이런 생각의 토대는 일본 법률가용 해설서(1960년대 발행)에 명시된 “사소한 폭행이나 협박에 쉽게 굴복하는 정조는 강간죄의 조항에 의해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는 문장에 기반한다. 이때 ‘폭행·협박’이라는 협소한 요건은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 첫째, 피해 신고 접수율이 너무 낮았다. 2007~2011년 사이에 일본에서의 강간 피해 신고 접수율은 고작 4.7% 였다. 피해자 중에 법정에 간 비율은 고작 1.9%였다.
  • 둘째, 불기소 처분되는 경우가 많았다. 2018년 1년여 동안 조사한 결과, 불기소된 650건 중 193건이 부동의가 명백하지만 ‘폭행·협박’ 인정이 어려운 경우였다.
  • 셋째, 저항이 약하더라도 강간죄 유죄 판결을 내린 사례들도 있어 비슷한 사례에도 판사마다 해석이 엇갈려 판결 내용이 불균형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형법을 일본에서는 어떻게 바꿔냈을까? 2019년 연이은 성폭력 무죄 판결 4건으로 일본 사회 엄청난 공분이 일어 곳곳에서 플라워데모(フラワーデモ)가 일어났다. 플라워데모는 꽃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더 이상 성폭력을 무력하게 용납하지 말자는 목소리를 낸 거리 시위다. 또,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지원단체들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반복해서 열었으며, <이상한 나라의 강간죄> 및 <강간죄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 등 강간죄 개정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동시에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법무부 회의에 참여하기도 하고, 핵심적인 국회의원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했다.

이런 무수한 노력을 통해 마침내 2023년 일본 형법 개정을 이뤄냈다. 이 형법 개정은 ‘부동의성교죄’라는 이름부터가 중요한 성과다. 성범죄의 핵심은 동의 없는 성행위라는 점을 명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동의 없이 물건을 훔치면 절도죄인데, 동의 없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왜 성범죄가 아닌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해왔다.

개정된 법에서는 폭행·협박을 포함하여 ‘비동의’를 나타내는 8가지 원인 사유를 제시한다. 8가지는 폭행·협박, 심신장애, 알코올 또는 약물, 수면 등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형성·표명·유지할 틈이 없는 경우, 공포심·경악, 학대, 경제·사회적 지위 이용이다. 이는 SPRING이 5천여 건이 넘는 성폭력 피해 사례를 분석하고 처벌 범위의 명확화를 위해 힘쓴 결과다.

‘부동의성교죄’로 법이 개정된 이후, 피해자가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범죄가 일어났던 당시 저항하지 못했더라도, 동의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 인정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검거율과 기소율이 대폭 늘었다. 검거율은 2022년~23년 48%, 2023~24년 62.9% 증가했다. 기소율도 2022년~23년 35.8%, 2023~24년 78.4% 증가했다. 처벌 범위가 명확해져 경찰들도 수사하기 수월해졌다.

한국 사회의 과제

한국에서 “강간죄에서 부동의성교죄로” 법을 개정하려면 네 가지 과제가 있다. 이보다 더 많은 과제들이 있겠지만, 발제 후 이어진 토론회 내용을 중점으로 두고 정리했다.

첫째, 백래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같은 사건에 대해 1심과 2심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판례 등 폭행·협박의 정도와 항거불능 상태 판단에 대한 판사들의 해석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도 짚었다. “저희는 성범죄 처벌 규정의 본질이 ‘동의 없는 성관계’임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도 자세히 명시하면 오히려 무고는 줄어들 것이라고 반박한 거죠.”동시에 이러한 백래시에 대응하는 대중운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2019년부터 전역에서 벌어진 플라워데모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동훈은 ‘비동의강간죄’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등의 논리였다.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하에 제시되는 이런 논리는 대표적 백래시로, 사실 자체를 왜곡한다. 이러한 백래시에 대응하기 위해 SPRING의 다토코로 유(田所由羽) 공동대표는 아주 치밀하게 반론을 준비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다토코로 유는 이렇게 답했다.

“우선 억울한 누명이 발생하는 배경은 수사기관의 자백 강요나 증거 수집 문제이고, 내심을 증거로 채택할 수 없으므로 ‘부동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건을 법에 명시하는 게 죄형법정주의(어떤 행위가 범죄인지에 대해 미리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에 더 맞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1심과 2심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판례 등 폭행·협박의 정도와 항거불능 상태 판단에 대한 판사들의 해석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도 짚었다.

“저희는 성범죄 처벌 규정의 본질이 ‘동의 없는 성관계’임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도 자세히 명시하면 오히려 무고는 줄어들 것이라고 반박한 거죠.”

또, 이러한 백래시에 대응하는 대중운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2019년부터 전역에서 벌어진 플라워데모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둘째, 학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도 체계적인 공동연구가 있었다. 10개국 이상의 강간죄를 체계적으로 정리 및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처벌규정을 평가했다. 한국도 우리 사회의 상황에 맞는 치밀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재판부 판례가 공개되어야 한다. 한국은 판례 공개가 거의 되지 않는다. 판례 공개를 청구할 경우 겨우 받아볼 수 있거나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여한 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장응혁 교수는 지적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대법원 판결과 법정 및 제출된 자료를 포함하여 공개합니다. 1심, 2심도 공개가 잘되고 있는 편이기에 이를 바탕으로 판사 등 법조인들이 종합적으로 판례를 정리하여 논문화하여 발표하였고, 이것은 우리나라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기에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셋째, 피해자에게 동의를 묻지 않은 강간임에도 처벌이 되지 않거나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이를테면 부부관계 등 친밀한 관계일 경우, 강간은 거의 처벌되지 않는다. 아내 강간을 처벌한 판례가 있긴 하지만 현저한 폭행·협박이 있었기에 인정된 것일 뿐, 부부 사이의 성관계는 동의가 전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친밀한 관계 사이의 강간은 신고가 쉽지 않다. 처벌이 어려운 경우는 또 있다. 한국에서 현행 법상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이었을 때 준강간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모순적인 점은 당시 약물이나 수면 등의 상태에 있던 피해자가 없는 기억이나 조각난 기억을 맞춰가며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심신 장애를 가진 피해자의 다양한 조건과 맥락을 포괄적으로 살펴야 한다. 한국에는 장애를 살펴 폭넓게 범죄혐의를 입증하라고 조항들이 만들어져 있다. 법률 조항은 장애를 살펴 폭넓게 범죄혐의를 입증해야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를 적극 적용하지 않고 ‘장애’를 도식화해 협소하게 판단한다. 장애로 인한 복잡한 조건들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는다. 일례로 장애인은 일상의 무시와 차별로 인해 친밀한 관계의 욕구가 커 성폭행 경험 이후에도 가해자와 일상적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럴 경우 수사기관은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적극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여 불기소 처리의 근거로 삼는다. 보호자에 의해 대리되는 장애인의 의사가 언제든 왜곡될 수 있는 현실에 맞서, 장애인의 의사결정 권한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나오며

SPRING의 비전은 “성폭력 피해 당사자가 살기 좋은 사회 만들기”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피해 당사자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현행법 ‘강간죄’ 기준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24년 강간 피해 상담자 218명을 분석한 결과, 응답자 중 70.2%의 피해는 폭행·협박 없이 발생했다고 답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무죄 판결을 비켜보며 고립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은 너무나 부정의 하지 않은가.

이런 부정의에 맞서 성폭력 피해자들과 여성단체들은 “강간죄에서 비동의강간죄”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서 부동의성교죄로 법 개정을 주도했고, 이번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는 SPRING은 일본 최초 법인화된 성폭력 피해 당사자 단체다. 이번 토론회를 개최하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한 한국의 성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여러 단체들도 있다. 성폭력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이들과 함께 비동의 강간죄 형법개정운동에 함께 해야 한다.

토론회 자료집 뒤편에는 부록으로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실려 있다. 자신의 성폭력 피해자임을 밝히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여러 발언들 중 아래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여성들이 겪는 일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비극이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자책하고,우울하고, 위축되는 것은 부당하며 사회적 손실입니다. 피해가 없도록, 피해를 잘 처리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피해자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다 자유로울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동의 없이 가져가면 절도, 동의 없이 주거침입하면 주거침입죄, 동의 없이 때리면 폭행, 동의없이 먹이면 학대인데 왜 성폭행에서는 저항이 불가할만큼강제적으로 당한 흔적이 있어야만 성폭행죄가 되는 것인가요? 2년여 동안의 수많은 CCTV 증인신문, 피의자 및 피해자 증인신문 모든 것을 종합하여 “동의받지 않은 성관계의 명확한 잘못은 피고에게 있다면서도 피고는 무죄”가 나는 게 현실입니다. 이게 헌법 10조에서 보장하는 성적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것입니까?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제발 비동의강간죄 입법해주십시오."
사진 출처: 혜영
사진 출처: 혜영

글 :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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