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에서 국숫집까지 떠도는 사람들 | 중국특색 불안정 노동자 ②

돼지우리에서 국숫집까지 떠도는 사람들 | 중국특색 불안정 노동자 ②

‘싼허따션’의 곤경은 자기자신의 탓일까, 아니면 사회의 탓일까?

2025년 5월 8일

[동아시아]중국대륙광둥성, 선전, 농민공, 중국, 불안정노동자

개혁개방 46년을 맞은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은 개혁개방 시기 농민공의 폭발적 증가와 노동쟁의의 고조기를 거쳐, 어두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를 살아가는 대도시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더 이상 농민공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기보다는 조롱과 멸시, 혹은 자조의 이름으로 불린다. 필자는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중국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을 통해 이들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시 집체로서 호명할 수 있을지 모색하려 하는 것 같다.

이 글은 중화권 매체 ‘단전매’에 2편으로 나뉘어 투고된 원문 中國特色零工(上):改造「三和」與「大神」的邊緣生存의 뒷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상편과 하편으로 나뉜 원문과는 다르게 총 서너 번에 걸쳐 게시할 예정이다.

  • 재개발된 ‘싼허’와 ‘따션’의 변두리에서의 생존 | 중국특색 불안정 노동자 ①
  • 돼지우리에서 국숫집까지 떠도는 사람들 | 중국특색 불안정 노동자 ②

‘따션들’ 거느린 십장

나는 사람들이 싼허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따션’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들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싼허 ‘라오꺼(老哥; 형님)’들이 언급되곤 했다. 그들은 바로 이 지역의 환경을 주도해온 십장(工頭; 노동자들의 우두머리)들이다.

아창(阿强)와 함께 아러(阿乐)를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은 십장들에 대해 마치 민간의 풍운아를 묘사하듯 이야기했다. 십장들은 노동자를 모집하는 일만이 아니라, 여성들을 성매매로 유인하는 짓을 하기도 한다. 혹은 여관이나 PC방을 운영하기도 한다. 소문에 따르면, 광저우의 한 전자부품 공장에서 노동자 파견 중개 일을 해 1년에 수백만 위안(수억 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십장과 대형 파견업체 간의 차이점은 십장 밑에서 일하는 게 기간이 더 짧다는 점이다. 보통은 10~15일 정도다. 임금은 낮게 억제하면서, 신용을 중시하고, 이직한 후 제때에 임금을 결산할 수 있으며, 다음 달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공장에 들어가 임금 가불이 유연하다는 점이다. 사인과 함께 200위안(3만8천 원)을 빌릴 수 있다. 마지막 한 가지, 라오꺼들의 (불안정하고 열악한) 경제 상황과 생활 방식에 매우 부합하기 때문에 라오꺼들은 십장과의 협력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아러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사람을 데리고 올 수만 있으면, 진짜 폭리를 취할 수 있다니까. 2010년 전에는 공장에 일용직이 별로 없었는데,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중개업자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잖아!”

2020년 말 징러시장이 리모델링되면서 싼허인력시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과거에 이 인력회사는 “저희 회사는 ‘싼허따션’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이 이슈로 인해 회사에 대한 신용은 나빠지고,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2005년 이후 징러시장은 외부에 임대됐고, 그러자 크고 작은 인력중개업체들이 입주했다. 여기엔 두 개의 큰 건물이 있었고, 각 건물 안에는 여러 중개업체들이 자리 잡았다. 이때 ‘싼허인력시장’이 간판이 가장 크고 유명세도 높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지역을 ‘싼허인력시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따션’이라는 군중은 또 다른 인력중개업체인 ‘하이신신인력공사(海新信人力公司)’와 더 밀접하다.

  • 첫째, 징러 구역에서 딱히 할 일이 없는 홈리스나 그밖에 다른 사람들은 주로 하이신신인력시장 앞 광장에 모인다. 이들은 이곳을 “하이신 호텔”(海信大酒店)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 둘째, 민간 중개업체 소속의 십장들에 소속된 ‘라오꺼’들 중 일부는 일용직 일자리에 의존하고, 다른 일부는 공장에서의 단기 일자리에 의존한다. 후자에 대한 구인구직은 주로 하이신신인력시장에서 이뤄진다.

아창은, 다른 중개업체와 ‘하이신신 십장’이 두 그룹의 노동자들을 모집했다면서, “그들은 여유 자금이 있고, 게다가 라오꺼들보단 분명 정신 상태가 낫지. ‘하이신신’은 진짜 라오꺼들을 모집한 거야”라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싼허인력시장과 하이신신 인력시장 두 건물 사이의 공터에 앉아 매일같이 골판지로 된 구인 팻말을 들고 있거나, “일용직! 시간당 XX위안”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징러신촌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미등록인데다 사기를 치기도 하는 인력중개업자로, 검은 중개인으로 간주된다. 당국은 여러 차례 이들을 추방한 바 있다.

2022년 11월 1일 선전시 룽화구에 있는 공장 노동자 인력시장 옆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사진: 데이비드 커튼(David Kirton)
2022년 11월 1일 선전시 룽화구에 있는 공장 노동자 인력시장 옆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사진: 데이비드 커튼(David Kirton)

나중에 일부 십장들은 하이신신 인력시장 내 부지를 임대했고, 정식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입장권을 얻었다. 그들은 노무파견업체 유니폼을 입고 일자리 모집공고를 걸고, 일용직 공장노동자들을 모집했다. 이러한 풍경은 싼허를 다룬 여러 다큐멘터리들에 등장한다.

노련한 라오꺼들만이 각각의 십장들을 손바닥 보듯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그 직업의 역사, 비즈니스 규모, 개인적인 가십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이신신 십장’ 대부분은 풀뿌리 출신의 남성들이고, 라오꺼들은 그들을 헤이야우(黒牙吴; 까만이빨 우씨), 리팡즈(李胖子; 뚱뚱한 이씨), 샤오쓰(小史), 촹왕(闯王), 조대선인(曹大善人) 같은 별명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볶음면(炒粉)을 팔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하이신신인력시장의 경비로 일했고, 또 어떤 십장들은 가장 일찍부터 일용직 일을 하거나 쪽방을 구해 살기 시작했다. 십장들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는데, 그 중 후(胡) 씨, 웨이(魏) 씨, 진(金) 씨, 저우(周) 씨 등 4명은 “하이신신 4대 천왕”으로 불렸고, 나중에는 “자매(姐)”라 불렸다.

‘불법 중개업자’ 현상엔 오랜 역사가 있다. 2006년 <남방도시보>(南方都市报)는 이런 중개업자들이 룽화 버스터미널 주변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공장에서 직접 채용한다는 명목으로 경험이 없는 노동자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고, 그렇게 사기를 치고 주당 최대 3,000위안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식으로 등록된 중개업체들도 중간에 다양한 명목으로 수수료를 부과해 돈을 갈취한다.

징러시장의 십장들의 어두운 역사는 주로 싼허인력시장 리모델링 이전에 집중돼 있다. 엄청나게 낮은 임금, 폭행, 모멸적인 태도, 임금 체불 등 여러 소문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라오꺼들 역시 이에 뒤쳐지진 않는다. 아창은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중개업자가 소개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라오꺼들은 경찰에 신고해버리는 걸 좋아하지.”

이곳의 신장들은 건설업계의 십장들과 유사하다. 이들은 모두 겹겹의 하청도급 구조로 되어 있고, 십장들이 먼저 임금을 대신 지급해준다. 모든 업무는 십장 개개인들하고만 연계되며, 일반적인 근로계약은 체결되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보편적 근로계약)는 건설업종에서만 이뤄지고, 채용은 주로 고향 지인 및 친척 네트워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전자(하청도급)는 주로 글로벌 하청공장들이 위치한 주강 삼각주 제조업 현장에 기반하며, 그밖에 보안업체나 물류센터 등 신흥 서비스업을 포함한다.

노동자들이 사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처음엔 공장에 들어가 정규직으로 일할 의향이 있지만, 싼허인력시장에서 일용직이나 십장과 오랜 기간 접촉하다보면 특정한 일용직 구인구직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부터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경비와 물류, 건설업 등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세 가지 업종이다.

과거 연구자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불안정 노동자(零工; 긱노동자)를 ‘비정규 취업’ 또는 ‘비공식 경제’라고 지칭했다. 정규 취업이란 곧 하나의 고정된 고용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해 법률 체계 내에서 노동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2008년 ‘노동계약법(劳动合同法)’을 비롯한 노동권 보호법률들이 시행됐고, 이에 따라 고용주들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파견 고용과 외주화가 만연해졌다. 이는 수출 중심 제조업의 계절적 고용 수요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징러시장 내의 노무 중개업체들은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모였고, 거대한 일용직 채용시장을 형성했다. 십장들은 중개업체 아래에 자리 잡았으며, 고용은 더욱 비공식적이고 단기적이며, 유연해졌다. 이러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비정규 취업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현상일 것이다.

신세대 농민공들의 고용 제도의 불안정성과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은 적극적으로 고착화됐다. 더구나 저렴한 생활비와 다양한 비공식 부문(灰色产业)이 더 해지면서 ‘싼허따션’이 형성된 것이다.

2022년 8월, 선전 롱화구의 리모델링된 징러시장
2022년 8월, 선전 롱화구의 리모델링된 징러시장

롱화에서 샤징으로, 다시 롱화로

징러시장은 레모델링됐지만, 그곳의 십장들은 시장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싼롄공원(三联公园)’ 입구 같은 곳들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따라서 당국은 만약 십장들이 여전히 롱화에 있다면, ‘따션’의 토양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란 점을 주목하고 있다.

2021년 6월 당시 중산의 한 전자 공장에서 일하던 아창은 위챗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구인 쪽지들을 좀 보고, 근거지를 옮겨봐. 라오꺼들이 죄다 샤징으로 갔으니, 이제 롱화에선 (일자리) 찾기 어려울 거야.”

그는 십장 샤오쓰가 자신의 위챗 타임라인에서 캡쳐한 이미지를 보냈다. 샤오쓰는 위챗에서 이렇게 말했다.

“롱화에서 노동자를 구인하던 사장들은 이제 샤징 쪽으로 옮길 것 같음. 옮기게 되면 초창기 기숙사비는 무료일 것 같음. 적어도 6월 말까진 무료이고, 나중엔 하루 15위안 정도.”

징러시장 구역의 리모델링이 이뤄지기 전, 샤오쓰는 십장 일만이 아니라, 징러신촌 내에서 여인숙과 PC방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당시 그는 싼허의 십장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사진 속 16명의 사람들 대부분은 중년에 가까웠고, 그 중 여성은 1명이었다.

이에 대해 아창은 이렇게 말했다.

“다들 ‘불법 십장들’이야.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지. 만약 니가 진짜 일을 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임금은 전혀 적지 않아. 근데 주로 많은 라오꺼들은 일하긴 원하지 않지.”

샤오쓰를 비롯한 십장들은 이러한 비슷한 소식들을 오랜 기간 친구들 사이에서 공유했다. 이것은 일용직 노동자 집단에서 큰 사건이었는데, 롱화 오랜 기간 친구들 사이에서 공유했다. 이것은 일용직 노동자 집단에서 큰 사건이었는데, 롱화 갤러리(龙华吧)에선 그것의 숨은 의도에 대해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롱화구청 관료들이 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면서, 롱화구의 싼허따션들을 와해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십장들이 사글세를 받거나 편의점을 운영해 싼허따션들의 돈을 걷으려 한다고 말했다.

청샤오(程骁)도 이 소식을 봤다. 당시 싼롄공원 입구에선 매일 1대의 대형버스가 샤징으로 출발했는데, 버스에는 ‘샤징 신공단 노동자 및 셔틀버스 무료 숙박’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청샤오는 버스를 타고 샤징으로 갔다. 그는 이미 2012년에 싼허에 왔는데, 그 후론 줄곧 허름한 공동주택에 머물며 일용직으로 삶을 유지했다.

청샤오는 이것이 일종의 강제퇴거라고 여긴다. 그는 내게 “2018년 NHK 다큐멘터리 방송이 롱화구를 ‘먹칠’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당국은 이에 대응해 여러 일을 했다.

“관료들은 인력시장의 십장들과 협력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쫓아낸 거고, 십장들은 우리를 샤징으로 몰아넣은 거야.”

“버스에 붙어있던 그 광고 문구는 관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봐.” 롱화구의 가도판공실(도시행정체계의 가장 하급단위)은 십장들이 롱화구 내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모집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게 청샤오의 시각이다. 만약 구인을 하면,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청샤오는 샤오쓰의 샤징 기숙사방에 들어갔다. 첫 달엔 무료였고, 두번째 달부터 하루 5위안을 냈으며, 이후에는 점차 10위안, 15위안, 20위안으로 인상됐다. 요즘 그는 종종 전시회 보안노동자로 일하는데, 3~4개월 정도 살다가 계속 월세가 오르자 방을 떠났다.

예전에도 아러는 자주 샤오쓰의 중개를 통해 공장에 들어갔다. 공장에서 퇴사한 후 샤오쓰로부터 정보를 받았고, 그의 기숙사에서 체류했다. 그곳에서 그는 종종 일용직으로 일했고, 반년 정도 빈둥거리고서야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다.

아러를 비롯한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번의 인력시장 이전이 대형 중개업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샤오쓰의 기숙사 건물 주소는 ‘지에펑인력’이라는 업체로 돼 있었고, 이곳에서 음식점과 PC방도 운영했다.

지에펑인력은 톈지에그룹의 자회사로, 2020년 9월에 창업했다. 톈지에그룹의 또 다른 자회사가 바로 하이신신인력으로, 징러시장 리모델링이 이뤄지면서 하이신신인력도 폐업하게 됐다. 이에 따라 십장들은 계속해서 샤징에서 톈지에그룹에 협력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십장들은 롱화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징러시장 주변에 자신의 기숙사와 인력소개소를 두고 있다. 비록 기지가 이전되긴 했지만, 인력을 구인구직하는 장소엔 여전히 샤징도 있고 롱화도 있다.

‘샤징 기지는 쓰레기다’라는 글이 롱화갤에 올라왔다. 그 글은 롱화에서 샤징으로 이주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곳 샤징이 선전시에서 매우 외진 곳이고, 음식이나 숙박 등 생활 조건도 롱화만큼 풍족하지 않아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내용이었다.

2022년, 샤징갤이 인터넷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공장과 인력중개업체가 즐비한 샤징은 롱화 바깥 일용직 노동자들의 새로운 거점이 됐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빈발하면서 십장들의 공장 채용 수요도 줄어들었다. 샤징 기지의 일용직 노동자들 역시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샤징에 위치한 모든 인력 중개업체들이 철거 대상에 포함됐다.

결국 샤오쓰를 포함한 일부 십장들은 롱화로 돌아갔다. 2022년 여름, 샤오쓰는 룽화의 H 공업단지에 공장 기숙사 모집 웹사이트를 열었다. 청샤오는 일부 십장들로부터 샤징 기지의 기숙사에 참여했던 모든 십장들이 돈을 기부했지만 결국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팬데믹 이후 당국은 점차 유연한 고용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2022년 10월, 롱화 버스터미널 근방의 준공익기구 롱화취업제일참(龙华就业第一站)은 중국 국무원으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공식적인 격려 메시지에서 국무원은 “롱화 버스터미널 등의 구역은 도시 전체의 유연화된 취업자들의 집산지였고, 전국 긱노동 시장의 모범으로 기록됐다.

2024년 국경절 선전시 롱화구의 육교 위에서 바라본 거리 야경
2024년 국경절 선전시 롱화구의 육교 위에서 바라본 거리 야경

롱화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상과 생존

샤징으로, 다시 룽화로 인력시장의 본거지가 옮겨지면서 점점 더 많은 십장들이 룽화 버스터미널 주변 여인숙 방을 계약하기 시작했다. 대다수 십장들은 일꾼을 모집해야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룹채팅방이나 게시판에서 이러한 패턴을 설명하는 ‘쥐엔양(圈养; 사육)’이란 단어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세계사 교과서 속에서 영국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쥐엔양’과 관련된 또 다른 단어는 ‘돼지우리(养猪场)’로, 십장들의 여인숙 방과 그곳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터넷 상에서 이곳 사람들을 묘사할 때 보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는 ‘쓰레기(废物)’다. 일용직 경비노동자로서 십장의 여인숙에서 생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용어를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라오꺼 집단이다. 가령 롱화갤에 십장 여인숙 침대에 대한 게시물이 올라온 적 있는데, 십장들의 쥐엔양 방식은 질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머무른 이들에게는 경멸받기도 한다. “사육받은 따션들의 머리는 좀 문제가 있어. 며칠만 머무르는 따션들은 정상이긴 하지만, 줄곧 체류하는 이들은 별의별 괴짜들이 다 있지.” 그리고 두 개의 댓글이 이 게시글에서의 논쟁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롱화갤에서 싼허따션을 가장 심하게 욕하는 인간들은 바로 따션들이지”, “왜냐하면 따션들이야말로 따션들을 잘 알거든.”

라오우는 룽화구의 십장들 중 가장 유명한 한 명이다. 2022년 하반기 아러는 M산업단지에 있는 라오우의 기숙사에 살았다. 하루하루 침대를 빌려 쓰고 밤에는 방역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곳은 내가 경비노동자로서 첫 직장을 구한 곳이기도 하다.

라오우의 기숙사를 여러 번 방문한 후, 산업단지 1층의 먼지 쌓인 유리창에 “라오우가 따션을 구한다”, “라오우는 좋은 사람”이라는 손글씨 낙서를 봤다. 나는 세상 만사를 하찮게 대하는 많은 라오꺼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어떤 엄숙한 일들도 저속하게 해체해버리고, 풍자로 바꿔버린다. 이런 말들이 상급자를 조롱하는 것인지, 진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나는 청샤오와 ‘돼지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말 방법이 없어. 여긴 정말 돼지 우리거든. 라오꺼들은 이 농담을 하는 걸 좋아하지. 자신이 거기 살면서 ‘여긴 돼지 우리’라고 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그 말을 쓰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 싼허에 왔을 땐 “노력했었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모종의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저 끝이 보이지 않은 삶 속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이다. 관샤오린(关小林)에 따르면, 그가 만났던 일용직 경비노동자 10명 중 9명이 ‘노름꾼’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2022년에 팬데믹 예방 경비원으로 일하며 10만 위안(2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지만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다.

“도박 습관을 끊을 수가 없어요. 제가 도박을 하지 않았다면 일용직으로 일하고 침대 공간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저를 돼지처럼 대하지 않았을 거에요. 어떤 날은 쉬고, 어떤 날은 한 푼도 벌지 못하기도 했죠. 그저 간신히 생계만 유지하는 거예요. 그러다 다시 도박을 하는 거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관샤오린은 이미 10만 위안 이상의 빚을 졌다. 가능한 모든 온라인 신용 대출을 받았는데, 이미 연체 기간만 몇 년이 지나버렸고, 카드는 동결됐다. 은행의 감사는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새 카드를 발급받을 수가 없었고, 지난 1년 사이 도박을 줄여야 했다. 그는 변하고 싶지만, 널뛰는 일상 속에서 변화할 수 없었다.

코로나 방역 조치가 해제된 이래 지난 2년 동안 아러는 롱화구 십장들이 운영하는 거의 모든 여인숙들에서 체류했었다. 롱화 버스터미널 주변엔 여인숙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으며, 대부분은 주인들의 농민방(农民房)이거나 작은 여관이다. 아러는 이 집주인들에 비해 십장들은 라오꺼들을 더 잘 알고, 방세를 독촉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침대방 역시 월 단위로 지불할 수 있고, 보다 저렴하다. 일세방은 방에서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고, 방에 머물다가도 PC방에 가서 며칠 동안 놀 수도 있다.

아러는 여전히 십장이 모집한 작은 공장들에 들어갔다가 뛰쳐나오고, 다시 또 공장에 들어가 일하며 지내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채 한 달도 일하지 않고 그만두고, 길게 일해봐야 한달 반 정도에 불과하다. 롱화의 일용직 노동자 집단에서 모든 이들은 ‘습관이 짧을수록 아침이 밝지 않다’(习惯了越短,就越朝不保夕)는 것을 알고 있다.

‘싼허따션’의 곤경은 자기자신의 탓일까, 아니면 사회의 탓일까? 다큐멘터리 <싼허에는 사람이 있다>(人在三和)에는 라오꺼들로부터 존경받는 국숫집 주인 라오양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속엔 그가 다른 두 명의 노동자와 이 문제에 대해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오양은 징러시장에서 십여 년 동안 국수 가게를 운영하다가, 2020년 말 팬데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2008년에 개업한 후, 오랫동안 4위안짜리 국수를 팔다가 2018년에야 5위안으로 인상했다. 가격이 매우 저렴해 ‘구아비면(挂逼面)’이라 불린다. 하지만 라오양이 라오꺼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단순히 국수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다큐멘터리에서 표현됐듯, ‘싼허따션’에 대한 선의와 이해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에서 두 노동자들은 싼허따션들이 맞닥뜨리는 일들을 이야기하며 자책했고, 그때 그들 스스로 일하지 않고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라오양은 인간은 모두 태어났을 땐 착했고, 그저 집안의 출생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온 모든 이들은 게으르게 변했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과 적정한 일자리가 필요하다. 라오양은 이렇게 말한다.

“한 시각장애인이 강 한가운데에 다다르면 더 이상 갈 길이 없잖소. 그러면 누군가 그를 데려와야 하는 거요. 1%의 가능성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구해내야 하는 거 아니겠소.”

글 속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익명이다.

글 : 왕안(王暗)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