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노동자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자! | 2025년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2025년 5월 8일
이주노조 20주년
지난 4월 27일 보신각에서 <우리 힘으로 이주노동자의 새로운 세상! 2025 세계노동절 | 이주노동자 메이데이>가 열렸다. 2025년은 이주노동자 표적 단속과 탄압에 굴하지 않고 이주노동조합의 깃발을 들고 활동해 온 지 20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합법화된 지 10년째 되는 뜻깊은 해다.
세계노동절을 맞아 참가자들은 모든 이주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외치고, 다양한 이주노동자 요구를 모아 권리보장을 촉구했다. 현장발언과 연대공연, ‘이주노동자 차별세상’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찢는 상징의식과 행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이날 집회는 200명 넘는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했다.
먼저 대회사에 나선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은 전 세계의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와 자본가들의 탄압에 놓였다며 한국 정부 역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탄압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한국의 산업현장이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의 역할이 크지만, 정부의 고용허가제(한국 정부가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에게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는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과 사업장 변경의 자유 박탈, 사업주의 폭언과 폭행 및 본국 송환 협박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현장은 열악하고 위험하지만, 다쳐도, 아파도, 제대로 쉬고 치료받지 못한 채 다시 일터에 나가야 한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사고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임금체불 역시 늘어나고 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허가제(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길 자유 등 노동권이 보장된 제도) 도입,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단결 투쟁, 탄핵 이후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의 니 코 베키(Nico Bekke) 사무장은 부산 글로벌빌리지(BGV)와의 투쟁에 대해 발언했다. 2024년 3월 부산글로벌빌리지는 기장군으로부터 영어 프로그램 운영권을 따냈고, 그 직후 노동조건과 노동자 처우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부산에선 외국어교육지회 조합원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영어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의 운영자가 기장군에서 부산 글로벌빌리지로 바뀌면서 노동조건과 처우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원어민 강사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조직화에 나섰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원어민 강사들은 수개월의 교섭 끝에 11월 부산글로벌빌리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한 달 후 몇몇 조합원은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노동조합은 부당해고 철회를 위한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이다. 니코 베키는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며, 정부가 공공부문 고용승계를 위한 입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밖에도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의 인상적인 발언들이 이어졌다.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의 온드라(Undrakh)는 이주여성의 삶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온드라는 이주민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가족센터에서 이중언어코치로 일하는 노동자다. 이주민들이 한국어와 모국어를 함께 배우고, 한국 사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호봉제 미적용 등 차별대우로 인해 이주여성들의 노동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더온드라는 윤석열 파면을 위한 퇴진 광장에도 함께 나서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새로운 세상에는 우리 이주여성들의 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파면 이후 다시 만들 대한민국은 이주여성에게 차별없는 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외쳤다.
온드라는 윤석열 파면을 위한 퇴진 광장에도 함께 나서기도 했다. 때로는 광장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종종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온드라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세상에는 우리 이주여성들의 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파면 이후 다시 만들 대한민국은 이주여성에게 차별없는 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외쳤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비샬(Bishal)은 자신이 일하던 안산의 제조업공장 사장의 폭언과 폭행을 경찰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으나 외면당한 현실을 폭로했다. 사장에게만 모든 권한이 있는 고용허가제를 바꾸기 위해 모든 이주노동자가 단결해서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어 필리핀 이주민 공동체 ‘카사마코’에서 이주노동자 세계노동절 성명을 낭독했다. 카사마코는 1998년 한국에 있는 필리핀 이주노동자 단체들의 연합체다. 현재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필리핀 이주노동자 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필리핀 정부의 인권 탄압을 폭로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 네팔 등 다른 나라의 공동체가 클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카사마코는 성명문에서 "미국이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비정규직화와 노동유연화를 도입해 수백만 명의 고용 안정, 복지, 단결권을 빼앗고, 필수품 가격을 부풀리며, 공공서비스를 해체하고 자원을 약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한국의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시 민들 역시 반노동자적이고 억압적인 신자유주의 아래 악화되는 위기를 견뎌내고 있다"며, "모든 비정규직 금지, 고용안정과 복지 등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주장했다. 또, "한국에서 정주민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공격하는 세력은 동일하다"며, 우리의 투쟁이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파시즘,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는 더 큰 글로벌 투쟁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투쟁이 있기 때문에
이날 발언은 아니지만 일주일 전 열렸던 420 전국장애인차별철폐결의대회에서도 이주민 장애 당사자이자 고려인 최올가의 투쟁 발언도 감명 깊어 함께 소개한다. 이날 발언에서 최올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았을 때보다 한국에 살면서 이동하기 편했던 것은 "한국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벌인 이동권 투쟁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올가는 "이주민들 역시 비상계엄에서 윤석열 파면까지 123일을 함께 견디고, 외치고, 싸웠다"며 윤석열의 지난 3년 동안 추진한 이주노동자 차별 정책을 규탄했다. 장애인 관련 법 어디에도 ‘장애를 가진 이주민’은 없는 존재임을 폭로하며 이주민이라서 차별받는 장애인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에서 알 수 있듯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가로막히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 죽음과 산업재해를 야기하는 강제 단속과 추방이 일상이 된 사회는 이주노동자에게 계엄 상태의 상시적인 지속과 다름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은 정주민과 동 등하게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노동권을 포함해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보수세력이나 자본가들은 이주노동자 권리와 정주민들의 권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이주민 차별을 공공연하고도 제도적으로 정당화한다. 정말 그럴까?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하면 정주노동자들의 권리 역시 후퇴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전임 위원장이자 필리핀 출신 이주민 미셸이 들려줬던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한 자동차 부품공장의 메모리칩 점검 작업라인에서 정주민 노동자의 경우 하루 2,000개가 맡겨졌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하루 4,000개가 할당됐다. 이는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끔찍한 수준으로 높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결국 사측은 정주민 노동자들에게 "이주노동자들만큼 일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필리핀 출신 이주민 미셸이 들려줬던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한 자동차 부품공장의 메모리칩 점검 작업라인에서 정주민 노동자의 경우 하루 2,000개가 맡겨졌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하루 4,000개가 할당됐다. 이는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끔찍한 수준으로 높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결국 사측은 정주민 노동자들에게 "이주노동자들만큼 일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이주노동자 노동 환경의 악화가 정주노동자 자신의 노동 조건도 열악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권리가 제약된 누군가에게 가해지는 어떤 억압과 착취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노동자가 경계를 넘어 단결하고 투쟁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에게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다짐하며, 고려인 이주민 최올가의 발언으로 우리의 약속을 대신하고자 한다.
“인구소멸이라고 이주노동자를 계속 끌어들이면서 이미 이 땅에 살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짐승처럼 잡아들여 가두고 추방했습니다. 중국 혐오를 조장해 이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적을 떠나 지금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윤석열을 체포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회복하자고 외친 이유입니다. 우리 연대하여 모든 차별에 저항하고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평등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21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사회대개혁 실현과 더는 미룰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민주노총이 선포한 이주노동자 10대 대선 요구안을 소개한다.
10대 대선 요구안
- 1. ILO 강제노동금지협약을 준수하고, 모든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
- 2. 임금 체불을 근절하고, 퇴직금을 국내에서 지급하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중단하라!
- 3. 임시 가건물 형태의 기숙사를 전면 금지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를 보장하라!
- 4. ‘위험의 이주화’를 중단하고,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을 보장하라!
- 5. 근로기준법 제63조를 폐지하고, 농어업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
- 6. 계절노동자·어선원 노동자 등 착취 구조를 근절하고, 권리를 보장하라!
- 7.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 단속과 추방을 중단하고, 체류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시행하라!
- 8. 이주노동자를 위한 지원정책 및 상담, 통번역, 교육, 권리구제 등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라!
- 9.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차별·성폭력을 근절하고,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
- 10.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