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싱가포르의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23살 활동가
2025년 4월 9일
윤석열 퇴진 투쟁이 한창이던 지난 1월 초, 싱가포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가이자 좌파 활동가 일라이자(Elijah)가 서울을 찾았다. 다른 싱가포르 활동가들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우리는 연결될 수 있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플랫폼c의 회원들에게 연락을 준 그와 잠시나마 함께 광장을 지킬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온 귀한 손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영어로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번역하고 정리해 소개한다.
동동 | 일라이자, 당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줄 수 있나요?
일라이자 |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일라이자 테이(Elijah Tay)고요. 싱가포르에서 활동 중인 23살 학생 활동가이자 사형제 폐지론자입니다. 현재 주로 NTU Financial Aid Friends(학내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 접근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팔레스타인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Palestine), 그리고 전환정의집단(Transformative Justice Collective)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동 | 굉장히 다양한 활동들을 왕성하게 펼치고 계시군요! 일라이자, 당신은 어떤 계기로 활동가가 되셨나요?
일라이자 | 저는 14살에 제 성소수자 정체성을 깨달았고, 그걸 계기로 성소수자 차별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있는지 깨닫고 나니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 후로는 성소수자 권리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My Queer Story SG’(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성소수자 차별이 없다고 하는 국가에 맞서 반서사를 구축하고 싱가포르 성소수자들의 차별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한 페이지였습니다.)를 운영하거나 #FixSchoolsNotStudents(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바꾸자!) 투쟁의 일환으로 트랜스포비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죠. 기존 시스템이 얼마나 부당한지의 현실을 알게 되면, 가치와 원칙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저는 조직가(organizer)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억압적 시스템을 폭로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직접 내는 사람들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실질적 관심사와 열망을 나누면서 대중의 힘을 키우며 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공동 소유와 공동 의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는 말이 있는데요, 그 말처럼 변화를 이뤄내고 모두의 해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공통의 관심사 속에서 함께 행동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동 | 현재 싱가포르 사회운동의 주요, 핵심 의제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일라이자 | 우선 우리 모두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것은 어디든 똑같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략적이어야 하고, 또 서로 연대해야만 합니다. 특히 같은 조직 혹은 다른 조직의 동료들이 국가적 탄압을 받거나 고용주로부터의 괴롭힘에 직면했을 때 더욱 그렇죠. 그래서 우리 공통의 이익과 공통의 투쟁을 인식하고, 서로를 도움으로써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암베드카르 박사(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빈민운동가 - 역주)는 “교육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라”는 구호를 내건 바 있는데요, 싱가포르에서 저희는 이 방정식에 “돕다”를 추가해서 “돕고, 교육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라”를 내걸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지원받는다고 느낄 때에 함께 배우고, 함께 느끼고, 함께 행동하기 위한 역량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측면은 공적 교육입니다. 단순히 정부의 말에 반박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정보에 입각해 스스로의 의견을 내게끔 하기 위해 교육 사업이 중요합니다. 지금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 중인 활동 중 하나는 사형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집들의 문을 두드리는 가택방문 활동인데요. 활동 중 한 대화가 끝나고 나서 제가 이런 글을 썼었네요. “오늘의 대화는 정부가 사형제도에 대한 강한 지지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제도에 대해 생각하고 직관적으로 판단하며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이 지지는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주류 언론이 끊임없이 국가의 서사를 되뇌이고, 사형제의 가해자들(정부 - 역주)이 ‘가짜뉴스법’을 통해 시민들을 처벌하고, 관료들은 동 료 시민들과의 토론보다 해외 억만장자와의 대화를 선호하는 상황 속에서 정보의 자유와 비판적 사고의 권리는 박탈되곤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에는 엄청난 지식 격차가 있다.”
저희는 함께 모이는 집회 문화도 만들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3년 Workers Make Possible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적인 노동절 집회를 조직한 바 있습니다. 앞서 2022년 4월에는 홍림공원(유일한 합법 공개집회장소인 스피커즈 코너가 설치된 곳 - 역주)에 수백 명의 싱가포르인들이 두 차례 모이기도 했습니다. 한 차례는 사형제 반대를 외치는 집회를, 그리고 다음번에는 두 명의 사형수 Nagaenthran과 Datchinamurthy의 구명을 위해서 야간 집회를 열었죠. “민주주의 사회 건설”을 표방하는 국가에서 시민들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향유하는 것은 민주적 권리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동동 | 일라이자 동지는 평소 퀴어 관련 활동들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 같아요! 2021년 인터뷰 영상을 조사하다 발견하였는데요. 4년 전인 당시와 비교했을 때, 현재 싱가포르의 정책이나 상황의 변화가 있나요?
일라이자 | 아쉽게도 물적 조건에 있어 큰 진전은 없습니다. 예컨대 성별정정 수술은 정부 보조금과 보험 적용에서 계속 제외되고 있고, 싱가포르 국회에 새롭게 제안된 ‘직장 공정성 법안’ 역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보호받는 정체성’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LGBTQ+들은 고용차별과 직장 내 차별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더 큰 걱정은 정부가 권위주의의 강화를 은폐하고 스스로를 ‘진보적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 성소수자 권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무부 및 법무부 장관인 Shanmugam은 T Project’s shelter(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위한 사회적 기관)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고, 싱가포르 최대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핑크닷의 전 중앙위원을 인민행동당(PAP)에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는 동시에 조직가, 사형제 폐지론자,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을 추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약과의 전쟁’의 최대 지지자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사형수들을 처형하고 있죠.
싱가포르의 성소수자 권리가 실제로 진보하려면 활동가들이 명확한 이념에 기반 해야만 합니다. 성소수자의 해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를 향한 우리의 길을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요? 이 싸움은 집단적 싸움이어야만 합니다. 고립된 상태에서 싸우면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공간 전반에 걸친 연대가 가장 중요합니다.
동동 | 싱가포르 노동운동의 상황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일라이자 | 우선 저는 지금 싱가포르 유일의 이주노동자 주도 노동운동단체인 싱가포르 이주노동자들(Migrant Workers Singapore)과 연대하고 지원하는 Students for Migrant Rights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매월 헬프데스크 세션을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 싱가포르의 노동운동을 성장시키는 주요 조직은 Workers Make Possible입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진 않지만, 이러한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요. 2023년과 2024년 사이 연례 노동절 집회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두 배로 증가했고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싱가포르에서 노동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고무적 신호입니다.
동동 | 싱가포르는 여당 PAP에 의한 정치적 탄압이 극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싱가포르의 사회운동 탄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가요? 관련하여 본인의 경험을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일라이자 | 네, 국가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무부는 ‘가짜뉴스법’(온라인 허위사실 유포 및 조작 방지법)을 통해 사형제에 맞서는 활동가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죠. 이 때문에 저희 Transformative Justice Collective도 SNS 계정 일부와 주요 웹사이트의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많은 시민들이 사형수들을 위한 철야 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고, 그 중 한 명인 Jolovan Wham은 최근 기소되어 2월 3일 법정 심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저도 설연휴(Lunar New Year) 셋째 날 고 Masoud와 Syed(마약 밀매 혐의로 싱가포르 정부에 의해 사형당한 사형수들 - 역주)를 위한 야간 집회, 그리고 2024년 11월 27일 고 Rosman(마찬가지로 마약 밀매 혐의로 11월 22일 교수형당한 사형수)을 위한 야간 집회로 인해 최근 여러 차례 조사를 받고 있고요. 국가는 공권력을 통해 사람들을 위협하고, 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한 모든 행동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있어서도 이런 경찰 조사가 반복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가자지구 사망자들을 추도하기 위해 124켤레의 신발을 전 시했던 활동에 대해 공공질서법을 적용해 조사를 시작했고, 이는 대중 참여 집회가 아닌 활동에 대해 행해지는 첫 번째 경찰 조사였습니다. 관련해서 저는 현재 2024년 2월 2일 싱가포르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에 열린 비공개 행사에서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를 외친 혐의, 그리고 인종화합유지법안(인종 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제하기 위해 ‘인종 화합’을 명목으로 정부가 새로 발의한 법안)에 대해 항의하고자 내무부 건물에 편지를 전달한 것을 이유로 조사받고 있기도 합니다.
동동 | 싱가포르 정치는 사실상의 1당제고, 소수 야당인 노동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두 당 간의 차이는 어떠한가요?
일라이자 | 저는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 에세이를 쓸 정도로 할 말이 많은데요(웃음).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따로 이야기하고 두 정당의 역사와 오늘날 이들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대해 공유하고 싶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요.
간단하게만 이야기하자면, PAP 내의 좌파들이 영국 식민정부의 지원을 받은 리콴유(싱가포르 초대 수상 - 역주)에 의해 추방됐다는 것이 지금의 정치를 제약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때 출당된 좌파들은 Barisan Socialis(사회주의 전선)를 결성했고, 이후 이들은 현재의 노동당과 합병을 통해 해산했습니다. 오늘날의 노동당을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이야기를 나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동동 | 한국의 경우에는 보수 양당의 정치 독점을 타파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기 위해 민주노총과 사회운동세력 주도로 진보정당운동을 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싱가포르도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있는지, 아직 없다면 향후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라이자 | 저는 저희가 지금 구축해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특히 Transformative Justice Collective: 한국의 체제전환운동, 혹은 진보정치운동과 유사 - 역주). 우리의 운동은 다양한 측면에서 성장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과 사형제 폐지 운동,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운동 역사를 제가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이 운동과 한국 운동을 상세하게 비교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동동 | 각 나라마다 사회운동적, 정치적 맥락이 있을 텐데요, 서로의 운동을 마주하고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은 국제연대적 맥락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윤석열 퇴진 집회에 직접 참여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일라이자 | 저는 눈 내리는 날에도 밤낮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서로를 돌보는 신념과 연대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민중의 힘이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거리에서 이런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기도 했고요. 우리 모두가 집권 엘리트와 현 정부가 얼마나 우리의 이익에 반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지 알고, 또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우리가 현장에서 해 온 일들에 대해 공유하게 되어 기쁩니다. 글로벌 식민자본주의 하 국제적인 투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국경을 넘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동 | 이제 2025년이 밝았습니다. 싱가포르 사회의 활동가로서 2025년 본인의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는?
일라이자 | 저는 이 운동과 함께 성장하고, 제가 조직하는 사람들로부터 역으로 배우면서 함께 일하고 있어 아주 기쁩니다. 특히 올해 말에는 제가 학교를 졸업하는데요, 더 많은 학생 활동가들과 조직가들이 다양한 조직을 이어받고 또 만들어나갈 자신 감을 갖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운동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함께하기 위해 제 건강을 더 잘 관리하고 싶습니다. 다들 물을 더 많이 드시고 채소를 더 많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인터뷰어 : 이도영
인터뷰이 : 일라이자 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