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특색 불안정 노동자 ① | 재개발된 ‘싼허’와 ‘따션’의 변두리에서의 생존

중국특색 불안정 노동자 ① | 재개발된 ‘싼허’와 ‘따션’의 변두리에서의 생존

“나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을 덜 하고 사는 게 최선이야. 너무 까다로워서도 안 되는 거고, 생각이 많으면 문제만 초래할 테니까.”

2025년 4월 14일

[동아시아]중국대륙불안정노동자, 광둥성, 중국, 선전, 탕핑

역주 : 이 글은 중화권 매체 ‘단전매’에 2편으로 나뉘어 투고된 원문 中國特色零工(上):改造「三和」與「大神」的邊緣生存 앞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상편과 하편으로 나뉜 원문과는 다르게 총 서너 번에 걸쳐 게시할 예정이다. 개혁개방 46년을 맞은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계급은 개혁개방 시기 농민공의 폭발적 증가와 노동쟁의의 고조기를 거쳐, 어두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를 살아가는 대도시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더 이상 농민공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기보다는 조롱과 멸시, 혹은 자조의 이름으로 불린다. 필자는 이런 노동자들 틈에서 함께 살아가는 노동자다. 필자는 자신들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중국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을 통해 이들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시 집체로서 호명할 수 있을지 모색하려 하는 것 같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실명이 아니다.

조국을 위한 육교 경비

“12시간에 160위안, 다리 경비 구함!”

배가 나온 중년 남성이 여러 장의 신분증을 손에 들고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찾던 일용직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신분증을 건네 일자리를 잡았다.

그는 채용을 담당하는 한 중년 여성과 함께 있었다. 일터에 도착하기 전, 나는 위챗으로 “교량 경비원 야간 근무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당연하죠.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선착순으로 뽑아요”라고 친절히 답해주었다.

라오쑤(老苏)는 현장에서 모집을 담당한다. 10명 정도만 구하면 충분하다. 그는 신분증 사진을 찍고는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앉아 있어도 되고, 일어서 있어도 되지만, 잠자는 건 절대 안 된다. 혼자 가고 혼자서 돌아와야하며, 식사는 포함되지 않으며, 경비원 유니폼은 제공된다. 경비반장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그룹 채팅방에 전송될 것이다.” 또한 그는 “이름을 적으면 경찰서로 연결되는 직통전화로 연결된다”며, “(범죄) 기록이 있으면 나중에 연행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곳은 선전시 롱화구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나이가 좀 있는 남자들은 소박하게 입고 있고,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매일 이곳에 모이는 이들은 출근하지 않더라도 그날의 인력시장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채용하는 직무를 묻는 새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데, 12시간 연속 근무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라오쑤는 “절대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알았죠? 여러분이 시간당 1만 위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강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22년 6월, 선전 롱화의 버스터미널
2022년 6월, 선전 롱화의 버스터미널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12위안짜리 단품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금방 다 먹어치웠다. 그리곤 보조배터리와 함께 중고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18위안(약 3,500원)에 고속충전 보조배터리를 흥정해 구입했다. 칭후(清湖)역에서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관내의 어느 지역으로 진입했고, 육교 경비를 맡은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은 도심 한복판의 번화한 지역이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뚱뚱한 경비원은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작은 경비초소로 데려 갔다. 경비초소 처마에는 ‘XX 교통 보안’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두 개의 경비초소가 나란히 있었다. 그 문 옆에는 “XX 교통경찰대 경무구(XX交警中队警务区)”, “XX거리 도로교통 안전위원회”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있었다.

10명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보안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곤 인근의 육교로 이동했고, 오후 8시 주간 근무자들과 교대해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경비대장이 그룹 채팅방에 공지를 올렸다. “파출소 인원이 근무 위치로 올텐데, 당신들을 찾지 못하면 전화를 할 겁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들은 어디 사람이냐고 물으면, 바로 ‘어디어디 거리 순찰원’이라거나 ‘어디어디 경비회사’에서 왔다고 말하세요. 휴대폰 갖고 놀고 있으면 안 되고요. 주변을 잘 주시하면서 예의와 매너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근무 지역에서 현수막을 걸거나, 종이를 태우거나, 낙서하는 것은 금지되고요. 발견되면 즉시 신고하십시오.”

경비 노동자들은 매 시간 현장 사진을 찍어 그룹 채팅방에 업로드해야 한다. “XX 육교 이상무”라는 메시지와 함께. 오토바이를 탄 교통경찰이 이따금 순찰을 돌며 지나갔다. 밤 10시에는 한 교통 경찰관이 지나가면서, 경비를 서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항상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는데, 한 어린이는 내 유니폼에 관심을 쏟으며 경찰관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육교 위 경비초소에는 의자가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한 동료는 자신이 ‘개처럼 느껴진다’고 불평했다. 나는 이 일이 ‘어슬렁거리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렇게 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긴 밤의 전반부에는 난간에 기대 서 있었고, 후반부는 계단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육교가 서 있는 대로 양편에는 가로등마다 오성홍기가 높이 달려 있었다. 자정에 다다랐을 때, 선전의 관방언론 위챗 계정에 이런 알림 메시지가 떴다. “오늘은 2024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5주년 기념일입니다.”

내가 육교 위를 지키는 경비원 채용 정보를 처음 본 것은 베이징 도심 ‘스통차오(四通桥) 사건’ 직후인 2022년 10월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선전에서도 이런 종류의 업무에 대한 채용 공고가 뜬 것이다. 그해부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양회, 6월 4일, 10월 한 달 등 주요 정치 회의나 행사를 전후해 육교 경비원 모집이 진행됐다. 가장 많은 감시 지역은 난산(南山), 푸톈(福田), 뤄후(罗湖) 등 세 곳의 도심 번화가에 있는 육교(교량 아래 터널 포함)였다.

한밤 중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피로를 풀기 위해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했다. 새벽 4시 30분경, 청소노동자들은 일을 시작했고, 새벽 5시 30분이 되자 하늘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오전 8시가 되자 휴대폰 배터리가 거의 방전됐고, 마지막 순간에 드디어 주간 근무 시간이 다가왔다.

지난 밤 나는 화장실에 몇 차례 다녀왔고, 총 네 편의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다. 육교 위에선 아무런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고, 이는 같은 시간대에 근무한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10월에 육교를 지키는 첫 야간 근무였고, 나와 같은 조에 속한 임시직 노동자들은 그 후 10월 7일 밤 12시까지 며칠 동안 매일 교대 근무를 했다.

국경절을 전후해 선전은 일주일 연속으로 드론과 라이트 쇼 공연을 개최해 눈부신 기술발전과 문화관광산업의 성취를 선보였다. 같은 기간 콘서트나 군함 개방일 행사도 열렸다. 이런 행사들에 선전 전역의 보안원들이 총출동했다.

10월 1일 아침, 나는 룽화구 쪽으로 돌아와 2시간반 정도 잠을 자고, 밤에는 다시 라이트쇼가 열리는 푸톈 시민센터의 경비 일을 하러 갔다. 이 일들은 모두 직접 출퇴근해 5~6시간 정도 근무해야 하는데, 한 끼 식비를 포함해 120위안을 받았다. 관리자가 말하길, 그날 행사 경비 일에만 300명이 배치됐다고 했다. 현장의 보안원 중 일부는 평소에 학교나 지하철역, 주거구역 등에서 일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것이었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온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룽화에서의 2년 반 동안 13차례에 걸쳐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각종 공공 행사와 치안 유지 업무를 경험했다.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온 사람들은 주로 룽화 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로, 인터넷에서는 “싼허따션(三和大神 : 온라인게임에서 ‘따션’이란 ‘고수’ 등의 뜻을 갖는데, 이 맥락에선 싼허의 게임고수들이라는 조롱의 의미를 갖는다)”로 알려져 있다.

길거리에 누워 자고 있는 ‘싼허따션’ 노동자
길거리에 누워 자고 있는 ‘싼허따션’ 노동자

‘싼허따션’ 채용 기피

내가 경비원으로서 처음 일한 곳은 2022년 여름에 했던 코로나 팬데믹 방역 보안 일이었다. ‘제로코로나(动态清零) 정책’의 맥락에서 방역 보안원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급여도 평소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일거리였다.

그 후로 나는 롱화 버스터미널 주변을 자주 돌아다녔다. 롱화 버스터미널과 그 주변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찾는 관리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버스터미널이지만 2003년 초부터는 사실상 인력시장이 됐다. 예전 싼허인력공사(三和人力公司)가 위치해 있던 징러시장이 리모델링된 이후, 노무 중개의 중심 집결지는 이곳 롱화 터미널이 됐다. 이곳이 바로 ‘싼허따션’들의 새로운 기지가 된 것이다.

나는 여러 종류의 일용직 노무 그룹에 접속했다. 그 중 코로나 팬데믹 방역 보안원 모집방에서 급여를 둘러싼 정보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경비업체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인원, 싼허따션 등은 접수 불가”, “범죄기록이 없어야 하며, 말썽을 일으킨 전력이 없어야 함.”, “싼허따션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싸움꾼 등 사절”

경비원뿐만 아니라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도 “싼허따션 사절”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런 조건은 기본 조건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진지하게 “당신 싼허따션이야?”라고 묻는 관리자는 본 적이 없다. 가끔 이런 말에 분노한 이들이 이렇게 반박하기도 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싼허따션들인데, ‘싼허따션 사절’이라고 하면 어쩌겠다는 거죠?” 사실 대다수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한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정부가 ‘싼허따션’ 차별과 배척을 공식화한 일이었다.

2022년 6월 30일, 바이두 롱화갤에는 ‘강샤촌 전염병 방지 사령부 회의록(岗厦村防疫指挥部会议纪要)’의 스크린샷이 게시된 적 있다(원본 게시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됨). 이 스크린샷에는 6월 29일 선전시 푸톈구의 ‘펑(冯)’ 모 구청장이 강샤촌 방역 작업을 지휘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었고, 그 중 한 대목에 붉은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싼허따션을 고용하지 말 것”이라는 지시가 그것이었다.

롱화갤은 도시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청년 노동자들의 ‘샤오홍슈(중국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앱)’다. 2018년에 폐쇄된 ‘도박중단갤(戒赌吧)’을 비롯해 롱화갤, 싼허따션갤, 샤징갤(沙井吧)은 모두 싼허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이다.

‘라오꺼(老哥; 형님)’이라는 별명은 ‘도박중단갤’에서 유래했다. 나중엔 인터넷상의 변두리에서부터 오프라인의 다양한 장소로 퍼져나갔다. 룽화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로를 “라오꺼”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따션’이란 용어는 처음부터 조롱과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데, 외부인들이 싼허 인근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애칭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한다. 물론 싼허로 이주해 와서 사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따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 중개시장으로서 싼허의 기능은 일용직 노동자를 모집하는 것인데, ‘롱화 일용직(龙华临时工)’은 이 지역 노동자 집단을 지칭하는 가장 초창기의 용어다.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따션’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계 상태에 대한 일종의 자기비하가 됐다. ‘挂逼(과비)’라는 단어 역시 ‘싼허’에서 유래했다. ‘따션’이란 명명 대신 경제적으로 파산해 죽어가는 상태를 지칭한다. (역주: 바이두 사전에서는 “① 온라인게임에서 데이터를 수정하기 위해 타사 도구/스크립트를 사용하는 것. 다른 플레이어와 게임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 ② 사람이나 동물의 죽음, 혹은 무언가의 끝을 비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쓰이는 표현”이라고 적혀 있음.) 무엇이든 간에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형용사로 사용될 때 경멸을 나타내는 단어로 더 널리 퍼졌다. 발음은 같고 철자가 틀린 “挂壁(매달린 벽)”은 인터넷에서 또 다른 조롱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어떤 게시물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묻는다. “‘싼허따션’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어떤 표준이 있나?” 그러자 댓글에서 누군가 답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다 싼허따션이지”, “일용직”, “적어도 자주 롱화갤에 오는 사람이라면?”, “니가 밤에 롱화 버스터미널에서 자는 사람을 봤다면 바로 알겠지.”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경비원들이야말로 기본적으로 다들 싼허 출신들이지. 싼허따션들을 뭐라고 하든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건 사람 차별하는 거라고 봐”라고 말했다.

푸톈구 강샤촌 방역업무 회의록
푸톈구 강샤촌 방역업무 회의록

강샤촌에서 방역 보안원으로 일하는 한 사람이 답장을 보냈다. “됐다, 난 자격이 안되네!” 그러면서 그는 2장의 사진을 첨부했다. 그 중 하나는 파란색 방호복을 입은 셀카이고, 다른 하나는 감시 중인 건물이었다. 그의 롱화갤 등급은 이미 13급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싼허따션’들이 왜 차별받는지 설명한다. 롱화에서 채용된 일용직 노동자들은 종종 110에 전화를 걸어 노동당국에 제소하기도 한다. 그랬는데도 해당 부서에서 외면하면 롱화의 노동자들은 가도사무소(街道办; 중국 도시 행정체계상 가장 하단의 사무소)에 가서 공무원을 찾는다. 이는 합리적 귀결이다. 중개인이 채용할 때 말한 근로계약 내용이 실제 상황과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방역보안 일을 했던 아창(阿强)과 아러(阿乐)는 내가 싼허따션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창구다.

아창은 알게 된지 5년이 된 동창이다. 2016년 선전에 온 그는 싼허에 가면 일자리도 구할 수 있고 생활비도 엄청 저렴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한 십장 노동자를 따라 단기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한 공장에서 아러를 알게 됐고, 이후 몇 년 동안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싼허 곳곳의 일터에서 우연히 만났다.

2022년 2월 말 아창은 내게 아러가 지금 좀 빈궁하다고 말해주면서, 예전에 서로 돈을 빌려주며 도왔던 정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못 만났다며 그에게 밥을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둥관(东莞)의 한 작은 식당에서 나는 아창과 함께 아러를 만났다. 우리는 일본 NHK 다큐멘터리 <싼허인력시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러는 그 다큐멘터리가 하이신신 인력시장(海新信人力市场)에서 일자리를 찾으며 먹고 자는 많은 사람들을 촬영한 것이라면서, 자신은 거리에서 잠을 잔 적도 없고 신분증과 휴대폰을 팔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三教九流)이 있지만, 나는 PC방 따션 쪽이야. 니가 싼허다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PC방 따션들은 어디에나 있는 거잖아.”

아러는 오직 길거리에 내몰려 노숙을 해야만 진정한 ‘싼허따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법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노동자들
불법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노동자들

아러는 2008년 선전에 와 바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2015년 우리는 우연히 싼허에서 만났다. 그후 그는 이따금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징러신촌(景乐新村)의 PC방에서 일하며, 《미르의 전설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던전앤파이터》 등 온라인 게임에 돈을 쏟아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 팬데믹은 아러가 게임으로 돈을 버는 삶을 중단시켰다. 우리가 아러를 만났을 때, 그는 지난 연말 공장에서 퇴사한 후 줄곧 작은 여관에 머물렀고, 단 두 번의 일용직 노동으로 번 돈을 다 쓴 후였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돈을 빌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하루 15달러짜리 작은 방에 싱글 침대, 작은 테이블, 의자, 작고 낡은 흑백 TV, 개방되어 있지만 희미한 조명이 있는 창문이 있는 아러의 숙소를 보러 갔다. 화장실은 공용이었는데 세면대와 온수기가 구비돼 있고, 쪼그려 앉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아러는 춘절 연휴 전부터 한 달 넘게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방 밖에는 공단 지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DIY상점과 노무중개소가 있었다.

선전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창은 내게 말했다. “몇 년 전 아러를 만났을 때도 이랬는데, 그는 아직도 저렇게 살고 있네. 아러에게 밥을 사주려 했던 건 걔가 정신 좀 차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거였는데, 걘 사실 애초부터 그런 생활방식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2021년 9월 이후, 아창은 폭스콘 관란캠퍼스에서 거의 반년 동안 일했다. 단칸방 월세로 살면서 덕분에 저축도 좀 할 수 있었다. 아창은 과거 자신도 싼허에서 노숙하며 살 때에는 ‘싼허따션’이라고 불릴만 했지만, 2020년 이후에는 싼허를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8월, 선전시 롱화구. 재정비 공사중인 ‘분투자 광장(奋斗者广场)’
2020년 8월, 선전시 롱화구. 재정비 공사중인 ‘분투자 광장(奋斗者广场)’

싼허 재건축: 분투 없이, 롱화도 없다

아창과 비교할 때, 아러는 싼허에서 살았던 기간이 더 길었고, 그 지역의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처음 싼허에 발을 들였을 때도 그랬고, 싼허가 정비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원단(신년 1월 1일) 기간에 아러는 내내 징러신촌의 한 PC방에 있었다. 하루는 롱화기동훈련대대(龙华机训大队)가 와서 PC방을 죄다 쓸어버려서 그 안의 노동자들은 모두 쫓겨났다. 그해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도시 전체에서 공공장소에서의 군중 응집 활동들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당시 징러시장 내의 인력자원기구들도 모두 영업을 잠정 중단했고, 외부도 모두 차단됐다. 길거리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몇몇 형제들은 정부가 제공한 임시 정착촌에 머물러야 했다. 아러는 징러신촌의 작은 여인숙에서 춘절 연휴를 보냈고, 선전에서 일하는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이 빌려준 기숙사로 갔다.

아러는 후베이성 사람으로, 2020년 4월 초 우한이 봉쇄될 때까진 고향에 있었다. 팬데믹 방역으로 통제가 시작된 후, 그의 부모님은 후베이성에서 선전으로 왔다. 아러도 이곳에 이사 와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몇몇 십장들에게 일자리 좀 구해달라고 했지만, 후베이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답만 들었다. 그렇게 상반기 반년을 날려버렸다. 그는 다시 징러신촌으로 돌아와 PC방 내 한 칸짜리 방에 머물면서 매일 게임에서의 아이템 거래에 의존해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징러 지역 재개발 사업이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PC방과 여인숙들이 속속 사라졌다. 아러가 머물던 여관은 11월까지 유지되다가 이전했고, 그제서야 아러도 징러를 떠나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21년 초, 롱화구는 전체 지역을 6개로 분할해 ‘분투자 광장’을 지었다. 롱화구는 과거 제조업 중진도시로, 롱화구의 가치관을 ‘분투’로 정립하려 한 것이다. 한동안 롱화의 거리와 차도에는 “분투 없이 롱화도 없다”는 슬로건이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롱화가도 사무실은 줄곧 징러 지역의 3D 업종(脏乱差)과 불법적인 일자리를 중점적으로 관리해 왔다. ‘싼허따션’이 형성해온 정신적 면모에 대해, 당국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분투 문화를 추진하고, 퇴폐적이고 게으른 서브컬쳐(亚文化)의 토양을 제거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따라서 징러시장 전체의 리모델링이 열성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노무 중개업체와 [허름한] 점포들이 모두 철거됐으며, 싼허 인력시장의 원래 위치는 분투자 광장으로 바뀌었다.

2022년 8월, 선전시 롱화구 징러시장터. 벽에는 분투의 가치를 선전하는 표어�가 그려져 있다.
2022년 8월, 선전시 롱화구 징러시장터. 벽에는 분투의 가치를 선전하는 표어가 그려져 있다.

법 개정과 함께 일부 명백하게 불법인 암거래와 불법 중개업자들은 이제 설 땅을 잃었다. 싼허의 일용직 노동자들도 저렴한 생존의 터전을 떠나 인근 도시나 전국 각지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팬데믹이 야기한 경기 침체를 통해, 싼허의 ‘서브컬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다. 선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베이징 마쥐챠오(马驹桥), 쿤산의 중화원(中华园), 상하이의 처둔(车墩)진, 쑤저우의 산리차오(三里桥), 광저우의 동구 등―이와 같은 ‘따션들의 기지’가 있다. ‘따션’의 이름으로 촬영된 짧은 영상들도 한동안 트래픽이 쏠리는 주제가 됐다. 양동이 들고 달리기, 길거리에서 잠자기, PC방에서 빈둥거리기, 유랑하며 은둔 생활하기, 과비방 체험하기 등이 다양한 콘텐츠들이 있다. 지난 몇 년, 청년들은 ‘서브컬쳐’에서 ‘바이란’(摆烂;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행동방식)에 이르는 시대적 증상들을 경험했다. 이러한 화두 속에서 ‘따션’은 비폭력 불복종의 탕핑주의 선봉이 됐다.

2022년 2월 신화사(新华社; 중국의 국영통신사)의 ‘신화매일통신(新华每日电讯)’은 「사라지는 ‘싼허따션’-선전 징러신촌 탐방 消失的“三和大神”——深圳景乐新村见闻」이라는 제목으로 징러 지역의 최근 상황에 대해 보도하면서, 서브컬쳐 집단 ‘싼허따션’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이제 징러신촌의 PC방들은 서점들로, 여인숙들은 임대주택으로 대체됐고, 인근의 싼허인력시장이었던 터에는 분투자 광장이 건설되고 있다.

나는 이 기사를 아창에게 보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는 여러 번 그곳에 갔었다고 한다.

2008년 8월, 아창은 광둥성 중산시에 위치한 아티슨 공장을 퇴사하고 선전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간 곳은 싼허였다. 그는 인근의 여관에 머무르면서, 지금의 징러시장에 대해 내게 한탄을 늘어놨다. “주위가 죄다 철창으로 둘러싸여서 감옥이나 다름 없게 됐어. 예전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젠 다들 떠나버렸네. 슬프다고 할 순 없지만, 알던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빠르게 변했어. 정신이란 사람들에 의해 퍼지는 건데, 사람들이 사라져버렸으니, 특정 장소에 대한 친숙함이 이젠 불편해졌어.”

나중에 나와 아창, 아러는 재건축이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창은 [롱화구 정비사업으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 쫓겨나는 것이라 생각치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시의 외관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비해야지. 난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효과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던 거지. 근데 공교롭게도 코로나 팬데믹 방역 효과가 드러나면서, 확실히 좋아지긴 한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싼허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게 자신에게 더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절대 불평하지 않거든.” 아창은 자신감을 잃은 청년들에 대한 인터넷상의 말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동영상이나 인기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이에 대해 아러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전염병으로 인한 변화인데, 뭘 할 수 있겠어? 나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을 덜 하고 사는 게 최선이야. 너무 까다로워서도 안 되는 거고, 생각이 많으면 문제만 초래할 테니까.” 그는 싼허에서 여인숙이나 PC방이 금지되더라도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따션들의 터전”이 있는 다른 지역이 있다면, 여전히 PC방에 가서 누울 수 있는 것이고, “정부가 PC방들을 모두 철거할 거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일용직 노동자 채팅방에서 누군가가 옛 싼허를 지나가다가 리모델링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는 “롱화의 징러시장 싼허 기지, ‘분투자 광장’으로 개업”이라고 적었다. 이에 사람들은 “분투자 광장 밑에 라오꺼들이 누워서 자고 있다니, 엄청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네”라고 떠들었다.

2018년 8월, 선전시 롱화구의 징러시장에 위치한 하이신신인력시장 앞 공터
2018년 8월, 선전시 롱화구의 징러시장에 위치한 하이신신인력시장 앞 공터

(2편에서 계속)

글 : 왕안(王暗)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