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체공녀 연대기, 1931~2011』 ‘한국 여성 노동자’의 운동 계보 잇기

서평 | 『체공녀 연대기, 1931~2011』 ‘한국 여성 노동자’의 운동 계보 잇기

계급 차별과 젠더 차별을 함께 타파하는 길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이 긍지 높은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 속에 함께할 수 있다.

2025년 3월 12일

[활동]페미니즘 공부모임페미니즘, 여성노동자, 사회운동, 서평, 책읽기모임

지난 2월,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은 책 ⌜체공녀 연대기, 1931-2011⌟를 함께 읽고 토론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자본주의-국가-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받는 피해자라기 보다는 산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며 주체로 거듭났다. 식민지 조선의 엄혹한 조건에서도, 해방 후 노동법이 형성되는 중요한 국면에서도, 박정희 시대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속에서도,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의 열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공부모임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연대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강주룡과 김진숙

1931년 체공녀 강주룡을 아는가? 어쩌면 소설 제목으로 들어봤을 수도 있다. 강주룡은 한국 최초로 고공 농성을 한 여성 노동자다. 당시 그의 고공 농성은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신문들은 연일 이 고공 농성의 배경인 평양 고무공장파업에 대해 다뤘다.

잠시 80년을 건너뛰어보자. 2011년의 한진중공업 김진숙을 아는가? 그는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했다. 그의 고공 농성도 큰 화제가 되어, 수천수만명의 시민들이 연대를 위해 희망버스에 올랐다. 끝내 회사는 고공 농성의 원인이었던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 을밀대 위의 강주룡과 이를 다룬 신문
평양 을밀대 위의 강주룡과 이를 다룬 신문

강주룡과 김진숙. 둘 사이에는 80년의 세월이라는 간극이 있지만, 둘 다 고공 농성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고공에 오를 때 죽음을 각오하고 올라갈 만큼 치열하게 투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격렬한 투쟁은 오직 두 여성 노동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고공 농성이 아닐지라도, 설령 관심을 크게 모으지 못했더라도,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강주룡 전부터 김진숙 후에도 치열하게 싸워왔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1931년~2011년 시기의 한국에서 있었던 여성 노동운동을 잇고 있다. 이 역사는 1930년대 초 평양의 고무 파업을 한 여공들에서 출발하여, 1950년대 초 부산의 조선방직 쟁의를 이끈 여공들, 1962년 광주 전남방직의 ‘김양’, 그 영향을 받은 광주 JOC(가톨릭노동청년회)의 여성 노동자들, 1970년대 여성해방노동자기수회, 1991년 부산의 신발 대기업 대봉의 권미경, 1990년대 부산의 신발 여공들,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까지 이어진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투쟁 중인 김진숙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투쟁 중인 김진숙

이어지다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책에 나온 여공들의 노동운동은 모두 시기도 지역도 다르지만, 모종의 연속성을 갖고 이어진다. 근원적으로 그들이 모두 부당한 자본의 요구에 맞서 주체적인 싸움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에 더해 이전의 노동운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노동법 제정과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다음 노동운동들이 가능한 조건들을 마련해 갔다. 예컨대 1950년대 여공들의 조방쟁의는 노동법을 통과시킨 핵심적인 쟁의였으며, 이후의 노동운동들은 그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

책에 나오는 여공들 간의 투쟁뿐 아니라, 그들과 지금의 우리에게도 이어진다.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에서도 이 책의 투쟁들이 현재와 연결되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했다는 소감들이 있었다. 특히 책에서 다룬 시기 내내 남성은 상대적으로 고임금 일자리를 얻게 되는 반면, 여성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하는 상황이 큰 공감을 얻었다. 2025년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웬만한 식당 노동자나 조리사는 죄다 여성인데,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소위 ‘고급’ 요리사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책 속에 소개된 투쟁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 결의나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었다. 여공들은 당시 일자리를 잃을 각오로 파업에 참여하는 결의를 보였다. 여공들은 경찰이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현수막을 벽에 붙였다가, 줄에 걸었다가, 플래카드로 내렸다가, 옷에 붙였다가, 옷에 새기는 등 끈질긴 싸움 방식을 보여줬다. 우리가 이러한 투쟁들로부터 영감을 얻는 이유는 지금의 우리 역시 끈질기게 광장에 나가 싸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를 따로 읽을 필요가 있는가? 주저없이 답하자면, 그렇다. 왜냐하면 계급 차별과 젠더 차별은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여성 노동자가, 2010년대 청소노동을 하는 중년 여성 노동자가 되어있다”는 김진숙의 말은 이 연결성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어떤 시대든 여성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사회∙경제 구조가 이어져 왔다. 그 사회∙경제 구조는 때에 따라 가부장제이기도, 반공 자본주의이기도, 박정희의 개발 독재이기도, 신자유주의이기도, 이런 것들이 중첩된 것이기도 했다.

이 모든 사회∙경제 구조들은 소수의 상위 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절대다수의 여성들을 저임금 노동에 종속시키거나 무임금 가사노동으로 얽매는 것이 오래도록 정당화되었다. 책에 따르면 1930년에 평양 기업인은 “여공은 남자가 있으니 삯이 헐해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는데, 1960년대에도 여성 노동자를 생계 부양의 의무에서 자유롭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또한 계급 차별과 젠더 차별의 연결성은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으로서 차별받는 동시에 ‘노동자’로서 착취되는, 이중의 굴레에 씌워져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30년대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공은 “큰아기”로 불리며 일터에서 성적 대상화 되었다. 1970~80년대 여공들은 “공순이”라 불렸는데 이 호칭에는 성애화된 시각이 짙게 묻어 있었다.

이처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계급 차별과 젠더 차별은 함께 타파되어야 한다. 어느 한 차별만 사라지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다른 차별은 여전히 남게 되거나 오히려 심화된다. 먼저 계급 차별에 맞섰으나 젠더 차별은 보지 못했던 사례로, 1960년대의 노조 운동을 들 수 있다. 당시 노조에서 남성만을 가정의 생계부양자로 생각하여 이를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성별 임금격차는 가려졌다.

반대로 젠더 차별에는 맞서지만 계급 차별은 가리는 사례로, 현재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높은 권력을 갖는 것이 젠더 차별 철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보고, 이런 활동에 집중한다. 이는 때로 현 사회에서 낮은 가치 평가를 받는 육체노동에 대한 혐오로 드러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상반되는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둘 중 하나의 차별만을 철폐하는 길로 나아가는 건 여전히 수많은 누군가를 배제할 뿐이다.

2월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
2월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

어떻게?

모든 시대에 젠더∙계급 차별을 온몸으로 겪어 온 여성 노동자들은 두 차별을 함께 타파하기 위한 여러 움직임을 보였다. 1930년 평양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하며 회사에 남공의 성적 농담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 1979년 ‘여성해방노동자기수회’에 모인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대의에 여성해방의 대의를 통합해 넣기도 했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계급 차별과 젠더 차별을 함께 타파하는 길로 나아갈 때, 이 긍지 높은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 속에 있다고 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글 : 하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