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세력의 멈추지 않는 반격, 지금은 여전히 광장의 시간
2025년 3월 13일
정세는 다시 급격한 변침을 맞닥뜨렸다. 내란범 윤석열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왔고, 광장은 분노의 물결로 채워졌다.
지난 3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하는 결정 을 내렸다. 이때 구속취소란 구속의 사유가 소멸될 때 검사, 피고인, 변호인이 구금상태를 해소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재판부는 구속기간을 ‘일수’로 계산하는 기존의 기준이 피의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구속 전 피의자신문과 체포적부심 소요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되어야 한다는 윤석열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는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검찰이 갖고 있던 관행을 뒤엎는 결정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의 수사범위에 내란죄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윤석열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검찰 수뇌부는 내란세력인가
갑작스러운 뉴스에 정국은 혼돈에 빠졌다. 시민들과 법률 전문가들은 검찰을 향해 즉시항고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이것이 상식적이고 당연한 처사임을 분명히 했다. 당초 언론들은 검찰이 7일 당일 밤에는 즉시항고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구속기간을 일수로 계산하는 것이 기존의 오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총장과 대검찰청이 즉시항고 포기 입장을 가졌던데 반해,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일선 검사들은 즉시항고 입장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보기 좋게 벗어났다. 3월 8일 대검찰청은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을 존중하여 특별수사본부에 윤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했다”며, “법원의 보석결정이나 구속집행정지결정 등 인신구속과 관련된 즉시항고 재판 확정 시까지 집행을 정지하도록 한 종래 형사소송법 규정은 검사의 불복을 법원의 판단보다 우선시하게 되어 사실상 법원의 결정을 무의미하게 할 수 있으므로 위헌무효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바탕으로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 모든 일이 윤석열 즉각퇴진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전국 각지에서의 집회가 한창 열리던 가운데 일어났다. 오후 5시경 윤석열이 호기롭게 서울구치소를 빠져나갔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광화문 앞에서 열리던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시민대행진 참가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집회와 행진 과정에서 울려퍼진 시민들의 함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검찰 내부에서도 대검찰청의 항고 포기 지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망 게시판과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즉시항고를 포기해야 한다’라는 대검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 논거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형소법 관련 조문을 아무리 뜯어봐도 법원의 결정이 이해가지 않고, 즉시 항고를 포기한 것은 더더욱 이해가지 않는다”, “뭐가 맞는지 바로 옆에 있는 동료 검사들과도 의견이 다르다”, “검찰총장의 검찰 사망 선언으로 비치고 있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등 갖가지 이견이 쏟아졌 다.
이른바 ‘법 기술’의 복잡한 논의를 구태여 모두 따라잡을 필요는 없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법원이 이제까지의 구속 관련 실무를 죄다 엎어버리는 결정을 내렸고, 심우정 검찰총장이 이 문제 많은 결정을 덜컥 물어버렸다는 사실에 있다. 사실 구속 실무를 엎어버렸을 때 가장 곤란한 당사자는 검찰이다. 일선 검사들이 이례적으로 이견을 쏟아내거나 반발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이를 무시한 채 즉시항고 포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기세등등해진 극우세력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울구치소에서 나서는 윤석열의 모습에 우리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고작 이런 꼴을 보려고 겨우내 거리에서 싸운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광화문에서 세찬 눈보라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광장을 지켰던 것은 우리의 일상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불평등과 차별, 혐오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평등으로’ 나아가도록 만들겠다는 꿈과 의지 때문이었다. 윤석열의 이번 구속 취소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리적 차원에서 볼 때, 서울중앙지법과 검찰의 내란범 구속 취소 결정은 윤석열 탄핵이나 내란죄 처벌과 무관하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더라도 탄핵 심판에 미칠 영향은 없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 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내란세력, 극우세력의 기세가 높아진 것 역시 사실이다. 실제 윤석열이 석방되자 극우세력의 ‘수사·사법 흔들기’는 다시 맹렬해졌다. 설상가상 “1월19일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는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는 주장까지 확산되고 있고,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은 쿠데타”라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법원과 검찰이 극우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아스팔트 극우의 준동에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완전히 올라탔다. 내란범 윤석열은 석방 직후 입장문에서 “저의 구속과 관련해 수감되어 있는 분들이 조속히 석방되길 기도한다”며 서부지법 폭력 사태 피의자들을 옹호했다. 국민의힘 대변인 신동욱은 3월 9일 논평에서 “공수처의 ‘영장 쇼핑’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헛소리를 늘어놨다.
기세등등해진 극우세력이 무차별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것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이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헌재가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려도 이들은 승복하기보다는 불복종을 내세우고 사회를 뒤흔드는 인종주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선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지난 3개월 동안 우리는 ‘법대로’, ‘상식에 맞게’ 일 이 진행되리라는 기대가 무너지는 경험을 빈번하게 해왔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번번히 어긋났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세계가 이토록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기존의 법 체계를 뒤흔드는 것이기도 했고, 고위 관료들은 악의 평범성과 확신성으로 자신들을 옹위한 채 사회와 공동체가 만들어온 원칙과 규범을 보란듯이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는 윤석열이라는 광인이 갑자기 무너뜨린 것만은 아니다. 2024년 12월 2일 이전까지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쥔 양대 세력은 민중에게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스스로 제도정치의 신뢰를 떨어뜨려왔으며, 지속적인 대응 능력 결여나 정책 실패를 반복해왔다. 이로 인해 체제의 모순이 다양한 모순으로 폭발해왔다. 체제와 각자의 처지에 대한 불만은 젠더 갈등이나 혐오로 굴절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즉, 위기 양상이 만성화된 상태였고, 분열과 갈등이 극심한 상태였다.
저들은 이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고, 일말의 책임감도 없다. 그저 연고주의에 기댄 강남우파 엘리트 네트워크와 무책임한 권한 남용으로 자승자박할 뿐이다. 그러니 검찰 엘리트들을 끌어내리고, 검찰 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과제는 타당하다. 문제는 그 주체가 거대 양당 엘리트들이 아니라, 조직된 시민 자신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은 무엇을 기대하는가
윤석열 구속취소를 밀어붙인 법꾸라지들의 꼼수는 ‘절차’ 문제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법리적 영향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소추안 심판과 완전히 무관하다. 그렇기에 윤석열 자신도 (물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발악하겠지만) 파면이 불가피하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과 내란공범들은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파면 사유에서 ‘내란죄’ 혐의는 피하고, ‘직권남용죄’만 적용받는 것이 진짜 목표일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명태균 녹취록을 통해 윤석열의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이 사실이었다는 점은 이미 명백하게 드러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란죄를 피할 경우 되면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을 지속적으로 비난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직을 잃더라도 정치적으로는 극우세력화와 국민의힘 차기 대선 후보 선정 과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이어가려 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검찰총장의 윤석열 석방 조치는 우리의 예상보다 더 끔찍한 정치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지금 광장 투쟁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윤석열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차기 혹은 차차기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윤석열의 정치적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극우세력의 발호를 저지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주목하고, 아래로부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까이 또 멀리
혼돈의 정세,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이번 구속취소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지귀연 재판관의 계산 실수와 검찰총장의 졸렬한 물타기에서 기인한다. 법원행정 처장과 공수처장이 말했듯, 지금이라도 즉시항고할 수 있으며 윤석열을 다시 구속시킬 수 있다. 광장에서 검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이 때문이다.
검찰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결국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속히 내려지는 수밖에 없다. 헌재 탄핵 심판에서 윤석열은 황당한 궤변으로 자신이 내란범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증거로 채택된 자료들과 군경 내란공범들의 증언은 윤석열이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지킬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헌법재판소가 할 일은 빠른 탄핵 인용 밖에 없다.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하면 어쩌나’하는 불안도 존재한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기각되더라도 길은 있다. 애초부터 윤석열은 내란죄에 대한 형사 재판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동시에 받고 있었고,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구속기소 형사재판이라는 단계가 남는다. 따라서 우리는 더 많은 동료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 서서 윤석열 구속과 파면을 요구해야 한다.
탄핵 이후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해 보다 긴 안목과 전망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극우세력의 폭력과 선동을 용인해선 안 된다. 당당하게 대응하고, 가짜뉴스는 하나하나 반박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파괴해 흩어진 개인들을 모으고,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적 연대망을 공공히 다져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상식을 단순히 ‘양비론’으로 치부하지 말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극우세력은 경기 침체와 국제 정세의 불안정, 경제적 불평등을 거름삼아 싹튼 우리 안의 불안을 증폭하며 성장한다. 따라서 단호한 처벌과 응대만으로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극우세력은 단순히 윤석열이 탄핵된다고 해서, 혹은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5년 후 오히려 더 위력적인 세력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
기득권 정치세력이 거대 양당으로 나뉠 때조차 시민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더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노동조합, 농민회, 장애인과 불안정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모임과 조직들로 모여야 한다. 우리 공동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서로를 연결해야 한다. 전광훈과 극우세력에게 ‘자유마을’이 있다면, 민주주의와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 우리들 역시 더 많은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한 마을들이 필요하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극우세력의 자양분이다. 우경화된 정책들로 이뤄진 ‘민주당식 정권교체’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공공연하게 우클릭 행보를 이어가며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늘어놓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이뤄진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나마 남은 희망마저 파괴할 뿐이다. 윤석열처럼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거나 성장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친기업 정책 펼치는 게 아니라, 상속세 완화해서 부자 감세 정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불평등을 개선하고 일터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광장의 요구다. 광장에 선 우리가 민주주의 퇴행과 불평등에 맞선 풀뿌리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여전히 광장의 시간이며, 광장을 ‘사회운동’, ‘일터’, ‘삶터’와 같은 말로 변경한다면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