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한 쪽 눈을 잃은 젊은 출판인 레이먼드

홍콩 | 한 쪽 눈을 잃은 젊은 출판인 레이먼드

“저는 이미 이 도시를 좋아합니다. 지난 5년 동안 이곳에 머무른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죠.”

2025년 2월 1일

[동아시아]홍콩독립출판, 홍콩항쟁, 동아시아와 사람, , 홍콩

서른네 살의 출판인 영츠춘(楊子俊, 이하 ‘레이먼드’)의 한 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 여학교의 교사였던 그는 2019년 시위 도중 경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눈의 95%가 실명됐다는 판명을 받았다. 눈에서 피가 쏟아지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그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먼드는 교사직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를 “눈에 총을 맞은 교사”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 고교 교사로 일하면서 만족스러운 수입을 올리고 있었던 그는 2016년 친구와 함께 ‘힐웨이컬처(山道文化, Hillway Culture)’라는 출판사 겸 서점을 열었다. 주로 사회운동이나 민주주의를 주제로 하는 책들을 다루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던 그는 2019년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불신검문과 관련해 경찰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그가 ‘레이몬드’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그 즈음이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시민들의 필요로 인해 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2020년에 접어들면서 홍콩 항쟁이 처한 조건은 악화됐다. 2019년 11월 지방의회 선거 승리를 위한 민주파 경선에 참여한 인사들이 대거 체포됐고, 2020년 7월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해산됐다.

2020년 6월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시행한 이후 출판업계에 검열의 칼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1년 7월, 국가보안경찰은 “선동적인” 동화책을 출판하려는 했다며, ‘선동법’ 위반 혐의로 ‘언어치료사 노조(香港言語治療師總工會)’ 조합원 다섯 명을 체포했다. 이를 계기로 홍콩의 출판업계는 ‘출판’에 더욱 신중해졌다. 영국 식민지 시기의 유산인 ‘선동법’은 반세기 이상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 운동이 폭발하면서 이 불복종운동에 대한 지배 엘리트들의 불안으로 부활한 것이다.

2020년 8월 13일 오후, 홍콩
2020년 8월 13일 오후,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표되었을 때 출판업계에서는 법이 통과되면 정치적 주제를 담은 출판물과 그 제작에 관여하는 모든 정당이 금지될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 힐웨이컬처는 시위를 주제로 한 책 <자유를 위하여: 홍콩 시위 1년>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지역의원, 구급대원, 기자, 변호사 등 항쟁 관련자 50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었는데, 인쇄업자들은 이 책이 보안법에 따라 불법으로 간주되거나 인쇄로 인해 사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그렇기에 실제적인 위험보다는 인쇄업체의 자체 검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레이먼드는 그런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인쇄 공정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인쇄 회사에 하청을 주는 창의적이고 독특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인쇄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분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힐웨이컬처는 선주문을 통해 인쇄부수를 파악하고, 독자들에게 책을 판매할 수 있었다.

좀 더 자유로운 출판을 위해 힐웨이컬처는 보다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했다. 레이먼드는 자체적인 인쇄 장비를 구비하는 것이 그 기반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할 경우 자체적으로 책을 인쇄하는 데 드는 비용은 권당 50홍콩달러(한화 9000원)였는데, 이는 “경제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힐웨이컬처는 인쇄 장비에 수만 홍콩달러를 투자한 유일한 출판사가 됐다.

사진 출처 hillway.culture 인스타그램
사진 출처 hillway.culture 인스타그램

2022년 7월에 열린 홍콩 정부가 지원하는 ‘홍콩 북페어(Hong Kong Book Fair)’는 힐웨이컬처를 포함한 세 곳의 출판사들에게 ‘참가 불허’를 통보했다.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레이먼드는 ‘홍콩인 도서전(the Hongkongers’ Book Fair)’의 개최를 기획했고, 대관과 기획 등 모든 것을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었다. 한데 행사 장소 소유주가 안전 문제와 임대 계약 위반 혐의를 주장하며 장소 대관 불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두 행사가 일정상 겹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측 인사들은 레이먼드가 기획한 ‘독립출판 도서전’이 정부가 지원하는 도서전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해당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레이먼드는 “‘홍콩 북페어’에 의한 정치적 결정이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홍콩인 도서전’은 정치 활동이 아니라는 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실패했고, ‘홍콩인 도서전’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놀랍게도 판매부수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고, 수익은 행사 취소로 인한 손실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하기에 레이먼드는 2022년 홍콩의 상황이 “여전히 낙관적”이라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정치적 압력이 있”지만,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그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23일, 『동물농장 홍콩판』이 진열된 도서전 부스
2023년 12월 23일, 『동물농장 홍콩판』이 진열된 도서전 부스

2022년 4월 어느날, 새벽 5시경 경찰이 그의 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4개월 후인 8월 15일, 홍콩 동부지방법원은 그에게 ‘불법 집회’로 규정된 2019년 6월 12일 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징역 9개월을 선고했다. 투옥 전까지도 그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홍콩 번역판 원고의 교열 작업을 했는데, 이 책은 이듬해 5월 말 그가 출소하고 나서야 출간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비행기가 이륙하는 사진을 올리며 잠시 동안의 작별 인사를 남겼다.

“미래 또는 과거에게, 생각이 자유롭고 사람들이 서로 다르며, 혼자서 살지 않는 시대에게, 진실이 존재하고 한 번 벌어진 일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시대에서, 획일성의 시대에서, 고독의 시대에서, 빅브라더의 시대에서, 이중사고의 시대에서 인사를 보냅니다. 안녕들하십니까?”

출소 후의 그에게 이민을 원하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미 이 도시를 좋아합니다. 지난 5년 동안 이곳에 머무른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죠.”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