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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우리가 되어 당신에게 반드시 도착하겠습니다 | 퇴진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2025년 2월 14일
지난 1월 20일에 열린 플랫폼c 월례포럼 "윤석열 퇴진 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은 참여자들의 자유발언을 신청 받았다. 이 글은 순서대로 발언자 병승, 재현, 현, 당근, 지안 총 5명의 발언문이다.
윤석열 정 부의 노동조합 탄압과 열사
현재 우리는 일제강점기, 유신정권과 1980년 광주와 비슷한, 민주주의와 노동권, 독립을 파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바로 윤석열 강점기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계엄령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친기업 정책으로 노동권을 파괴했습니다. 이년 반 동안의 시간 동안, 일제강점기와 유신정권, 군사정권, 신자유주의 정권에서 그러했듯이 수많은 열사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첫 시작은 2022년 5월 10일 20대 대통령 취임식 이후 불과 이틀 후입니다.
그의 이름은 정우형. 삼성전자서비스의 해고자. 비정규직 2차하청업체 노동자. 그리고 윤석열 정권 치하에서의 첫 열사. 2022년 5월 12일 사망. 정우형 열사는 삼성이 인정하지 않은, 노조파괴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는 2015년 박근혜 정권의 비호를 받는 삼성에게 해고를 통보받았습니다. 사유는 노동조합 가입 및 활동. 법적으로 당연하게 보장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삼성의 노조파괴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삼성은 제대로 된 보상, 심지어 사과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열사는 다른 피해자들을 모아 삼성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이 투쟁은 삼성을 넘어 친기업, 친재벌 반노동 정책을 펼친 박근혜 정권과, 삼성을 비호하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제하는 경찰들과의 싸움으로도 확대되었습니다. 법원에서, 길거리에서 계속 싸우셨지요. 박근혜가 파면되고, 노조파괴 책임자 이재용이 구속되는 8년간의 시간 동안 정우형 열사는 삼성에게 사과를 받고, 부당해고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윤석열이 당선되자, 열사는 자결하셨습니다.
저는 2016년 당시 탄핵집회를 기억합니다. 당시엔 박근혜 탄핵이란 구호 속에 여러 작은 목소리들이 나왔습니다. 새누리당 해체하라. 재벌 구속. 재벌 해체. 만약 이런 이야기들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면, 정우형 열사가 돌아가실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매 순간을 살아 움직이고 실천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구호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병승
대학기업화에 맞선 노학연대
안녕하세요.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에서 노동자·학생 연대 활동을 해온 이재현이라고 합니다. 계엄/내란 이후, 처음으로 돌아오는 토요일 여의도 집회에 가는 길에 받은 연락을 떠올려봅니다. 2021년 여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사망한 청소노동자분의 유족분께서 광장으로 나서며 보낸 문자였습니다. 그 스스로도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셨던 고인의 남편분은, 퇴직 이후 해병대 예비역으로서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연대해오셨습니다. 비용 절감의 논리, 국가폭력과 군사주의 속에 생명과 안전이 무너져 온 사회에서, 평등한 애도를 위해 함께해 온 노력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큰 용기로 다가왔습니다.
차가운 새벽 트랙터가 나아가는 남태령에서, 우리의 노학연대가 어떻게 농민에 관심을 가져왔는지 생각했습니다. 인력충원과 건강권을 위해 투쟁해 온 서울대생협 단체급식 조리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숲' 먹거리운동과들과 함께했던 밥상회를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의 밥상을 돌보아온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성 농민들이 생태 농업을 통해 키운 먹거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밥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상호의존성을 감각해야 한다고 느끼며, 단위 깃발 아래 달았던 팔레스타인 깃발을 보았고, 토지와 자유를 강탈당하지 않고자 저항해 온 팔레스타인의 소농과 농업노동자들의 존엄을 생각했습니다.
2016년과 17년 시흥캠퍼스 저지를 위한 서울대 본부점거 투쟁을 떠올리며, 그 시기를 직접 경험한 지인이 쓴 대자보를 읽었습니다. 대학의 기업화와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항해 온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자보였습니다. 관악의 본부에서 물대포가 학생들을 조준했던 것은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의 일렁임이 아직 꺼지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다양한 몸과 정체성의 존재들의 목소리가 2016~17년을 넘어서 민주주의를 재발명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분할과 경계를 넘어서는 우리의 순간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재현
광장과 온라인 공론장, 그리고 차이에 기반한 연대
안녕하세요, 비장애인 퀴어 시스젠더 여성 시민입니다. 사실 그간 수많은 집회에 많이 다니지 않아서 발언을 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요즘 드는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발언을 신청하였습니다. 저는 집회에 대해, 직접 현장을 다녀오기보다 트위터를 통해 훨씬 더 많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정확히는 집회에서의 자유 발언이나 특별한 경험 등이 트위터에 알려지고, 이런 정보들에 대해 어떤 공감, 반박 등의 트윗을 많이 접하며 집회 소식을 간접적으로 보고 들었습니다. 1월 4일 한강진역의 윤석열 체포 촉구 집회와 1월 19일 동덕여대 집회에 다녀오면서, 현장 분위기와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에서의 오고 가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특정 정체성에 대한 사이버불링이 작게라도 오고 가지만, 집회 현장에서는 여성, 퀴어, 장애인, 농민 등등 각자 지니고 교차되는 정체성이 무시되지 않으면서도 더 부각되지 않은 채로, 또 윤석열 체포와 나아가 파면을 이야기하지만 각자의 정체성이 묵살되지 않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특정 정체성으로 결집하고 운동하는 정치의 방향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다른 집회의 현장에선 느꼈지만, 온라인 상에서의 운동이나 어제 집회의 경우에도 여전히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문제 제기해선 안 되는 분위기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정체성 정치에서 나아가 다른 정치 방향의 운동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제 의견이 대학원에 다니기에 가방끈이 길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더 이상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운동의 한계를 체감하는 현재에 다양한 개인의 위치와 정체성을 포용하며 투쟁하는 방향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현
혐오의 시대를 종식시킬 연대의 시대
안녕하세요. 지난 1월 3일에 한강진, 일신빌딩 앞에서 발언했던 당근입니다. 아마 퀴어 퍼레이드에 트랙터가 왔으면 좋겠다는 발언에 대해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 저의 발언이 SNS에 퍼지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여러 오해와 부풀림 등으로 인해서 말이죠. 저는 발언을 하며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제 정체성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에 대해 추측하다 못해 확신 시 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혐오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덕여대생, 트랜스젠더, 2찍 작전세력 등으로 말입니다.
그 상황이 조금 흥미로워 관련 글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을 통해 또 다른 혐오를 생산하고 욕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또다시 느꼈습니다. 우리는 정말 대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특히 요즘에는 쉽게 노출되는 정보로 인하여 사람들은 진실이든 거짓이든 어떤 지식을 쌓고 그것을 이용해 더 섬세하고 치밀한 혐오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인권을 존중하는 척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장애인이 사회에 나오는 것은 괜찮지만 이동권 시위를 과장하여 불법 폭력시위라 지칭하며 정체성을 외치는 누군가에겐 다른 존재를 지우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글에서는 `나는 레즈비언이지만 퀴어에 속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탄핵 시위에서 정체성 발언을 하지 말라고도 했지요. 흔히 말하듯 인권은 샌드위치, 버블티가 아닙니다. 맘에 들지 않는 재료를 빼고 당도를 조절하듯 장애인은 빼고 퀴어의 농도를 조절하며 원하는 정체성만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우린 이렇게 어지러운 시대에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우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 이례적인 연대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비록 큰 위기로 인해 광장에 모였지만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다양한 정체성의 존재를 확인했고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남태령 대첩으로 인해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제 대 혐오의 시대를 종식시킬 대 연대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이죠. 하지만 앞으로 쉽진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위기가 지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게이, 트랜스젠더, 페미, 장애인 등의 명칭들은 비하, 혐오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함께 해야 합니다. 다양한 곳에서 계속해서, 만나 밀도 높은 연대를 이룹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 낸 더 강한 연대의 바람으로 더 큰 물결을 일으켜 이 땅의 혐오를 덮고 씻어냅시다.
당근
존재로서 투쟁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투쟁!
안녕하십니까. 젠더노소 여러분. 광장 식으로 자기소개를 하자면 저는 앞으로 어떤 멋진 분을 만날지 알 수 없어 ‘아직은 이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을 가진 40대 비청년 페미니스트 여성이고 페스코이며 아동 친족성폭력 피해 경험자, 지안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잠시 쉬어가고 있지만 반려종과 잘 헤어지기 프로젝트 무지개 정류장을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도 드디어 응원봉이 생겼다고 자랑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응원봉 보이십니까. 어떤가요. 지난 한남대첩 때 응원봉이 없어 맨 주먹을 흔들다 생수병을 흔들다 하며 밤을 샜는데 이걸 들은 제 남동생이 예전에 참여했던 장애인체육대회에서 받아온 이 응원봉을 찾아서 배터리까지 사서 챙겨 주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찐친!이자 저의 신경안정제인 제 동생은 투표도 하지 않고 집회도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투표하고 집회 가는 저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걱정합니다. 저도 그 친구를 설득하지 않습니다. 이유도 묻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무엇도 믿을 수 없던 마음인 적이 저에게도 있었으니까요. 동생은 동생의 이유로 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살고 있습니다. 수없이 자기한계와 싸우며 존재로써 이미 투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동생에겐 특별한 구호도 광장도 필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제가 모르는 시간에 이미 거리이고 광장인 자기 방에서 온몸으로 외치며 오늘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많은 분들을 위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일을 해야 해서, 당장 내 일상이 위태로워서, 어디에서도 내 이야기를 찾을 수 없어서, 아직도 여전히 다양하고 촘촘하게 후지고 더러운 이 사회구조가 언어를 주지 않아서, 음소거 되듯 자기 목소리를 잃은 많은 언젠가의 나와 내 동생, 그리고 마음이 혼자인 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거기 잘 계십시오!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없는 현실에도 미치도록 믿고 싶어서, 언제 도착할 지도 모르는 당신 하나하나의 간절한, 해방된 시간과 장소를 기다리고 헤매는 그 고귀한 마음을 잘 지켜서 꼭 자기 자리를 살아 주십시오! 그곳에 잘 계시면 제가 더 많은 우리가 되어 당신에게 반드시 도착하겠 습니다!
하루하루 매순간이 투쟁인 모든 이들을 위해 아직 입에 붙지 않고 어색하지만 한 번 외쳐보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