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 에스닉 민족주의와 미얀마의 미래

미얀마 | 에스닉 민족주의와 미얀마의 미래

미얀마의 위기는 민족국가의 정체성과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모순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 갈등의 기저에는 내전 상황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평화를 위한 길을 만드는 에스닉 민족주의 정치가 있다.

2025년 2월 1일

[동아시아]미얀마미얀마, 민족주의, 소수민족, 국가폭력, 식민주의, 시민불복종운동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상황이 4년째 지속되고 있다. 2023년 10월 이래 미얀마 상황은 내전적 상황의 지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만성화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얀마 소수민족 정치 연구자 데이비드 브레너(David Brenner)가 2024년 9월 <뉴만달라>에 기고한 칼럼을 번역해 소개한다. 단, 이 글이 서구 사회를 향해 작성된 것인 만큼,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과 연대해온 한국 시민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을 위해 역자의 견해를 부기했다.

서방 세계의 관찰자들은 2021년 2월 군사 쿠데타 이후 미얀마를 휩쓴 파괴적인 폭력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쟁투”로 해석해 왔다. 이러한 해석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설명하는 언론인, 연구자,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매우 보편적이다. 실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오랫동안 워싱턴, 런던, 브뤼셀, 캔버라에서 미얀마 정치를 해석하는 주요한 분석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얀마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위기의 근본 원인과 역학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 위기는 단순히 통치 모델을 둘러싼 충돌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정체성과 구조 자체를 둘러싼 근본적인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렌즈가 이러한 갈등의 근본 원인을 알아보기 힘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국가를 자연스러운 정치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얀마 국가 형성의 역사과 맥락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다. 식민지적 근대성이 국가 형성 과정에서 민족의 문제를 각인시킨 미얀마에서는 ‘에스닉 민족주의’ 정치가 미얀마의 현재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에스닉 민족주의 정치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분쟁의 주요 동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어떠한 정책이 미얀마의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하다.

  • 에스닉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 사전적으로 에스닉(ethnic)은 ‘민족적인’, ‘민속풍의’, ‘인종의’ 등의 뜻을 갖는다. 경우에 따라 민족이나 소수민족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에스닉 집단(ethnic group)’은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공통된 속성을 바탕으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여기에는 공통의 언어, 문화, 조상, 전통, 사회, 종교,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포함된다. 특히 에스닉 민족주의는 네이션(nation)과 혼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네이션’의 기준을 혈연이나 언어, 문화 공동체인 에스닉 집단에 기반을 두는 민족주의(nationalism)를 가리킨다.

전쟁의 동인들에 대한 재고찰

미얀마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민중들을 공포에 떨게 하여 복종시키려는 군부의 노력이다. 미얀마의 상황을 악화시킨 데에는 군부 엘리트들의 책임도 크지만, 영국 식민 통치 이후 미얀마를 괴롭혀 온 미얀마 국가의 근본적인 구조적 특징 역시 고려해야 한다. 독립 선포 직전인 1947년 초, 소수민족 간의 권력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후, 미얀마 정부는 소수민족의 불만을 해결하지도 통일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지도 못했다.

소수 민족 갈등은 수십 년 동안 민족들 간의 분열과 폭력의 씨앗을 뿌려온 국가 지도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악화되어 왔다. 군부는 민족 분리주의의 위협을 이용해 자신을 ‘국가의 수호자’로 내세운 장군들을 통해 오랫동안 국가를 장악해 왔다. 이들은 미얀마를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과 그들의 정체성을 차별하는 ‘에스노크라시 국가(ethnocratic state)’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소수민족 간 갈등은 탈식민지 국가를 정의하는 특징으로 남게 됐다.

  • 에스노크라시 : 국가장치가 지배적인 민족집단(또는 집단들)에 의해 통제되어 그 집단의 이익, 권력, 통치력, 자원을 증진하는 유형의 정치 구조
2018년 1월, 나가 자치구(the Naga-Self Administered Zone), Nanyun의 국경통제청 (사진: 데이비드 브레너)
2018년 1월, 나가 자치구(the Naga-Self Administered Zone), Nanyun의 국경통제청 (사진: 데이비드 브레너)

수십 년 동안 많은 소수민족들이 중앙정부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우며 구조적 차별에 저항해왔다. 군부는 이들을 국가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으로 대응해 왔다. 이 전략은 군부의 핵심적인 국가 형성 수단이었으며, 그들이오랫동안 분열과 통치 전술로 민족적 긴장을 조장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의 미얀마 내 군부-소수민족/시민방위군 간 전쟁에서도 계속되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군부에 의한 분열 전술의 결과, EAO(Ethnic Armed Organisations; 소수민족 무장단체)로 알려진 여러 소수민족 반군 운동이 전국적으로 조직됐다. EAO는 각 소수민족 구성원들의 자치권 확대를 위해 싸우는 것 외에도, 군부가 독점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영토에 사실상의 국가를 건설했다.

오늘날 EAO는 군부 정권에 대항해 무기를 든 시민방위군(PDF: People’s Defence Forces)을 조직하는 등 전국적인 무장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카렌족, 친족, 카렌니족, 카친족과 같은 일부 EAO들은 일찍부터 ‘봄의 혁명(the Spring Revolution)’에 동참해 대규모로 무장 저항군을 보호하고 훈련하고 조직해 왔다. 그러나 타앙(Ta’ang), 코캉(Kokang), 아라칸(Arakan), 와 운동(Wa movement)과 같이 민주항쟁과 거리를 두던 EAO들도 미얀마 전역의 무장 봉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의 비국가 영토(역주: 군부에 의해 통치받지 않고, 이들이 자치하는 지역)와 게릴라 로지스틱 전략은 전국적으로 무장 반군의 군사 역량을 확장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2023년 말부터 국경지대 도시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군 통제력이 급속히 무너진 것은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에 의한 전례 없는 공세의 직접적 결과다. 그러나 최근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EAO는 서로 다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사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의 군사적 확장은 봄의 혁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해 온 EAO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혁명에 대한 원칙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EAO의 주요한 관심사는 여전히 소수민족 구성원들의 자치권을 쟁취하는 데에 있다.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일부 EAO들 같은 경우 연방제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적인 혁명과 긴밀히 협력해 이러한 자율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반면, 다른 EAO은 보다 독립적으로 자율성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것에 있다.

2014년 3월 카친주 임시 본부에 있는 아라칸군 사령관 뜨완 랏 나잉(Twan Mrat Naing)
2014년 3월 카친주 임시 본부에 있는 아라칸군 사령관 뜨완 랏 나잉(Twan Mrat Naing)

미얀마 내에서 가장 강력한 EAO 중 하나인 아라칸군(AA)의 사령관인 뜨완 랏 나잉은 2022년 기자들에게 독립적으로 자치권을 달성하려는 노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쿠데타 이후 자신들의 투쟁이 봄의 혁명과 손을 잡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락히타(Rakhita)’입니다. 아라칸의 선배 세대는 버마족을 따르고 지원하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죠. (…) 우리 아라칸은 1988년 민주항쟁에도 참여했지만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한 후 우리는 더 이상 버마 정부를 따르고 싶지 않아졌죠. 우리는 우리만의 목표를 향해 일하고 싶습니다. 현재 버마에서 진행 중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우리의 전략적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이러한 입장이 고정된 것이 아니며, 빠르게 변화하는 정세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EAO를 쉽게 두 진영으로 나눌 수는 없다. 예를 들어, 2022년 말 타앙 민족해방군(Ta’ang National Liberation Army)은 민족통합정부(NUG)와의 긴밀한 동맹에 대해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타앙 민족해방군은 NUG 계열의 시민방위군과의 동맹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2023년 10월부터 이들은 공세적으로 점령한 지역의 공공서비스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불복종운동(CDM)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아라칸군의 뜨완 랏 나잉은 다른 저항 세력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문제가 지난 2년간 자신의 전망을 어떻게 형성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더 많은 동맹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연방 전체와 주변 환경을 고려하는 전체론적 관점”을 채택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이는 (오히려 연방제보다는) “라카인주가 옹호해 온 국가연합(confederation)”과 일관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국가연합과 연방의 차이 : 국가연합(Confederation)은 구성 국가들이 각자의 주권을 유지하며, 중앙 정부의 권한이 제한적이고, 구성 국가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위로 결정된다. 또, 구성 국가들이 비교적 쉽게 연합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연합(CIS)를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연방(Federal Union)은 중앙 정부와 구성 단위 간에 주권이 공유되며, 중앙정부의 권력은 강력하다. 연방 헌법에 의해 법제도가 만들어지며, 연방 정부만이 국제법의 주체로 인정된다. 미국이나 독일을 예로 들 수 있다. 미얀마에서 ‘연방제 민주주의’는 버마족과 다른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상이하게 이해되고 있는데, 이는 1947년 2월 12일 ‘팡롱 협정’의 양가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팡롱 협정’은 명시적으로 연방제를 지향했지만, 동시에 제10항에서 각 주(states)들이 대내외적으로 중앙정부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권리를 언급했다. 이런 점 때문에 분리주의를 우려한 버마족 중심의 군부 정권은 팡롱협정에서의 약속을 수십년 동안 지키지 않았고, 이는 소수민족 무장단체 발호의 명분이 됐다.
  • 팡롱 협정의 주요 내용과 한계 : 팡롱 협정의 주요 원칙은 연방제 지향, 자치권 보장, 모든 소수민족 간의 동등한 권리 보장에 있으며, 주요한 합의 사항은 1) 완전한 자치 행정, 2) 변경 지역 시민들의 기본권 등이 있다. 또, 10년 이후 연방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했다. 하지만 5개월 후인 1947년 7월 19일 아웅산 장군이 암살되면서 협정은 이행되지 않았다. 또, 카렌족 등 일부 소수민족들이 가맹하지 않았고, 연방제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달랐다는 점에서 한계적이었다.

평화를 위한 길 찾기

미얀마의 민족 정치는 전쟁의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 안정의 주요 결정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미얀마 국가는 영토 전체를 독점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기 때문에, EAO들이 통제하는 지역에서는 수십년 동안 국가 바깥의 행정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이러한 대안적인 정치 질서는 중국 및 태국과의 국경지대에서 정교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카렌민족연합(KNU)이나 카친독립조직(KIO) 같은 조직들이 영향력 있는 통치 주체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이들 조직들은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수십만 명의 주민들에게 보건의료나 교육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인도주의적 구호 지원, 난민 보호, 지역에서의 팬데믹 대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중요한 국제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KIO가 통제하는 라이자(Laiza) 지역의 한 병원 간호사가 마취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데이비드 브레너)
KIO가 통제하는 라이자(Laiza) 지역의 한 병원 간호사가 마취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데이비드 브레너)

‘반군 거버넌스’에 관한 연구들의 주류적인 시각은 EAO 통치의 다양한 기능들을 적절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소수민족 무장단체 거버넌스는 이들 조직들이 지역의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하는 대가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도구로서의 권력 수단일 뿐이다. 공공 질서 유지를 강조하는 순전히 규제적 관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EAO 통치는 소수민족 공동체에서 자신들의 주권을 육성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달리 말하면, EAO 통치는 국가 건설을 지향한다.

이런 특징은 미얀마의 미래와 평화를 위한 잠재적인 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EAO들이 영토를 급격하게 확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 그들의 통치 기구와 국가 건설 야망 역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 대부분은 군사 쿠데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EAO의 급속한 확장과 함께 더욱 민감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영토 점유권을 둘러싼 EAO 간 분쟁의 위험 역시 증가하고 있다. (단, EAO 간 관계가 오랫동안 긴장된 상태에 있었던 샨주 북부는 EAO들이 대부분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나름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사실 더 시급한 것은 포용성과 책임성 문제다. EAO는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인구를 통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질성은 현재 영토 확장과 함께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위기 이전부터 공동체 분쟁이 있었던 지역에서 특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로힝야 공동체에 대한 아라칸군의 공격, 선동적인 로힝야 혐오 발언들, 시민사회에 대한 협박 등에 대한 여러 보고들은 이런 우려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모든 EAO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EAO는 이념적 성향, 역사적 경험, 내부 거버넌스의 작동방식, 물질적 조건 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일부 EAO는 다른 조직들보다 더 지역사회와 책임감 있고 포용적인 관계를 구축해 왔다. 예를 들어, 카렌민족연합(KNU)과 카친독립조직은 지역의 시민사회 주체들과전통적인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있다. 카렌족 활동가들이 KNU와 협력해 조성한 토지권리 및 보존 프로젝트 살윈 평화공원(Salween Peace Park)의 경우처럼, 새로운 형태의 책임 있는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KNU와 KIO는 민족 다양성을 지원하는 광범위한 비국가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두 조직이 만든 학교 커리큘럼은 모국어 기반 교육을 강조하지만,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공동체들에서 운영되는 교육 시스템에서 더 많은 포용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KIO는 최근 자국 영토에 사립학교를 설립하는 다른 민족 및 종교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의 맥락에서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보다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유망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미래를 위한 열쇠는 포용적이고 책임감 있는 EAO 거버넌스를 지원하는 이니셔티브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부자들이나 개발기구들은 개별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의 행동 때문에 모든 EAO를 외면하기보다는 미얀마에서 거버넌스 주체로서의 역할이 커질 이들 조직들에 대한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는 인도주의적인 지원 구호를 넘어 EAO와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얀마 내 저항 세력에 대한 비(非)살상무기 지원 제공을 강화해야 한다. 다른 지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원조의 일부는 교육, 보건, 사법, 토지 권리 등 협력과 안정을 촉진하는 분야에서 EAO 거버넌스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원자들은 다양한 국적의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들과의 파트너십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주체들은 포용적이고 책임감 있는 형태의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이니셔티브에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목표 지향적인 지원은 모든 EAO가 포용성과 책임성을 증진하는 거버넌스 관행을 채택하도록 장려하며, 미얀마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의 길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된다.

EAO들의 거버넌스와 협력하는 것은 분쟁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개입을 보다 보편적으로 재개하는 데 유용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지역 거버넌스 주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촉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으로의 회귀(local turn)’는 평화구축을 위한 중요한 연구들과 실천들의 주축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국가’와 ‘지역’, 또는 지지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행위자들에 대한 서구 중심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

지금까지 소수민족들의 무장 투쟁은 평화구축의 파트너로 여겨지지 않았다. 에스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배타적 경향을 낭만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미얀마의 역사적 맥락에서 에스노 민족주의 국가 형성의 탈식민지 정치는 다르게 맥락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쟁의 동인에 대한 보다 차별화된 이해와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데이비드 브레너 | 서섹스대학교(University of Sussex)의 국제정치 선임 강사. 2012년부터 미얀마의 에스닉 정치와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대해 연구했으며, 이 문제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 <Rebel Politics: A Political Sociology of Armed Struggle in Myanmar’s Borderlands> (Cornell University Press, 2019)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