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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을 먹고 자란 극우세력 넘어, 웃으며! 끝까지! 함께! | 퇴진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2025년 1월 31일
이 글은 지난 1월 20일(월) 저녁 서울 대학로 노들야학에서 열린 플랫폼c 월례포럼 "윤석열 퇴진 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현장 후기이다. 이날 행사에 대해서는 여성주의저널 '일다'에서도 "윤석열 퇴진 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다.
“극우 폭력 사태를 보면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였는데, 포럼 참여 후 우리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면 이 국면을 잘 이겨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지난 1월 20일에 노란들판 5층에서 열린 플랫폼C 월례포럼 '윤석열 퇴진광장의 목소리를 넓히는 사람들 | 남태령, 동덕여대, 혜화역, 한강진, LET’S GO!'에 함께 한 어느 참가자가 남긴 소감이다.
이날 월례포럼은 대통령 윤석열의 구속영장 발부 후 극우 시위대가 서부지방법원을 폭력적으로 습격해 철문을 뜯고, 유리창을 박살 내는 등 아수라장을 만든 다음 날 열린 만큼 윤석열 퇴진 광장이 극우 대열의 성장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열렸다.
민주주의
남태령의 역사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농민 향연이 첫 번째 발제자였다. 그는 12월 7일 탄핵소추안이 무산되었을 때 “이번 쿠데타는 정쟁이나 진영싸움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상황이고 내 실존이 걸린 절박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태령의 밤, “권력은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포악해” 질 때 “여전히 두렵지만 이 폭력과 탄압에서 버텨내고 살아남고 결국엔 차를 빼고 이기는 방법 말고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없다는 마음으로 엄동설한의 한해 중 가장 밤이 긴 동짓날을 뜨겁게 지새웠다” 며, 당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자기가 받아왔던 국가폭력, 혐오, 차별, 소외, 부당함을 증언하며 농민들의 아픔에 공감한 동지들. 그 발언들을 들으며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껴안아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농민 동지들. 라이브 영상을 켜놓고 마음 졸이는 수만 명의 동지들. 그 곳에 이내 평화롭고 아름다운 태초의 형태와 가까운, 기획되지 않은, 날 것의, 직접 민주주의 공론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그 때, 그 곳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농민들은 시민들의 말을, 시민들은 농민들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몰라왔던 농민들의 아픔을 돌아보겠다는 외침에, 농민들은 동지라 불러도 되겠냐는 물음과 감동어린 눈물로 화답했습니다. 여성농민들은 여성들이 농촌에서 겪는 성차별을 소리높여 외쳤고, 청년여성들은 연대를 약속하는 공감의 함성으로 화답했습니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 같아 보였던 두 세계가 그날 밤 ‘다시 만난 세계’로 거듭났습니다. 인즉천, 사람이 곧 하늘이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동학농민운동의 기조, 민주주의의 절대가치가 대동세상이 되어 남태령에서 빛났습니다. 차별과 혐오는 시민연대라는 거대한 불꽃에 흔적 없이 녹아 무력화되었습니다.”
향연은 “우리의 진심어린 강력한 연대와 민주주의의 가장 단단한 버팀목은 이 몸과 나만의 고유한 역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깨달음 속에 있다”며 몰락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하며 발제를 마쳤다.
다음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인 박경석은 계엄령 당일의 기억을 흥 미롭게 묘사하며 두 번째 발제를 시작했다. 윤석열이 12.3 계엄령을 공포했던 때, 전장연은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 일정으로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8시간 동안 일정 마치고 1박 2일 노숙 농성을 위해 국회의사당역 대합실 내에서 200여명의 대오가 남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때 “12.3 계엄령 속보 소식을 들으면서 ‘하다 하다 못해서 이제 계엄령 가짜뉴스까지 속보로 나는구나.’ 무시, 어이없음, 황당함이 설마로 번져나갔다. 우악 켁!! 악몽같은 두려움과 분노가 짧은 시간에 닥쳐왔다”고 한다. 그는 1979년 과 2024년 계엄의 차이를 이렇게 지적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은 많이 변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수호자라는 명분으로 권력을 틀어쥔 자들의 탐욕정치는 모습만 카멜레온처럼 변색할뿐 본질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후퇴한 것도 있다. 자본주의 수호자인 권력자들이 치장한 교묘한 장치들은 더 단단해진 쇠사슬로 우리를 묶어놓았다. 우리는 검투사들의 죽고 죽이는 싸움을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원형경기장의 로마 시민들이거나 시민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 아닐까. (…) 우리는 더 파편화되고 각자도생으로 외롭게 남겨졌으며 더욱 고립되었다”
그는 전장연이 빈곤사회연대와 함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폐지의 농성>을 했던 시기를 소개했다. 당시 농성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6개월 전인 2012년 8월 21일 시작되어 박근혜 퇴진을 거쳐 문재인 정권의 보건복지부 장관 박능후가 농성장에 직접 찾아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그리고 장애인 수 용시설 정책으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들 애도하고 이 제도들을 폐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2017년 8월 25일까지 계속된 후, 9월 5일이 돼서야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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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했던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착시효과일 뿐”이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총평을 전장연 입장에서 개인적 시각에서 한다면, 광화문에서 1,982일을 견뎌낸 전장연으로서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소통에 있어 친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장된 관계가 있었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폐지라는 의제의 연합투쟁은 약해졌으며 기대가 배신으로 뒤통수처럼 다가오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고 덧붙혔다. 하지만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미래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박대표의 지적대로 윤석열 퇴진광장의 연대의 목소리는 “뭔가 뭉치는 느낌이 더 크다, 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것도 있지만, 따로 각자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면서 연결되는 흩어질 것 같지만 단단하게 묶여지는 느낌이다. 말과 행동이 동시에 연결되고 묶여지는 놀라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정권이 등장하느냐 보다 어떤 실질적 변화가 가능한가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으면, 현장에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만드는 투쟁이 계속되면, 승리라고 하고 싶다”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세 번째 발제자 동덕여대 졸업생 김강리는 동덕여대 공학전환 투쟁과정에서 대학본부의 민주주의 훼손과 부정부패 및 그것에 맞서온 동덕여대 학생들의 20여 년의 싸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각 대학에서 시국선언을 위한 총회가 공고되었을 때 총회가 18년만에 성사된 연세대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재차 개최한 고려대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정치에 관한 냉소와 무관심은 학생사회에 만연했다. 그러나 동덕여대 학생사회는 지난 10년만 돌이켜보더라도, '대학생의 탈(脫)정치화'라는 틀로 읽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일례로 동덕여대 학생사회는 지난 10년간 8번의 전체학생총회(이하 ‘총회’)를 성사케 했다. (…) 지난 10년 내내 주요 안건으로 비리재단 문제해결과 학생 자치 보장·실현이 다루어졌다...이처럼 숙의와 공론이 활발히 일어났던 동덕여대 학생사회는 대학 본부가 일방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을 때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섰다. 故양수빈 학생이 교내 트럭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2023년, 대학 본부가 학사제도협의체 신설을 무화하려 했던 2019년과 일방적 학사제도 개편이 있었던 2017년에도 즉각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H교수 성추행과 교강사 혐오발언이 고발되었던 2018년을 돌이켜보면, 총학생회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문제의식을 느낀 누구나 대자보를 쓰고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행진, 집회·시위 등 행동을 조직했다. 2024년 공학 전환 밀실 논의에 항의하여 몇몇 재학생이 대학 본부에 소통을 요구하며 자발적으로 피켓팅을 진행하다가 처장단이 면담에 불참하였을 때 학생회의 주도 없이도 곧바로 점거 농성에 돌입하며 시작된 점거 농성은 동덕여대 졸업생으로서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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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자+대학교
친일·비리사학에 맞서온 동덕여대 학생사회의 대본부투쟁 역사, 대학사회, 여성공간 등에 대한 복합적 관계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한 하나의 틀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김강리는 “여자대학”이라는 틀 안에서 동덕여대공학전환반대 투쟁이 2016년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나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A씨의 합격 후 등록 포기 사건의 연장선에서 다루어지는 것의 위험성을 함께 지적했다.
“외부의 선동에 의한 시위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하여 ‘벗’과 ‘꿘충’을 분리”했던 ‘순수성’프레임이 “우리사회에서 통용되는 “선량한 시민이 노동자·장애인·여성·퀴어의 불법집회로 피해를 본다”는 극우언론의 수사와도 맞닿아 있”는 점,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로 강화된 “폐쇄적인 여자대학 학생사회의 이미지를 고착화”해 “동덕여대 학생사회는 일방적 학사구조 개편과 학생 탄압이라는 보편적 경험 위에서도 공감을 얻지 못하였고, 신남성연대로 대표되는 반(反)여성주의 집단에 의한 온라인 테러의 대상이 되면서 사회적 연대로부터 고립”된 면을 언급하며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학생사회에서 이러한 문제에 경각심을 느끼고 내부 투쟁을 이어가는 목소리”도 함께 전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만을 언행의 준거로 삼지 않고 타자의 경험을 청취할 때 열리는 광장이 있다고 믿는다. '나'의 어제가 선입견으로 작동하는 순간에서 빠져나와 '너'의 오늘을 청취할 때 우리는 내일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당부로 마무리하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대를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공동의장이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이호림은 지난 해 12월 7일 대규모 주말집회에서 처음으로 낭독된 평등약속을 약속한 순간을 언급하며 “성소수자 참여자들이 지금의 광장에서 안전함을 느끼며 참여하고, 자신의 삶의 배경과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말할 수 있게 한 중요한 기점이라”고 발제를 시작하며 “지금 광장에 모인 우리의 힘을 예외적인 상황에 펼쳐진 일시적인 감동의 순간으로 남기지 않고, 우리를 모이게 한 계엄과 내란, 폭동 사태 앞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보다 장기적인 투쟁의 힘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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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평등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1996-1997년 노동자 총파업 당시 만들어진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동성애자연대투쟁위원회’를 그 전신으로 한다. 성소수자 시민들은 무지개깃발이 지금처럼 광장에서 커다란 환대를 받지 않던 시절부터 중요한 사회적 투쟁에 함께 해왔다. 모두의 노동권을 지키고,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 여성과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권리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운동은 성소수자 운동에게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법제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위한 법제정 만큼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운동만이 아니라 노동, 여성, 장애, 법률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 영역에서 활동가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일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운동의 역사가 있었기에 성소수자 운동은 12.3 계엄사태 이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호림은 “지금의 광장은 성소수자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영역과 의제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 ‘남태령’, ‘키세스’, ‘말벌동지’와 같은 키워드로 응집되는 공통의 기억이 만들어”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연대를 훼손하고 우리의 다름을 분열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상처받는 순간들”이 있어도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운동의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혐오와 차별을 먹고 자라난 극우세력”을 넘어서기 위해서 “더 넓고 깊은 논의가 앞으로 이어”질 것을 당부했다.
발제 후, 자유발언을 신청했던 이재현, 현, 당근, 지안 네 사람의 청중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대학에서의 비정규직철폐투쟁 및 급식 노동자들과의 연대경험, 정체성 정치의 한계, 혐오 종식 연대 강화의 중요성, 각자의 자리를 사느라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공유하며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준비된 발제와 청중발언 이후, 청중들과 함께 하는 질의 응답 및 토론시간에서도, 우리가 이 열린광장에서 지치지 않고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이어나가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보자는 논의들이 이어졌다. 제한된 시간으로 더 많은 토론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이후 계속해서 논의와 실천을 이어가기로 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유명한 구호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구호를 힘있게 외치며 포럼은 마무리 되었다.
플랫폼C는 발제자 및 발언자들의 동의를 얻어 내용 전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지금, 우리의 돌봄과 연대를 강화하고 실질적 변화를 이루고 싶은 모든 이들이 꼭 읽어주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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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