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버티기·권한대행 거부권… 아직 승전고를 울리기에는 이르다
2024년 12월 21일
이 글은 지난 12월 21일 토요일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배포한 플랫폼c 선전물에 실린 글이다. 이날 이 선전물은 1,500명의 시민들에게 배포됐다.
12월 19일 한덕수 권한대행은 양곡관리법 포함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내란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두 법안의 거부권 행사 기한은 다가오는 2025년 1월 1일까지다. 한덕수는 시간을 질질 끌면서 여론 동향을 살피려 할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가담자들은 증거를 인멸하려 공모할 것이다. 윤석열은 변호인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의 계엄선포는 “내란이 아니”라며,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이 폭락해 농민 생계가 추락할 경우 정부의 쌀 매입과 가격안정제 도입을 통해 농민들의 생계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쌀값이 평년 기준가격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정부가 차액을 지급한다는 것이 바로 양곡가격안정제도의 목표다. 농식품부는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쌀 공급 과잉 문제를 부추겨 재정이 악화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쌀 공급 가격이 폭락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연 41만톤에 달하는 수입쌀 때문이다. 정부를 향해 시장주의적 방치 대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는 것이 포퓰리즘인가? 식량 매매가 이뤄지는 거리가 길어지면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방조할 뿐이다.
지난 14일, 국회는 찬성 204표로 탄핵소추안을 아슬아슬하게 통과시켰다. 여의도 한복판과 전국 주요 도시에 모인 백만 시민들의 함성과 노래, 투쟁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8년 전과 달라진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승리로 나아갔고, 우리 사회를 뒤로 후퇴시킨 통치 엘리트들을 향해 시민들의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분명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정원 9명에서 3명이 모자란 6명에 불과하며, 심지어 주심은 윤석열이 임명한 정형식 재판관이다. 탄핵이 인용되려면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대로는 낙관하기 어렵다. 실제 국민의힘과 한덕수 권한대행은 국회가 추천해야 할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윤석열의 시간끌기도 변수다. 현재 탄핵소추된 당사자 윤석열은 각종 수사기관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보낸 공문들마저 수령하지 않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을 때 대다수 시민들은 뛸듯 기뻐했다. 우리 스스로 이룬 승리이기에 그 기쁨을 나눌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투쟁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라는 점을 좀 더 되새길 필요가 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 윤석열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끝까지 싸우겠다”는 말을 뻔뻔하게 내뱉었고, 자신의 내란죄 혐의를 부정하며 버티기 모드로 태세를 바꾸었다.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 역시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이곳저곳에서 쏟아내고 있다.
지금의 윤석열 정권은 2017년 박근혜 퇴진 이후 그에 대한 반동으로 성장한 ‘우익 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메시지는 ‘아스팔트 우파’의 결집을 호소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계엄은 통치행위일 뿐”이라는 헛소리를 확대 재생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헌재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다. 탄핵 인용은 이미 정해진 결과가 아니며, 언제든 여론과 사회운동의 동향에 따라 오락가락할 수 있다. 이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한덕수 권한대행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계속 할 수 있다. 이는 지금은 수세에 몰린 극우세력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고, 심지어 윤석열이 저질러온 노동조합 때려잡기나 부자감세, 전쟁위기 고조시키기 등 나쁜 정책들을 지속시킬 수 있다.
윤석열은 어느날 갑자기 한국 사회에 떨어진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윤석열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였고, 여전히 그런 사회라는 점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국회의 탄핵 가결에만 기뻐하며 헌재 결정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놓은 수동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투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혹자는 문제해결의 초점을 ‘제왕적 대통령제’이나 ‘포퓰리즘’에 두는 듯하다. 권력구조 개편은 보수세력조차 동의하고 있고, 누구보다 열심히 선동 중이다. 12월 20일, <조선일보>는 1면을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으로 장식했다. 원인을 ‘제도’로 한정시키면서, 마치 권력구조만 개편하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금의 위기는 권력구조의 문제를 상회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착취는 불평등과 실업난, 차별과 혐오, 전쟁위기와 기후위기 등 다양한 모순들을 낳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체제가 낳은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비상계엄 직후 광장이 열리자 매우 다양한 목소리들 이 쏟아져나왔음을 기억하자. 응원봉을 든 시민들은 소수자의 권리가 ‘나중에’로 치부되지 않는 사회, 불평등이 축소되는 사회,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원한다. 이 목소리들이 광장에서 얼마나 높게 외쳐지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