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퇴진과 사회대전환 투쟁,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2024년 12월 12일
하루 다르게, 아니 시시각각 정세가 바뀌고 있다.
지난 정기국회 탄핵소추안의 표결은 불성립했지만, 시간은 국민의힘과 내란범 윤석열보다는 이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편이었다.
여의도에서는 연일 쉬지 않고 수만 명 규모의 집회들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국민의힘 당사 앞 집회를 힘 있게 진행했고, 청년 여성들 역시 지난 토요일의 투쟁 동력을 이어가고 있다.
각 지역에서는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 투쟁이 이뤄지고 있다. 국힘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인 도봉구 사무실 앞에서는 이 지역 내에 위치한 덕성여대 학생들을 비롯한 지역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기자회견과 집회가 이뤄졌다. 김희정, 김은혜, 김선교, 송석준, 이상휘, 박형수 의원 등 전국 각지에 위치한 사무실에 근조화환이 보내지거나, 집회·시위가 연이어 벌어졌다. 국힘 의원들로서는 지역 내에서의 이런 압박이 크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까지 국힘 의원들이 하나둘씩 “탄핵소추안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12월 11일 오후 4시 현재까지 찬성 입장을 밝힌 국힘 의원은 앞선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안철수·김예지를 포함해, 조경태·김상욱· 김재섭이 추가돼 총 5명이다. 이에 더 해 박정훈·김소희·진종오·유용원·배현진·고동진· 권영세·김대식도 투표 참여를 밝힌 상황이다.
지난 10일 국회(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내란 상설특검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내년도 정부 예산안 역시 단독으로 처리했다. 내일(12일)에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새롭게 상정한 윤석열 탄핵소추안 보고를 진행하고, 내란 특검법의 표결을 할 예정이다.
검찰과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경쟁적으로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갑자기? 정의롭기 때문도, 민의를 대변해서도 아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수사기관으로서 자기 조직의 권한과 주도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공히 지적하고 있듯, 검찰은 이 정권의 손발과 같은 지배계급의 국가기구다. 경찰은 경찰청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계엄령 직후 지시를 내린 주체였다는 점에서 내란범죄 일당의 일부로 전락했다. 이 국면에서 검찰에게 자조직의 수뇌부를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국가기구들이 결코 선한 의지에 의해 움직이지도, 법치주의 그 자체와도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지배계급 내의 분파 싸움 속에서 자조직의 이해관계에 근거해 작동하며, 서로 경쟁하기까지 한다. 지금은 이 국가기구들 간의 자조직 중심주의에 기댄 쟁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다.
한편 판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여지 없이 거리에 모인 대중의 힘이다. 지난 9일과 10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위원회에 당내의 성희롱·성폭력 사건 관련자들 절대로 (퇴진 집회)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렸다. 또, “차별적 발언과 혐오 발언, 사회적 물의를 빚는 행동 등으로 현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 12월 6일(금) 저녁 시민촛불 집회에서 고 박원순 시장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이자 촛불행동 대표이기도 한 김민웅이 발언자로 나서려 했다가 운동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는 모습을 보고, 유사한 문제로 ‘일(탄핵 국면)’을 그르쳐선 안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전에는 꿈쩍도 않던 민주당이 이 국면의 흐름을 영악하게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선 제적으로 박수받을만한 일을 한 것일까? 그렇진 않다. 지난 주말 전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 대중운동이 불의와 혐오를 이긴다. 둘, 이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투쟁하고 목소리내고 춤추는 사람들이다. 셋, 7일 집회에서 심미섭 활동가가 발언했을 때 어딘가에서는 “지금 왜 저런 얘길 해”라는 웅성거림이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압도적으로 컸다. 후자가 전자를 압도했고, 이는 8년 전과는 명백하게 달라진 점이다.
약칭을 뺀 이유
오늘 오전,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구성・발족을 위한 참여 단체 대표자 회의가 서울 종로 향린교회에서 있었다. 12월 11일 0시 기준 1,549개 단체가 가입했는데, 이 숫자는 앞으로도 매우 빠르고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회의 자리에도 약 300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오늘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돌아보는 것을 통해 앞으로 이 운동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고, 동시에 이 열린 광장에서 어떻게 나아가도록 추동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발족 회의에서 세 가지 중요한 결정과 한 가지 중대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떤 일이었나? 그리고 이를 통해 우 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첫째, 제안자들이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국민행동’으로 제시한 조직 명칭을 논쟁을 통해 ‘국민’을 삭제하고,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확정했다. 이의 제기를 한 활동가들은 ‘국민’이라는 호명이 상당수에 달하는 어떤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지금의 윤석열 퇴진 투쟁에는 적지 않은 이주민들이 함께 하고 있고, 한국 사회에는 226만 명(2023년 11월 기준)에 달하는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민교협 이도흠 의장이 지적했듯, ‘국민’이라는 용어가 현대적 의미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영향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국민'이라는 개념은 '신민(臣民)'과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에 대한 복종과 의무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통치 엘리트들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둘째, ‘윤석열 퇴진행동’을 약칭으로 제시한 원안을 폐기하고, 약칭을 쓰지 않기로 했다. 사실 계엄령 전까지 ‘윤석열 퇴진투쟁’은 의지와 다르게 충분한 동력이 붙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20퍼센트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퇴진운동’의 동력이 커지지 않았던 데에는 단순히 사람들이 “윤석열의 악행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8년 전 이미 ‘박근혜 퇴진 촛불’을 경험한 상황에서 그것만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가 바뀌지는 않으리라는 경험적 판단이 있었고, 그렇기에 ‘퇴진’이라는 구호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계엄령’ 사태가 대중을 움직이게 했고, 광장을 열었다. 우리가 ‘박근혜 퇴진 촛불’의 성과를 이어가면서도 그 한계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퇴진’이라는 구호에만 갇혀선 안 된다. 윤석열 같은 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회, 그런 체제의 모순에 맞선 다양한 목소리들이 거리와 일터를 채워야 한다. 따라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대표자 회의에서 ‘퇴진’ 구호로 좁혀지는 약칭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사회대개혁’이라는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의 중요성
셋째, 조직의 운영 체계를 결정함에 있어서 기존에 ‘20~30여 개 단위 대표’로 제시된 공동대표단의 숫자를 대폭 늘리기로 수정하였다. 동시에 제안자들이 이미 자신들끼리 선임한 ‘공동의장단’ 10명을 선임하지 않고, 공동대표단을 완전히 구성한 후에 차주에 공동의장단을 확대해 선임하기로 했다. 중대한 투쟁의 중심에 서야 하는 연대 조직이 소수의 의사에 의해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지 않은 채로 주먹구구식으로 ‘공동의장단’을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적이다. 수천 개의 조직들이 함께 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갈 주체로 나선 사회운동이 이런 문제를 부차시하거나, 대충 처리해선 안 된다.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기반해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기결정된 ‘공동의장단’의 선임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단지 공동대표단을 결정하는 것에만 역할을 한정시키는 ‘임시의장단’으로 결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날 회의 도중 ‘촛불행동’ 김민웅 대표의 신상 발언을 들어보자는 의견이 있었고, 그러기 무섭게 실제 김민웅 씨가 마이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다수의 참석자들이 격렬하게 가해자의 발언 제지를 요구하면서 사회자였던 박석운 씨가 발언을 자제시키는 일이 있었다. 촛불행동 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이 결정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광장에 나서서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결코 이를 배반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지난 1년여의 시간동안 ‘퇴진 시위’를 이어온 이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서야 ‘열린 광장’은 사회운동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그것을 반영할 수 있는 연대조직이 되어야 하고, 달라진 시대에 맞는 달라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 광장에 모인 열망과 목소리, 표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나아가 사회운동은 광장에 새롭게 나타난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 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등 많은 숙제들을 안고 있다. 이 질문을 외면해선 안 된다.
‘탄핵’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하나둘씩 당론 대오를 이탈하면서, 이번주 토요일 탄핵소추안이 통과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커지고 있다. 아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설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더라도 윤석열이 퇴진되리라 안심할 순 없다.
일단,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한동훈식의 “질서 있는 퇴진”이 제기하는 ‘3월 퇴 진론’ 등보다는 차라리 탄핵 통과된 후 헌재에서 부결을 이끌어내는 게 낫다는 식의 ‘버티기론’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현재 헌법재판소의 6인 체제는 결코 안심할 수 있는 구성은 아니다. 계엄령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윤석열은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했고, 지난 10일 박 위원장의 취임이 강행됐는데, 박선영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정형식 재판관의 처형이기도 하다. 정 재판관은 노골적인 극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성격이 높은 기관으로 악명 높다. 헌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규범이며, 따라서 그것의 해석과 적용의 문제를 다루는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헌재는 대통령 탄핵이나 정당해산, 권한 쟁의 등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들을 다루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대체로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이나 미래에 대한 견해 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즉, 헌재에서 ‘옳고 그름’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권력구조와 정세, 여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12월 12일 오전 윤석열이 경악스러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극우주의자들의 백래시를 선동한 것도 헌재가 갖고 있는 정치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중운동의 기세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고, 반대로 이 틈을 빌어 반동 세력이 어떤 역전을 시도한다면 반드시 운동을 통해 저지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윤석열이 완전히 퇴진된다고 해서, 한국 사회구조와 모순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왜 윤석열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됐는지, 한국 사회의 어떤 정치사회적 모순에서 기인하는지 등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그것은 곧 ‘보수 양당 체제’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 통치 질서다. 거대 양당들은 항상 서로를 향해 눈에 불을 켜고 이전투구를 일삼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본의 이익에 손을 든다. 가령 지난 10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 세법 개정안을 함께 통과시켰다. 두 개정안은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밀어붙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한 대표적인 부자감세이다. 윤석열이 나라를 망쳤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진심이라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강행한 부자감세 정책도 함께 폐기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자들에게는 더 많은 부를 안겨주고, 평범한 시민들은 더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의 광장은 이런 모순에 맞선 목소리로 지속되어야 한다. 광장 시위는 대규모 도심 집회로 지속되어야 하고, 거리와 일터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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