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브루스 J. 딕슨의 『당과 인민』

서평 | 브루스 J. 딕슨의 『당과 인민』

『당과 인민』은 중국에 대한 색안경만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중국의 정치·사회적 특징을 오판하거나 단순화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중국의 장기적 전략과 내부적 제약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2024년 11월 30일

[동아시아]중국대륙서평, 중국공산당, 중국, 감시, 소수민족

한국 사회에서 중국은 거의 절대악이나 다름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라는 혐오 발언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명사고 포털기사의 베스트 댓글을 차지하고, 온라인의 어느 커뮤니티에서든 중국인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다. 기득권 언론과 뉴미디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언론 또한 이러한 반중 정서를 조장하거나 편승한다. 2022년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56개국 중 한국이 가장 반중 정서가 심한 국가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출간된 브루스 J. 딕슨의 『당과 인민』(The Party and the People)은 우리가 막연하게 지니는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의 이미지가 현실을 과연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짚어준다.

저자는 중국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이는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 ① 당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까?
  • ② 지도자는 어떻게 선발할까?
  • ③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 ④ 중국에도 시민사회가 있을까?
  • ⑤ 시위가 정치적 안정을 위협할까?
  • ⑥ 당은 왜 종교를 두려워할까?
  • ⑦ 민족주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을까?
  • ⑧ 그래서 중국이 민주화될까?

딕슨은 기존의 그릇된 통념을 지적하고 중국의 현실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위 질문들에 막힘 없이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중국을 통치하는 중국 공산당이 경제 성장, 사회적 안정,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통합을 통해 정당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조명한다. 특히 경제적 성과가 정권의 주요 정당성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중국공산당이 전통적 권위주의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공산당이 억압적 통치와 실질적 성과를 결합해 인민의 불만을 완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기술적 감시와 '사회신용제도'를 활용한 사회 통제는 인민의 생활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며 체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도구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인민에게 일정 수준의 삶의 질 향상을 보장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이에 따라 중국 인민은 현 체제에 단순히 억압에 의해 강요된 복종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통해 제공받는 실질적 혜택에 기반한 신뢰를 보인다.

저자는 이를 "실용적 정당성"으로 설명한다. 중국공산당이 인민과의 관계에서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일종의 '계약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중국 인민이 중국공산당을 완전히 신뢰하거나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경제 안정과 사회 발전이라는 이익 때문에 체제를 용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딕슨은 이러한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간의 계약적 관계를 근거로 들어 중국의 민주화 가능성에 [적어도 단기적 측면에서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경제적 번영이 곧 민주화를 이루어낼 것이라는 현대화 이론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른 권위주의 체제와 달리, 중국공산당이 인민에 호응하며 지도자를 바꿀 때마다 적응해나간 것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서구적 민주주의와 중국 인민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아예 다른 개념인 점을 강조한다. 외부의 시각과 달리 중국 인민은 현재도 중국이 민주화를 향해 전진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민주화를 이미 달성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통치가 곧 민주주의라면, 중국공산당이 경제적 이익으로 대변되는 인민의 요구에 호응하는 한 중국 인민은 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허나 저자는 인민이 체제에 대해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는 동시에, 사회적 불만이나 저항의 씨앗도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예컨대 중국에서의 시위에 대한 장에서 저자는 시진핑 체제 들어 진압과 호응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인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려온 기존의 방식이 '진압'으로 일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진압에만 의존해 불만을 제거해서는 장기적 차원에서 더 큰 위험을 만드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동시에 저자는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현재로서는,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강력해 보이지만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단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경우 현재 체제의 주요 정당성 기반이 약화되면 중국공산당과 인민과의 계약적 관계가 균열이 발생하거나 내부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인민 개개인에 대한 기술적 통제 역시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인민의 불만과 저항을 억제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내부적 요인에 외부적 요인(미중 갈등, 국제적 압박)이 결합될 경우, 중국공산당 통치체제가 지금과 같은 안정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통치 엘리트 입장에서 장기적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뭘까? [저자가 책의 전반에 걸쳐 언급하듯] 가장 손꼽히는 것은 시진핑 체제 들어 중국공산당의 인민에 대한 호응, 변화에 대한 적응력·유연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루스 딕슨은 시진핑 체제의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중국공산당 체제가 종식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체제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민주주의 정권의 탄생이라는 보장은 없다. 타 지역의 사례를 볼 때, 오히려 다른 권위주의 정권이 도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저자는 중국의 민주주의를 바란다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이처럼 『당과 인민』은 중국공산당의 성공과 한계를 균형있게 평가한다. 저자는 한국을 비롯한 서구권 주류 언론들과 같이 중국공산당 체제의 억압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며 비판하거나, 혹은 반대로 경제 성과에만 치중해 칭송하지 않는다.

"억압하면서도 호응하고, 권위주의적이면서도 적응력이 높고, 갈등하면서도 협력하는"

중국공산당이 상반되고 모순되어 보이는 중국 정치 제도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어떻게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한다.

특히 저자는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을 중국 사회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그리지 않고, 중국의 정치 체제를 그 자체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에만 익숙한 독자들에게 정치 체제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물론 책의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주로 중국 공산당의 도시 기반 정책과 경제적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중국 인민 상당수는 여전히 농촌에 거주하며 농촌 지역은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도시와는 다른 양상의 과제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농민공 문제를 비롯하여 중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지역 주민들이 겪는 불평등과 소외 문제가 심각함에도 농촌 지역의 정치적 의식과 이들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태도를 깊이 다루지 않는다. 이는 중국 체제의 전반적 평가에서 중요한 맥락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신장·티베트·내몽골 등 소수민족 지역에서 발생하는 갈등 또한 충분히 언급하지 않는다. 소수민족에 대한 언급은 종교와 민족주의를 다루는 장에서 잠시 언급될 뿐, 이들에 대한 억압이 어떻게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 저자는 경제성장이 중국공산당 통치 원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계층 간·지역 간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부재하다. 러시아나 베트남 등 다른 시장경제 권위주의 체제 국가와의 비교분석이 없는 점 역시 아쉽다.

이러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중국에 대한 색안경만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중국의 정치·사회적 특징을 오판하거나 단순화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중국의 장기적 전략과 내부적 제약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아가 이 책은 신냉전 혹은 미중 갈등이라는 도식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창조해낼 이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인물로 알려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21년 자신의 논문에서 “미-중 신냉전은 안보와 경제 문제 전반에 걸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어느 진영에 가담할 것인지 가늠하는 기준은 어떠한 이념과 가치를 표방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라며ㅣ,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위 ‘가치외교’로 불리는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외교노선은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의 이해에만 입각한 외교정책을 펼쳐 많은 비판을 받아왔으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의 가치를 고수하겠다는 당위를 내세우며 그러한 비판을 무시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한국에 있어 미중 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발언하는 등 기존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는 북러 밀착, 경제적 관계 등의 이유로 중국에 유화적 제스처를 제시한 것을 넘어서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을 전세계에 도입할 절대적 가치로서 취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해 외교노선의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실용외교라고 칭하며 정부의 변화를 환영하는 듯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외교노선에 있어 어떠한 신념도 없는 행태라고 비판해 마땅하다.

이처럼 가치외교라는 미명 아래의 미·일 일변도로 일관한 기존의 외교노선도,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이익, 주로 경제적 이익만 챙기려는 소위 실용외교노선도, 그렇다고 다극화 체제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노선도 우리는 모두 반대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반대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미국과 함께 양대 중심국가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일 테다. 이 책은 그러한 이해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글 : 박성우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음성노동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