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퇴진으로 모인 분노와 답답함을 세상을 바꾸는 체제전환 투쟁으로
2024년 11월 1일
이 글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서 발표한 글들을 수정 보완해 작성됐다.
퇴진 이후,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다
치솟는 물가와 경제위기, 의사증원 문제로 볼 수 있는 정치력의 부재, 거부권 정치로 드러나는 소통없는 독단 적 행보, 반인권 인권위원장과 반노동 노동부 장관의 선임, 부자감세로 예산이 휘청이자 빈곤층의 복지마저 싹둑 잘라내는 대규모 감축... 윤석열이 퇴진해 마땅한 이유는 너무나 많다.
누구나 "3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72%다.
정권 심판을 원하는 각계각층의 요구도 모아지고 있다. 시민사회 일각은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를 구성해 국민투표를 진행하고 있고, '한국사회 대전환 페스티벌'나 지역별 시국대회 등을 기획해 여론 형성과 시위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 사회운동의 오랜 경험에서 근거할 때 이런 투쟁에는 평상시의 사회운동 역량을 초과하는 압도적인 대중 동원이 필요하다. 2008년 촛불집회가, 2016-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이 그러했다. 두 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평가들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토론회와 분석 등을 제출한 바 있다.
윤석열 퇴진 이후가 민주당과 이재명이라면 멈칫하고 냉소하게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박근혜 퇴진 투쟁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 민중의 삶이 불안해졌고, 평등과 평화 역시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윤석열은 퇴진되어야 마땅하지만, 사회운동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라는 것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유 주의 세력에게 우리의 명운을 맡길 수 없다
윤석열이 끔찍한 대통령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진짜 위기는 하필 대통령이 윤석열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이 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민주당-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일정하게 합의한 결과였다. 파견법 제정, 비정규직 확대 등 우리 사회를 신자유주의적인 파국으로 밀어붙인 결정들을 해온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민주당이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매일같이 공방을 벌이지만, 기업 지원와 부자 감세, 군수산업 육성에 대해 서는 논쟁하지 않고 합의한다. '주주들의 수익을 어떻게 환원할지'에 대해서는 잘도 합의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신경쓰지 않는다. 부동산 세금은 걱정하지만 서민들의 임대료 부담은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제도는 이리저리 고심하지만 고졸 청년의 현실에는 무관심하고, 친일이냐 반일이냐에 대해서는 쉴 새 없이 공방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반식민 투쟁은 못 본 체한다.
서로가 "김건희 방탄", "이재명 방탄"이라며 말잔치를 벌이는 사이, 민중의 삶에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어디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체제전환을 요구할수록 퇴진의 의미도 분명해진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중들의 투쟁을 그저 윤석열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수렴시켜선 안 된다. 단지 '윤석열 정권 퇴진'에 머무른다면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번갈아 대권을 장악하는 모습만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민주당 정권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파국적으로 만들어왔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이 신자유주의 세력은 진보적이지도, 그렇다고 유능하지도 않았다. 더 깊은 분노를 조직하고, 더 크게 세상을 흔들기 위해서는 윤석열 퇴진 투쟁의 성과가 단지 '정권교체'에 머물지 않도록 오늘의 싸움을 조직해야 한다.
윤석열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모으는 데 그치면 투쟁의 성과는 민주당의 성과로 그치기 쉽다. 탄핵 절차와 명분을 국회가 주도하는 이상 윤석열 퇴진 자체는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에게만 좋은 정치적 실리를 안길 뿐이다. 우리가 퇴진 투쟁 이후를 주도하려면 '윤석열 퇴진'으로 해결되지 않는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하는 투쟁들을 강화해야 한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갈 정치를 복원하는 것은 보수 양당이 대신 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사회운동이 스스로의 미래를 열어나갈 때, 우리는 모두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정권 퇴진 너머 체제전환을, 1번과 2번이 아닌 우리의 대안을 만들어 가자.
가자! 체제전환 공동행동
지난 2024년 2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 동안 열린 체제전환운동포럼과 3월 23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가 구성됐다. 체제전환운동은 이윤 창출이 아닌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중심에 두는 대안체제를 건설하는 운동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 억압에 맞서 존엄과 평등사회를 재조직하는 운동이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2024년 하반기 여러 투쟁의 자리에 서 <가자, 체제전환!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의 실천을 벌이고 있다. 9월 28일 윤석열 퇴진 시국대회를 출발로 삼아, 10월 5일 14:00 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 이스라엘 규탄 전국집중행동의 날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 집회에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 속한 여러 단위 및 활동가들과 함께 했다. 또, 지난 10월 19일 보신각에서 열린 빈곤철폐 퍼레이드 <이윤에 떠밀리는 도시를 구출하라>에도 함께 했다. 앞으로 11월 2일 <학생의날 학생인권법 제정 촉구 집중집회>에도 함께 할 예정이다.
해마다 11월 13일을 전후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이라는 수식이 붙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이 날은 자본과 정권에 의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엄을 선언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온 날, 억압받는 이들의 저항을 천명하고, 모두의 요구로 모아내는 날이다. 노동악법 철폐와 노동3권 보장, 비정규노동법 개악 저지를 외쳤으며, 민중총궐기 등 정권에 맞선 투쟁이 제기된 날이기도 하다.
저마다 ‘전태일 정신’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내린다. 심지어 친자본 언론은 정치적 의미를 삭제한 복지망 구축을 ‘전태일 정신’이라고 명명해 투쟁하는 노조를 공격하는데 악용하기도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는 지면상의 논쟁에서 멈추지 않는다. 민주노조의 사회적 위상이 하락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기세를 잃으면, 울타리 바깥의 많은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해고되고 권리를 잃는다.
전태일 정신은 평등의 정신
혼란의 시대, 전태일 흉상의 얼굴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걸까? 우리는 그 질문에 사회운동답게 응답해야 한다. 체제에 맞서고 도전하는 투쟁의 자리에서 잊혀지고 단절됐던 이야기들을 연결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전태일 정신은 결국 ‘평등을 향한 정신’이었다. 차별에 맞선 투쟁, 반빈곤과 반전평화, 기후위기에 맞선 정의로운 전환 등 새로운 세계를 여는 실천들이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보수양당이 주도하는 정치 속에 지워진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연결해야 한다. 그것은 가장 정세적이고 동시대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새롭게 갱신되고 규명될 수 있다.
오는 11월 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다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무기가 되고, 우리의 발걸음은 곧 우리가 만드는 미래다. 오후 2시, 독립문 앞에서 전태일 정신의 의미를 되묻고 함께 행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