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퀴어 운동과 기후정의운동

동남아시아의 퀴어 운동과 기후정의운동

동남아시아의 성소수자들은 활동과 위험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4년 11월 27일

[동아시아]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 퀴어, 성소수자, 기후정의운동

아이딜 이만 아이디드는 말레이시아의 저명한 청년 활동가이자 기후정의 활동가다. 대학에서 환경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했으며, 스물두살 때부터 사회운동에 적극 뛰어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콜렉티프 이클림’의 창립 멤버로서 청소년 기후포럼을 기획했고, 2024년에는 탐조 활동과 조류 보존에 대한 말레이시아 청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밖에도 청년활동가들의 역량강화, 다양한 시민과학 프로젝트, 기후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퀴어 기후활동가이기도 한 아이디드는 성소수자 인권과 기후정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 글은 「Queer and Fighting for Climate Justice in Southeast Asia」을 번역한 것이다.

2023년 9월, 말레이시아 청년 활동가 아이딜 이만 아이디드(Aidil Iman Aidid)는 쿠알라룸푸르 한 대학의 학생들로부터 기후정의 운동에 관한 연설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행사 며칠 전, 아이디드의 초대가 취소됐다. 처음에 그를 초청했던 학생들은 그가 퀴어 인권 운동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때 아이디드는 항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비난받을 사람은 학생들이 아니라 결정을 내린 감독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디드에 따르면, 학생들은 대학 당국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스물네살인 이 활동가는 ‘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기후 관련 행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경험들이 있다. 동남아시아의 약 7억 명에 달하는 인구 중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은 기후 변화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다.

인구 밀집 지역과 해안 지역,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는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 중 하나다. 최근에는 극심한 기상 이변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둔 비영리 단체 Germanwatch가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한 세계 기후위험지수에 따르면, 미얀마·필리핀·태국 세 나라는 각각 2위·4위·9위에 올랐다. 위험 수준은 각국의 기후로 인한 사망자 수와 경제적 손실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동남아시아의 소외 집단은 복합적인 위험에 처해 있으며, 무엇보다 성소수자들은 이로 인해 활동과 위험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기후위기 대책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에서 종종 배제된다.

말레이시아 청년 활동가 아이딜 이만 아이디드
말레이시아 청년 활동가 아이딜 이만 아이디드

젠더 불평등과 기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The UN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은 젠더 불평등이 기후 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가중시키는 상황적 조건 중 하나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필리핀의 젠더 및 기후 연구자 베아트리즈 퀸토스(Beatriz Quintos)는 이러한 인식이 긍정적 발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여성, 남성 또는 기타 성 소수자의 복잡한 경험을 하나의 현상으로 단순화”했다는 단점도 안고 있다.

퀸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재난에 취약한 국가인 필리핀과 같은 나라에서 가난한 시민으로 살아가며 교육받지 못했거나 불안정한 신분의 주민으로 살고 있다면, 일상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위기의 양상이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마치 미셸 여(양자경)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기후위기 시퀀스와 비슷할 거에요. 기후 변화에 가장 책임이 적은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거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여러 공식 결정들을 통해 젠더 평등에 대한 의지를 표명해 왔다. 이러한 문건들에는 ‘아세안 사회문화 공동체 청사진 2025’(ASEAN Socio-Cultural Community Blueprint 2025),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25’(ASEAN Community Vision 2025), 그리고 2017년에 채택된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25 및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의 성인지적 이행에 관한 아세안 선언문’ 등이 있다. 다만 이 결정들은 하나같이 남녀평등과 여성 포용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퀴어 친화적인 국가 중 하나로 알려진 태국의 기후정의 활동가 ‘레드’(안전상의 이유로 익명 표기)는 현재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팀이 종종 퀴어는 소홀히 하면서 여성만 더 많이 포함시키는데 국한된 프로그램들을 감독하는 일을 해 왔다고 말한다. 레드 역시 직장 내에서 커밍아웃하는 것을 편하게 느끼지는 않지만, 퀴어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된 환경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운이 좋다”고 인정한다.

“마초적인 헤테로 남성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그들이 성소수자들과 교류할 때 긴장하는 것을 느껴요.”

가령 레드가 일하는 조직의 남성들은 논바이너리(non-binary)가 ‘그들’(she/he 가 아니라 them을 사용하는 것 ))이라는 대명사의 사용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공개적인 환경에서 차별과 보호

최근 몇 년 동안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들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목격돼 왔다. 지난 2024년 9월 말 태국은 동남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됐다. 2022년 싱가포르는 남성 간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폐지했다. 그리고 2019년 베트남 호치민시티에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친화적인 최초의 의료클리닉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태지역의 많은 국가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부족하고, 공공연하게 성소수자 혐오 정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이 대다수인 국가들에서는 이슬람 샤리아법(Islamic sharia laws)에 따라 동성 관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퀴어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수준의 차별들이 존재한다.

기독교(싱가포르, 필리핀, 동티모르), 불교(태국, 미얀마), 이슬람교(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종교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기후변화 대응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많은 구호단체와 비영리기관들은 종교와 연계되어 있으며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디드는 홍수가 발생했을 때 트랜스젠더가 구호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종교 구호단체들은 출생시 지정된 성별에 따라 대피소를 나누는 경향이 있다.

“[트랜스젠더들은]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 쉼터에 가지 않아요. 대신 그들은 자기 커뮤니티 내에서 지원을 찾는 경향이 있죠. 종교적 가르침에는 반(反)LGBT+의 태도가 포함돼 있어요.”

아이디드와 레드 두 활동가들 모두 정부과 연루된 [비영리]섹터에서 일하며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느낀다. 또한 정당, 정부산하의 재단, 로컬 기업들의 다른 업무에 지원할 때에도 커밍아웃은 불이익이 될 수 있다. 과거 아이디드는 성소수자와 홍수에 관한 독립 연구 제안을 자신의 학교인 공립립대학교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당했다. . 그는 그의 지도교수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연구 주제를 피하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다. .

말레이시아에서 퀴어 문제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주류 정당은 퀴어다움(queerness)을 무기화했고, 트랜스젠더들은 제도 교육이나 정부와 연결된 공간에 접근할 수 없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연구자들 같은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3의 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아이디드가 직접 경험했듯, 퀴어 기후정의 활동가들에 대한 온라인 동성애 혐오 발언은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처벌받지 않고 있다.

기후 변화와 젠더의 연결

“많은 기후운동가들이 여성·어린이·빈민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들은 성소수자를 동맹이나 동료로 보지 않죠. 그들은 기후 문제를 퀴어나 빈곤, 노동 등 다양한 영역들이 복합적으로 연루되어 있는(다학제적, multidisciplinary) 문제라고 보지 않아요.”

드 라 살레 대학(De La Salle University) 강사 로왈트 알리부드(Rowalt Alibudbud) 박사는 기후 문제로 인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뤄지는 주택 및 식량 지원에서 재난에 대응하는 관계자들이 성소수자 개인들 및 커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태풍과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출동하는 이들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목격했다. “여러 공공 및 민간기관, 고등교육기관에서 실제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권유했고요. 심지어 어떤 곳은 선택한 이름 외에 스스로 결정한 성정체성을 표시하도록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디드는 여전히 자신의 퀴어 정체성에 대해 자랑스럽고 낙관적이다. 자괴감과 낙담에 빠질 때마다 그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큰 특권을 누리고 있어요. 거절당할 때마다 또 다른 기회를 찾습니다.”

필리핀의 젠더 및 기후 연구자 베아트리즈 퀸토스는 ‘사람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만 강조되고, 기후위기의 희생자로만 여겨지는데요. 이는 전체를 드러내는 그림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주체성을 갖고 있어요. 적절한 자원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를 옹호할 수 있죠.”

트랑 부(Trang Vũ) |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