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정치적 생명의 평등을 위하여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정치적 생명의 평등을 위하여

팔레스타인은 생명의 평등이란 정치적 평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치열한 투쟁의 장이다.

2024년 10월 2일

[읽을거리]반전평화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반전평화, 국제주의, 미국

올해 2월 25일 미 공군 현역 군인이었던 애런 부쉬넬(Aaron Bushnell)이 미국 워싱턴 DC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며 분신하였다. 미군 병사가 더이상 학살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이는 광경은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한 미국사회의 죄책감과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줬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시온주의 세력의 오랜 검열과 언론통제를 뚫고 나온 축적된 분노의 모습이었다.

임계점

분신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 부쉬넬은 "노예제나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불의가 자행되던 과거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있었다면 과연 무엇을 했을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The answer is, you’re doing it. Right now.)

지금 여기서 자행되고 있는 불의와 그에 따른 우리들의 책임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종교학자 위니프레드 설리번(Winnifred F. Sullivan)은 부쉬넬의 분신이 민족국가들로 구성된 국제질서를 넘어서는 초국적인 규범적 질서에 따르는 행위였다고 해석한다.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하며 미국 및 이스라엘 정부를 범죄자로 소환한 부쉬넬은 그의 분신을 목격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을 윤리적 책임의 주체로 호명하였다. 이것은 민족국가가 시민에게 부과하는 법적 질서를 초과하는 초국적 공동체적 규범성에 의거한 행위라는 것이 설리번의 설명이다.

분신과 같은 자기희생적 내지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낭만화하거나 영웅화하는 경향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부쉬넬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인류 공동체를 상대로 던지고자 했던 윤리적 질문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주의적 연대, 즉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비롯하여 (특히 자신이 소속된 정치공동체 바깥에 존재하는)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행위가 동정이나 시혜, 또는 막연한 도덕적 의무감을 넘어서는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부쉬넬의 분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당시 필자는 재학중인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학우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연대 및 이스라엘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 2월, 다트머스 대학교에서는 8명의 학생들이 이스라엘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학교 당국으로부터 '투자철회를 검토하겠다'는 응답을 얻었다. 그리고 그 검토를 추진하기 위해 FSJP(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교직원, Faculty and Staff for Justice in Palestine)가 만들어졌다. 올해 5월 1일 노동절에 대학원생 노조 파업선언과 함께 팔레스타인 연대시위를 하였고, 그 결과 두 명의 교수를 포함하여 총 91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관련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함께 단식을 했던 동료 로안 웨이드(Roan W. Wade)가 집회발언 때마다 반복하던 말이 있다.

“나의 생명은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아이의 생명보다 소중하지 않다.”

누구는 이 발언을 한 젊은 학생활동가의 치기 어린 말이라고 냉소할 수도 있고, 그가 미국의 시민이자 대학생으로서 누리는 다양한 혜택을 고려하지 않는 가식적인 태도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년 10월 7일 직후 대학 행정 건물 앞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게 연행된 이후로 폭행위협에 시달리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공론화하고자 쉬지 않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던 나로서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생명의 평등’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트머스 대학의 잔디를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는 사진이다.
경찰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트머스 대학의 잔디를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는 사진이다.

생명의 평등

생명의 평등이라는 어쩌면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이념을 국제주의 연대의 중심에 다시 새겨 넣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문제가 되는 생명의 평등은 물론 생물학적 차원에서, 즉 모두 같은 인간종으로서 태어나고 죽는다는 의미에서 모두의 생명이 동등함다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소수의 우생학자들을 제외하면 같은 인간들 사이에 생물학적 우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모두 하나의 인간종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혐오와 차별, 학살을 막을 수 없다. 모든 인간에게 권리는 인간으로서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적으로 주어진다는 자연권의 이념이 현실정치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는 이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한 인간이 그가 소속되어 있던 정치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순간, 즉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순간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어진다고 여겨졌던 인권 또한 가차없이 파괴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이 과정을 직접 목격한 아렌트는 정치공동체에 소속될 권리인 “권리를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 를 인권의 정치의 핵심 화두로 설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는 신의 은총 또는 인간의 선한 본성 따위의 초월적 토대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공동체에 속한 여러 인간들 사이의 상호인정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기능한다. 따라서 극단적 폭력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공간의 존속을 위협하는 세력들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가자와 레바논 주민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파괴된 집 옥상에 그린 벽화 옆에 서 있다.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가자와 레바논 주민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파괴된 집 옥상에 그린 벽화 옆에 서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생명의 평등’은 바로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향유하는 주체의 생명인 ‘정치적 평등’ 을 뜻한다. 이것은 단지 모든 시민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식의 추상적 원칙을 넘어선다. 또한 현 사회질서에 의해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이들과 함께 사회질서의 변혁을 요구하는 봉기적 실천의 필요성을 함축한다. 중요한 점은 이 봉기적 실천이 민족국가라는 제도적 틀을 부정하지는 않는 대신 그것을 끊임없이 발본적으로 문제화하고 개조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배제된 이들과 함께 아래로부터 민족국가의 권위에 지속적으로 도전하면서 시민권의 확장과 그에 부합하는 제도적 개조를 요구하는 초국적(transnational)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전례없는 규모의 난민위기와 신파시즘 세력의 도래로 특징지어지는 현 정세에 가장 시급한 실천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이라는 정착식민주의 국가에 의해 지도에서 점차 지워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현재 인류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잔인한 과정 속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완전한 추방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온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경이롭고 끈질긴 저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주의 연대활동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점령이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지난 7월 19일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지워버리려는 시온주의 세력의 시도에 대한 전지구적 힘의 반향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민중들과의 연대는 ‘인류’라는 일종의 준-정치공동체 내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인지를 둘러싼 투쟁이다. 이 투쟁의 결과는 제국주의 세력들의 주변부에서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는 수많은 민중들의 운명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정치적 생명의 평등이라는 이념은 20세기를 지배한 전체주의적 폭력의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은 생명의 평등이란 정치적 평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치열한 투쟁의 장이다. 충분히 존중할 만한 가치와 효력을 갖는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희망한다면 가자 지구 사람들의 생명이 우리 모두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이라는 보편주의적 대의에 함께 동참하자.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 이스라엘 규탄 전국 집중행동의 날 포스터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 이스라엘 규탄 전국 집중행동의 날 포스터

글 : 양진석

교열 :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