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 소수민족 저항과 시민불복종운동의 결과, 군부 통치가 흔들리고 있다
2024년 9월 29일
미얀마 군부는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를 철권으로 장악하고 있다. 우호적인 군부로부터 이익을 얻는 초강대국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 안정과 무역을 우선시한다.
국제 뉴스를 접하는 이들에게 이는 익숙한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집트,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벨라루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등과 손쉽게 비교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서 자유와 민족 자결을 위한 투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반면, 미얀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저항군은 ‘타마도우’라 불리는 악명 높은 군부 정권과 계속 싸우고 있다. 2023년 10월, 반군은 ‘1027 작전’으로 알려진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으며, 이는 현 군부 통치를 한계까지 몰아 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얀마 정세가 갖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현재 미얀마에 체류하며 민주항쟁에 연대하고 있는
활동가 마이클 슬라드닉(Michael Sladnick)은 “반군은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군대를 천천히 약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얀마에 가기 전 그는 연대 활동을 통해 미얀마와 연결되기 시작했고, 저항운동 단체에 기부금을 보냈으며, 온라인에서 반군 단체와 대화하면서 버마어를 배웠다. 2023년 7월, 그는 시카고의 안락함을 떠나 태국과 버마의 국경 지역(아마도 매솟 추정)으로 이주했다. 현재 그는 독재 정권을 제거하자는 목표로 연합한 다양한 반군 조직들의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슬라드닉에 따르면, 군부는 파괴적인 손실을 입고 있다. 인내심 있게 ‘수없이 많은 자상을 입혀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게 하는(death-by-a-thousand-cuts)’ 전략이 군부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저항군의 성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태국 국경 근처의 비밀 마을에 머물고 있는 슬라드닉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군부의 손실은 수만 명에 달합니다. 우리의 추산에 따르면 사망한 군부 병력수는 약 5만 명이지만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수 있어요. 심플하게 말해 군부는 수용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지역을 통제하려 하고 있고, 새로운 병력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군부는 카렌민족연합(KNU)이 힘을 얻고 있는 태국 접경에 있는 여러 기지들을 잃었고요. 불과 몇 주 전에는 여기서 멀지 않은 미야와디가 포위당하기도 했습니다.”
군부, 삼형제동맹, 그리고 혁명
2021년 2월부터 미얀마는 자신을 총리로 임명한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의 통치를 받고 있다. 쿠데타 전까지 그는 1948년 영국 식민지 통치로부터 독립한 후 1962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를 통치해 온 군부를 통솔했다.
20세기에 버마공산당(버마족 위주)과 소수민족 무장 조직들은 종종 서로 갈등을 빚으며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웠다. 군부에 맞선 버마공산당의 저항은 1989년까지 이어지다가 쇠퇴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반란은 (시민불복종이 시작된) 2021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민주주의를 위한 지하 운동의 결과이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민주화를 위한 짧은 시도로서 자유주의적인 민족민주연맹(NLD)가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이때에도 군부는 결코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민주 헌법은 여전히 군부를 위해 의회 의석의 25%를 보장했는데, 이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25%)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의석이었다. 군부의 분열이나 동의 없이는 헌번 개정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군부는 국가 내 국가로 남아 있었고, 민간 정부의 감독 없이도 교육 부문과 공무원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과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유지했다. 또한 군부에게는 2021년 2월 1일에 행사한, 제한된 선출 정부조차 전복할 수 있는, 비상 계엄 권한도 있었다. 군부는 사법제도까지 통제할 수 있었는데, 2022년 12월 미얀마의 전 선출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조작된 부패 혐의로 27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아랍의 봄’을 촉발한 불꽃은 종종 2010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튀니지의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야채 가판대를 강제 철거한 데 항의하며 스스로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미얀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2021년 3월 중순 군부 정권은 시민들에 대한 학살을 저질렀는데,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양곤의 봉제업 공단지역 흘라잉타야에서 수십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학살됐다. 그러자 여전히 인구 다수가 살고 있는 농촌 지역 전역에서 전례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이때 처음으로 농촌 주민들이 양곤의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일어났다. 이는 대중 봉기의 기반을 형성했으며, 투쟁의 강도를 고양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에 대해 슬라드닉은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이탈해 고향 마을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봄의 혁명’을 조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권이 이전에 도시에서 효과가 있었던 억압 전술을 재현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즉시 무기를 들고 반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중심부에서 인민방위군(PDF)을 직접 지원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겁니다.”
2023년 10월, 조직적으로 저항한 가장 큰 집단 3개가 힘을 합쳐 삼형제 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지역 자치 세력들의 패치워크를 바탕으로 보다 중앙 집중적인 대규모 반군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역량은 샨주(Shan State) 동부 지역에서 가장 강하며, 군부는 이곳에서 반군 세력만이 아니라, 강력한 마약 카르텔과도 싸워야 한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 아편의 25%가 미얀마에서 생산되고 있고, 그 중 80%가 샨주 동부의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다고 추정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샨주는 군부를 전복하기 위해 싸우는 ‘삼형제 동맹’ 중 두 조직인 두 조직인 미얀마 민족민주동맹군(MNDAA; 샨주 북부 코캉족 반군)과 타앙 민족해방군(TNLA)의 본거지다. 이전에 중국과 태국의 지원을 받았던 다른 샨족 민병대는 내부 권력 투쟁과 다양한 파벌의 미로에 대한 더욱 모호한 그림을 그린다. 세 번째 형제인 아라칸군 이 2019년 라카인 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민주적 선거에서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선출된 NLD 정부는 처음에는 소수민족 무장 조직들의 요구에 반해 군부 편을 듦으로써 군부를 달래려고 했다. 이와 같은 과거의 오판은 여전히 PDF에서 삼형제 동맹과 NUG 산하 PDF(인민방위군) 간의 관계에 긴장을 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민 아웅 흘라잉 장군에 맞서 연합하고 있다.
샨주의 반대편, 인도와 국경을 접한 사가잉주에서의 투쟁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지역 정세를 통해 슬라드닉은 망명한 민족통일정부(NUG)와 무장 조직들이 지원하는 대중 혁명을 더 연상시키는 운동을 본다.
“사가잉의 PDF는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도시 노동계급은 2010년대에 크게 확대되었지만, 이 인구의 대부분은 농촌 출신이죠. 그들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고향 마을로 보내고 PDF에 많은 자금을 제공합니다. 2021년에 시작된 농촌에서의 봉기는 양곤의 섬유 공장에서 시위를 주도한 여성노동자 학살에 대한 분노로 인해 촉발됐죠.”
군대는 징벌적 원정을 통해 반대 의견을 억압해왔고, 빈번하게 마을 전체를 불태웠다. 가장 잔혹한 학살에는 렛옛꼰(Let Yet Kone)과 타르타잉(Tar Taing) 등 수백 개의 마을에서 군부가 보복적으로 저지른 행위들이 있는데, 이 파괴로 인해 마을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2022년에만 최소 6천 명의 민간인(그 중 160명은 어린이)이 군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산 되며, 2021년 쿠 데타 이후 수백만 명이 집을 떠나 피난 이주했다.
여기에 2010년대 로힝야 대량 학살로 절정에 달한 수십 년간의 소수민족들과의 전쟁을 더 하면 수백만 명에 더해진다. 그 결과, 이제 군부는 지역별 PDF 민병대가 사실상 아무런 저항 없이 작은 도시를 장악할 수 있을 정도로 지쳐 있다.
오늘날 미얀마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외국인 관찰자들은 현재의 반란을 “민족적 동기”에 의한 것으로 손쉽게 분류한다. 이 나라의 5,500만 인구 중 3분의 2는 버마족(Bamar)이고, 샨족(9%), 카렌족(7%), 라카인족(4%) 등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소수민족들이 있다. 이런 “용광로”에 대한 인상에 더해 중국계와 인도계 집단, 남부의 몬족, 그리고 심하게 박해받는 로힝야족이 있다. 하지만 슬라드닉은 현대 미얀마의 갈등을 ‘민족적 동기’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고 말한다.
“서구 언론에서는 민족적 동기에 의한 투쟁으로 축소하죠. 이는 모든 대규모 반군 조직들이 연합해 벌인 자신들의 공세를 ‘봄의 혁명’의 일부로 선언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바로 연방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 정권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죠. 이는 미얀마 최북단 샨주에서 버마족 다수가 위치한 중부 버마 밸리까지 확산되고 있는 운동에 대한 공유된 비전입니다.”
이제 시위는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군부는 각 도시에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가했고, 특히 무슬림 활동가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러한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접근 방식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중들에 의해 인식됐고, 그들은 연대의 표시로 학살 당한 사람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중국의 그림자
이 인기 없는 군부가 3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덕분이다. 미얀마 북동쪽에 위치한 초강대국 중국은 다른 많은 이웃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미얀마를 전략적 파트너로 여긴다. 현재 중국 정부는 군사 개입을 미루고 있는데, 슬라드닉은 이것이 “다소 놀라운 움직임”이라고 본다. “봄의 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저는 중국이 직접 개입하여 러시아와 이란이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를 위해 한 것처럼 군부를 구할까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어느 정도 저항을 수용한 것 같아요.”
미얀마에서는 중국 정부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파트너로서 군부를 포기하고, 반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한때 돌았다. 하지만 슬라드닉은 이것이 희망적 사고일 뿐이며 성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이 실제로 반군을 지원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승리했을 겁니다. 반란은 샨주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 가장 큰 도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로이코(미얀마 중부) 지역 민병대에서 활동하는 제 동지 중 한 명은 얼마 전 ‘총은 충분하지만 탄약이나 의료품이 부족하다’고 말하더군요.”
사실 중국의 개입 또는 그 부족은 보다 실용적인 렌즈를 통해 볼 수 있다. 중국은 암묵적으로 샨주에 암거래한 무기가 들어오도록 허용하여 삼형제 동맹이 이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중국 지하범죄 조직에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미얀마의 악명 높은 사기 센터를 단속하지 못한 군부 정권의 무능에 대한 처벌로 본다. 최근의 단속으로 수많은 센터가 폐쇄되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샨주 반군의 손에 무기가 흘러들어가던 것이 단절됐다. 이는 삼형제동맹이 군부와 휴전 협정을 맺도록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라드닉은 “중국은 반군에게 많은 여유를 준 다음 이를 이용해 군부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군부가 해상 무역에 더욱 집중하는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네피도(미얀마의 행정수도)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의 전략적 이점 중 하나는 벵골만의 무역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미얀마 군부를 향해 라카인에 새로운 심해 항구 건설을 서둘러 달라고 압력을 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형 항구 건설로 생계를 잃을 것을 걱정하는 지역 어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와 같은 역학 관계는 서부 지방인 사가잉주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국영기업이 샐링기 타운쉽에 진출해 운영하는 레파다웅 구리 광산이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폐쇄되었다. 수십만 명의 교사, 철도 노동자, 그밖의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광부들은 2021년 쿠데타 이후 계속해서 총파업 투쟁을 이어왔다. 광부 노동자 리더 중 한 명에 따르면, 최근 군부는 중국 정부를 달래기 위해 그곳에서 작업을 재개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슬라드닉은 “미얀마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이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샨주에서 군부-삼형제 동맹 간 휴전이 이뤄졌던 것에 대해 다들 중국 정부의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민병대가 할 수 있었던 다른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혼자 싸웠고, 그들이 협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면 중국은 그들에게 무기 공급을 완전히 차단했겠죠. 이제 희망은 그들이 다른 저항 단체에 계속 자금을 지원하기를 바라는 겁니다.”
절박한 도박
샨주에서의 휴전으로 인해 상황이 다소 진정되었지만, 군부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강렬하다. 아라칸 반군은 샨주에서 휴전에 동의했지만,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라카인에서는 그러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
군부의 고민을 깊게 한 원인들 중에는 혁명 투쟁에 새롭게 뛰어든 저항 집단이 있다. ‘1027 작전’(2023년 10월부터 군부를 대상으로 전개된 삼형제 동맹의 반격)이 일시적 휴전으로 끝난 지 몇 주 후, 1960년부터 전투를 벌여 온 카친 독립군은 카친주에서 ‘0307 작전’을 개시했다. 그 결과, 2023년 가을 삼형제 동맹의 샨주 공세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많은 마을과 기지를 빠르게 장악했다. 파오 민족해방군(PNLA; Pa-O National Liberation Army)은 샨주에서 휴전을 깼고, 남부 몬주에서는 반군부독재 몬주신당(New Mon State Party: Anti-Military Dictatorship)이 기존 조직(몬주신당)에서 분열해 많은 사람들이 저항에 가담했다. 또한 버마족 지역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인도와 국경을 접한 칼라이는 반군에게 거의 완전히 점령당했다.
군부가 약화되자 저항군의 전략은 더욱 과감해졌다. 여전히 자체 제작 무기에 크게 의존하는 버마 중부의 PDF 세력이 마을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군부 당국의 자원이 줄어들고 있으며 죽어가는 병력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군부는 얼마나 많은 통제력을 잃었을까? 미얀마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광대한 지역에서 차단되어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지만, 일부 분석가들에 따르면 현재 미얀마 전체의 48%가 저항 세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 태국 매솟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야와디는 4월 초에 ‘해방’됐고, 군부가 국경 도시를 탈환하려던 시도는 최근에 격퇴되었다. 지난 봄 행정수도 네피도에 대한 대규모 드론 공격이 시작되었다. 최대 도시 양곤은 여전히 군부의 통제 하에 있지만, 군부의 권위는 이곳에서도 약화될 수 있다.
그러자 지난 2024년 2월, 미얀마 군부는 위축된 대오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적인 징집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슬라드닉은 “절박한 도박”이라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징병제는 평범한 국민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없”다. 그에 따르면 이는 “과거에는 (군부가 존재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안위할 수 있었던 도시 중산층 시민들이 이제는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얀마 군부는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시민들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제외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이 조치를 피하려고 노력해 왔죠.” 이것의 임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문을 닫지 말 것
최근 슬라드닉은 미얀마-태국 국경에 있는 기지에서 카렌니주(Karenni State)로 거주지를 옮겼다. 여기에서 군부는 인터넷과 전화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그 때문에 ‘스타링크’(인공위성형 인터넷 서비스)가 디지털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됐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그와 그의 동료들이 과거에는 알려지지 못했던 여러 지역들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인지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군부의 공습으로 3일간 지연된 후, 그들은 군부 세력이 그 지역을 다시 장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카렌니주 저항군과 PDF 군대가 현재 진군하고 있는 로이까우(Loikaw) 외곽에는 군부 기지가 4개만 남아 있다. 지난 2월 점령한 일부 언덕 기지들에는 군부 소속 병사들의 시체가 여전히 땅에 널려 있고, 파사웅 타운십(Hpasawng Township) 마을로의 여행은 그들을 직접 총격선에 두었다. 메세(Mese)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20개의 경찰관 제복이 여전히 이전 경찰서의 잔해 위에 누워 있었는데, 그 주인은 아마도 마을을 해방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메세는 현재 카렌니주 남부에서 피난을 떠나는 민간인들을 위한 피난처로 전환되었다.
슬라드닉은 진전이 꾸준하긴 하지만, 일이 훨씬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저항군들은 탄약만 충분하다면 저항 세력은 일주일 안에 군부 정권의 마지막 남은 세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들이 진군할 때마다 재보급을 기다려야 하 죠. 군부의 군대가 떠난 모든 마을들에는 폭탄이 잔뜩 설치되어 사람들이 돌아갈 수 없어요. 상황이 더 어려워진 거죠.”
지속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는 미얀마 투쟁의 역설을 드러낸다. 연구자 토마스 반 린게(Thomas van Linge)에 따르면, 지난 3월에만 5천 제곱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지역이 수복되었다. 하지만 세계는 미얀마 상황을 잊은 듯한다. 식용유, 말라리아 치료제, 총알, 세계적 관심… 이 모든 것이 부족하다. 난민캠프를 위한 비옷도 부족해 몇 달 후 올 몬순 기후는 임박한 위협이 됐다.
슬라드닉이 말했다. “동지들 중 한 명에게 ‘기회가 된다면 세상에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우리에게 문을 닫지 마세요. 열어주세요!’라고 하더군요. 미얀마에서는 매일 밤 뉴스를 채울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인터넷 차단과 전 세계의 다른 갈등(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등)으로 인해, 세계 대중에게 거의 보이지 않아요.”
그는 이런 관심의 부족이 미얀마에 대한 동시대에 뒤떨어진 이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서구인들은 미얀마 자유 투사들을 한 손에 오래된 소총을 들고 있는 시골 농부로 묘사합니다. 하지 만 이들은 현대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파시즘과 민주주의 간 세계적 투쟁을 간파하고 있죠. 그들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전 세계의 민중들이 자신의 자결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싸움이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와 파시즘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더 큰 투쟁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군대 징집이 임박하자 정권 하에서 정상성의 마지막 척도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슬라드닉에 따르면, 모두가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고, 그로 인한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는 얼마 전 아내의 전 직장 동료와 저녁을 먹었어요. 그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매우 상냥한 태도와 상냥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죠. 무장 반군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어요. 제가 ‘혁명은 무섭다’고 했더니 그는 ‘그렇지만 군부 정권 하에서 사는 게 더 무섭다’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이것이 현재 분위기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험난한 길에도 불구하고, 슬라드닉은 미얀마 저항 세력의 미래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이다. “저와 미얀마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정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미 자유를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고, 저는 우리가 결국 이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외부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더 오래 걸리겠지만, 정권의 남은 날은 줄고 있습니다. 시간 문제일 뿐이죠.”
글 : 모르텐 함메켄 Morten Hammeken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