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미래전진당(Future Forward Party, 이하 '전진당')은 2023년 태국 총선에서 승리해 제1당에 올랐다. 하지만 군부의 반대로 집권에 실패했다. [참고: 태국 총선 이후의 반동에 맞서 민주화운동은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
한데 2024년 8월 7일 전진당은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에 의해 결국 해산되고 말았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전진당의 형법 개정 중단을 명령하면서 그것이 태국의 입헌군주제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시도라고 말한 바 있다. 전진당은 군 징집 종식, 기업 독점 해체, 태국 형법 112조(왕실모독죄) 개혁 공약 등을 내세워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판사들은 형법 112조 개혁 공약을 문제삼아 9:0 만장일치로 전진당 해산을 통과시켰다.
이는 비선출직 공무원으로 구성된 보수적 감시기관과 사법부의 권력으로 1,400만 명의 태국 국민의 지지를 얻은 전진당 선출직 의원들의 권한을 박탈시킨 비민주적인 폭거였다. 태국 군부와 사법기관, 왕당파 및 소수 엘리트들의 연합으로 그동안 수많은 정당들이 해산되었는데, 이로써 전진당은 2007년 이후 법원에 의해 해산된 아홉번째 정당이 됐다.
태국 정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지난 8월 16일 탁신 신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인 프아타이당 패통탄 시와왓라(Paetongtarn Shinawatra)가 의원 493명의 과반수 득표(319표)를 얻어 태국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됐다. 프아타이당은 지난 총선에서 전진당과 연합을 약속했으나, 이내 군부와 손을 잡으며 전진당 피타의 총리 선출을 좌절시킨 장본인이었다. 군부를 등에업은은 프아타이당의 스레타 타비신이 총리가 되었으나, 전과가 있는 인물을 내각에 임명했다는 이유로 그 역시 축출됐다.
패통탄은 통신 재벌 탁신의 딸로 아버지가 총리직을 수행할 때부터 선거 유세에 참여하며 어려서부터 정치에 참여해왔다. 가족 호텔의 사업가였던 그는 약 2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재산은 총 80억 바트(3,200억원)에 달한다. 푸어타이당의 참여 및 혁신 자문 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스레타의 총리 재임 기간동안 국가 소프트파워 전략위원회 의장 및 의료개발위원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패통탄이 총리로 선출된지 하루만인 8월 17일,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그의 아버지 탁신이 전격 사면되면서 정치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탁신 사면과 정계복귀를 볼 때, 왕실과 군부, 푸아타이당 사이 모종의 거래가 있었으리라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부와 푸아타이당은 반부패위원회(NACC)를 만들어 전진당을 해산시키는데 일조했으며, 왕실모독죄 개정에 찬성한 전진당 소속의원 44명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 침체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푸아타이당의 앞날이 그리 밝아보이진 않는다. 탁신은 사면되자마자 경제비전을 제시하며 다시금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푸아타이당 핵심공약인 1인당 1만밧(39만원) 지원정책은 반발에 부딪혀 있다. 설상가상 패통탄 총리가 연루된 탁신 일가의 부동산거래 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부와의 연합과 적대를 반복하는 등 일관성없는 태도를 보이는 점도 태국 민중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군부와 사법부는 여론상황에 따라 언제든 패통탄을 다시 해임시킬 가능성도 있다.
한편, 해산당한 미래전진당 소속 143명의 의원과 11명의 방콕 수도권 의회 의원들은 인민당(People’s Party)을 창당했다. 여기서 전진당 사무부총장이었던 나타퐁(Natthaphong Ruengpanyawut)이 새로운 당 대표로 임명되었다. 전 미래전진당 대변인이었던 파릿 와차라신두는 "새로운 정당이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당, 인민이 최고 권력을 가진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때문에 인민당이라 명명했다"고 밝혔다. 왕실 명예훼손법 개정안 재추진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로 여긴다고 답했다.
미래전진당을 이끌었던 피타 림자로엔라트(Pita Limjaroenrat)는 당의 해산으로 태국 정치는 더 혼란스러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거리 투쟁을 다시 이어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피타와 전진당 지도부는 거리 시위로의 복귀에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피타는 태국이 더 큰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은 신뢰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전환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국의 정치·사법 시스템은 직접 선거의 결과도 쉽게 번복될 만큼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를 군부와 공권력이 떠받치고 있다. 이처럼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태국의 정치, 사법 시스템을 유지한 채 ‘신뢰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전환’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진보적 정치운동은 투쟁 속에서 발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전진당 해산 결정 후, 전국 19개 대학의 88개 학생단체와 활동가 단체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전진당 해산과 지도자들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이 태국 입법 과정의 안정성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헌법상의 권리를 수호해야 함에도 국가 권력을 확대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군주제 개정을 반역이라 판결함으로서 법과 군주제, 국가안보에 관한 민주적 논의를 봉쇄하고, 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에 더해 학생운동가들은 "전진당이 없어도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계속 할 것"이며, "민중들이 권리와 자유를 갖고 진정한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꿈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성명을 함께 낸 탐마삿 대학교 학생회와 법학부 학생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전진당 해산 결정 후 헌법재판소 판사 우돔 라타마릿의 특별강사 초청을 거부할 것을 교수진에 요청하는 청원 운동에 돌입했다. 이를 모아 8월 14일 법학부 학장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수 년간 계속 되어 온 태국의 민주항쟁은 군주제와 불평등의 문제를 매우 폭넓게 공론화시켰다. 이를 막으려는 왕당파와 군부 등 기득권 세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이제 태국 정치토론의 일부가 됐다.
많은 태국인들은 더 이상 친군부정권과 재벌정당인 푸아타이당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새로 결성된 인민당이 ‘적법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만 매달린다면 이는 한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를 변화시킬 유일한 희망은 다시 거리와 일터에서 민주주의 투쟁의 불을 붙일 태국 민중일 것이다.
참고 자료
- 강종훈, 태국 연정서 '군부 핵심 정당' 제외…탁신-군부 균열?, 연합뉴스, 2024.8.28
- 강종훈, 다시 열린 태국 '탁신 시대', 군부·보수와 '데탕트' 지속될까, 연합뉴스, 2024.8.24
- 서필웅, 국왕 승인받은 패통탄 태국 총리 “모든 의견 경청” 세계일보,2024.8.18
- Former MFP MPs join “People’s Party”, Prachatai, 2024.8.9
- 88 student organisations oppose MFP dissolution, Prachatai, 2024.8.9
- Thammasat law student committee seeks removal of Constitutional Court judge from teaching, Prachtai, 2024.8.13
- Paetongtarn Shinawatra elected Thailand’s 31st Prime Minister, Prachatai, 2024.8.16
- Sebastian Strangio, What’s Next for Thailand’s Disbanded Move Forward Party?, The Diplomat, 2024.8.8
- Sebastian Strangio, Thailand’s Pheu Thai Party Hit With New Legal Challenges, The Diplomat, 2024.8. 27
- Sebastian Strangio, Thailand’s Pheu Thai Party Invites Former Arch-Rival to Join Coalition, The Diplomat, 2024.8.29
글 : 김지혜 (뉴스레터 동동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