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모토로 29년 동안 발간 중인 월간 『작은책』 2024년 8월호에 실린 글이다.
2010년 말레이시아 정부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주는 전국에서 비시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사바주 인구 390만 명 중 4분의1인 거의 100만 명이 국적이 없는 신분의 주민인 것이다. 보르네오섬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필리핀 남부의 수백 개 섬들에는 이처럼 ‘국적’이 부여되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
무크민 난탕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주에 사는 서른 살 활동가이자 교육자다. 현지 사회운동단체 ‘보르네오 콤라드’의 창립자이자 활동가로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교육하며, 강제철거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기도 한다. 보르네오섬 북부의 작은 항구도시 타와우에서 나고 자란 그가 사회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고등학생 때부터다. 그 시절 보르네오섬에는 집회나 시위가 거의 없었고, 반대로 반도(말레이시아는 크게 말레이반도와 보르네오섬 일부로 이뤄져 있다)에는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방송되는 뉴스를 통해 시위 소식을 접하곤 했다. 시위 현장의 목소리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그리고 이슬람적 사회정의를 세속적으로 구현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던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정치나 사회운동에 높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2014년 사바주립대(Universiti Malaysia Sabah)에 입학한 그는 곧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말레이시아 학생운동은 대개 야당 산하의 청년조직과 연결돼 있는데, 무크민 난탕은 이런 조직들이 투명하지 않다고 느꼈고 견해도 달랐다. 대신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동아리 ‘카르마’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의 이런 활동은 이후 ‘학생의 목소리’(Suara Mahasiswa)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는 ‘거리의 책’(Buku Jalanan)이나 ‘거리의 식당’(Dapur Jalanan) 등 다양한 사업들로 이어졌다.
동아리 활동만 했던 건 아니다. 4학년이었던 2017년, 그는 학생회 선거에 출마해 그 시기 사바주립대의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2017년 2월에는 민주선거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무크민 난탕이 느끼기에 당시 학생회는 와이파이 설치나 세탁기 같은 복지 문제만 신경쓰고, 캠퍼스 바깥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지독하리만치 무관심했다. 말레이시아 학생운동의 쇠퇴는 2015년 PAS(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된 말레이시아 이슬람당)의 분열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분열이 학생운동가들의 분열로 이어졌고, 이것이 학생회 활동의 침체로 이어진 것이다.
무크민 난탕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연극과 문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또, 예술과 사회운동을 결합해 정치적인 사업을 기획하곤 했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교류하고 모일 수 있길 바랐다. 여러 모임들에 나눠져 있는 사람들이 정부 당국에 의한 주거지 철거같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이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졸업 후 ‘보르네오 콤라드’를 설립하게 된 것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보르네오 콤라드가 운영하는 세콜라 알떼르나티프(Sekolah Alternatif, 학교)에 다니는 바자우족 청소년들은 글쓰기와 수학, 상업, 농업, 재봉, 요리 등 기본적인 삶의 기술을 배운다. 무엇보다 중점으로 두는 것은 무국적자인 이 청소년들이 직면하게 될 노동 착취나 성희롱 등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가르쳐주는 것에 있다.
바자우족이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바주 해안가 일대에 사는 약 50만 명의 소수민족이다. 보통은 수상가옥을 짓고,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바자우족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수영을 배우고, 성인이 되면 최대 8분까지 잠수를 할 정도로 바다와 친숙하다. ‘바다 집시’ 혹은 ‘바다의 유목민’이란 별칭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바자우족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남중국해 일대에 약 130만 명이 흩어져 있는데, 말레이시아 정부는 무국적 신분인 바자우족 다수를 ‘불법 이민자’로 간주한다. 그러다보니 교육·의료 등 기초적인 복지혜택에서 동떨어져 있고, 최근에는 당국에 의해 추방되거나 구금될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지난 6월 27일, 무크민 난탕은 페이스북에 강제철거 영상을 업로드했다는 이유로 이것이 ‘선동죄’에 해당될 수 있다며 경찰에 체포됐다. 무크민 난탕과 연대해온 운동단체들은 “소외된 공동체에 대한 인정을 촉구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또, 말레이시아의 선동죄가 1948년 식민주의에 맞선 해방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악법이라며,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고 규탄했다. 현지 인권운동단체 수아라 라캇 말레이시아(Suara Rakat Malaysia)는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셈포르나 지역경찰이 선동법에 따라 무크민 난탕을 조사한 것은 이 오래된 법률이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을 단속하는 데 처음으로 악용된 사례다. 이것은 정부 책임성 개선에 대한 공약과 연방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선동법에 대한 이러한 노골적인 남용은 또한 3월에 연립 정부가 입법을 개정하기로 한 공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체포 당일 보석금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바자우족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무크민 난탕과 그 동료들의 활동에 대한 탄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자우족 공동체는 계속 위협받고 있고, 정부 당국이 보기에 이들의 저항은 눈엣가시다. 이런 상황에서 말레이시아의 35개 사회운동단체들은 7월 4일, ‘반란법’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7월 8일, 셈포르나 대안학교의 신입생들이 함께 한 가운데 개학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함께 한 20살 모흐드 하이칼 누키만 빈 줄키플리는 교사인 무크민 난탕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오늘과 싸우지 않는다면, 내일 우리는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그들 역시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셈포르나 해안가에서 열리는 이 작은 학교에 바자우족의 미래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시작한 무크민 난탕은 단단하게 그 희망을 만들고 있다.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