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탄압에 맞선 한·일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여기서부터」

노조 탄압에 맞선 한·일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여기서부터」

개별화를 강요하는 공권력의 폭력, 공동체 상영회에서 함께 대안을 고민하다.

2024년 7월 7일

[동아시아]일본건설노조, 일본, 노동조합, 해고, 영화

고바야시 타키지의 “게공선”은 1920년대 일본의 식민주의적 확장 과정에서 훗카이도 ‘개척’과 북양어업 ‘공장선박’의 혹독한 노동 실태를 고발하며 동아시아 프로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평등한 개인의 계약을 약속한 자본주의의 환상과는 달리, 조선인 이주노동자와 일본 각지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일하던 당대의 노동 현장은 노골적인 폭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 권력의 의도가 관철되는 공간이었다.

인격적인 예속과 비인간적 폭력이 횡행하던 일터의 모습은, 이른바 ‘시장경제’의 성장과 ‘민주화’가 진전된 전후 사회에선 사라진 것인가? 당장 21세기에 들어서도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조폭’이라 비난하며 공권력으로 짓밟는 정치 권력의 모습을 보면, 파편화와 개별화를 강제하려는 노골적인 폭력은 여전해 보인다. 그것은 동아시아 자본주에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핵심적 구성요소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2024년 6월 18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여기서부터”의 공동체 상영회가 열렸다. “여기서부터”는 일본 간사이 레미콘 건설노동자들이 경험한 노동조합 탄압을 조합원들의 일상적 경험을 통해 조명한 작품이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건설기계지부, 노동해방마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공동주최한 부산지역 상영회에는 부산에서 엄혹한 건설노조 탄압을 뚫고 활동을 이어온 건설노조 조합원들도 자리했다.

2018년경 시작된 간사이레미콘 탄압 사건은 오사카와 교토를 비롯해 간사이 지역에서 활동해온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이하 연대노조) 간사이레미콘지부를 파괴하기 위한 대규모 공안 사건이었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력을 동원한 업무 방해’, ‘강요’, ‘공갈’ 등으로 몰아가며 조합원의 탈퇴를 유도하던 노조탄압은 작년 한국에서 정부가 주도해 진행된 건설노조 파괴와 무척이나 유사한 모습이었다. 정당한 노조 활동을 ‘건폭’으로 몰아가며 노동자에게 극심한 압박감과 모멸감을 강요하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한국 공권력의 행태와 겹쳐 보였다.

연대노조 간사이레미콘지부는 대체 어떤 활동을 해왔기에 이토록 노골적인 정치적 탄압을 직면하게 된 것인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건설노동자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하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할 뿐 아니라, 기사 개인에게 책임을 개별화하는 파편화 속에서 노동조건을 함께 개선해가기 어려웠다. 간사이 지역에 수많은 중소규모 하도급업체가 산재하는 가운데, 레미콘 노동자들은 대기업 종합건설사의 압박으로부터 생존권과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지역 차원의 조직화를 시도했다.

180개 기업 대표자 300명이 참여한 1982년 단체교섭
180개 기업 대표자 300명이 참여한 1982년 단체교섭

그렇게 196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간사이레미콘지부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시기 가격 인하 압박으로 양산된 불량 콘크리트가 사회적 재난을 초래했음을 지적하는 등, 건설업계의 정의를 위한 투쟁이 시민의 안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렸다. 그런 과정에서 영세한 레미콘 회사들이 ‘오사카광역레미콘협동조합’을 구성해 대기업으로부터 적정한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기반으로 콘크리트의 품질과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런 협동조합이 자본의 이윤 논리 속에 변질되는 가운데, 일용노동자 정규직화와 노동자 임금 인상을 거부하고자 한 이사진이 공권력과 결탁해 노조탄압을 시작한 것이다.

노조를 ‘폭력 조직’으로 매도하는 보도만 범람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츠치야 도가치 감독은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왔고 탄압에도 굴하지 않던 레미콘 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싱글맘’으로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레미콘 노동자가 되었던 마츠오 세이코는 여성 화장실 확충, 생리휴가 보장을 비롯해 노조를 통해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경험을 했기에 탄압 속에서도 노조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런 그는 정규직에서 해고된 지금도 일용직 노동자로서 노조를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변호사조차 예측하지 못한 부당한 장기 구속에 내몰리며 경찰의 노조 탈퇴 회유에 흔들리던 요시다 오사무는, 가족과 동료들의 격려를 통해 견디며 끝끝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권력과 언론이 악마화해온 조합원들은 그저 일상 속에서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조를 택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삶의 터전을 건설하는 직업적 자긍심을 키워온 시민이자 노동자였던 것이다.

많은 가족과 동료들이 수사와 해고 앞에 노조를 떠난 상황에서도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일본 노동자들을 스크린으로 만나며 객석 곳곳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엔 건설노조 교선국장과 부산기계지부 사무국장이 자리한 가운데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부당한 건설노조 탄압에 맞서 노동자들을 변호해온 법률가는 유죄 판결 가능성이 높지 않음에도 일단 수사와 기소부터 하고 보는 공권력의 모습에서 노조 파괴라는 정치적 의도가 읽힌다고 이야기했다. 해고자로서 장기간 노동권과 노동안전을 위해 운동을 이어온 부산지역 활동가는 일상 속에서 노동운동을 이어가게 되는 동력에 대해 공감했다. 앞을 기약할 수 없는 구속을 감내해야 했던 부산지역 건설노조 활동가의 목소리, 노조 파괴 속에서도 절망이 아니라 자긍심을 이야기하는 청년 조합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교양작품상을 수상한 KBS 다큐멘터리 “일본사람 오자와”를 본 많은 관객들은 왜 주인공 오자와 타카시가 터무니없는 혐의로 그토록 장기간 구속되어야 했는지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오자와 부부는 외투자본의 ‘먹튀’에 대항해 일본으로 원정 투쟁을 감행한 한국 노동자들을 수십 년에 걸쳐 지원하며 현지에서의 연대를 구축해왔다. 2021년 투쟁 과정에서 피켓을 든 상태로 생긴 가벼운 신체 충돌을 이유로 남편 오자와 타카시는 ‘폭행’ 혐의로 7개월 동안이나 구속되어야 했다. 이토록 터무니없고 자의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공권력은 법의 집행이 노동운동을 비롯한 저항의 움직임을 잠시라도 멈추고 와해시키려고 하는 목적은 아닌지 질문하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더는 포섭할 수 없는 사회적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공권력과 ‘법치’가 이전의 허울마저 벗어던지고 더욱 노골적인 적대로 비화하는 모습은 한·일 양국에서 공통적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함께 촬영한 연대 메시지 사진
영화 상영이 끝나고 함께 촬영한 연대 메시지 사진

비록 감독이나 일본 건설노동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갖지는 못했지만, 공동체 상영은 스크린으로나마 국가폭력의 격화 앞에서 국경을 넘어 공감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오늘날 건설노동자와 화물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노동자, 그리고 파편화된 고용형태로 끊임없이 새롭게 양산되고 있는 불안정노동자를 개별화하기 위한 공권력의 폭력은 나날이 심화하고 있다. 그런 파편화를 넘어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연대와 조직화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자본주의적 축적과 그 시작을 같이해왔다. 당장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부산지역 등 항만지역 부두노동자들과 일용직 ‘자유노동자’들의 투쟁은 중요한 시발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하나의 대공장에서 집단적으로 일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구축했던 지역적 연대와 파업이 투쟁과 저항의 역사에서 무척이나 원초적이고 또 중요했음을 잘 보여준다.

역사 속에서 그런 노동자들은 평등한 노동조건과 자긍심을 만들어가고, 지역의 다양한 직종과 연대를 넓혀갔으며, ‘갈라치기’로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려는 권력의 시도에 맞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 한·일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국경을 넘어 서로 만나고,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터의 바닥을 높여나갈 때, 그리고 보편적인 권리와 안전을 위해 시민사회가 능동적으로 노조탄압에 맞서 싸울 때, 파편화와 개별화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제국 해군의 공권력이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님을 깨달은, 하나의 선박을 넘어 함께 어깨를 맞대기로 다짐한 “게공선” 노동자들의 외침을 “여기서부터” 다시 되뇌어보자. “그리고 그들은 들고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더!”

글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