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성소수자 운동에게 남은 과제

태국 |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성소수자 운동에게 남은 과제

동성결혼 합법화는 성소수자 운동의 명확한 성과다. 그러나 동시에 핑크워싱, 즉 태국 의료산업과 국가의 이윤 증식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4년 7월 8일

[동아시아]태국성소수자, 퀴어, 태국, 모두의 결혼, 프랑스, 네덜란드

지난 3월 27일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데 이어, 6월 18일 태국 상원에서 동성결혼법이 찬성 130표, 반대 3표의 압도적 표 차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내각과 국왕 승인 후 120일 후인 10월경 발효될 예정이다.

법안은 모든 성별의 결혼 상대자에게 법적, 재정적, 의료적 권리를 부여한다. 기존의 ‘남녀’, ‘남편과 아내’를 ‘두 개인’, ‘배우자’ 등 성 중립적 용어로 바꿨으며 18세 이상이 되면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자녀 입양권, 배우자 재산 상속권, 세금 공제, 복지 혜택 등도 이성 부부와 동등하게 보장받는다.

이로써 태국은 아시아에서 3번째, 동남아시아 최초의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가 됐으며, ‘성소수자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수사를 얻게 됐다. 성소수자 단체인 포티파이라이츠(Fortify Rights)의 무크다파(Mookdapa Yangyuenpradorn) 인권위원장은 결혼 평등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성소수자들의 기본권을 부정했던 차별적 제한이 종식됐다고 평가했다.

태국 성소수자 운동 성과의 기저에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운동과 이중 억압에 맞선 여성·성소수자들의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이 있었다. 태국의 성소수자들은 결혼 평등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 왔다. 성소수자 의제는 계속된 쿠데타 및 왕실의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운동과 함께 급진화됐다. 일찍이 2001년에는 동성결혼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2020~21년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들은 태국 민주화 운동에 성평등 의제를 제기하고, 낙태 및 동성결혼 합법화와 성노동 비범죄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 시기 결혼 평등 집회에 참여한 시위자들은 긴급령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태국 정부는 긴급령을 연장해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을 탄압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결혼 평등법 초안위원회는 동성애 혐오적 태도를 보였고, 성소수자에게 이성애자와는 다른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활동가들은 성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2022년 혼인 평등을 위한 무지개연합의 청원에 35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대중의 지지를 증명하기도 했다. 이런 꾸준하고 치열한 대중운동이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제도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의 이면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주류화 전략과 구조적 차별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의 결혼할 자유는 쟁취되어야 하지만, ‘결혼’ 그 자체가 진보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결혼이 합법화된 것만으로 동성 커플과 성소수자의 안락한 삶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태국은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심한 국가로, 낮은 출생률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와 임금, 안락한 주택, 사회복지가 충분하게 지원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러 측면에서의 구조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여전히 동성커플과 성소수자의 삶은 쉽게 위협받을 수 있다.

핑크워싱으로 가려지는 성소수자 차별

태국관관청 ‘GoThaiBeFree’ 웹사이트의 홍보 사진
태국관관청 ‘GoThaiBeFree’ 웹사이트의 홍보 사진

태국 관광청(TAT)은 태국을 동성애자 커플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로 홍보해 왔다. 2020년 1월, 태국 관광청은 성소수자 여행 마케팅의 일환으로 #GoThaiBeFree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소셜미디어에는 맛있는 음식, 코끼리 보호구역, 아름다운 사원, 멋진 호텔, 이국적인 시장, 깨끗한 해변, 호화로운 옥상 수영장 등 태국 최고의 시설을 즐기는 성소수자 커플들을 보여주는 5개의 비디오 클립이 게시되었다. 비디오에 묘사된 성소수자 대부분은 평범한 태국인이 아닌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는 극소수 특권층의 이미지다.

코로나 이전 성소수자 관련 산업은 태국 경제의 20%를 차지했다. 코로나 시기 태국은 관광산업 특수를 누릴 수 없었고, 국가 경제는 큰 침체를 겪었다. 태국관광청은 2023년부터 성소수자 마케팅 전략을 다시 시행하고 의료산업 등과 연관시키면서 관광 수입 증대를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태국관광청은 ‘방콕 프라이드 행진’의 자금지원과 홍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이 지원의 목적이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아닌, 성소수자를 이윤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에 가깝다는 의구심이 든다.

네덜란드 기반 성소수자 마케팅 전문 아웃나우컨설팅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세계적으로 성소수자 관광객이 연간 2,110억 달러(한화 약 254조 7,400억 원)를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정부는 성소수자들이 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아이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이성애자보다 양육의 부담이 없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주요 소비층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미용성형외과학회는 태국의 성전환 치료와 미용 관련 산업이 연간 360억 바트(한화 약 1조 3,280억 4,00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추산한다. 또, 이 규모는 매년 15~ 20%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번 동성결혼 법안에 따르면 성소수자 커플도 입양이 가능하며, 내국인 및 외국인 부부의 대리모 출산이 가능하다. 태국 정부는 역내 의료 및 건강 관련 산업의 허브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상업적 대리모 허용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처럼 태국은 성형 및 성전환 수술에 이어 제한 없는 대리모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의료관광 활성화를 통한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입지를 다지려 한다. 정부는 성소수자들의 재생산 권리 보장이 70년 만에 최저로 떨어진 출생률을 끌어올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입양과 대리모 출산을 법적 권리로 부여해 진일보한 성소수자 친화적 국가라는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2021년 태국 룸피티경찰서에 연행된 성소수자 활동가 시리 닌라프뤼크(Siri Ninlapruek)와 시라홴 아토히(Siraphob Attohi)
2021년 태국 룸피티경찰서에 연행된 성소수자 활동가 시리 닌라프뤼크(Siri Ninlapruek)와 시라홴 아토히(Siraphob Attohi)

그러나 태국 정부는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수많은 국내 성소수자의 항의는 무시하거나 탄압하고 있다. 부유하지 않은 대다수의 태국 내 성소수자들은 입양과 대리모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트랜스젠더와 성노동자들의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관광수입의 많은 부분을 이들이 벌어들이지만 태국 정부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거리 곳곳에서 평범한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이윤중심적인 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성소수자 운동의 명확한 성과다. 그러나 동시에 핑크워싱, 즉 태국 의료산업과 국가의 이윤 증식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평등이 있는 한 사라질 수 없는 차별

네덜란드와 유럽 일부 국가들은 20년 전 이미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많은 성소수자가 자유롭게 결혼/이혼하고 있으며 기본권이 잘 보장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은 차별과 억압에서 온전히 벗어났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는 여전히 ‘이상적 여성상’을 뽑는 미스네덜란드, 미스스페인 대회가 열린다. 이는 이들 나라에서 남녀 이분법적 성규범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네덜란드 기반의 성소수자 마케팅회사인 아웃나우컨설팅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성소수자 시장’, 즉 소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공략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구상해 이윤을 벌어들인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은 영국·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전 세계의 관광청과 주요 은행, IBM·존슨앤존슨·토요타 등의 대기업들이다. 이 회사가 제작하는 보고서는 주로 전 세계 성소수자 시장 상황과 여행시장에 대한 분석, 기업의 성소수자 포용 정도가 회사업무의 효율성과 능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최근 유럽 각지에서 이민자와 난민 혐오, 무슬림 혐오로 극우가 힘을 얻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성소수자 혐오와 반유대주의로 지지층을 모았던 프랑스의 극우 국민연합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이은 경제 불안정을 적극 이용해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켰다. 이들은 반동성애 이미지로 묘사되는 무슬림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정서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성소수자와 유대인 혐오가 이민자와 무슬림 혐오로 주된 타겟을 틀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 타겟은 언제든지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혐오와 차별에는 근본적으로 같은 힘이 작용한다. 성소수자, 이주민, 무슬림 등을 차별하고 공격해 국내의 경제난과 불평등 및 지배층의 무능을 그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취약한 특정 정체성을 선택해 공격하는 차별과 혐오의 정치는 어떤 국가에서도, 어떤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 대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을 뿐이다.

실제로 동성혼 합법국인 영국에서는 2019년 기준으로 동성애 혐오 범죄가 20% 증가했다. 영국 성소수자 인권단체 스톤월(Stonewall)의 사샤 미스라(Sasha Misra) 부회장은 “일련의 사건들은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단 증거”라며 “영국이 성소수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라는 건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역시 동성혼 합법국이지만 2023년 성소수자를 겨냥한 혐오 범죄는 2022년보다 13% 증가한 4천560건으로 집계됐다. 동성애혐오방지협회(l'association Stop Homophobie)의 대변인 막심 해스(Maxime Haes)는 "극우와 종교적 극단주의가 부상해 동성애 혐오 담론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각종 권리가 ‘합법화’되고 ‘선진화’된 서구사회 어디에서도 인종차별, 동성애혐오, 여성혐오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 법 제정 운동을 넘어선 체제 변혁에 있음을 보여준다.

태국이 동남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이뤄낸 동력 역시 비민주적 국가와 불합리한 체제에 대한 단호한 투쟁에 있었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은 직장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하고 있기에 이 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불평등이 만연한 구조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억압과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우리는 완전한 평등과 완전한 차별의 종식을 쟁취함으로써, 기존의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동시에 성소수자 결혼의 권리를 지지하고 이를 위한 운동에 연대함으로써 차별의 종식을 위한 체제전환운동에 함께 해야 한다.

참고자료

  • Thai Senate approves Marriage Equality law, Prachatai, 2024. 6. 20.
  • Verita Sriratana, “Thailand—A Queer H(e)aven?” & “Queering Misogyny” in the Contexts of Thai Constitutional Court Ruling against Same-Sex Marriage and the Roe v. Wade Reversal, Prachtai, 2022.7.19
  • Activists call for parliament to pass Marriage Equality bill, Prachatai, 2022.9.9
  • Sebastoan Strangio, Thailand’s Parliament Passes Landmark Marriage Equality Bill, The Diplomat, 2024.3.24
  • Thailand: Expedite Passage of Marriage Equality Bill, Ensure Rights for LGBTI+ Persons, Fortify Rights, 2024.5.30
  • 윤세미, 외국인 부부, 태국서 대리모 출산 가능해진다…의료 관광 확대 기대, 머니투데이,2024.4.02
  • 윤창수, 태국, 동남아 최초로 동성결혼 허용, 서울신문, 2024.6.19
  • 한휘연, "LGBT 환영합니다"…태국 관광청 관련 산업 본격 지원, 뉴시스, 2023.6.13
  • 윤현, 태국, 동남아 최초 동성결혼 합법화... "기념비적 진전", 오마이뉴스, 2024.5.19
  • 이에스더, ‘무지개 인권 선진국’ 英, 성소수자 혐오범죄 19% 증가, 한국일보, 2021.8.30
  • 송진원, 프랑스서 작년 성소수자 혐오범죄 13% 증가, 연합뉴스, 2024.5.16
  • 박은경, ‘이민자 문제’로 민심 파고든 극우…마크롱의 ‘승부수’는 빗나갔다, 경향신문, 2024. 7.2

글 : 지혜

교열 :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