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임금 인상, 최저임금 투쟁에 달려있다
2024년 6월 21일
“최저선이 최전선이다.” 최저임금은 노동과 자본이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제도이다. 노동조합, 노동운동에서는 최저임금 투쟁을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노동조합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최저임금의 중요성은 정부 자료를 보더라도 분명하다.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를 기반으로 뽑아낸 최저임금 영향률과 미만율 자료를 보자. 2024년 최저임금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15.4%, 334만7천여명, 최저임금 조차 못 받는 노동자는 275만6천여명으로 전체 12.7%로 추정된다.
실제영향은 통계보다 훨씬 세다. 최저임금 인상액과 인상률은 거의 모든 노동자의 임금, 거의 모든 노동조합의 임금교섭에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모든 교섭에서 사측은 조합 요구안을 받을 때부터 결렬 선언 직전까지 초지일관 이렇게 이야기한다. “최저임금이 240원밖에 안 올랐는데 그 이상은 우리도 인상할 여력도 명분도 없다.” 지자체 생활임금도 최저임금 인상에 정비례한다. 딱 최저임금만 받든, 약간 웃돌든, 그것조차 못 받든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결정적’이다.
사례는 수도 없다. 대학 청소노동자 임금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다. 내가 활동하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복수의 대학 사업장, 복수의 용역업체들을 한데 모아 ‘집단교섭’을 한다. 노조, 투쟁의 힘으로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임금을 쟁취했지만 매년 최저임금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다. 용역업체와 원청 대학은 최저임금 인상분 정도만을 올린다. 2023년 최저시급은 전년 대비 440원 올랐고 우리는 400원으로 합의했다. 올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고려해 270원 인상을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우리는 한끼 식대 2700원을 3100원으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대학, 업체, 서울지노위는 거부했다.
최저임금 투쟁, 최저임금 정치
노동도 자본도 어깨 걸고 싸운다. 그래서 정부 마음대로 결정할 순 없다. 최저임금법은 결정기준과 절차를 세세하게 정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은 3월 말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해 달라 고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 요청해야 한다. 최임위는 노동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노동부 장관 제청) 9명, 전문위원 3인(정부 관료)으로 구성되는데 심의 요청 90일 내에 최저임금안을 의결해야 한다. 노동부 장관은 최임위가 심의·의결한 안을 8월 5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클릭]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 구성
언뜻 노-사-정 3자 논의기구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임위 전원회의에서 노동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은 석 달 동안 치열하게 싸운다. 장외, SNS, 언론에서 노동과 자본은 치고받는다. 이 과정은 비교적 상세하게 시민들에게 중계되고 여론이 형성된다. 결국 심의기한을 넘기게 되고, 노사 양측 모두 퇴장한 채 공익위원 9명이 ‘정무적’ 결정을 내린다. 최저임금은 계급투쟁, 여론, 통치, 정치의 결과다.
[잠깐. 물론 최임위가 그 중요성만큼 투명하지는 않다. 최임위는 주요 심의자료를 최저임금 결정 뒤에야 공개한다.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 보고서’ ‘최저임금 적용효과에 관한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가 그것이다. 공익위원 선정 과정도 문제가 많다. 자본의 대리인으로 나온 것처럼 일방적으로 임금인상을 억제하거나, 차등 적용을 주장하며 최저임금의 보편성을 해체하려는 인사들을 정부는 공익위원으로 임명한다. 이런 문제들이 최저임금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심의 과정을 ‘나와 상관없는 정쟁’으로 만든다.] [관련기사:생계비 등 최저임금 심의자료가 액수 결정 뒤 공개된다고요?]
실질임금을 삭감한 윤석열 정부
노동자 입장에서 최저임금은 너무 적다. 2024년 최저임금은 시급 9860원, 일급 7만8800원, 월급 206만740원이다. 풀타임 노동자가 세후 2백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꼴이다. 전년 대비 시급 240원이 올랐을 뿐이다. 인상률은 2.5%로 생활물가상승률(3.9%), 소비자물가상승률(3.6%)에 미달한다. 그러니까 지난해 정부는 ‘실질임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최저임금의 목적은 △노동자의 생활안정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다. 최저임금을 통해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해서 경제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최임위가 직접 밝힌 제도의 취지다. 결정기준은 생계비, 유사노동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이다. 이례적으로 10% 이상의 인상률을 기록한 2018년, 2019년을 빼면 최근 15년간 최저임금은 오히려 임금격차를 심화하고 소득분배를 악화했다.
최저임금을 탈환당하지 않고 확장하는 투쟁
정부와 자본은 최저임금을 무력화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상을 억제하고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노동몫 자체를 줄였고,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해 최저임금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이제는 업종, 지역, 나이라는 이슈로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선별적으로 포섭하려고 한다. 특히 업종별 차등 적용을 공세적으로 추진하며 교섭의 의제를 ‘인상 수준’이 아닌 ‘차등 적용’으로 옮기려고 한다. 또한 자본과 보수정당은 지역별 차등 적용, 고령노동자 적용 제외도 거론하며 공세를 강화한다. 차별, 초과착취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으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의 설문조사와 여론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교섭 의제를 ‘차등 적용’으로 옮기려는 저들의 시도는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인상 수준’을 높이는 것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의제이다.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노동자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내년 최저시급이 1만1천원(월 23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67.8%였다. [관련기사: 직장인 68% "내년 최저임금 1만1천원 이상 돼야"] 다른 조사결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저들은 최저임금이라는 개념을 탈환하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기본권’ ‘평등’에 더 가깝게 붙어 있다. 저임금 불평등 열정페이 직장갑질 헬조선의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라는 최저선은 지켜내고 밀고 나가야 할 최전선이다. 실질임금 인상과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대폭 올리자고 요구하고 투쟁할 수 있을 때다. 오만가지 고용형태와 임금체계로 생겨버린 최저임금 사각지대를 확인해야 할 때다. 안전운임제가 화물노동자를 뭉치게 하고 살려냈듯,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절한 최저임금제도를 설계하고 설명할 때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들이, 사회운동들이 최저임금이라는 강한 고리로 함께 새로운 투쟁을 준비할 때다.
글: 박장준(노동조합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