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를 통해 단결된 힘을 구축한 말레이시아 그랩 라이더들
2024년 6월 7일
이 글은 Asian Labour Review의 '동남아시아의 그랩'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 "Building Power Through Associations: Experience of Grab Drivers in Malaysia"을 번역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인구보다 자동차 수가 많은 나라다. 세계에서 자동차 보유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교통 혼잡과 이동성(모빌리티)는 말레이시아에서 매우 골치 아픈 문제다 .
차량호출 플랫폼 그랩(Grab)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은 운수 노동자와 승객들의 공급을 창출한다.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부수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교통 혼잡을 초래하는 비효율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인해 이동을 위해 Grab에 의존한다.
현재 Grab은 100,000명 이상의 차량호출 운전자와 2천만 명의 등록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차량 공유 환경을 장악하고 있다. 주부부터 실업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유연하고 편리한 업무 방식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추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 때문에, 그랩 라이더가 되고 싶어 한다.
말레이시아의 싱크탱크 ‘더 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긱 노동자는 직무 유연성을 매우 선호한다고 답했다. 비정규직(특수고용)이라는 지위 덕분에 그들은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언제라도 최대한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하지만 시장 가치가 100억 달러가 넘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타트업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의 그랩 라이더들은 생활비 인상과 권리 보호를 위한 포괄적 규제의 결여로 인해 임금 소득의 정체에 직면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독립 계약자로 분류된 긱이코노미 노동자들은 1955년 제정된 고용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 이러한 분류는 1959년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기존의 임시직 노동자들과 달리, 노조 설립 자체가 금지되어 있음을 뜻한다. 실제 그것이 허용되더라도, 말레이시아의 노동조합법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제한한다.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설립되기 위해서는 고용주의 승인을 요구하고, 일반 노동조합은 허용되지 않으며, 조합원들은 특정 산업·기관·직업에 종사하는 직원으로 존재해야 한다.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없는 그랩 라이더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선택만이 남게 된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협회(association)를 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협회는 상호 지원, 의사소통 및 이해관계자 참여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면에서 노동조합보다 더 제한적이지만, 협회는 노동조합에 대한 일부 제한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협회는 법인이 아니긴 하지만, 법인으로서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단체 교섭이나 정부 로비 활동에서 회원을 대표하는 것이 금지되지는 않는다.
운전자의 고민을 위한 소통 플랫폼
호세 리잘(Jose Rizal)은 우연히 긱 이코노미에 합류하게 됐다. 그는 2016년에 직장을 잃고 실직 상태가 됐었다. 이듬해인 2017년 그는 현지 식당에서 그랩의 ‘파트너’(운전자를 의미) 가입 이니셔티브를 접하고 차량호출 플랫폼의 운전자로 일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그는 말레이시아 차량호출 운전자 복지협회(Persatuan Kebajikan E-Hailing Malaysia, PKEH)의 상임 활동가다. 4,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PKEH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1월 협회로 공식 등록됐다. 회원의 81%가 그랩 라이더다.
또한 PKEH는 2020년 8월에 설립된 느슨한 운전자연합 조직인 말레이시아 차량호출 운전자 연맹(Gabungan E-Hailing Malaysia, GEM)의 산하 조직이기도 하다. 같은 해에 GEM은 분쟁 중인 운전자들이 도움과 문제 해결책을 구할 수 있는 불만 접수 채널을 개설했으며, GEM의 회원조직들은 자발적으로 사건을 맡아 해결할 수 있다.
운전 노동자들이 직면한 주요 문제 중 하나는 고객과의 분쟁으로 인해 부당한 비활성화, 즉 항소할 여지도 없이 그랩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잘은 이렇게 말했다. “때때로 승객들은 매우 까다롭고 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그랩 운전자들에 대해 거의 공감하지 못해요. 운영 플랫폼은 끔찍한 교통 체증, 승객 불만, 부당한 보상을 견뎌야 하는 운전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승객편에 서는 경향이 있죠.”
운전자의 수입과 직업으로서 전망은 고객만족에 달려 있다. 불만이 있는 고객은 (운전자에게) 낮은 평점을 주거나 운전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는 (운전자의) 인센티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혹은 운전자가 앱으로부터 영구적으로 퇴출될 수도 있다.
2020년 PKEH는 그랩 운전자 아이비 로(Ivy Loh)의 부당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이비는 짐을 너무 많이 들고 탑승한 고객과 논쟁을 벌였고, 이는 불만 사항으로 접수됐다. 당시 아이비는 변호사와 PKEH 회원들의 도움으로 2년 7개월 동안 노동법원부터 항소법원까지 긴 법원 싸움을 거쳤고, 성공적으로 일터로 복귀했다.
안타깝게도 PKEH는 다양한 성격의 수많은 불만 사항을 처리할 역량이 부족하여 11개월 만에 이 지원 채널을 폐쇄했다. 이제 PKEH는 말레이시아의 차량호출 산업 규정을 강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정부 로비에 활동을 집중하고 있다.
까다로운 고객들 외에도 그랩 운전자들은 앱의 자동화 및 감시 메커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리잘에 따르면, “플랫폼 운영자는 AI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한다. 가령 “운전자가 온라인에 접속하면 시스템은 운전 가능여부를 포착하고 운전자는 변동하는 요금에도 불구하고 ‘자동 수락’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운전자가 온라인에 접속할 때마다 앱이 자동으로 차량 호출을 수락하기 때문에 운전자는 몇 시간씩 쉬지 않고 도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말레이시아의 도시 지역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끔찍한 교통 체증과 열악한 도로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운전자들은 혼잡한 지역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동 중에도 픽업을 자동 수락해야 하기 때문에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교통량이 많은 시간대에 더 높은 요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그랩 운전자들은 인센티브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앱을 끄 거나 승객의 요청을 무시하여 엄청난 요금 인상을 초래했다.
그랩은 현재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동적 요금 책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서비스 수요가 높을 때는 운임 가격이 오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급 측면이 타격을 입을 경우에는 운임 가격이 변동하는 것은 당연한다.
또 다른 PKEH 활동가 이스칸달(Iskandar)은 이렇게 말했다. “일부 고객은 그랩의 요금 인상 때문에 우리 운전자에게 화를 내겠지만, 이러한 요즘은 AI와 동적 가격 책정 메커니즘에 의해 규제되거든요. 결국 고객은 더 저렴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지만 운전자들은 주어진 요금 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하죠.”
한편 리잘은 “지금 구매하고 추후 결제” 또는 “그랩 대출 받기”와 같은 인앱 기능이 플랫폼에서 운전자의 데이터를 악용해 가격을 조작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그랩은 차량호출 플랫폼 사업자로서 동시기 경제상황에 따라 운전자의 임금과 승차요금을 결정할 수 있는 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고객들과 운전자들은 이러한 가격 책정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지 않다. 심지어 육상 기반 대중 교통에 대한 규칙을 규제하고 시행하는 국토교통부마저 마찬가지다.
그랩은 기술기업이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택시 산업과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자가용 차량호출 플랫폼 서비스가 운송 회사로 국한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모든 차량호출 플랫폼의 운전자들은 택시와 마찬가지로 공공 서비스 차량 면허, 차량호출 관련 보험을 취득하고 연간 차량 점검 등을 수행해야 한다.
차량호출 플랫폼 산업은 기존 택시의 기술을 채택하고 있지만, 요금 제도는 채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현재 표준 택시 요금이 킬로미터당 1.20링깃(한화 350원)으로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차량호출 플랫폼의 요금은 1970년대부터 시행된 요금인 1킬로미터당 0.70링깃(205원)~0.90링깃(262원)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규제가 반드시 운전자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 운전자는 서비스, 유지보수 및 여러 면허들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며, 회사는 “ 작업장 안전”을 유지하는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칸다르는 차량호출 플랫폼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택시 산업을 “복사+붙여넣기”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런 규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기존 방식을 통해 새로운 산업에 접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디지털 기술과 자동화가 불러온 변화를 언급하며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미래 지향적인 방법을 채택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맹조직인 GEM 지도부는 차량호출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노동자의 조건(요금, 사회보장, 일자리 전망)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대정부 로비에 중력하고 있다. 이들은 연합 회원 조직들로부터 피드백을 수집하고, 이를 취합해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식 공유 및 외부 참여
그랩 운전자인 아즈릴 아흐맛(Azril Ahmat)은 약 300명의 회원을 보유한 말레이시아 그랩 운전자 협회(GDMA)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PKEH와 마찬가지로 GDMA 역시 그랩 사측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요구에 맞서 투쟁하고 준-노동조합으로 기능하기 위해 2017년 설립됐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는 그랩과 우버(Uber)가 유일한 차량호출 플랫폼 사업자였다. 2019년까지는 (차량호출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자유롭게 규칙을 설정하거나 부과할 수 있었다.
아즈릴은 다른 그랩 운전자를 지원하는 업무 덕분에 협회의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GDMA에 합류하기 전에는 운전자에게 수입을 극대화하면서 도로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매월 식당에서 수업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운전자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죠.”
(협회의 운전자 대상 교육에서) 아즈릴은 다른 운전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식을 정리하고, 수업을 듣는 운전자들에게 전수한다. 그는 “그랩 운전자는 운전자가 스스로 설정한 하루 소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휴일부터 근무 일정까지 쿠알라룸푸르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재정관리 방법도 가르쳐줬다”고 한다. “운전자들은 매일 현금으로 급여를 받기 때문에 매달 청구서 및 기타 약정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지출에 더욱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는 2,000명 이상의 운전자를 가르쳤으며, 매 수업마다 50~70명이 참석한다.
느슨한 연맹조직인 GEM의 일부로서 GDMA는 PKEH나 다른 운전자 협회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정부와도 관계를 맺어왔다.
말레이시아에는 마이카(MyCar), 맥심(Maxim), 에어아시아 라이드(AirAsia Ride) 등 29개의 차량호출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있다. 이러한 업체들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통해 요금을 낮추지만, 낮은 요금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운전자들이다.
그랩 운전자들은 요금 구조 조정으로 인해 불과 몇 년 만에 차량 서비스 요금(소득)이 50%~60% 감소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그랩 운전자들은 줄어든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2개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아즈릴은 그랩의 서비스 요금이 급격하게 하락한 원인을 자유시장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차량호출 플랫폼들은 최소한의 요구사항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으므로 경쟁이 치열해요. 모든 사업자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죠. 이는 고객에게는 좋지만, 운전자들에게는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연맹(GEM)은 더 나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정부 당국에 차량호출 서비스 요금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설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최저 가격은 운임이 너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연맹은 또한 그랩 탑승 가격이 너무 많이 인상될 경우 고객들이 택시와 같은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상한선 설정 역시 원한다.
아즈릴은 시장 세력들이 차량호출 서비스 가격을 결정하게 내버려둔 정부를 비판한다. 이어서 그는 “정부는 확실히 상한가나 하한가를 정할 권한이 있는데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 것을 우려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그랩 라이더로 일하는 친구들로부터 그곳의 그랩 가격이 말레이시아보다 30~40% 정도 높다고 들었어요.” 실제 태국의 생활 물가는 말레이시아보다 11% 높고, 인도네 시아의 생활비는 말레이시아보다 10.4% 저렴하다.
2018년 GDMA을 비롯한 협회들은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차량호출법(E-Hailing Act)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관료주의적인 걸림돌과 협의 부족으로 인해 논의가 지연되거나 중단됐다. 문제는 정부가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제정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일 것이다.
고용주들의 편에 서 있는 정치인과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결정 방식은 운전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규제를 만드는 데 주요한 걸림돌이다. 연구 수행부터 의회에서의 표결, 관보 게재까지의 전체 과정은 최대 6년이 걸릴 수 있다.
시간적 제약 외에도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은 말레이시아에서 심각한 경제 문제로 남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단 2년 만에 상품 가격이 50%에서 200%까지 오르기도 한다. 따라서 몇 년 전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정책 초안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할 수 있고, 법이 공포되자마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다.
요구 사항 반영하기
등록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고 사측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협회를 구성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랩 운전자들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조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다.
연맹조직 GEM에서 다양 한 협회들에 속한 운전자들은 보다 공정하고 높은 임금, 차량호출 산업에 대한 보다 포괄적 규제, 정식 고용으로의 전환, 자신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강력한 지원 시스템 등 유사한 요구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협회들이 통합을 고려하고 있을까? 리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수의 협회들이 존재하는 현 상황이] 운전자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아즈릴은 “통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각 협회 리더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자존심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성취도 있었다. 2018년 GEM과 여러 협회들은 예정된 차량 탑승 시각에 5분 이상 늦은 승객에 대해 3.00링깃의 벌금을 부과하고, 최소 요금을 3링깃(870원)에서 5링깃(145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지각 고객에 대한 벌금은 운전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아즈릴은 “벌칙을 시행하기 전, 승객들은 출발 시간 훨씬 전에 고의로 그랩 호출을 요청하는 경우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운전자들은 오랜 시간 (승객을) 기다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운전자들 입장에서 위약금과 최소 요금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노동자들은 그랩 본사 사무실을 여러 번 방문하고 그랩의 고위 경영진과 대화하려 했다. 이런 시도들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결국 운전자들은 그랩 사측의 담당자와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그랩과 논의를 시작한 다음 전문적인 법률 자문을 구하거나 인사부 장관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2023년부터는 그랩 드라이버들도 국가예산의 수혜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정부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노동재해로부터 보호하고, GEM의 요구사항 중 일부인 ‘노동자를 위한 기술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의무 보장을 위한 재정의 80%를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차량호출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여러 국가들과는 달리, 말레이시아 정부는 일반적으로 그랩 운전자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화는 너무 느리다.
PKEH와 GDMA 모두 그랩 운전자들의 더 나은 복지와 고용 안정성을 개선하는 데에만 만족하지는 않는다. 아즈릴은 “우리 운전자들은 정부가 주최한 수많은 워크숍과 원탁 토론회에 참석했고, 그들에게 많은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제공했지만, 바뀌는 건 거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아즈릴은 대중들과 그랩 운전자들 자신의 지지와 참여가 부족한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했다. “우리 협회는 운전자와 대중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말레이시아에는 약 10만명의 그랩 드라이버가 있지만 그 중 10%만이 우리가 하는 일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 같아요. 일부 운전자들은 협회에 가입하는 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더 높은 소득과 혜택을 요구하는 전략과 접근 방식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들 협회는 토론과 참여를 선호하며,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답했다. 아즈릴은 “우리는 토론과 참여를 선호하지만, 우리의 요구가 고려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고객, 운전자, 사측 모두에 이익이 되도록 더 나은 차량호출 플랫폼 관련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전략은 정부에 로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랩 운전자들은 파업에 돌입하면 소득이 줄어든다는 점을 걱정한다. GEM 소속 협회들의 차량호출 드라이버 중 70%는 부양 가족이 있는 중년층(35~45세)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그랩 파업은 주로 차량공유 서비스 운전자가 아닌 음식배달 노동자들이 주도해왔다. 운전자 협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파업을 조정하는 데 최소한의 도움을 제공했지만,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거부했다.
리잘은 운전자의 복지와 전망이 너무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운전자들이 단지 부수입이나 절박한 시기에 빠른 해결책이 아닌 계속해서 그랩 운전자로 일하며 괜찮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업계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정부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2023년) GEM은 말레이시아 인권위원회(Suruhanjaya Hak Asasi Manusia Malaysia, SUHAKAM)와 긴밀히 협력하여 긱노동자법(Gig Workers Act)을 제정하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는 자본가 대신에 운전자와 고객인 서민 친화적인 차량호출 산업 정책을 원합니다. 자본가들은 운전자에게 공정한 보상을 하지 않는 요금제도를 결정하고, 이윤의 상당 부분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요. 제도가 이를 허용한다면 이는 문제를 야기할 겁니다.”
- 참고 : 2023년 1월, 그랩은 출퇴근 시간대(오전 7시~9시, 오후 5시~8시)에 짧은 거리라고 하더라도 운전자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요금 제도를 개정했다. 사측은 ‘원거리 픽업’ 보너스, 시간당 캐시백, 시간 기반 요금제를 도입하여 분당 요금을 0.20링깃에서 0.43링깃으로 인상했으며, 킬로미터당 요금은 0.70링깃~0.25링깃으로 낮췄다. 그랩의 일부 운전자들은 킬로미터당 수입이 65% 감소한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고, 교통 체증이 빈번하지 않고 이것은 대부분 도시 지역에서만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적이고 단결된 운동을 위하여
아즈릴과 리잘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한 사람은 보다 조합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현 시스템이 어떻게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왜곡되어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이들이 속한 두 협회는 운전자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운전자 협회 구조는 말레이시아의 제한적인 노동조합법과 유사한다. 즉, 일반노조가 허용되지 않으며, 노조 조합원이라면 꼭 특정 산업, 기관, 무역,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협력을 저해한다.
통상적으로 협회원들은 협회의 의사결정에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운전자 협회와 같은 집단 조직을 통해 자신의 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이를 위한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들 스스로 노동자들의 요구에 더욱 많이 참여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기도 하다.
GEM의 자원 활동가들이 개별적으로 운전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노력은 아니다. 그랩의 드라이버들과 라이더들은 긱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인 불안정한 일자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착취, 고용 안정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거대한 협회로 통합됨으로써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글 : 후이팅청 (말레이시아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