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플랫폼C 세미나실은 밤10시가 넘을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페미니즘 독서모임 때문이다.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읽고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비판을 한껏 꺼내놓았다. 세미나 사회자의 독서 및 토론 후기를 소개한다.
#주문이 DM을 타고 밀려옵니다
지난 달, 친구와 ‘사회운동 구호’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했다. 친구는 “인스타그램에서 ‘여성인권 존중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를 접했다”며 말을 시작했다. 활동가들이 해당 구호를 오랜시간 반복적으로 사용했기에, 이제는 새로운 구호를 사용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낡은 구호는 그만 쓰고, 대중을 설득 할 새로운 구호를 연구해야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주장에 마침표가 찍히지 마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시간 페미니즘을 접해온 그에게 해당 구호는 지루할지 몰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여성인권 존중하라’라는 구호 자체를 의심한다. 실제로 그가 인스타그램에서 접한 포스터는 성매매집결지 강제폐쇄 반대 집회 선전물이었다. 당장 우리 주변만 해도, ‘성노동자’와 ‘여성인권’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쓰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성노동자’가 ‘여성인권 존중하라’라는 구호를 자신들의 운동에 사용하는 건, 그간 ‘여성’의 범주에 ‘성노동자’가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시화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데 친구가 내게 던진 “새로운 구호를 고민하라”는 주문은 새롭지 않다. 나는 어제오늘 할 것 없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여러 주문을 받아왔다. 주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목을 끌되 너무 튀면 안되고, 정치적으로 흠결없이 올바르되 덜 진지해야하고, 논리적이되 절대 오글거리면 안되고, 젊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을 설득하면서 대다수가 공감할만한, 어쩌구 저쩌구. 『인생샷 뒤의 여자들』 은 이러한 주 문들이 인스타그램 페미니즘을 ‘입문 단계’ 에 머물게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다 보면 페미니즘은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포장해야 하는 브랜딩의 대상이 되고 만다. …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야기 하다보면 … 정상상에 도전하는 페미니즘은 보정을 거쳐 정상성을 승인 받고자하는 대상으로 협소해진다. (270)
#인스타그램에 빠진 여자?
수많은 주문들 속에서 인스타그램을 하는 여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건 여성을 향한 규칙이 이중언어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인생샷을 올리는 여성이 최선을 다해 예쁘되 ‘인기를 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 한다면, 페미니즘 관련글을 올리는 여성은 사회구조에 문제 제기를 하되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사회적 인정을 획득’ 하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 속에서, 여성들은 자기검열의 늪에 빠진다.
그럼에도 온라인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온라인은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다. 오프라인은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하기에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 어떤 여성은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투쟁하기 위해 온라인을 택한다. 예를들어 ‘성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 노동청에 신고할 수 없다. 거리에 나와 집회를 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낙인 찍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 이들은 ‘성노동자’ 커뮤니티에서 여론을 만들어 임금을 쟁취할 방법을 고민한다. 온라인은 오락과 유희의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기도 한 것이다.
인생샷을 찍는 여성들의 상황에 주목해보자. ‘탈코르셋’이 SNS에서 인기를 끌 무렵,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스러운’ 셀카를 올리는 여성들을 비난하곤 했다. 그러나 페미니즘 각본에 맞춰질 수 있는 여성은 소수다. 저자가 주장하듯, 세상에는 ‘남성적 시선과 무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도 있고, 아름다움을 노동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여성도 있으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 자체를 부정당하며 숨겨야 하는 여성’도 있다. 문제는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칭찬받는 여성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기준이 만들어진 사회적 맥락에 있다.
#여성은 어떻게 지위를 획득하나
’평범한 셀카를 인생샷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을 승인하는 권력이다.’ 그 권력은 남성의 시선에 있다. 책은 ‘럽스타그램’을 예로 들며 여성이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어떤 권력이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여성의 가치는 남성 과의 사적관계에 따라 결정된다(98). 자신에게 푹 빠진 사랑꾼 남자친구를 자랑하는 럽스타그램은 흔히 허영심 있는 여성의 문화로 이해되었지만, 실은 이성애 중심적인 성별권력구조와 결부되어 있었다. 남성이 공적 영역에서 업적을 남김으로써 인정받는 남자가 된다면, 여성은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의 선택을 통해 인정받는 여성이 된다.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또 스스로 확인했다(110).
여성의 가치를 승인하는 권력은, 비단 인생샷 찍는 여성만을 향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여성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페미니스트 여성의 발언을 사회적 발언으로 만드는 것은, 발언 내용이 아닌 여성의 발언을 승인하는 권력이다. 공적영역의 구조가 남성 중심적인 우리 사회에서 이 권력 또한 남성 중심적이다.
한국에서 고학력 여성의 수가 나날이 증가함에도, 여전히 돌봄과 가사의 영역은 여성에게 치우쳐있는 상황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여성 대비 남성의 육아·가사노동시간 비율은 23%에 그친다. 사회는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을 애용하지만 ‘여성은 위대하다’는 말은 불편해한다. 진보를 자임하는 남성들 중에도, 양육이 사회의 영역이라고 외치면서 그것이 자신의 몫이 되었을 때는 딴청을 피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이지 여성에게 돌봄과 가사노동을 극단적으로 맡기는 건 문제다. 동시에 여성의 발언과 여성이 겪는 문제가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도 심각하다. 결국 여성들은 공적영역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기존의 구조를 순응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면서, 정상성을 승인받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정신분열을 겪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부터
지난 4월 18일, 플랫폼C 사무실은 밤10시가 넘을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페미니즘 독서모임 때문이다.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읽고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비판을 한껏 꺼내놓았다. 그 중 한 남성 참가자의 질문이 기억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성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규정하는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 하며 서로 경쟁한다. 반면 여성들은 어떤 경쟁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경쟁 하는지를 질문했다. 그의 질문이 곧 대답이다. 여성은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드는 주문들을 받아내며 셀 수 없는 목표들 속에 허우적댄다. 그 주문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이성애 중심 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탄탄하게 유지되어왔다. 한 쪽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좌절한다면 다른 한 쪽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 앞에서 미친다.
그렇다고 SNS를 몽땅 지워버리거나, 온라인 활동을 자제하자는 식의 대안을 내놓고 싶지는 않다. 그건 금욕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동료와 함께 여성을 향한 이중언어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내가 이뤄낼 수 있는게 아니다.
고민 끝에 내린 대안은, 공부와 실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전,후 비교가 확실한, 마법같은 대안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천천히 변화를 만들어나갈 대안이 필요하다. 지금껏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던진 이들은, 사회적으로 권위있는 ‘분’들이 아니라,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던 존재들이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하나씩 배워가는게 좋다고 본다.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자. 인스타그램을 하며 대혼란을 겪고 있다면, 『인생샷 뒤의 여자들』 을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목표는, 내가 배운 지식으로 다시 세상을 인식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글 : 박나혜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