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세계 여성의날 ③ | 페미니스트님들아, 우리 체제전환 페미니즘 합시다!

2024 세계 여성의날 ③ | 페미니스트님들아, 우리 체제전환 페미니즘 합시다!

사실 저는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 같은 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20일

[읽을거리]페미니즘성차별, 2024 세계 여성의날, 여성의날, 페미니즘, 체제전환운동

이 글은 3월 20일 저녁 열린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페미니스트 간담회'에 제출한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참가 제안 발제문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는 저에게 요즘 가장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사안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의 운명입니다.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는 한 달이 넘도록 비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전의 여성가족부가 했던 일들을 다 높이 평가하여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과 가족을 합친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그 활동에 있어서도 재생산과 돌봄이 모두 ‘여성의 일’이라는 관념을 훨씬 더 강화하기도 했고, 셧다운제로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도 하는 등 스트레스를 줄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엄연하게 존재하는 젠더 차별을 해소하는 책임부처가 필요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이유가 “구조적 성차별이 없”어서 라고 말하는 대통령의 자의식 때문이라면 문제는 완전히 다릅니다.

구조적 성차별

여성가족부는 ‘페미니스트 정당’이라는(말도 안돼!!!) 민주당 정부조차 매우 무시해 온 조직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정부 전체 예산의 0.24%(2022년 국가 전체 예산 107조 7천억원 대비 1조 4,650억원)만을 배정받는 ‘초소형’부처입니다. 이러한 규모로는 구조적 성차별 해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예산마저 가족 관련 9,063억원, 청소년관련 2,716억원이 포함된 액수로, 두 항목의 예산만 부처 전체 예산의 80%가 넘습니다. 여성·성평등 예산은 1,055억원에 불과해 불평등한 젠더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쓰일 돈은 턱없이 부족하죠. 저는 성평등 역할이 훨씬 더 강화되고, 훨씬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그리고 이왕이면 그 역할에 걸맞는 역할과 이름으로 바뀐 여성가족부를 원합니다. 폐지해야 하는 것은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젠더 불평등 이니까요!!!!

저는 이런 주장을 일관되게 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세력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윤석열 정부뿐만 아니라 쥐꼬리 만한 예산으로 가족, 청소년 관련 모든 일을 떠넘겨온 민주당 정부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가사노동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가사노동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지난 26년 동안 한국은 OECD 성별임금격차 1위 국가였습니다. 지난 6년동안 임금격차가 다소 완화(2017년 45.4% → 2022년 34.3%)됐지만, 이는 30대 여성들이 결혼, 출산을 미뤄 경력 단절을 피하면서 여성의 평균 임금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성별 임금격차가 억제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별임금격차가 개선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악화된 것은 아닐까요? 국가와 사회적 노력으로 성별임금격차가 완화된 것이 아니라, 이 불평등한 상황에 적응해 스스로를 ‘바꿔낸’ 여성 개개인들의 몸부림이 만들어 낸 결과를 ‘개선’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이 몸부림의 결과가 만들어 낸 저출생/출산 상황으로 온나라 들썩거리지만, 이러한 몸부림의 원인이 사회적 재생산을 이윤을 위한 생산에 종속시킨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는 것은 외면합니다.

국가 폭력

저의 두번째 관심사는 '용주골 폐쇄' 문제입니다. 세계 여성의날이었던 지난 3월 8일, 경기도 파주 용주골의 여성들은 칼바람과 함께 찾아온 ‘용역’에 맞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 3월 19일에도 이곳을 폐쇄하려는 철거용역들과 시관계자, 경찰 등에 맞서 전봇대 위 고공농성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성매매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와 무관하게 우리는 모두 용주골의 여성들을 범죄자나 쓰레기 취급하는 이런식의 폐쇄를 지지할 수 없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이 여성들에 대한 민주당 소속 파주시장의 폭력적인 행태가 ‘친여성’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화가 납니다. 여성단체 회원임을 자랑하는 시장과, 그의 이런 행보를 지지하는 56개 단체 1,600여 명이 참여한다는 “여행길(여성행복마을길걷기)”을 마냥 ‘친여성’ 행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여행길’의 이름으로 용주골 여성들을 전시하고, 구경하고, 욕보이고, 조롱하는 이런 행위는 ‘친여성’행보가 아닙니다.

용주골은 국가가 만든 성매매 집결지입니다. 용주골에서 생계를 부양하고 생활하는 당사자들의 요구가 포함되지 않은 이주대책과 보잘것 없고 시혜적인 지원 정책은 또다시 반복되는 국가폭력일 뿐입니다.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은 최소한 이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낸시 프레이저의 『99퍼센트 페미니즘 선언』이 저에게 영감을 주었던 구절을 상기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젠더 억압은 사회적 재생산이 이윤을 위한 생산에 종속된 데 기인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하나의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타오르는 지구에서 ‘지배 기회의 평등’을 계속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사회로 이끌 반자본주의 형태의 성정의를 재해석할 것인가.“

우리는 이제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을 실천해야 합니다. 젠더평등을 위한 사회운동의 초점을 자본주의 체제로 맞추고자 하는 '체제전환 페미니즘',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가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세력화의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그렇게 같이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2월에 열린 체제전환 포럼 "지금여기, 체제전환페미니즘" 세션
지난 2월에 열린 체제전환 포럼 "지금여기, 체제전환페미니즘" 세션

사실 저는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 같은 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으니까요. 서로의 운동에 개입하고, 좀 더 많은 대중들을 조직해 내고, 그 속에서 체제전환운동의 세력화의 전망을 만들어 봅시다.

페미니스트님들아,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에 많이 많이 오셔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봅시다.

글 :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