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활동가 인터뷰 ① | 식민지 경험과 정치개혁 운동의 의의

말레이시아 활동가 인터뷰 ① | 식민지 경험과 정치개혁 운동의 의의

사실 영국이 말레이시아에 민주주의를 이식했을 때, 이들은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 맞서지 않을 만한 사람들 말이죠.

2024년 2월 6일

[동아시아]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 활동가, RSOA, 인터뷰

팟캐스트 '아시아의 붉은별(RSOA)'팀은 최근 말레이시아의 두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RSOA는 아시아의 사회운동, 정치, 역사를 좌파적 관점에서 다루는 영어 팟캐스트다. 아시아 활동가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며, 연구자·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2022년 4월 베트남 노동운동 연구자 조 버클리와의 인터뷰를 기재한 바 있다.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는 앞으로도 계속 RSOA에 소개된 인터뷰를 번역해 소개할 예정이다.

인터뷰이로 등장한 콕 힌(Kok Hin)과 아나스 나짐(Anas Nazim)은 말레이시아의 활동가들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콕 힌은 여러 사회운동을 경험했고, 2023년 3월부터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한 연합(BERSIH)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나스 나짐은 말레이시아의 학생운동가로, Malaysia Muda와 ADE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나스에 대해서는 1년 전인 2023년 1월 30일 플랫폼c에 실린 인터뷰 기사 「어느 말레이시아 청년이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RSOA :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콕 힌 : 저희는 깨끗하고 공정한 말레이시아를 위해 열심히 행동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기 위해 약 15년 간 선거 개혁을 포함한 제도적 개혁을 주장해 왔습니다. 5번 정도의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했었고, 대중운동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민주주의를 키우는 데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희는 2018년부터 정당들과 높은 수준으로 협력하며 일해 왔습니다. 정치인 및 국회의원들과 힘을 모아 개혁들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RSOA : 감사합니다.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15대 총선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아나스 : 우선 청취자분들께 간단하게 소개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난해 11월 19일 말레이시아에서는 15대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이 선거는 ‘희망동맹(Pakatan Harapan)' 연립정부의 붕괴로 시작된 정치적 불안정 이후 몇 년만에 치러졌는데요. 희망동맹 정부는 22개월 간 짧게 통치한 후 무너졌고, 그 후에 이어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잘못된 대응과 그에 맞선 투쟁이었죠. 다시 차기 정부의 붕괴와 여러 주정부들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정부 붕괴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의회가 정지된 동안 각 연합 간, 그리고 연합 내에서의 정치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이제 이번 선거, 즉 작년의 15대 총선으로 말레이시아 최초의 헝 의회(hung parliament;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과반 정당이 없는 상태)가 탄생했고, 얼마 간의 협상 끝에 과거 무너졌던 희망동맹 정부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랜 정치적 적수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그리고 동부사바(East Sabah)주, 사라왁(Sarawak)주의 지역정당들과 힘을 합쳤습니다.

상황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질문이 있는데요. 콕 힌, 저희가 15대 총선에 대해 함께 봐야 할 다른 측면들이 있을까요?

콕 힌 :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것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팟캐스트 방송을 위해 우리가 여기서 논의할 지점은 두세 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두 이어져 있지만요.

우선 과거 지배적 집권당이었던 UMNO(통일말레이국민조직)의 지지층이 대폭 감소했습니다. UMNO는 2004년 219석 중 110석을 차지해 연정 없이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UMNO가 소속된 국민전선이 얻은 30석은 역대 최저 의석수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희망동맹과의 어울리지 않는 연합을 통해 정부에 들어갔습니다.

콕 힌
콕 힌

아나스는 말레이시아인들이 공유하는 정서를 아실 텐데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미 이상한 동반자들이 정치적으로 함께하는 데 익숙하긴 합니다. 특히 마하티르 전 총리가 그 당시 정적이었던 현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그리고 DAP(민주행동당)과 함께했던 것처럼요.

즉, 첫 번째로 우리는 구(舊) 집권당의 몰락과 그 동맹의 불투명한 미래라는 측면에서 선거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언론에서 과잉대표되고 있는 소위 ‘녹색 물결(Green Wave)’인데, 이는 민족주의 정당 BERSATU와 이슬람주의 정당 PAS가 참여하고 있는 ‘국민연합(Perikatan Nasional)’의 정부 구성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슬람주의 정당은 약 40석을 얻어 역사상 최다 의석을 보유하게 됐죠. 실제로 이들은 정부 구성에 아주 근접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주의 정당은 선거 결과가 나온 날 밤 첫 번째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는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정부를 구성했다면 총리 직을 얻는가와는 상관없이 정부의 전면에 나섰을 것인데, 그건 국민연합이 정부를 구성했다면 PAS가 연립여당 중 의석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아주 가까워지기도 했고요. 이런 일이 말레이시아 정치에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말레이시아 정치의 미래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을 말해 주는지는 오늘 에피소드의 뒷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세 번째 지점은 물론 청년층의 생각과 총선에서의 이들의 선택인데, Undi 18을 비롯한 말레이시아에서의 일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Anas에게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투표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춰졌기 때문에 유권자 수가 기록적이었다는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선거와 2022년 선거 사이에 수백만 명의 신규 유권자가 생겨났고 이들 중 대다수는 젊으며 이번 선거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말레이시아 역사에 있어서의 한 분수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나스 : 제가 아는 선에서 Undi18이 뭔지 설명드리자면, Undi18(Undi는 말레이어로 ‘투표’라는 뜻입니다)은 이번 선거를 위해 통과된 새 법안입니다. 제가 맞다면 아마 유권자 자동등록법도 함께 통과되었을 겁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이번 선거가 18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는 최초의 연방 선거였다는 뜻이고, 또 더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을 때에는 투표를 위해 웹사이트에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했는데요, 이렇게 별도의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최초의 선거였다는 뜻입니다. 즉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으로 18세 이상의 사람들이 투표할 수 있었고, 이전에 유권자로 등록하지 않았거나 등록할 수 없던 사람들도 자동으로 처음 유권자로 등록되었습니다.

아나스 나짐
아나스 나짐

RSOA : 콕 힌 동지는 15대 총선에 대해 세 가지 주목할 지점을 제시했습니다. UMNO의 지속적 붕괴, 이슬람주의 정당의 녹색 물결, 그리고 청년들의 생각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참여. 지금까지 어떤 제도적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까지 간단히 설명해 주셨고, 거기서부터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씩 살펴보죠. 나왔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고,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UMNO, 즉 통일말레이국민조직과 그 동맹인 국민전선에 대해 얘기했고 이들은 말레이시아의 정치를 지배해 왔죠. 그런데 남한이나 북한처럼 비슷한 권위주의 통치를 겪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말레이시아에서는 지속적으로 공개적 선거가 치러져 왔고 그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정치체제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는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부터 서구 표준에 부합하는 민주주의 국가였는가? 선거 제도와 보편적인 정치정책들에 있어서의 변화는 언제 일어났는가? 이런 역사들을 먼저 알아보고 현재로 돌아오도록 하죠.

콕 힌 : 저는 ‘서구 표준’이라는 말이 적절한 인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1950~60년대의 말레이시아 민주주의를 심지어 미국과 비교했을 때 유권자들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쪽이 더 민주적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인용이 적절한지는 결국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국이 말레이시아에 민주주의를 이식했을 때, 이들은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 맞서지 않을 만한 사람들 말이죠. 우리가 독립한 1957년보다 훨씬 전, 거의 10년 전부터 이미 좌파 학생들과 활동가들, 정치 운동가들이 독립을 요구해 왔고 당시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싱가포르에서도 이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청취자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말레이시아가 독립 당시부터 민주주의 국가로 설계되었다고 했을 때 ‘민주주의’의 진짜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57년 이후에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여러 차례의 단속과 제한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가 선거에서 근소하게 이기는 등의 정치적 흐름 속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아마도 우연은 아니겠죠. 1970년대에도, 80년대, 90년대 후반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고, 물론 2000년대까지도 이런 일들이 있어 왔습니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말레이시아 역사의 이정표는 1969년 5월 13일의 인종 폭동일 것 같습니다. 폭동은 정당 간의 충돌이었지만, 각 정당들은 서로 다른 민족 정체성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각 민족들은 인종적 공동체화되었고, 불행하게도 지금 말레이시아에선 주차장 분쟁조차 인종 간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웃기지만 아주 비극적인 일이죠.

그래서 저는 이 상황들이 여러분의 질문을 맥락화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에 ‘민주적’이라고 알았던 것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민주주의’ 자체가 누구에 의해 의도되었는지를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에 답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RSOA : 제가 궁금했던 건 영국이 독립 이전에 어떤 정치체제를 구축했는지에 대해서였어요. 영국이 홍콩에 대한 통치를 포기하기 전에 정치체제를 일부 민주화함으로써 중국의 통제를 조금 더 까다롭게 만든 것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마도 이게 제가 이해했던 제 질문에 가까울 것 같네요.

콕 힌 : 아주 다른 맥락이었네요. 홍콩에 대해 영국과 중국은 모두 어느 시점에 통치권 인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아마도 하신 말이 옳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어떤 관점에서 봤을 때 기본적으로 홍콩에서는 민주주의를 통해 반대의견을 만들어냄으로써 일국양제에 대한 긴장감을 높인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말레이시아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외부적 압력 같은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정치에 있어서는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유령(반공주의)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실 냉전을 배경으로 4~5번의 총선이 치러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쩌면 2차 세계대전 이상으로 냉전이라는 망령이 말레이시아의 정치 발전에 끼쳐 온 영향이 훨씬 길고 심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새로운 화인 정착촌’들을 예시로 들자면, 몇몇 학자들은 이 마을들이 정글 부근에 살던 화인 집단이 대규모로 강제 이주되어 세워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당시 주둔하던 영국군이, 중국인들이 공산주의자와 게릴라 집단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거주지와 식량을 무료로 제공하는 집단 이주일 뿐이었다고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대규모 수용소와 다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곳에는 통행금지와 같은 통제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이들을 너무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시 말라야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소수자 집단들에 대한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십 년 동안 말레이시아에 거주해 왔던 이민자들은 당시 여전히 시민이 아니었고, 이렇게 말레이시아에는 대규모의 ‘해방 시민’들이 생겨났던 것이죠.

그러니까 수백만의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오바마의 DREAMers[DACA 제도; 미등록 이주민 청년의 강제추방 유예를 통해 이주청소년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 규모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만일 그 계획이 실제로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1950년대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났던 일일 것입니다.

콕 힌, 아나스 나짐과의 인터뷰는 ②편에서 계속된다. 인터뷰 후반부에는 말레이시아의 인종적 구분에 따른 정치적 동역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이런 인종 구분 하에서 계급정치는 왜 불가능한지, 최근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오히려 이슬람 보수주의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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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RSOA

인터뷰이 : 콕 힌, 아나스

번역 : 이도영

교열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