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 서른살 차이완윈의 배달 노동 현장 고발

대만 | 서른살 차이완윈의 배달 노동 현장 고발

모든 배달 노동자들은 빈번하게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조차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먹는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골목길이나 지하 어딘가에 숨어서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2023년 12월 4일

[동아시아]대만동아시아와 사람, 대만, 플랫폼노동, 노동안전, 노동연구

이 글은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모토로 28년 동안 발간 중인 월간 『작은책』 2023년 12월호에 실렸다. 편집부의 동의 하에 공동 게재한다.

1993년생 여성 차이완윈(蔡宛芸)은 대만 중부의 창화현 화메이(和美)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쳐들어오기 전 이 지역에는 바부자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살았는데, 바부자족 사람들은 이 동네를 ‘더위와 추위가 만나는 곳’이란 의미의 ‘카리샨’이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 이래 국민당과 함께 이주해온 본성인, 2~300년 전부터 대륙에서 이주해온 외성인, 그리고 수천년 전부터 이 섬에 살아온 원주민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구집단이 공존하는 대만에서 창화는 유독 본성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약 95%).

차이완윈은 본성인 전통이 강한 고향에서 꽤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그는 그래피티를 너무 좋아해 국립예술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 후 입사한 대기업에서 한낫 부품처럼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좌절을 겪었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에서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채 1년만에 퇴사한 차이완윈은 타이베이 완화(萬華)에 위치한 어느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단체는 가난하고 취약한 도시빈민의 자생성과 자치를 위해 활동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노동자들과 함께 목공일을 하며, 사회운동에 대해 배웠다.

그러던 어느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었고 대만 사회 역시 심각한 단절을 경험했다. 이 즈음 온 도시가 멈춰버린 가운데에서도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만큼은 더욱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세히 조사하고 그들의 삶에 대해 알려야겠다고 결심한다.

대만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음식배달앱 ‘푸드판다’와 ‘우버이츠’를 조사하던 중 그는 직접 라이더가 되어 배달 노동을 했고, 그러면서 왜 배달 노동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역주행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차이완윈은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이 비디오게임을 하는 감각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가령 닌텐도 스위치 게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서 플레이어들은 주행 코스에 놓인 장애물들과 정해진 시간 안에 골인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폭주해야 한다.

이는 음식배달 플랫폼의 노동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배달 노동자들은 빈번하게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조차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먹는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골목길이나 지하 어딘가에 숨어서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대만의 복잡한 도시와 골목, 오래된 건물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에만 ‘타이베이101’(대만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놓인 계단만큼 계단을 올라야 한다.

대만에 한두번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만은 조찬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다. 대만인들은 집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대신, 출근길 조찬 식당에서 요우티아오(油条)와 또우장(豆浆)을 사먹는다.

한데 조금이라도 배달이 늦으면 손님들을 짜증을 내기도 하고, 이런 현실은 라이더들이 역주행과 과속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타이베이시 교통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오토바이 배달 플랫폼 종사자 교통사고는 총 1995건을 기록했다.

음식배달산업노동조합(全國外送產業工會)을 조직해온 천위안(陳昱安) 활동가에 따르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데, 왜냐하면 대부분 배달 노동자들은 업무상 부상을 당하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하더라도 산재 보상을 신청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사고의 과실 여부를 확정할 때까지 최소 1개월간 배달노동의 권한을 정지하는데, 이렇게 되면 전업 라이더들은 한 달동안 아무 소득이 없게 된다.

대만 음식배달 플랫폼 시장의 지배자 푸드판다
대만 음식배달 플랫폼 시장의 지배자 푸드판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는 노동안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식배달 플랫폼 간 합병으로 배달의민족과 같은 모회사를 두게 된 푸드판다의 경우, 몇 년 전 음식배달원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배달노동자의 수입을 삭감해왔다. 과거엔 주문 1건당 70대만달러(한화 2,900원)를 지급했지만, 이제는 20대만달러(820원)로 줄었다. 대신 사측은 배달을 많이 할수록 마일리지를 채워주고, 배달접수율의 기준을 충족할 경우에 보너스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배달을 위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나 주문 대기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노동자들을 일단 주문이 접수되면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벌기 위해 최대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홍보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때에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자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차이완윈은 “캔커피 하나 마실 여유조차 없다”고 설명한다.

주류언론들은 배달 노동자들이 “돈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식으로 보도하곤 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수수료 삭감과 인센티브 강화야말로 배달 노동자들이 쉬지 않고, 교통법규를 어기며 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배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법정최저임금에 부합하는 배달 노동자 기본급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관료와 플랫폼은 여전히 교통안전 홍보, 시스템 최적화 등 피상적인 문제에만 대응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

차이완윈은 음식배달 플랫폼 라이더들을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하고, 플랫폼 기업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여긴다. 차이완윈은 현장에서 일하고 또 스스로 연구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플랫폼 경제의 도약을 장밋빛 미래로 찬양하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차이완윈과 대만 배달 노동자들의 외침이 한국이나 중국, 베트남 등에서 투쟁하는 다른 배달 노동자들의 외침과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