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태를 둘러싼 대안적 시각과 입장
2023년 10월 15일
현지 시간 기준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기반으로 한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 발의 폭격을 쏟아부으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끝나지 않은 폭력과 학살의 연장선에 있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 남부에 있던 민간인들 다수가 사망했고, 뒤이은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에 있던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격으로 군인 247명을 포함해 1,300명 이상이 사망 했다(10월 12일 기준). 한편 하마스에 대한 보복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사망자수가 급증하고 있다. 10월 14일 현재까지 알려진 가자지구 내 사망자수는 최소 1,900명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포위와 공격의 강도를 계속 높이고 있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는 사회적 논쟁이 치열하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사회운동의 고민 역시 이와 떨어져 있지 않다. 각국의 사회운동과 지식인들은 저마다 입장을 개진하고 있는데, 이런 입장들과 견주며 우리의 입장과 실천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각국에서 현 상황에 대해 입장을 내놓은 조직은 많지 않다. 홍콩의 좌파 활동가·연구자 그룹 라우산 집단(Lausan Collective)은 “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중이 자결권과 탈식민지화를 위해 투쟁할 권리를 분명하게 지지한다”면서, “홍콩으로부터 가자지구에 연대를(Solidarity from Hong Kong to Gaza)”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노동당(Partai Buruh)도 우회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일본공산당 의장은 “오늘날 사태의 근본에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며 정착촌을 확장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시키고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이 지역에 대한 공습과 공격을 감행해온 것”에 있다면서, “폭력적인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하고, 팔 레스타인의 독립을 포함한 자결권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색중국망(红色中国网)의 민간좌파들은 정부의 무대응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선을 아시아 바깥으로 넓히면 논쟁은 훨씬 활발하다. 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DSA) 뉴욕지부와 캘리포니아지부 등 주요 지부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연대를 분명히 표명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입장을 제출했다. 이에 반해 버니 샌더스는 하마스를 규탄하는 입장에 그쳤다. 평소 BDS운동(이스라엘 점령당국의 국제법 위반 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한 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국제 캠페인)에 함께 했던 DSA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자 느슨했던 정체성이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DSA에 소속됐던 일부 정치인들이 이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탈퇴하거나,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각 지부들은 대체로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나아가 각 대학 캠퍼스에서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는 공동 성명들이 발표됐고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하버드대학의 34개 학생 그룹들이 가맹한 '팔레스타인 연대 위원회(PSC)'는 10월 10일 “폭력을 일으킨 책임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에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유대인 자본가들과 정치조직들은 이런 움직임을 비난하면서 매카시즘적인 언설을 쏟아붇고 있다. 가령 유대인 공동체위원회(JCRC)의 타일러 그레고리(Tyler Gregory)는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은 공직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했고, 유대인 억만장자들은 “기업체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겠다”고 협박했다.
좌파 저술가이자 활동가 타리크 알리(Tariq Ali)는 10월 7일 <뉴레프트 리뷰>를 통해 발표한 글에서 1987년 인티파다 이후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왜 자신들의 부패한 구세대 지도자들을 비난하게 됐는지, 그리고 시오니스트들에 대한 보이콧 캠페인 BDS운동마저 범죄화하려는 유대인 로비스트들의 시도로 인해 ‘평화적 저항’조차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설명했다. 또, 그동안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마음대로 공격하고 살해해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0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최소 6,407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점령군과 불법 유대인 정착민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이스라엘인은 308명(이 중 군인은 131명)이 사망했다.
영국의 좌파 정치인으로서,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노동당 우파로부터 쫓겨난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은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끔찍한 공격은 개탄스럽다”면서도, 그렇다고 이것이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인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릴 것 없이 모든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규탄해야 하며, 더 이상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평화를 위한 더 많은 목소리”만이 점령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질베르 아슈카르(Gilbert Achcar)는 하마스와 동맹 그룹들에 의한 이번 반격이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와 시오니스트들이 인종 청소와 장기적인 점령으로 ‘정상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화해를 방해하려는 이란의 음모로 보는 것을 규탄하면서, 이런 시각이 억압받는 이들의 반란 원인을 “외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 탓으로 돌리고, 오랜 시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가해진 폭력과 억압을 감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마스 지도부의 이번 반격이 오히려 이스라엘 극우파 강화시키고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훈수를 두면서, 이스라엘의 억압·점령·식민지 확장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운트로열대학(Mount Royal University)의 M 무하나드 아야쉬(M Muhannad Ayyash)는 “팔레스타인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강대국들이 결정한 팔레스타인 지우기의 운명을 계속해서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투쟁에 그들의 투쟁이 반영되는 것을 계속 지켜볼 것”이며,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권력 체계에 대한 폭로로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캐나다의 사회운동그룹 ‘소셜리스트 프로젝트’는 10월 10일 성명을 통해 “(하마스의)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의 기술적 우위, 즉 '아이언돔' 시스템과 첨단 감시로 가자지구 주민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대량 감금하는 것이 지속 가능하다는 착각을 반박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성명은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규탄한다”면서도, 매스미디어가 주입하는 ‘양비론 내러티브’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폭력의 압도적 원인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캐나다 정부는 이스라엘 폭력에 대한 모든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민과 그들의 땅에 대한 잔인한 식민지배를 완전히 종식하도록 최대한의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UC 어바인 소속의 중동 연구자 마크 르바인(Mark LeVine)은 작금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황이 프란츠 파농이 살아있던 시기 아프리카 원주민이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알제리나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는 “대량 학살로 원주민을 몰살시킨 북미와 호주의 정착민 식민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며, 프란츠 파농이 「대지의 비참한 자들(Les Damnes de la terre)」에서 말한 경구 “식민주의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고, 추론 능력을 부여받은 신체도 아니다. 그것은 자연 상태의 폭력이며, 더 큰 폭력에 직면했을 때만 굴복할 것이다”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에 적용하는 것은 시오니스트 식민주의들과 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시오니스트 식민주의는 매우 강력하고 오랜 논리와 합리성을 가진 ‘사고기계’로서 그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이 시오니스트 식민주의를 물리치려면 파농이 제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폭력·권력 분석이 필요하다”며, “전 세계가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국가·자유·독립이 무엇인지에 대한 핵심 개념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유대인들과 유대 공동체들도 있다. 대표 적으로 독립 유대인 목소리(IJV, Independent Jewish Voices Canada)는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면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점령, 정착민 식민주의는 모두가 번영할 수 있는 지역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영국 전쟁중단연합(Stop the War coalition) 활동가 린지 저먼(Lindsey German)은 10월 8일 <카운터 파이어>에 발표한 입장을 통해 전 세계 사회운동이 “정의와 평등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지지하고,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는 것과 보복 공격을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극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중 모두가 이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계속해서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서, 1948년 이후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행동이 현재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번 분쟁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연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솜딥 센(Somdeep Sen) 로스킬데대학(Roskilde University) 교수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을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엄청난 실패’라고 규정하는 주류 미디어의 분석을 비판하면서, 이번 참극은 ‘보안 공백의 결과’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식민 통치와 점령에 맞서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제법은 국가 가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모든 군사적 점령’을 금지하고 있”고, “유엔 총회 결의안 37/43 역시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과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무장 투쟁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해 투쟁할 권리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며, 이 작전이 이스라엘의 점령과 식민주의에 의해 유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오랜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 경제는 진작부터 정지 상태였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실직 상태이고, 청년실업률은 60퍼센트가 넘는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이스라엘 당국은 가자지구 주민들의 식량 접근을 제한했는데, 영양실조를 간신히 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양소 요구량을 칼로리로 계산해왔다. 최근 이스라엘군의 포위 공격으로 인해 식량 공급이 제한되면서 이런 고통은 더 끔찍해지고 있다.
정리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