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탄소배출 절감의 대안은 철도 통합이다
2023년 9월 13일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연재 '공공철도가 기후정의다' 6화로 기재됐다. 오마이뉴스 측의 동의하에 공동 게재한다.
"철도노조의 태업으로 1호선과 3호선 일부 열차 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들어야 했던 '불쾌한' 공지 방송이다. 나의 불쾌함은 '열차 지연' 때문은 아니었다. 철도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언급 없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태업'이라 칭하는 거짓 선동이 매우 불쾌했다.
이 공지 방송이 언급한 '태업'이란 철도노동조합이 "국토교통부의 철도 쪼개기 민영화 추진과 SR부당특혜를 규탄"하고, "철도 쪼개기 확대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지난 8월 24일부터 시작한 '준법투쟁'을 말한다.
'태업'의 사전적 정의는 "겉으로는 일을 하지만 의도적으로 일을 게을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방법"인데, 철도노동자들의 준법투쟁은 '작업 매뉴얼을 정확히 지키는 것'으로 '태업'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당시의 준법투쟁은 철도 차량의 분리·결합·선로 변경 등의 입환작업시 뛰지 않고, 정비시 보수품 유용하지 않고, 규정속도와 2인 1조 규정을 지키고, 작업계획서 없이 작업하지 않고, 감정노동자 보호 철저히 하고, 생리현상 해결하고, 휴일에 일하지 않고, 초과근로 거부 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회사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일하는 데, 왜 열차가 지연될까? 규정에 필요한 인원보다 적은 인원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철도 노동자들은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늘 뛰어다니고, 생리현상을 참아가며 초과근로에 시달리면서 업무를 수행해 열차시간을 맞춰 왔다. '준법투쟁'은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철도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고강도 노동을 거부하고 규정에 맞게 일하는 것으로, 현재 철도운영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다.
기후위기시대의 대안교통
기후위기 시대 철도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통 수단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오갈 때 승용차나 항공기 대신 철도를 이용할 경우, 탄소 배출량은 훨씬 적다. 철도에 비해 비행기는 약 6배, 승용차는 약 4배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런 점에서 기후재난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지금, 철도는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교통 수단이다.
철도가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윤이 아니라 공공성을 높이는 운영방식이 중요하다. 이윤 중심의 운영은 승객이 많은 노선에만 열차를 집중하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철도 서비스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사라지고 있는 무궁화와 이를 더 이상 이용하지 못하는 연간 3000만 명의 사람들을 보라. 결국 외면된 지역의 주민들은 승용차에 의존하게 되고, 탄소배출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녹색철도의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철도의 공공성이 보장돼야 한다. 공공철도가 녹색철도다.
지금 철도노조는 이 공공철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9월 1일부터 시작된 ㈜SR의 억지노선 확대로 인해 수서-부산 구간의 SRT 운행 횟수가 축소되고, 고속철도 좌석이 줄어들고, 시민들의 승용차 사용 증가로 인해 불필요한 온실가스가 과도하게 배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설립한 ㈜SR은 정부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지분이 높아 민영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의 성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해당 지분을 민간에 팔아서 민영화할 수 있다. 철도노조가 국토부의 SRT운행노선 일방적 변경을 '철도 쪼개기'라고 말하며 민영화를 위한 수순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9월 14일부터 시작되는 철도노조 파업
지난 2일 철도노조는 준법투쟁을 중단하면서까지 국토교통부에 사회적 논의를 위한 대화를 제안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거부했다. 여기에 철도공사는 노동조합의 임금 요구안 전체를 거부했고, 지난 8월 31일 제2차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도 실패했다. 결국 원만한 해결을 시도했던 철도노조의 모든 노력이 사실상 무산됐고, 9월 14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지난 2001년 힘겨운 투쟁 끝에 민주노조 집행부를 당선시킨 철도노조는, 이후 20여년 간 정부의 지속적인 철도 민영화 시도에 맞서 굴하지 않고 싸워 왔다. 철도 노동자들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동안 한국 철도의 공공성이 지켜질 수 있었다. 이번 철도 파업은 지난 20여 년간 철도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됐던 노력의 일환이다.
이미 ㈜SR은 수서행 열차로 얻은 흑자 중 무려 780억 원을 투자기업들에게 이자비용으로만 지급한 바 있다. 이 780억 원은 철도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인력을 더 보강하고, 철도를 더 인전하게 점검하기 위한 시설비에 사용되고, 오지에 들어가는 열차를 증량하기 위해 사용됐어야 하는 돈이다.
중복비용으로 낭비되는 돈의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이제는 이런 낭비를 없애기 위한 철도통합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다. KTX-SRT 통합시 400억 원의 낭비가 해소되고 매일 좌석 3만 석 이상 증가, 환승할인 30%와 운임 10% 인하 등이 가능하다.
철도통합은 기후정의다
세계 곳곳의 철도들도 통합으로 향하고 있다. 철도에서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소위 상하분리가 추진된 것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절 철도민영화를 위한 것이었다. 이후 철도민영화의 폐해가 커지고, 기후위기 시대 대안 교통수단으로 성장하는 세계철도산업에서 공공성 확보가 중요해지며 철도통합으로 돌아선 것이다.
국제철도연맹의 비교자료에 따르면 철도통합구조가 60개국으로 분리구조인 30개국보다 2배 이상 많다. 독일, 중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가 모두 상하 통합형이다. 한국이 철도구조조정의 참고모델로 삼았던 프랑스도 상하 재통합했고, 영국 역시 재공영화와 통합의 길로 선회 중이다.
923 기후정의행진은 철도파업을 지지한다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중요한 과제로 여겨 주요 5대 요구안 중 하나로 "철도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해,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를 채택했다. 철도민영화를 막고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철도노조의 철도통합 요구는 정당하다. 이를 위한 철도파업을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지지하고 연대한다.
이번 철도 노조의 파업은 모두의 발이 되는 공공철도를 지키려는 노력인 동시에, 한국사회에 공공성, 공공재, 공공서비스의 의미를 다시 묻는 진지한 질문이다. 모두의 존엄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인 공공서비스 확대를 바라는 단체 및 개인들이 함께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충남의 시민들은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 위해서 장항선 열차 한량 전체를 빌려 서울로 달려올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시민들이 서울로 달리는 기차를 타며, 철도노조의 파업을 응원해 연대의 인사를 나눌 것이다. 철도 노동자는 전국의 역사에 923 기후정의행진 포스터를 붙여 시민들에게 알리고, 923 기후정의행진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은 철도파업의 든든한 뒷배가 되려한다.
글 : 민희 (플랫폼c 활동가, 923기후정의행진 집행위원회 조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