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선 이후의 반동에 맞서 민주화운동은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

태국 총선 이후의 반동에 맞서 민주화운동은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

태국 민주화운동의 물결에 힘입어 미래전진당이 제1당이 됐음에도, 탁신계 정당과 친군부의 협작과 반동으로 시민들의 열망은 배반당했다. 그럼에도 민주화운동은 다시 투쟁에 나서야 한다.

2023년 9월 17일

[동아시아]태국민주주의, 사회운동, 미래전진당, 독재, 쿠데타

지난 5월 태국 총선에서 미래전진당(MFP:이하 전진당)이 승리한 소식이 전해졌다. 미래전진당은 민주화운동을 동력으로 왕실개혁을 내세운 진보적 정치세력으로, 태국 청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래전진당이 하원에서 제1당 지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태국 정치제도와 국회의 불합리한 구조와 군부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했던 사실에 비춰볼 때, 미래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이 총리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3개월이 지난 8월 22일, 탁신계 정당인 프아타이당이 “쿠데타 세력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군부와 손을 잡으면서 부동산 재벌인 세타 타위신이 30대 총리로 선출됐다. 지난 9월 5일 세타 타위신은 방콕에서 취임선서를 했고, 새로운 연립정부가 공식출범했다. 반면 미래전진당의 피타는 헌법재판소로부터 의원 자격 잠정 정지 명령을 받고 의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프아타이당의 세타는 쁘라윳 찬호차 전 총리의 팔랑쁘라차랏당을 포함한 두 개의 친군부 정당 등 11개 정당의 연합체를 구성했다. 연합한 11개 정당의 의석수는 하원 500석 중 314석을 차지했고, 군부 정권 시기 임명된 상원의원 250명까지 참여해 여유롭게 총리에 선출될 수 있었다.

태국의 신임 총리가 된 프어타이당 세타 타위신
태국의 신임 총리가 된 프어타이당 세타 타위신

프아타이당은 군부와의 거래를 통해 내각 중 장관 여덞 자리와 차관 아홉 자리를 차지했으며, 친군부 정당들은 장관 두 자리와 차관 두 자리를 얻었다. 일관되게 왕실모독죄 완화, 징집제 폐지를 통한 군부 세력 약화 등의 개혁 노선을 내세웠던 미래전진당은 연합세력에서 배제되어 야당으로 남게 됐다.

총리로 당선된 세타 타위신은 태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산시리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형과 사촌이 설립한 산시리의 CEO가 됐다. 산시리는 태국에서 제일 큰 부동산 업체 중 하나인데, 지난해 매출액만 297억 바트(1조1,289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인 2022년 말 정계에 입문한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소수자 권리와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고,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3월 탁신 가문의 고문으로 위촉되고, 프아타이당과 인연을 맺은 후 입장을 바꿔 군부와 연정을 맺었다. 산시리는 부동산 개발을 위한 토지 매입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세타는 의회 투표를 통과해 수월하게 총리가 됐다.

탁신계 프아타이당이 새 정부를 구성하자마자 부패혐의로 15년동안 해외도피를 하고 있던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귀국했다. 탁신은 8월 22일 귀국과 함께 8년형을 선고받고 방콕의 교도소로 호송됐는데, 건강상 이유를 들어 병동 개인실에 머물고 있으며, 왕실에 사면을 요청했다. 귀국을 총리 선출일에 맞춘 것으로 볼 때, 탁신이 군부와 사면에 관해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탁신의 정치적 반대 세력은 그의 병원 입원과 사면에 반대하고 있다.

비록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공약을 뒤집고 군부와 손을 잡은 프라타이당에 대한 지지율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태국 스리파툼대학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시 선거한다면 어느 당을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프아타이당을 고른 응답자는 10.7%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미래전진당을 택한 응답자는 약 50%에 달했다. 11개 연합정당은 경제 부양, 최저 임금 인상, 의무 징병 종료 등을 주장한 프아타이당의 공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아타이당은 "민주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지만, 민주화운동의 핵심 요구사항인 왕실모독죄를 폐지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의 폐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왕실모독죄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불안정한 정국 속에 경제위기까지 해결해야 하는 신임 총리 세타의 앞날이 밝아보이지 않는다.

한편,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이번 사태를 규탄했다. 지난 두 달간 태국 곳곳의 시위에서 시민들은 “내 표를 존중하라”고 외쳤다. 민주화 시위를 이끈 학생단체 ‘탐마삿 시위 연합전선’(UFTD)의 대표자 안젤로 벨루티 학술책임자는 한국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개혁 목소리도, 군주제 개혁 바람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UFTD는 총리 선출 결과에 대해 “정치적 광기를 통해, 태국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평했다. 프아타이당이 권력을 위해 전진당을 배신하고 군부와 손을 잡은 사실을 꼬집으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극도로 실망했다고도 전했다.

태국 민주화 시위
태국 민주화 시위

태국 민주화 운동이 앞으로 투쟁의 초점으로 내세우는 목표는 비민주적 총리 선출 규정 폐기와 왕실모독죄 폐지다. 2017년 군부가 개정한 헌법 때문에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상원의 뜻에 맞지 않는 누구도 총리가 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헌법 구조다. 따라서 태국의 제도적 민주화를 위해서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의회에서 부결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정치 형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UFTD의 주장이다.

지난 2020~23년 4년 사이에 2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단지 왕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이들은 군주제 개혁 요구를 계속 제기하면서 관심을 환기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안젤로 벨루티 활동가에 따르면 "이는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그는 "태국이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래전진당을 지지한 대다수 지지자들은 의회의 비민주성과 폭압에 맞서 거리로 나섰다. 선거로 태국이 민주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미래전진당에 투표했으며, 미래전진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우선은 투쟁을 멈추었다. 불행히도 그 결과는 군부와 부동산재벌 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사회운동이 의회정치나 입법에만 의존했을 때,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미래전진당 정치인 다수는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노동자계급에 뿌리내리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 태국 사회운동이 의회정치에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운동을 확장해나가는 과정과 함께 정치적 전망을 모색해 나간다면, 민주화운동은 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여정에 동아시아 다른 지역의 사회운동이 국제연대로 힘을 보태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참고 자료

  • 강종훈, 「태국 탁신계 군부 정당 연합 확정…내일 차기 총리 선출 유력」, 연합뉴스, 2023.08.21
  • 김재영, 「태국, 총선 3개월만에 부동산재벌 세타 타위신 총리 확정…푸아타이당」, 뉴시스, 2023.08.22
  • 김서영, 「‘군부 연정’ 태국 새 정부, 민간인 국방부 장관 나오나」, 경향신문, 2023.08.29
  • 김범수, 「탁신 전 태국 총리, 사면 요청할까…막내딸 “부친이 결정”」, 연합뉴스, 2023.08.30
  • 강종훈, 부동산 재벌에서 태국 총리로…탁신 전 총리 측근 세타 타위신, 연합뉴스, 2023.8.22
  • Srettha Thavisin elected Thailand PM as Thaksin returns from exile, Al jazeera, 2023.08.22
  • 허경주, “태국 민주화는 현재진행형… ‘정치·군주제 개혁’이 시위의 초점”, 한국일보, 2023.08.31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