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노동자에게 책임 떠넘기는 EBS
EBS는 한국의 대표 교육방송이다. EBS는 2023년 경영목표로 ‘민주적 교육 발전’과 ‘약자와의 동행’등 사회 공동체 강화를 내세웠으며, 여러 프로그램과 교육 뉴스를 통해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의 현실과 어려움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공표와는 다르게 256억 적자를 이유로 청소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 무능한 경영진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으면서 하청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EBS는 적자를 메꾸기 위한 비용 절감을 위해 계약 및 파견직 감원 등의 구조조정과 노동조건 악화를 경영방침으로 예고했는데, 특히 청소노동자들의 인원 감축 및 노동시간 단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고로 인원이 감축되면 똑같은 쓰레기량에 적은 인원이라서 노동 강도가 늘어나는데, 노동 시간까지 하루 8시간에서 7시간으로 1시간 단축되면서 월급은 적어지고 일은 더 많아졌다.
EBS 청소노동자들은 감원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사측이 듣지 않자 노동조합을 조직해 공공운수노조 산하에 들어갔다. 그러자 EBS는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용역회사로 하여금 노조 간부 3명을 해고하도록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EBS는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하청 용역업체를 주기적으로 바꾸는데, 5월 8일 노조가 출범하자마자 EBS분회의 분회장, 부분회장, 사무장이 새 용역업체에 고용되지 못한 것이다. 해고가 노조 출범 직후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노조 간부를 노린 표적 해고였다. 이에 노조는 부당해고 비판 성명을 내고 선전전 등 투쟁을 전개했다. 원청인 EBS는 하청 용역회사에게 책임을 미루다가, 청년 및 학생들이 투쟁에 함께하고 언론에 알려지는 등 여론이 거세지자 그 때서야 교섭에 응했다.
플랫폼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로부터 ‘EBS 해고투쟁 연대 제안서’를 받은 이후다. 제안서를 받은 이후, 플랫폼씨는 6월 15일에 EBS를 찾아가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동국맑스 철학연구회, 스튜디오R 등의 청년학생 단위들과 함께 투쟁 중인 청소 노동자들과 만나 상황을 듣고, 점심 선전전을 함께 했다. EBS분회와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는 평등과 정의를 말했던 교육방송 EBS에서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당일 연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주변에 많이 알리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공공운수노조와 청년학생들은 합심해 7월 5일을 집중 연대의 날로 정하고, ‘연대가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EBS 청소노동자 청년학생 결합의 날’이라는 제목을 지어 선전물을 만들었다. 7월 5일에는 성공회대 노학연대체 가시,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연세대 비정규공대위, 동국대 맑스철학연구회, 플랫폼씨 등 많은 사람들이 선전전에 함께해 연대 발언과 구호를 외쳤다. EBS를 교육방송으로 보고 자라온 세대인 만큼, 연대한 학생들은 EBS의 기만적 행태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거나, 학내 청소 노동자들과의 연대 경험을 이야기하며 투쟁 승리를 기원하기도 했다. 간담회 날이 해고자 중 한명인 김민숙 부분회장의 복직을 결정하는 2차 교섭일인 7월 6일 전날이었기 때문에 이 날의 연대가 더 중요하고 의미있었다. 선전전 이후에는 EBS 청소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아래의 글은 당시 있었던 간담회를 요약한 것이다.
EBS 청소 노동자들과의 간담회
학생(이하 학) : 노조를 만들게 된 과정과 투쟁 경과를 간단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청소노동자🧹(이하 노) : EBS측에서 경영적자라며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어요. 원청인 EBS가 하청인 청소용역업체를 통해 청소노동자를 고용하는 구조인데, 계약하는 청소용역업체는 매번 달라요. 그런데 이번에 새 용역업체를 구하는 공고에 EBS가 기존 27명의 노동자에서 3명이 줄어든 24명의 인원만 고용하겠다고 정하고 과업지시서를 낸 거예요. 인원 3명 감축 외에도 오전조와 오후조의 근무시간이 1시간씩 줄고 주말과 휴일 근무도 없앤다는 내용이 있었죠. 그렇게 되면 원래 임금에서 60~70 만원 정도가 줄어요. 방송국이라 24시간 근무가 많으니까 쓰레기가 항상 쌓여서 주말 근무를 안하면 월요일마다 힘들죠. 일도 힘들어지고 임금도 깎이는 거예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했죠. 언론노조에서 저희 사정을 알고 공공운수노조에 연결시켜줘서 함께 노조를 조직했어요. 설명회를 진행하고 모든 직원들이 가입했죠. 처음엔 소장을 포함한 27명이 다 가입했어요. 그런데 이후 몇 명이 빠져나갔어요. 소장이 비조합원분들을 오후조로 배치시켰더라고요? 오후조가 오전조보다 일이 편해요. 이건 의도했든 안 했든 노동조합 활동 안 하면 이익을 주겠다는 신호를 사측에서 간접적으로 비춘 것이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노조를 만들고 임원도 뽑았는데, 부분회장님과 분회장님, 사무국장님이 변경된 용역업체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5월 9일이 기약 만료 기간인데, 바로 다음날인 5월 10일 통보를 받았죠. EBS와 용역업체 측에서는 1달 전에 통보했으니까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EBS가 적자가 많이 난 건 알고 있지만, 경영권은 전적으로 사장에게 있는데 임원이나 직원이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저희부터 구조조정하는 게 말이 되나요? 저희는 급여를 깎더라도 27명 다 같이 고용해달라고 했지만 EBS가 거절했어요. 이건 너무 명백한 부당해고라서, 저희는 부당해고 복직과 8시간 근무를 위한 고용승계를 주장하고 있어요.
학 : 임시복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노 : 근무하시던 한 분이 그만두셔서, 사측이 해고자 중 채용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분회장님이 들어가신 거예요. 하지만 그 분이 면접에서 탈락한 것이 부당해고라는 건 변하지 않죠. 내일 있는 2차 교섭에서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를 통해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법적 투쟁으로 갈지, 노사합의해서 복직할지 선택해야 해요. 지노위가 100% 노동자편이라고 볼 수 없어서, 노사합의복직이 원만한 길이긴 하죠. 복직에 대한 저희의 요구안이 수용될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학 : 복직한 것과 별개로 EBS 고용승계 조항은 추가되어야 하지 않나요?
노 : 그렇죠.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공공기관은 기재부가 예산을 통제합니다. EBS는 공영 방송이라서 정부 지분이 100%예요. 그런데 공공기관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지켜야 해요. 가장 최근에 나온 해설서가 2019년인데, 공공부문에서는 용역업체가 계속 변경되면서 용역 근로자들의 임금이 많이 달라지면 안 되니까 조건을 정해놨어요. 보호지침에 지켜야 할 5개 조건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고용승계와 관련된 조항이거든요. 원청인 EBS와 용역업체가 계약서를 체결하고, 용역업체인 코드원(이하 코드원)은 보호지침에 따라 고용승계 하겠다고 약속해야 해요. 그런데 EBS는 나머지 4개는 다 넣고 그것만 뺀 거예요. EBS가 적자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뺀 것인지도 의문스러운 게, 전에 계약했던 용역업체와의 계약서에도 고용승계가 빠져 있어요. 공공기관이 정부지침을 안 지킨거죠. 용역업체를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해서, 내년 5월에 업체가 변경되어야 해요. 그 때 20명으로 줄이겠다고 하면 저희는 또 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용역 입찰 과정에서 계약서에 고용승계 꼭 쓰기 싸움을 시작했어요. 복직이나 직장 내 괴롭힘 해결도 중요하지만, 계약에 고용승계가 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하죠.
학 : 비조합원과 조합원 사이에 차별이 있나요?
노 : 없습니다. 공공운수노조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노조니까요.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되어주죠. 저희도 어쨌든 과반노조니까 협약 체결하면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사측에서 차별 중이죠. 노동 환경이 더 좋은 오후조에 비조합원을 넣어서 오전조 vs 오후조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있어요. 저희는 선택적으로 배치하지 말고 순환해서 넣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 : 용역업체가 몇 번 바뀌었는데 그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나요?
노 : 아니에요. 없었어요. EBS가 적자경영이라는 핑계로 부당해고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죠. 다행히도 언론노조 EBS지부 동지들이 저희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어요. 우리만 피 보는 것이 아니고 언론노동자들도 불안정한 환경에 있어서 언론노조에 계신 분들이 사장과 갈등하고 있어요. 사장이 경영을 잘못해서 이렇게 됐는데 노동자들에게 먼저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은 옳지 않죠.
학: 앞으로 향후 투쟁에 어떻게 결합할 계획이신가요?
노 : 이 투쟁은 길게 잡고 있지 않아서 빨리 끝내고 싶어요. 조합원들이 중식 선전전 2달째하고 있는데, 장기전으로 간다면 좀 더 고민해봐야 하거든요. 재정비하고 본격적인 파업의 조건을 갖춰야 하니까요. 7월 6일의 2차 교섭에서 결판내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교섭이 끝나는 대로 향후 투쟁계획을 공유하겠습니다.
청년들의 연대
간담회 후에는 조별로 나뉘어 건물 내벽에 부착할 자보를 만들고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장 사진들로 그 분위기를 전한다.
그 후
이후 7월 6일에 있었던 2차 교섭에서 해고자인 김민숙 부분회장은 복직되었으나 노조와 코드원은 조건에 합의하지 못했다. 노조는 코드원이 영업을 시작한 5월 10일 자로 복직하되, 실 근무일부터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하자는 뜻을 타진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인 소장과 반장은 피해자들이 업무공간에서 보지 않길 원하니 다른 영업장으로 발령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코드원은 노조활동 보장과 교섭원칙 등을 포함해 차기 교섭일인 7월 24일에 답하기로 하고 2차 교섭이 끝났다.
그런데 EBS 원청에 인사발령이 있어 노조와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전부 바뀌면서 교섭의 분위기도 변했다. 이에 노조는 주요 요구사항으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지침 준수와 임금 및 노동조건 회복을 내걸었다. 그리고 7월 24일 3차 교섭 결과, 원청인 EBS와 하청인 코드원, 노조는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중 소장은 8월 1일자로 교체하고, 반장은 신임 소장과 협의해 조치한다.
- 타임오프(노조전임제) 500시간 보장, 조합비 일괄공제, 교섭 격주 1회 보장 등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
- 해고자는 5월 10일 자로 복직하고 일한 기간동안 퇴직금을 지급*한다.
- 노조가 제시한 순환근무제 즉시 시행한다.
- 📑*퇴직금은 1년을 일하면 발생되는데, 코드원이 원청 EBS와 계약한 기간이 1년이기 때문에 7월 1일자로 복직을 할 경우 1년을 못 채운 것이 되어 사측에서 퇴직금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부당해고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취하하려면 복직자에게 불이익이 없 어야 하고, 해고자는 해고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받았기에 복직시 불이익은 퇴직금 지급여부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기본협약에서는 코드원이 영업을 시작한 5월 10일자로 해고자가 복직한 것으로 하되, 영업기간이 내년 5월 9일까지인 코드원은 7월 1일자로 복직자의 퇴직금을 일할 계산해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노사는 기본협약을 잠정 합의했다. 기본협약은 신규노조가 첫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전단계로써, 교섭원칙과 기본적인 노조 활동 보장 등의 조약을 담는 가장 ‘기본적인’ 교섭 틀을 만드는 토대라서 단체협약으로 노동자들이 원하는 노동조건을 쟁취하기까지엔 아직 여러 관문이 남아있다. 이번 기본협약 합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단체협약까지 노조의 요구사항이 관철되기를 기대한다.
공공운수노조 EBS 분회와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민길숙 사무국장은 학생들의 연대가 투쟁 승리에 많이 기여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EBS를 보고 자라온 학생들은 EBS가 알려준 교훈들을 연대라는 실천으로 보여주었고, EBS분회의 조합원들도 뭉치면 회사의 횡포에 맞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대의 가치를 몸소 느낄 수 있었기에 학생들과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특별했다. 둘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도 서로가 연결됨을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실천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인터뷰·정리 : 현빈 & 이경희
교열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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