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정치적 금기를 부숴버린 21살 활동가 룽
2023년 7월 16일
월간 『작은책』 8월호에 실린 글을 보완한 글이다.
무지개를 뜻하는 ‘룽(รุ้ง)’이라는 별명을 가진 파나사야 시티치라와타나쿨(ปนัสยา สิทธิจิรวัฒนกุล)은 1998년 방콕 인근 논타부리에서 태어났다.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했던 그녀의 부모는 막내 룽의 학업에 대해서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많은 것들을 직접 부딪히며 경험하고, 몸으로 배우라고 조언했고,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룽은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노래 부르거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중산층 부모의 바람 때문이었다.
룽이 막 태어난 1990년대 후반 태국의 정세는 지극히 혼란스러웠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고, 반복되는 쿠데타와 왕실의 타락으로 인해 여론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왕실 차량 행렬이 논타부리 거리를 지나갔는데, 룽은 다른 여느 시민들처럼 거리로 나가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고 강요받았다. 룽이 인도 언론 <스트레이츠 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이미 이때부터 의구심을 품게 됐다고 한다.
15살이던 2014년의 정세도 청소년 룽의 관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해 5월 22일, 태국 육군 총사령관 쁘라윳 짠오차(ประยุทธ์ จันทร์โอชา)는 8년만의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 친나왓 내각을 쫓아내고 군부와 경찰로 구성된 ‘국가평화유지위원회’를 세웠다. 이들은 의회를 해산하고 행정부를 차지했으며, 태국 전역에 계엄령을 발동했다. 한데 당시 국왕 라마9세는 이 쿠데타를 공식 승인했고, 태국 현대사를 지배하는 습관적인 쿠데타 통치는 다시 반복됐다. 룽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군인들은 나라를 통치할 권한이 없으며, 당시 TV에 나온 모든 것은 가짜 프로파간다였어요.”
이즈음 태국의 청년 활동가들은 홍콩 우산운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다. 당시 홍콩 시민들은 여름 내내 권위주의 정부의 조례 개정 시도에 맞서 시위를 전개했고, 이런 모습들은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방콕과 홍콩 두 도시는 헐리우드 영화 <헝거게임>에 등장했던 저항의 표식 ‘세 손가락’마저 차용해 현실에서 복제했다. 영화가 현실을 모방한 게 아니라, 거꾸로 현실이 영화를 모방한 셈이다.
몇 년이 흘러 타마셋대학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공부하던 룽이 태국학생연합의 학생운동가이자 대변인으로 나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룽의 어머니는 “안 가면 안되니?”, “조심해야 해!”라며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막내딸이 엄혹한 정세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반군부 반왕실의 전선에 서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반대하던 아버지는 고심 끝에 흐느껴 울며 말했다. “룽은 자신의 길을 선택한 거야. 나는 룽의 꿈을 방해하고 싶진 않아.”
최근 태국의 학생운동이 정치투쟁의 최전선에 나선 것은 2019년 초부터다. 당시 군부가 총선을 연기하면서 시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려 하자, 태국학생연합은 전면 투쟁을 선포하면서 거리로 나서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일련의 행동과 성명으로 반권위주의, 평등, 민주주의 등 색깔을 드러냈고, 2020년 초 미래전진당이 강제 해산되자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대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군부 정권은 학생운동 리더들에 대한 긴급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압박한다. 그러자 룽을 비롯한 학생운동가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성 자체가 결여된 법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경찰의 긴급 체포영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소환장을 찢어버린다.
스물한 살 혁명가 룽의 격정적 시간이 시작됐다. 8월 10일 저녁, 탐마삿대학 랑싯캠퍼스에 4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다. 이 대학은 1976년 10월 군부와 우익단체가 들이닥쳐 학생운동가 100여 명을 죽인 끔찍한 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탐마삿은 참지 않는다!”라는 이름의 집회에서 룽은 연단에 올라 ‘왕실개혁 10개항’을 공개 낭독했다. NPR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것은 룽 자신이 자청한 것이었다.
“누구도 왕을 비판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6조를 철회하라! 의회가 왕의 잘못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하라! 군주제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군주제 비판 혐의로 기소된 모든 사람들을 사면하라! 2018년 왕실자산법을 폐지하고, 재정부 산하 왕실 재산과 개인 재산을 명확하게 구분하라! 국왕에게 할당된 예산을 삭감하라! 왕실청을 폐지하라! 왕립 보안사령부와 같은 명확한 의무를 가진 부대를 다른 기관 산하로 이전 배치하라! 군주제의 모든 자산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왕실 자선기금에 대한 기부금 수령을 중단하라! 왕실에 대한 정치적 의사 표현 금지를 중단하라! 군주제를 미화하는 모든 홍보·교육을 중지하라! 군주제를 비판하거나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의문사 진상을 규명하라! 국왕은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지 말라!”
대규모 집회에서 왕실을 직접적으로 겨누며 개혁을 요구한 것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태국의 현대 정치와 권력구조는 왕실과 군부, 자본가들의 공생 관계에 의해 유지되어왔기 때문에 전면적인 왕실 개혁 요구는 곧 지배계급에 맞선 도전으로 여겨졌다. 이는 불과 며칠 후인 8월 15일 2만 명 시위로 이어졌고, 10월 16일 20만 시위로 확대됐다. 전 세계 언론들은 “대학생들의 요구안이 태국 정치의 금기를 부숴버렸다”고 평가했다. 룽의 목소리로 태국의 정치적 지평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20만 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2020년 10월 15일, 왕실경찰은 룽을 왕실모독죄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11월 10일, 태국 헌법재판소는 룽을 비롯한 학생운동가들이 집회에서 “국가와 군주제를 전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며, “모든 군주제 개혁 운동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룽은 굴하지 않았다. 이듬해 봄, 룽은 보석 신청을 6차례에 걸처 거부한 정부에 맞서 30일 간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로부터 2년 8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룽의 법정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룽에게 적용된 왕실모독죄 혐의는 12개로 최대 180년의 징역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것은 룽만의 싸움이 아니다. 지난 5월 총선 직전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옥중 단식투쟁을 연쇄적으로 벌였고, 이는 결국 초유의 선거 승리로 이어졌다. 룽은 “이번 선거에서 왕실모독죄 개혁 논의가 전면화됐던 것은 우리들의 투쟁의 유산”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첩첩산중이다. 7월 13일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투표에서 전진당의 총리 후보 피타 림짜른랏은 총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반수(376표) 득표에 실패했다. 2017년 군부에 의한 개헌 이후 태국 의회는 총선으로 선출된 500명의 하원의원과 군부에 의해 임명된 250명의 상원의원으로 구성된다. 전진당은 7개 정당의 연정 합의로 312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과반수에는 여전히 모자란 것이다. 게다가 피타 림짜른랏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맞닥뜨리고 있다.
이처럼 군부와 왕실의 끈끈한 카르텔은 진보 정부 등장을 방해할 것이다. 더구나 부유하고 세련된 외면으로 포장된 전진당은 자신의 목표를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둔다는 점에서 정치적 한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룽을 비롯한 청년 혁명가들의 도전이 사회운동의 양적·질적 도약을 이뤘고, 태국 사회모순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변화의 밑거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룽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요구사항을 낭독한 그 순간, 제 인생은 영원히 바뀐 거에요.”
룽의 인생만이 아니다. 군부 퇴진을 넘어선 왕실 개혁 요구를 피해온 태국 사회운동의 비전과 시야도 확장됐다.
참고 자료
- Senator sparks handbag spat with student activist, Bangkok Post, 2022. 12. 20.
- Thailand: Immediately drop unjustified charges against protest leader, Amnesty International, 2021. 9. 22.
- THAILAND: Drop charges against Rung Sithijirawattanakul, Amnesty International, 2021. 10. 2.
- Protest leader Rung Panusaya freed from prison after courts granted bail, Thai PBS, 2021. 12. 1.
- Activist Panusaya 'Rung' gets bail for 2 more lese majeste cases, Bangkok Post, 2021. 12. 1.
- Student leader defies Thailand's royal taboo, New Straits Times, 2020. 8. 29.
- Thai protesters declare ‘victory’ in monarchy reform rallies, after delivering their demands to authorities, CNN, 2020. 9. 19.
- The student daring to challenge Thailand’s monarchy, BBC, 2020. 9. 17.
Three activists who break Thailand’s deepest taboo, The Jakarta Post, 2020. 8. 21. - In Thailand, A 21-Year-Old Student Dares To Tackle A Taboo Subject, NPR, 2020. 8. 21.
- รุ้ง ปนัสยา: ฟังพี่สาวเล่าเรื่องน้องคนเล็กผู้กลายเป็นแกนนำ “ราษฎร” และผู้ต้องหาหมิ่นสถาบันฯ, BBC, 2020. 12. 25.
- รุ้ง-ปนัสยา ปลุกสู้กับความกลัว ลั่นเรามาไกลเกินกลับไปนับหนึ่ง, Thai Post, 2023. 5. 22.
글 : 홍명교
교열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