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 새로운 미투의 물결을 만들다

대만 | 새로운 미투의 물결을 만들다

대만 여성들이 용기 내어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2023년 7월 14일

[동아시아]대만대만, 페미니즘, 미투운동, 성차별, 사회운동

대만이 '미투'운동으로 뜨겁다. 대만의 넷플릭스 드라마 '인선지인*:웨이브 메이커스'는 젊은 여성 보좌관의 성장기를 주제로 내세워 대만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극중 주인공이 '당에 미칠 타격을 감수하더라도 이를 바로잡자. 이대로 놔두지 말자'라고 한 대사가 많은 이들의 미투에 영향을 주었다.

*인선지인: 선거캠프직원을 뜻함

지난 5월 31일 전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당원인 앰버 첸은 당내 성희롱 사실을 신고했지만 오히려 2차 피해를 당했다. 첸은 페이스북에 웨이브 메이커스의 대사를 인용해 '이대로 놔두지 말자'라는 글을 올려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유명 아이돌, 국민MC 미키황, 대만 징계법원**의 전 법원장 등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계 등 각계각층의 유명인들 90여 명이 성폭력 혐의로 고발당했다.

*민주진보당: 1986년 창당. 대만독립, 핵발전소 반대, 환경보호, 성평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 등 진보, 자유주의적 이념을 내걸고 있다.

**징계법원: 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 산하 전문법원으로 일반 공무원과 법관에 대한 징계를 심판한다.

민진당 의원 중에는 10여 명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민진당은 미투조사팀을 꾸려 사건을 신속히 조사해 결과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두 차례의 사과 후 정부 내 성평등 규정 개혁을 약속했고, 4명의 고위인사가 미투 보고 부실의 책임으로 사퇴했다. 해바라기 운동**의 학생 지도자였던 린페이판도 사퇴했다. 그가 직접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것은 아니나 민주진보당 사무부총장 시절 성평등위원회 감독과정에서 부실 책임이 있다고 여겨 사퇴가 권고되었고 그는 출마를 포기했다. 린페이판 사퇴는 지지율 하락을 걱정한 민진당이 선거에서의 당선가능성을 염두에 둔 관련자 꼬리자르기로 보인다.

*차이잉원: 2004년 민주진보당 입당. 2008년 5월 민주진보당 최초의 여성 주석이 되었고, 해바라기 운동의 영향으로 대만 민주주의, 탈원전, 동성결혼 합법화 등을 내세워 2016년 대만 총통 당선. 2020년 재선에 성공.

**해바라기 운동: 2014년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23일간 대만의 대학생과 사회운동세력이 중화민국 입법원을 점거농성한 사건. 마잉주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고 중국과 서비스무역협정의 밀실협상을 강행한 것에 항의해 철회를 요구했으며,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총통선거*와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7개월 앞둔 지금 성평등, 젠더이슈를 강조했던 민진당의 향후 지지율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은 42.3%로 4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민진당 지지율은 24.6%로 더욱 심각하다. 지리멸렬한 기득권 싸움과 경제위기 속에 더 유연하고 균형있는 외교를 강조한 제3당 민중당**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 양당구도를 깨고 3파전의 혼돈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국민당***이 여론에서 불리할 경우 민중당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다.

*대만 총통선거: 국민당 일당 독재로부터 민주화에 성공한 1996년 이래 총통 직접선거. 4년 임기로 한차례 연임가능. 2012년부터 입법원 선거와 동시 실시.

**민중당: 2019년 타이베이 시장 키원저가 창당. 총선목표는 국민당과 민주진보당의 양당구도를 막고 제3지대를 형성하는 것.

***국민당: 1919년 창당해 ‘중화민국’의 여당으로 1928년부터 2000년까지 집권.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밀린 장제스가 대만을 점령하며 오랫동안 대만 유일 정당으로 군림했으며 현 제1 야당.

당내 성희롱 사건 사과하는 민진당 간부들
당내 성희롱 사건 사과하는 민진당 간부들

미투운동이 전세계적으로 부상한 2017년에도 대만에서 미투가 있었다. 중년의 입법원 보좌관 'H'가 10년간 최소 7명 이상의 여성 보좌관들을 성희롱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부적절한 신체접촉, 키스가 가능할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대는 행동 등을 폭로했다.

놀라운 것은 H의 행동이 10년 이상 지속되는 동안 그의 성희롱 사실을 알고도 입법원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만에서 입법 보좌관의 위치는 중요하다. 국회의원의 일상을 보조할 뿐 아니라 보좌관의 수행연구가 국회의원의 주요이슈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5-10명의 입법보좌관을 두는데 업무능력을 인정받는 보좌관은 소속 정당을 통해 향후 공직 출마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정당에서 임명한 판사들은 정치인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리곤 한다.

한국에서도 2002년 대선 기간 당시 유시민, 문성근 등 친 노무현계 인사들이 속해있던 개혁국민정당(개혁당)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당 중앙의 소극적 사건 처리에 대해 여성위원회의 불만이 커졌다. 페미니즘 언론 <일다>에 따르면 이때 유시민은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을거냐”라는 발언을 하고, 게시판에 “개혁당의 여성회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혁당의 여성회의인지, 개혁당 안에서 여성의 권익을 찾는 여성회의인지, 다시 말해 당이 먼저인지 여성이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 그의 발언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성평등에 대한 문제적 인식은 대만 정계뿐 아니라 한국 정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이견으로 국민당과 민진당이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 상대진영과의 싸움이 중요하니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해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유리천장

공교롭게도 2017년 미투가 벌어졌을 당시와 2023년 현재의 총통은 민진당의 여성정치인 차이잉원이다. 1990년대부터 여성운동의 영향을 받은 민진당이 여성할당제를 수용했고, 헌법개정으로 비례대표 여성 50% 공천 의무화 조치가 도입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는 대만 정부 임명직의 1/3에 여성할당제가 실시되었다. 2017년 들어 대만의 여성의원은 전체의 38%를 차지했다. 정부 내에 여성운동가가 참여하는 성평등위원회 기구가 설치되어 여성 정치 참여를 독려하면서 많은 여성 정치인이 탄생했다.

중국과의 관계 속에 위기의식을 느낀 대만 민중들은 해바라기 운동 등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급진화를 거듭해 왔다. 차이잉원도 그 급진화의 수혜로 총통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현재 대만의 여성 평균 임금은 남성의 83%로 OECD 평균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것은 대만 대중운동이 이뤄낸 성과이다. 또, 운동의 성과로 이뤄진 여성정치인 확대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는데, 여성정치인의 다수가 정치인가문 출신이라는 것이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대부분 위계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사회 내 여성 지위의 향상, 즉 실질적 평등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인 가문의 여성정치인은 이미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기득권 여성들이 과연 평범한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겪을 무시와 차별, 성적 대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성폭력과 차별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평범한 노동자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얼마나 반영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실제로 차이잉원 정부는 지난 2018년 노동시간 연장, 청년 저임금, 집값 폭등 등을 초래하는 친기업 정책을 펴면서 대중에게 외면받았다.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를 바라보며 위기를 느낀 민중들이 민진당으로 재결집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재선에 성공하긴 했지만, 미투라는 악재와 대안부족으로 3파전을 보이는 지금의 정세에서 민진당의 앞날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대만에서 여성 국회의원 증가와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법적절차 도입이 진행되었음에도 2023년 폭발적인 미투운동이 벌어진 것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인 법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고용 및 임금 차별 철폐, 모든 여성의 생활임금 보장, 여성의 재생산 권리 보장 등 여성이, 나아가 그 누구도, 어떤 조건에서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경계를 가로질러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보여준 미투운동과 '위드유'(With you:미투운동 당사자와 함께 연대하겠다는 의미)는 사회의 성평등인식을 한 단계 높였다. 성폭력 처벌이 강화되었고, 이는 권력을 가진 유명인들을 구속시켰다. 수많은 여성들이 용기내서 투쟁해 얻은 소중한 성과다.

한국에서도 2016년 10월 문단과 영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폭로 운동이 있었다. 이후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기폭제로 2018년 여러 영역에서 미투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디지털 포르노그라피 반대운동, 불법촬영물 근절 및 수사 촉구 운동, 낙태죄 반대시위 등을 통해 급진화된 젊은 여성들은 집단행동을 통해 성평등을 쟁취해 나갔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최근 한국 중년여성노동자들도 용기를 내어 미투에 동참했다. 성적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참는 게 당연하다’고 압박을 받거나, 중년여성을 ‘무성애적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소극적이었다. 지난 2월 너머서울 젠더팀이 발표한 50-60대 지하철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발표에서는 응답자 90명 중 86.6%(78명)가 성적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으나, 불쾌함을 표현한 노동자는 5명(6.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도 미투운동의 사회적 영향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하고, 부당함을 알리는 등 성차별에 맞선 행동을 하고 있다. 서울의 한 버스회사의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40대 여성 노동자 홍혜숙씨는 정비팀 관리자로부터 당한 지속적인 성희롱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언론에 폭로했다.

대만과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싸우고 있다. 차별의 경계를 가로질러 고통 받는 모두가 함께 싸울 때 우리는 차별을 없애고 공존할 수 있다. 미투운동이 앞으로 더 나아가 급진적 평등을 성취하기 바라며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참고자료

  • 대만 집권 민진당 ‘미투’ 사건으로 벌금 3800만원…총통 선거 앞 악재, 이종섭, 경향신문, 2023.6.27.
  • 넷플릭스 드라마 인기 속 봇물 터진 대만 미투, 이예림 기자, 세계일보, 2023.06.15
  • 대만 정계 뒤흔든 '미투'…성희롱 파문에 차이잉원 지지율 추락, 김지원, 시사저널,2023. 6.27
  • 대만 미투 바람, 법조계 고위층까지…"법원장이 여직원 성희롱", 김철문, 연합뉴스, 2023.6.21
  • 대만서 90여명 '미투' 고발…이 드라마가 촉발했다, 김태원, 서울경제, 2023.6.19
  • 대만 여성 의원 38%, ‘여성 할당제’의 힘, 진주원, 여성신문, 2017.8.14
  • 미투는 젊은 여성만의 일이라 생각했다…중년의 미투, 박고은, 한겨레, 2023.3.8
  • 대만 총통 선거 ‘3파전 혼전’ 양상 속 국민당 꼴찌, 최현준, 한겨레, 2023.06.29
  • 차이잉원, 해바라기와 미국으로 ‘하나의 중국’ 흔들다, 박민희, 한겨레, 2021.2.
  • A failed #Metoo moment in taiwan’s legislative Yuan? , Brian Hioe, newbloom, 2018.3.22
  • Me too allegattions spread to pan-blue camp, as allegations continue to take place, Brian Hioe, newbloom, 2023. 6.8
  • Lin Fei-Fan announces his withdrawal from elections, Brian Hioe, newbloom, 2023.6.14


글 : 김지혜

교열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