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재난이 된 지금, 인권으로서의 집을 요구하자!

집이 재난이 된 지금, 인권으로서의 집을 요구하자!

전세사기는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플랫폼C 6월 월례포럼에서는 민달팽이 유니온 서동규 활동가,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박순남 부위원장을 초청하여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장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을 전한다.

2023년 7월 7일

월례포럼, 한국, 전세사기, 깡통전세, 주거권, 세입자

지난 5월 25일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다섯 명의 전세 사기 피해 사망자가 나온 뒤였고, 그마저도 근본적인 대책없는 ‘반쪽짜리’ 특별법이었다. 특별법은 최우선 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최장 10년 동안 최우선 변제금*에 해당하는 돈을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미 대출받아 들어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대출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껍데기 뿐인 해결책이다. 또한 ‘피해자 선별’로 피해자의 범위를 축소시키고 있으며, ‘선구제 후회수’와 같은 적극적인 피해구제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최우선 변제금: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우선 배당받을 수 있는 돈

전세사기, 깡통전세 등 가장 안전해야할 공간인 집을 둘러싼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전세사기는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플랫폼C 6월 월례포럼에서는 민달팽이 유니온 서동규 활동가,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박순남 부위원장을 초청하여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장에서 오갔던 이야기들을 전한다.

현장 사진
현장 사진

전세사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소위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로 불리는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평범한 세입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보통 전세 보증금은 아껴서 모은 목돈에 큰 대출까지 얻어 마련한다. 그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은 세입자가 지금까지 모은 노동의 결과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미래까지 저당잡히는 것이다. 심지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쫓겨나게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어떤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는지도 중요하지만 피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주택가격 대비 전세가격(전세가율)이 80%가 넘는다. 깡통전세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전세사기는 임대인(집주인)이 전세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임차인을 속여,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 경우를 통칭하는 용어다. 깡통전세는 주택의 전세금보다 매매가격이 낮아져 임차인이 전세금을 온전하게 돌려받지 못하게 된 주택 또는 그러한 위험성이 커진 주택을 일컫는다. 또한 집주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주택이 경매에 부쳐졌으나 낙찰 가격이 전세금에 못 미치게 된 경우도 깡통전세로 지칭된다. 그 자세한 용어의 정의는 다르지만 결국 전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세입자를 약탈한다는 점은 같다.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만 한다. 왜 집값 상승의 이윤은 모두 임대인이 가져가지만 임대인이 부도난 책임은 세입자가 전부 뒤집어 써야 하는가?

이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에 대해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거나 피해자가 잘 알아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법적으로 피해자에게 허용된 모든 정보를 열람한들 이를 알 순 없었기 때문이다. 중개사의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말도 당연한 관행처럼 여겨졌지만 실상 세입자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입자에게 살얼음판인 세상

세입자는 애초에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 집 계약 전, 그리고 계약할 때, 계약 후 모든 단계에서 곳곳에 세입자에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신축 주택의 경우에는 보통 시세가 형성되어있지 않다. 이 때 감정 평가사가 주택의 가치를 높게 산정해 은행에서 세입자가 원래 집의 가치보다 더 많은 대출금을 받아 전세 계약을 하게끔 하는 일들이 있다. 또 주택 시장의 변동 등 여러 이유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는데도 중개사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 식 사기도 있다. 임대인 중에 자신이 등록 임대주택 사업자이기 때문에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가입이 의무사항이라며 세입자를 안심시킨 뒤, 반환 보증 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다. 임대사업자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구청이나 시청의 책임 방기인 것이다. 세입자들은 임대차 계약서를 쓰기 전에 임대인이 조세를 얼마나 체납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가계약금만 넣어도 확인할 수 있지만, 가계약금도 돈은 돈이다. 또, 대항력* 발생 시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전입 신고를 하면 그 다음 날부터 대항력이 발생하여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긴다. 하지만 발생시점이 전입 신고 익일(다음날)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악용한다거나, 중개사가 중간에서 보증금을 편취하는 경우도 있다. 중간에 대항력을 상실하게끔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생겼으니 전입을 하루만 미뤄달라거나,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하니 입주 청소를 해야 한다며 집을 비워달라는 등 세입자에게 위험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대항력* 발생 시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전입 신고를 하면 그 다음 날부터 대항력이 발생하여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긴다. 하지만 발생시점이 전입 신고 익일(다음날)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악용한다거나, 중개사가 중간에서 보증금을 편취하는 경우도 있다. 중간에 대항력을 상실하게끔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생겼으니 전입을 하루만 미뤄달라거나,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하니 입주 청소를 해야 한다며 집을 비워달라는 등 세입자에게 위험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대항력: 사는 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힘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에 따르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그다음 날부터 제3자에 대한 효력이 생긴다. 즉 대항력은 그 집에 실제로 거주하고 전입신고를 해야 생기는 권리이다.

하지만 원희룡 장관을 비롯해서 정부에서는 주택 임대차 시장 구조에 의해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기 피해금을 국가가 떠안는 선례는 남길 수 없다며 혈세 낭비라는 것이다. 대책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최우선 변제금이라도 지원해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이 또한 거부하며 대출을 해주겠다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피해자들의 잃어버린 전세 보증금의 대부분이 대출인데, 피해를 입은 후에도 정부가 해준다는 것은 대출 뿐인 것이다. 피해 주택을 공공이 매입해서 그 집에 세입자, 피해자가 우선적으로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또, 피해자들은 지금 쫓겨날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에 경매를 유예시키거나 중지 시켜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통과된 것은 결국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반쪽짜리 법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특별법 개정 그리고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 등을 해야 한다.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세사기를 피하면 된다는 망발을 하는 원희룡 장관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세사기를 피하면 된다는 망발을 하는 원희룡 장관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전세사기는 주거 정책의 금융정책화가 낳은 사회적 재난이다. 주거정책은 늘 부동산 정책 혹은 금융 정책으로 논의되어 왔다. 정부는 모든 이들의 주거권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하거나 임대료를 지원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금융 정책을 선호해왔다. 빚내서 집을 사거나 빚내서 전세 혹은 월세를 살라는 정책이 유지되어 왔다. 전세 대출은 오래된 제도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등장한 전세 대출 제도는 지금까지 확대되어 왔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2년 23조원 규모에 불과했으나, 2016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여 2019년 100조원을 넘어섰으며, 2021년 말에는 180조원까지 증가했다. 전세 대출을 확대하니 전세가가 상승했고, 주택 가격이 상승했으며 주거비 부담이 상승했다. 이는 전세 대출 확대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정책이 자본과 은행의 배를 불리는 동안 세입자 권리는 열악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주택에 대한 정보나 임대인에 대한 정보 제공이 미흡했다. 보증금 보호 장치는 부재했고, 정보가 부족한 세입자들은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임대인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세입자는 임대인이 주택을 매각할 경우에 개입할 수 없으며 지자체는 임대사업자 관리감독에 소홀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이 악순환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주택의 상품화와 금융화이다. 집은 거주하는 공간이며 모두가 지녀야할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자본은 집을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 사고파는 상품으로 보았다. 세입자의 보증금이 갭 투기의 레버리지로 사용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자본없이도 수천 채를 한 사람이 매입하는 현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집값 상승으로 인한 이윤은 임대인과 자본이 독식하면서, 위기 상황에서 시장의 모순은 세입자에게 집중된다.

대책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하는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전세가격(보증금) 규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보증금을 주택 가격의 70% 또는 공시가격의 100% 이하로 하여 깡통전세 피해를 막아야 한다. 또다시 이런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전세대출과 보증 보험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주택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현재의 대출중심 주거정책에서 세입자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의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3년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예산을 약 5조 7천억 삭감하고 분양주택 예산을 약 1조 800억원 확대하는 등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원회 박순남 부위원장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어주셨다. 피해자 대책위는 현재 당사자로서의 싸움을 계속해나가면서도,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제정된 특별법을 공부하여 상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미추홀구의 전세사기는 남모씨 일당의 조직적 범죄행위로 인해 벌어졌다. 전 임대인들은 모두 바지 임대인이었고 부동산 중개업자, 관리사무소까지도 공모해 계획되었다. 하지만 이를 개인적인 사기의 피해로 볼 수 있을까? 그 배후에는 전세사기를 판치게 한 정부의 책임이 있다. 미추홀구의 경우에는 그 근방 어느 집에 들어갔어도 사기를 당했을 것이었다. 세입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피해자 대책위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구호 중 하나는 ‘당신이 잘못이 아닙니다’다. 전세사기는 세입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간 사인 간의 거래라며 피해자들은 무시하고, 자본을 위한 정책만을 펴온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시에서는 그 피해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 피해 아파트의 모든 세대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것은 시가 아니라 피해자 대책위였다. 최우선 변제금을 못 받는 세대가 전체 1,500세대 중 30%나 된다. 청년들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청년들은 전세자금 대출을 90~100%까지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0% 대출을 받아 전세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 대출을 고스란히 자기 빚으로 떠안았다. 이 대출을 갚느라 투잡, 쓰리잡을 뛰고 있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 이미 미추홀구에서는 100여 세대 이상이 아무런 지원책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내쫓기지 않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법원에도 가고 인천시장도 찾아갔다. 그러던 중 전세사기 피해자 중 첫 번째로 사망한 분이 생겼다. 대책위 활동을 열심히 하던 분이셨다. 누구보다 밝았고, 누구보다 주변 이들을 챙기던 분이었기에 모두의 충격이 컸다. 박순남 부위원장도 추모제 후 2, 3주 동안 대책위 활동을 지속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전세사기 피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또 다른 사람이 발생하면 안 되니까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박순남 부위원장이 나누어주신 이야기로 월례포럼 현장은 눈물 바다가 될 뻔했다.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에도 지원책이 있기는 했다. 다른 집을 구할 때 또 전세자금 대출을 받게 되면 그 대출을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이 또 전세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돈을 많이 내더라도 이번엔 월세로 가야겠다,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전세 제도 자체도 임대 사업자들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다. 임대 사업자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더이상 은행의 대출을 받아 안전 장치 없는 전세를 살고 싶지 않다. 피해자들의 요구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요구안 중 하나는 피해자들을 우선 구제하고 전세사기 범죄 조직 남모씨 일당의 은닉 재산을 경찰이 찾아서 처벌 및 구속, 환수조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구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받지 못한 보증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고 무이자로 20년 분할 상환하라는 터무니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담겨있지 않았다.

주거라는 권리를 위하여

질의응답 시간에는 아직 끝나지 않고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운동의 성과가 무엇일지 생각을 나누어준 회원도 있었다. 부족한 특별법과 더불어 주거권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택이 이윤증식을 위한 축적의 대상, 자산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부와 금융권에서도 주택 소유의 욕망을 부추기며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사게 했다. 하지만 이번 전세사기 문제를 통해 시작된 운동은 이를 당연하지 않다며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올렸다. 빚을 내고 집을 구입하면 나의 미래가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주택시장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주거권 문제는 철거민이나 홈리스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지금껏 자본이 주입한 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운동에서 법과 제도가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는 목소리,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 주거권이 모두의 문제라는 목소리를 계속 낸다면 조금씩 주거가 권리라는 생각, ‘권리로서의 주거’라는 인식이 확대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세입자들이 당사자로서 조직되고 조직하여 주거권 운동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내놔라, 공공임대!

팔지마, 공공의 땅!

늘려라, 세입자 권리!

집이 재난이 된 지금, 인권으로서의 집을 요구하자!

글 : 이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