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과 연대는 계속된다
2023년 6월 19일
5월 1일 노동절 아침,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한 건설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인 양회동 씨였다. 그는 건설노조 간부로서 해 온 노동3권 보장 요구가 공갈 혐의로 둔갑한 데 대한 억울함을 유서에 남겼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 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5월 25일 299개 단체가 참여한 양회동 열사 공동행동이 출범하고, 매일 진행되던 열사추모문화제 중 수요일과 토요일 이틀을 시민사회단체들이 담당하기 시작했다. 문화제를 주관하는 것 외에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건설노조가 만들어온 변화와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더 확산할 수 있을까, 건설노동자들의 짓밟힌 자존심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안고 지난 6월 2일, 11개 인권‧사회단체들과 건설노조가 간담회를 진행했다.
직접 고용 요구가 낳은 탄압
건설노동자와 다른 직종의 노동자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몸을 쓰는 일이라는 것? 다치기 쉬운 일이라는 것? 모두 맞지만, 건설노조는 “고용의 불안, 삶의 불안”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건설산업은 ‘수주산업’으로, 건설사에 건물을 지어달라고 요청이 들어와야 산업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발주와 수주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의 고용은 매우 불안정하다. 해고가 일상적인 업종. 건설업이 시작된 일제시기부터 계속된 문제다.
고용뿐만이 아니다. 일하는 곳도 불안정하다. 건설업의 노동력 수급 방식 때문이다. 건설회사들이 하도급을 통해 오야지(작업조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에게 일감을 주면, 오야지는 인맥을 통해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 건설노동자가 서울에 살아도 오야지가 부산에서 일감을 가져오면 부산에서 일하고, 반대로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도 오야지가 서울에서 일을 가져오면 서울에서 해야 한다. 가까운 건설 현장과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즉 건설노동자는 고용의 불안, 삶의 불 안에 계속 시달려왔다. 이 문제를 아무도 공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건설노조만이 문제제기를 해왔다.
건설노조는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에 힘입어 처음 만들어졌지만, 노동조합이 성장해 다단계 하도급에 문제제기하고 원청이 직접 고용하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이 때문에 건설노조는 2003년에도 공안탄압을 받은 바 있다. 이후에도 타워크레인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등 조직이 성장하고, 이에 따라 직접 고용 요구가 강화될 때면 공안탄압이 있었다고 건설노조는 증언한다.
건설노조는 2010년대 후반 또다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2016~17년 토목건축분과가 전문건설회사들과 중앙교섭을 통해 직접 고용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집 근처에서 일하고 싶다’, ‘적정 노동시간만 일하고 싶다’ ‘일상화된 체불을 해결해달라’는,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의 요구를 했고,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이 체결되면서 이 문제가 점차 해결되고 있었다. “고용의 불안, 삶의 불안”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약 2만8천 명이었던 조합원은 2022년 약 7만5천 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2022년 10월, 정부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가 현장점검을 시작하고, 경찰은 건설노조와 전문건설회사가 맺은 임단협이 공갈‧협박에 의한 것이라며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1000여 명이 수사를 받았고, 19명이 구속되었다. 급기야 올해 2월 21일 윤석열은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 강성 기득권 노조가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건폭’ 근절을 위해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정부 차원의 TF를 구성하고, 검경을 비롯해 복수의 정부부처가 조직적으로 노조를 공격하는 탄압은 이전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것이다.
시민안전 위협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이다. 법적으로는 1차 하청만이 허용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4차, 5차 하청까지 일감이 내려간다. 이렇게 하청을 따내는 건설회사들이 모두 시공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건설회사는 약 9만 개 정도 있는데, 치킨집이 약 8만 개, 편의점이 4만 개 정도 된다고 한다. 어떻게 건설회사가 치킨집보다 많을 수 있을까? 신고를 내기만 하면 건설회사로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설회사 사장들은 회사를 보통 3~4개씩 가지고 있고, 한 회사가 체불이나 사고로 평판이 나빠지면 다른 회사로 또 입찰을 한다. 시공능력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들은 오로지 중간착취로만 수익을 낼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로 이어진다.
2021년도에 광주 학동에서 철거 현장의 붕괴 사고는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철거공사를 발주한 철거조합이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에 지급한 공사비는 평당 28만 원이었다. 그러나 하청에 하청을 거쳐서 최종 시공한 업체가 시공한 금액은 평당 4만 원이었다. 28만 원이 중간착취를 거쳐서 4만 원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자재비가 깎여 나간다.
하도급은 일정 금액을 주고 작업과정이 어떻든 하도급 업자가 알아서 하라는 계약 방 식이기 때문에, 하도급 업체들은 공사 기간을 단축할수록 이익이 된다. 이는 노동자의 안전과 시민의 안전 양쪽을 모두 위협한다.
“하도급은 물량으로 하는 거거든요. 한 층 짓는데 100만 원 줄 테니까 5일에 끝내든 3일에 끝내든 네가 알아서 해라 이런 거거든요. 근데 100만 원 고정돼 있어요. 돈을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루 만에 끝내면 되는거죠. 하루에 얼른얼른 해야 돼요. 그러니까 사람이 죽어가는 거죠. [1년에] 400명씩.” (이세훈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
건설노조의 요구는 간단하다. “천천히 그리고 정석대로” 하자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최근에도 철근을 빼놓고 공사를 진행하는 건설 현장을 발견해 폭로하기도 했다.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노동청에 신고하기도 한다. 이것이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자 동시에 건설의 품질과도 연결되는 일이라고, 또 시민의 안전과도 연결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와 어떻게 함께할까
정부가 건설노조와 건설전문회사와의 단체교섭 과정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채용을 거부당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민주노총 조합원 대신 임금을 적게 줘도 되고 노동3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다. 눈앞에서 대체인력처럼 투입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분노가 쏠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에는 건설 노조 일부 지부에서 ‘불법 외국인 고용 반대’ 플래카드를 내걸어 이주노조와 여러 사회운동단체로부터 비판을 받고 플래카드를 철거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를 가장 많이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곳도 건설노조이다. 건설노조는 이주노동자에게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혐오 표현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원칙만으로 바로 해결되지 않는 여러 문제들은 이주노동자와의 접점을 넓힘으로써, 한편에서는 건설노조가 이주노동자의 울타리가 되도록 더 힘을 키우면서 해결해나가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주 관련 문제는 같이 일하면 많은 게 해결돼요.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이 특정 지역에 많이 가입돼 있어요. 그건 사실이긴 한데요, 전국적으로도 많이 가입돼 있긴 해요. 같이 일하면 많은 것들이 풀립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술 먹고 같이 깽판치고 그럼 많은 것들이 풀려지거든요. 근데 그런 경험들이 적기 때문에 마찰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 고차원적 고민은 못하는데, 같이 하면 된다, 같이 먹고 같이 자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설노조 이세훈 교육국장)
“저는 건설노조의 힘이 강해지는 게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부의 체류자격 때문에 어쨌든 눈치를 봐야 하는 이 조건에서 노조가 나를 더 잘 지켜줄 수 있겠구나 이걸 사회적으로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건설 현장에서 직접 부 딪히면 생기는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
탄압에 맞선 건설노조의 투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건설노조 조합원 중 일부는 예전에 일하던 오야지팀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기도 한다. 오야지팀은 조합원팀보다 임금도 낮고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뿐더러, 욕설과 구타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다시 오야지팀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이 ‘오랜만에 욕 들었다,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말을 건설노조에 전해온다. 길게는 30년간 짧게는 몇 년간 이뤄낸 성과들이 깨져나가는 것,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건설노조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노동조합이 고용을 요구하는 게 불법이라면 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자고 건설노조는 말한다. 언제까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왜 정부는 적극적으로 고용을 알선해 이런 구조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외국의 경우,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교육 이수 후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적정 임금 보장도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법을 만들어 해결할 수도 있다. 건설노조는 미국처럼 발주자가 노무비로 책정한 부분은 반드시 노동자에게 지급되도록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자신들이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다. 정부가 공적으로 해결할 일을 방기했기 때문에 유지된 기이한 산업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현 정부에 건설노조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제 도개선을 통해 건설산업 구조를 해결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건설노조의 힘을 약화시켜 건설 경기 침체를 넘어선들, 건설산업의 고질적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열사가 우리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것에 항거를 해서 목숨을 바쳤는데, 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 우리 건설노동조합이 지금까지 해왔던 내용이 정당하다는 내용을 갖다가 딱 적어 놓은 거거든요. 저희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민주노총과 그리고 시민사회와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같이 함께 윤석열 정권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꿔 나가는 투쟁을 계속해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 저는 옳음이 승리한다고 봅니다. 다른 방법은 없다. 투쟁을 잘해 나가야 된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간담회 그 후
양회동 열사의 분신 후 건설노조는 범정부 TF해소, 경찰청장 윤희근과 국토부 장관 원희룡 파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진행했다. 그러나 6월 13일 원희룡은 국회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사과는커녕 또다시 ‘분신 방조’를 언급했다. 정부에게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다고 판단한 유족과 건설노조는 6월 14일 양회동 열사의 장례 일정을 발표하고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장례를 치른 후 계속 투쟁을 이어갈 것을 선언했다.
장례 일정이 발표된 6월 14일 저녁, 함께 간담회를 진행한 인권사회운동단체들이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양회동열사추모문화제를 주관했다.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대형 화분에 “꽃으로도 추모를 막지마라”는 깃발들이 꽂혔다. 건설노조의 투쟁을 빌 미로 집회‧시위의 권리를 후퇴시키려는 시도 전반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다. 건설노조의 청년, 여성 조합원이 건설노조가 어떻게 적정 노동시간만 일하도록 현장을 바꿨는지, 화장실조차 제대로 없던 현장을 바꿨는지를 발언했다. 인권사회운동단체들은 건설노동자들이 바꿔온 현장을 함께 지켜내겠다며 화답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가장 앞에 서서 이 정부의 탄압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함께 앞에 서는 것뿐이다. 건설노조와 사회운동단체들의 연대는 이제 시작되었다.
글: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