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카메라 뒤 우리가 놓친 것들에 주목하는 활동가

인터뷰 | 카메라 뒤 우리가 놓친 것들에 주목하는 활동가

활동가를 만나다 진재연 인터뷰 ①

2023년 6월 20일

[읽을거리]인터뷰활동가, 인터뷰, 미디어노동자, 비정규직

활동가를 만나다 시리즈의 열 한 번째 주인공은 미디어 노동자 운동을 하고 있는 진재연 활동가다. 그는 열악한 미디어 노동 환경의 실태를 고발하는 것부터 미군 기지 반대 투쟁까지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활동가로서의 성찰을 지속해왔다. 1편에서는 그가 몸 담고 있는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에 대해 말해본다.

플씨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재연 : 저는 방송 미디어 비정규직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진재연이라고 합니다. 8살, 10살 아이둘을 키우고 있고 마포구 성산동에 살아요. 5년 넘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일했는데 얼마전에 그만 두었고, 앞으로도 방송 미디어 비정규직 및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미디어 노동자 비정규직 운동의 지형과 목표

플씨 : 방송 미디어 운동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민하고 있는 점과 이후 목표, 활동계획이 궁금합니다.

재연 : 방송 미디어 비정규직 관련 이슈가 사회화되고, 여러 노동조합 및 단체가 설립된 지도 5년이 넘었어요. 그 동안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제보를 받고 상담하는 신문고 운영, 현장에 커피를 지원하고 기본적인 노동권을 환기시키는 커피차, 미디어 산업의 노동 환경에 대한 토론회, 노동조합 조직화 등의 사업을 했었는데요. 저는 지금이 이제까지의 운동을 전반적으로 평가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몇 달 전에 <방송 비정규직 운동 방향과 과제 도출을 위한 토론회>를 여러 단체, 노동조합과 함께 진행했는데요, 많은 쟁점들이 나왔어요. 미디어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 문제에 대해 제기하고 활동하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돌아봤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고민할 필요를 느꼈어요.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서 개별적으로 법적 소송을 통해 노동자임을 인정받는데, 소송을 시작하면 몇 년 걸리고 소송 당사자 개인이 이기는 것으로 끝나니까 집단적인 힘으로 모이지 못하는 거죠. 한 방송사에서 특정 직군이 노동자라고 판결을 받았으면, 다른 방송사에서도 적용이 되어야 하는 데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이죠.

방송비정규직 노동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진재연 활동가
방송비정규직 노동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진재연 활동가

미디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입니다. 하지만 집단행동을 할 주체를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요. 미디어 산업 현장에서는 소위 ‘평판’이 중요한데, 부당한 일에 문제제기를 하면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일을 못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현장에서 문제제기하기도 어렵고 노동조합으로 조직화하기도 어렵습니다. PD나 정규직 직원의 신뢰를 얻어서 그들이 불러줘야 다음 일이 생기거든요. 이렇게 일자리 구하는 것이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 생계가 위험해지는 문제가 있어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서 사용자한테 문제를 제기하면 자르거나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게 만들어요. 가해자가 사용자와 연결된 경우도 많아서 피해자만 내부에서 퇴출되기 쉽죠.

또 다른 문제점은 짧은 기간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흩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모이기가 힘듭니다. 이걸 프로젝트성 사업장이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드라마 하나 시작하면 몇 개월간 모여 있다가 촬영 끝나면 흩어지니까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활동을 도모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죠. 현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사측이 약간 협조적이면 모이기는 하지만, 다 모을 수 없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적어요. 잠깐의 설명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노동조합 가입이나 좀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거죠. 방송 쪽이 다른 사업장과 달리 흩어져 있는 게 큰 문제인 것 같아요.

플씨 : 방송 노동자의 특수함이 있는 것으로 들리네요. 추상적 질문이지만 다른 특수성은 어떤 것이 있나요?

재연 : 특수성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방송 노동자들은 자기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나 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고 일 자체도 재밌어 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버티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안전 관련 실태 조사를 했을 때 ‘젊지만 건강하지 못한 몸과 마음’이라는 말을 썼는데, 미디어 산업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이 자신의 업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자신의 인생이 갈려나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노동조건이 워낙 열악하니까 젊은 노동력 유입이 안 되는데, 정규직은 매우 소수만 뽑고 비정규직·프리랜서로 그 공백을 채워나가니 악순환이죠. 그 비정규직·프리랜서는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사람들인거고요.

두 번째 특수성은 대부분의 정규직이 속해있는 민주노총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논리가 사측과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조합원이면 사측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말이죠. 현장에서 일을 시키고 업무 지시하는 사람이 다 정규직들인데, 회사의 관리자로서 일하면서 사측으로 변해가는 거예요. 초반에 말한 토론회에서 현장 노동자 여섯 분이 나와서 증언해주셨어요. YTN에서 일하시는 분이 말해주신 얘기를 제가 소개하자면, YTN의 비정규직 노동자, 소위 ‘프리랜서’ 노동자 12명이 작년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해서 1심에서 이겼어요. 회사측에서 항소를 한 상태인데, 이 분들이 정규직 노동조합, 즉 언론노조 YTN 지부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당신들이 노동은 하고 있지만 노동자는 아니기 때문에 보호를 해드릴 수가 없다. 우리가 여러분을 보호해 드리면 사측에서 여러분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 되어 회사 측의 소송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해줄 수 없다.”

MBC나 KBS나 YTN이나 유명 방송사들의 정규직들이 공정방송 투쟁은 열심히 했거든요. 투쟁하다가 해고되기도 하고요. 근데 그 분들이 회사 내부에서 같이 일했던 비정규직 동료들에겐 문제의식 없이 대하고, 비정규직들이 투쟁하려고 하면 사측과 똑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거든요. 사용자들과 인맥으로 이어져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정규직 노동조합의 역할과 그들과의 관계가 고민이죠. 방송 비정규직 문제 관련해서 언론노조의 역할과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모습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토론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운동을 나아가게 하려면 정규직 노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같이 고민하고 반성해야한다는 거죠. 근데 언론노조는 억울해하기만 하니까 늘 대화가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 간의 이러한 간극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돼요. 방송사 안에 언론노조가 아닌 공정방송 투쟁할 때 파업을 하지 않았던,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다른 기업별 노조가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언론노조 욕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와준단 말이에요. 이런 지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죠. 또 직군, 계약 형태, 프로그램의 장르 등이 너무 다양해서 서로 부대낄 기회가 없고, 직군별로 이해관계가 다른 면도 있어서 방송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기가 많이 어려운 것 같아요. 이렇게 다르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있는 방송 노동자들을 어떻게 모으고 만나게 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군의 울타리를 넘어,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만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대 영화

플씨 : 방송 노동자 조직화가 목표라고 하시는데, 구체적인 조직 대상 범위가 궁금합니다. 방송이라고 하면 유튜브와 영화도 떠올리는데, 지금까지 집중하고 있는 분야에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조직 대상 범위에 제한을 두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그리고 영화 산업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왜 드라마랑 차이가 나는지도 궁금하고요.

재연 : 조직화에 제한을 두는 게 아니고 여력이 없어서 그래요. 드라마는 많은 수의 스태프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조직화가 싶기도 했던 거 같고요. 방송 스태프 지부가 만들어질 때도 드라마 스태프분들이 적극적이어서 대다수 조합원들이 드라마를 만드시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방송스태프지부에서도 좀 더 폭넓은 직군으로 확장하고, 현장의 주체를 만들려는 고민을 하고 계신데 쉽지가 않으신거 같더라고요.

영화는 설립된 지 15년이 넘은 영화산업노조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서, 여러 주제에 대해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영화산업노조의 긴 투쟁으로 현재는 영화 현장에서 근로기준법과 노동 시간을 지키고 있죠. 상황에 따라 다른데, 영화 산업은 근로계약서를 쓸 수 있지만, 드라마 산업은 도급 계약을 해서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간주되는 때가 많아요.

드라마 현장의 노동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진재연 활동가
드라마 현장의 노동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진재연 활동가

드라마와 영화가 노동 형태가 비슷해서 두 장르를 넘나들면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일은 똑같은데 노동환경은 확실히 다르다고 하시죠. 드라마는 안 되고 영화는 되는 이유는, 운동 존재 유무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미남당의 사례를 보시면 노동자들이 갑작스러운 해고 상황에서 집단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거든요. 그 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산업노조 조합원이기도 했고 영화판에서 싸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래서 미남당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영화 노조랑 스태프지부와 함께 투쟁했죠. 미남당의 제작사와 협약서를 쓰는 것도 영화 노조와 방송 스태프 지부가 함께 하고 있어요. 영화판에 계셨던 분들이 드라마 방송 운동의 방향에 대해 조언해주시는 상황이에요.

플씨 : 드라마와 영화가 각자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네요. 직군별로도 많이 다르나요? 정서경 작가의 인터뷰에서 영화는 여성 작가 재생산이 힘든데 드라마는 여성 작가 재생산이 잘 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요.

재연 : 사실 이건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 쪽에 유명한 여성작가님들이 많은데, 소수 여성 작가들은 회당 억대 연봉을 받으시는 분들이거든요. 드라마 막내 스태프는 그야말로 최저임금인데 출연하는 유명 배우들이나 스타 작가들은 연봉을 억대로 받는 양극화의 문제도 있어요. 스타 배우들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가 1억, 2억이다, 최고의 출연료로 기사가 난 배우는 회당 5억을 받는다고 하더락요. 그래서 배우들의 출연료 상한선을 정하자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견도 있죠. 저는 상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소위 막내 스태프들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거든요. 300~350만원이니까 월급으로 치면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하루에 16~18시간 일해서 받는 거라서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이 안 돼요. 드라마에 아직도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는 곳이 많으니까 시급 계산을 하지도 않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현장에서의 노동 착취가 심각해요. 또한 드라마 작가와 구성작가의 상황이 다르기도 하고요, 메인작가-서브작가-막내작가 이런 식으로 나눠져 있기도 해서요. 서울과 지역의 차이도 있고. 막내작가들의 경우 드러나지 않는 온갖 노동을 하고 저작권도 없고요. 이런 다양한 문제들이 있어서 직군별로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 다 말해드리기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미디어, 유튜브와 넷플릭스 (mcn, ott)

플씨 :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미디어 콘텐츠라는 게 요즘에는 매우 다양해서 정확히 어떤 분야에 집중하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개인 콘텐츠 시장이나 유튜브 등의 노동 조건에 대해서는 문의가 들어오는지 궁금하고요. 요즘 유튜브도 전문화되어서 혼자서 찍고 올리는 게 아니라 작가, 피디, 편집자가 있더라고요.

재연 : 유튜브 쪽의 노동 조건 관련해서 문의를 받아 본적은 없어요. 제가 아는 드라마 스태프 가 드라마 끝나고 잠깐 쉴 때 유튜브 편집 일을 한다고 듣기는 했어요.

몇 달전에 ‘자빱TV’의 노동착취 관련한 기사를 보았는데, 건당 페이를 시간당 환산하면 시급 1천원대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장시간 노동으로 지친 스태프들이 소송을 하셨더라고요. 민변 변호사님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스태프들의 ‘노동자성’ 문제가 쟁점이더군요. 유튜브 관련해서 전체적인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고, 저 또한 활동하면서 고민을 하지 못했던 분야이고요. 대부분의 방송 현장이 열악하지만 유튜브는 법의 바깥에 있으니까 더 열악하겠죠. 제가 한빛센터에서 처음 활동할 때 밤 늦게 “지금 20시간 넘게 촬영하고 있는데 좀 살려주세요.” 이런 전화를 받았거든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계약서도 안 쓸 게 뻔하고, 계약서를 쓰지 않으니까 급여도 마음대로 정할 것이고 임금체불 등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 기본적일 것으로 예상돼요. ‘자빱TV’ 사건을 보니, 그렇게 큰 규모의 수익을 내면서도 한 짓들이 너무 괘씸더라고요. 유튜브가 전문화되고 작가, 피디, 편집자가 있어서 규모가 커진다고 노동조건에 대한 고민이 생기지는 않을 거에요. 노동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환기와 문제제기가 있어야 할거 같습니다.

플씨 : 근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공중파 방송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미디어 플랫폼을 정말 많이 보잖아요. K-드라마의 높아진 유명세에 비해 노동 조건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ott 관련해서도 초국적 자본이 들어오고 책임성이 좀 다르게 작동하는 부분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규제가 덜하니까 더 노동 착취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재연 : OTT와 관련해서는 처음에는 ‘OTT가 생겨서 일자리가 많아졌다’ ‘그래도 한국 방송사보다는 낫다’ 정도의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평가죠.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그 돈이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죠. 앞서 말했든 스타 배우들 캐스팅 비용으로 대부분 지출하고, 남는 돈으로 제작하니 스태프들의 노동조건까지 생각이 미칠수가 없고 제작사에서는 계속 돈 없다는 소리만 하고 있는 거죠. 넷플릭스에 대해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사례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해외OTT라 국제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방송현장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활동을 고민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죠. 한빛센터에서 활동할 때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 고민했었죠. 한국OTT중 한 곳에서 일하시는 분이 내부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드신다고 해서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기도 하고요 .

OTT는 산업이 계속 성장하고 있고 OTT를 중심으로 K콘텐츠 자체가 넓어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거기서 다루는 콘텐츠도 한국 사회의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얘기들이 소재로 많이 쓰이죠. K콘텐츠의 저력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불평등한 구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예전에 서울신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함께 했던 분이 K-콘텐츠의 저력이 가성비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사람들을 갈아서 그런 콘텐츠를 만든다는 거예요. 미국에서 1~2달 걸리는 것이 한국에서는 일주일 만에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현업에서 뛰는 사람이 아니니까 잘 모르는데, 그 분은 현장에서 오래 계셨거든요. 방송 현장이 열악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그 때 정신이 확 들었죠.

현장에서: 상생 커피차와 상암의 담소

플씨 : 잘 들었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드라마 현장에 커피차 사업도 많이 하신 것으로 아는데 간단한 소개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재연 : 커피차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 커피차와 함께 찾아가 스태프들을 만나고 지원하는 사업이에요. 쉬는 시간에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고, 노동권을 환기하는 팜플렛 등을 나눠주면서 현장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활동의 일환이었죠. 커피차를 하면서 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얘기했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요.

한빛센터 커피차 캠페인
한빛센터 커피차 캠페인

커피차 캠페인을 가면 유명 배우들 중에서도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배우 이연희님은 먼저 오셔서 인사해주시고, 자신도 이런 사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인증샷도 찍어주시더라고요. 무척 고마웠죠. 고경표 배우님과 함께 찍은 인증샷은 한빛센터 인스타그램에 올렸었는데, 해시태그 고경표를 넣어서 많은 해외 팬들이 한빛센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적이 있어요 (웃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는데 저희한테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지만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분들도 계셨어요.

플씨 : 한빛센터 활동하실 때 유튜브 촬영도 하셨는데요. 어떤 특히 <상암의 담소>라는 콘텐츠를 인상 깊게 봤어요. 출연하신 분들도 인상 깊었고요. 방송 현장이 평판이 중요한데 그 분들에게 이후 불이익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재연 : 구독자 없는 채널이죠 (웃음). 상암의 담소는 그 때 공공상생연대기금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한시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였어요. 유튜브는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업로드해야 하는데, 신경을 많이 못 썼어요. 그리고 출연하신 노동자분들은 사실 저희가 아는 분들을 섭외한거에요. 제보를 받은 것처럼 컨셉을 잡았던 거고요. 그 분들은 모두 본인을 드러내도 되는 분들이었어요. 여러방면으로 활동을 도와주시고 하셨고, 본인들의 문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현장이 바뀌기를 바라셨죠. 출연자 중 김하나 피디님은 한빛센터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함께 해주시고 현장을 바꾸기 위한 발언을 하시는 분이에요. 인상적이었던 일화 중 하나가, 드라마 현장은 전선이 되게 많고 장비가 많아서 뛰어다니면 잘 넘어진대요. 저희가 실태조사하면 드라마 현장에서 제일 많이 일어나는 사고가 넘어짐이거든요. 근데 넘어짐이라는 게 굉장히 재래적인 사고잖아요. 그냥 조심하면 되는 걸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현장에서 “빨리 와. 너 이거 빨리 안 갖고 와?“ 이렇게 윽박지르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거죠. 이런 상황을 보면서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장 사람들을 모아놓고 안전 지침을 얘기하고, 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문제의식와 소중한 실천들이 현장에 많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공개하고 나올 수 있는 경우는 용기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방송판을 완전히 떠났기에 가능했던 분도 계셨어요. 1화에 출연하신 강윤희님은 YTN에서 프리랜서 계약하고 일을 하다가 괴롭힘을 당하시다가 결국 해고되신 분인데, 상암의 담소 1화를 찍은 후 방송일을 접으셨어요. 상암의 담소는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플씨 : 영상이 나오고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출연자 외에도 대외적으로 알려졌나요? 유튜브에는 댓글이나 조회 수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콘텐츠도 괜찮았는데 안타까워요.

재연 : 일단 저희는 드라마 현장에 계신 분들이 유튜브를 볼 시간이 없다며 합리화 했죠 (웃음) 출연자분 중에 영상을 현장에서 공유해서 다 같이 봤다는 피드백은 있었어요. 상암의 담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부분들이 많고 방송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는 점이 많은 기획이었다고 생각은 해요. 근데 망했네요 (웃음)

플씨 : (웃음) 하지만 재밌게 봤어요. 잘 만든 콘텐츠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운동의 전망

플씨 : 본인이 생각하는 방송계 노동자 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망이 궁금합니다.

재연 : 저는 미디어 노동자 운동이 노동자 운동 전체 안에서의 교류 없이 조금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예를 들면 더 많이 연대하고 다른 쟁점이나 다른 노동자 운동의 사람들과 만나고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일단 주체들도 그런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장이 경직되어 있으니 운동 자체가 더 확장되지 못하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전체 운동 안에서 방송사의 비정규직 운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죠. 여성주의적인 실천도 중요한 화두라 생각하는데, 방송 여성 노동자 모임 같은 것도 했었거든요. 하지만 모임 몇 번 한다고 크게 변화 되는 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하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방송 현장에는 방송 작가처럼 여성들이 대부분인 직군도 있고, 조명이나 촬영처럼 여성들이 거의 없는 직군들도 있거든요. 직군의 문제도 있지만, 성차별 문제가 직군과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어서 고민이 많이 들어요. 위계와 서열이 중요한 방송 현장에서 여성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해나갈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거 같아요. 무엇보다 현장이 변하려면 현장 노동자들이 조직돼야 되는데, 그 조직화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들고요. 지금 그런 고민들을 함께 하는 활동가들과 모임을 하고 있어요. 방송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동지들이죠. 방송현장에는 정말 할 일이 많아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데,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그릇에 담으며 해 나갈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산업은 계약형태가 중층적이고 복잡해서 민주노총 운동 안에서도 고민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양쪽이 다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방송 비정규직 운동하는 사람도 전체 운동 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큰 틀의 사회운동 진영 안에서도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과 운동의 현실을 보고 접점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제 스스로가 주말에 집회를 거의 못 나가는데, 농담으로 저는 상암동 골짜기에서 있느라고 전체 운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게 한편으로는 전체 운동 안에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단체 안에만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저의 운동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방송 비정규직 운동의 현실일 수도 있죠.

플씨 :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대답이네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보리, 현빈

인터뷰이 : 진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