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재피』 책읽기 모임 | 열악한 방송현장을 바꿔낸 이재학 PD의 고귀한 희생
2023년 6월 28일
모두가 ‘K-컬처’ ‘K-컨텐츠’ 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발 문화콘텐츠의 총 매출액은 148조 1607억 원으로, 한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같은 해 매출액인 143조 1081억 원을 넘어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K-컨텐츠’를 제 2의 반도체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연예 활동을 위해 방문한 외국인을 위한 ‘한류비자’ 신설안을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 령 역시 미 의회연설에서 BTS와 블랙핑크, <기생충> 과 <오징어 게임>을 언급하며,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국적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 더욱 깊은 이해와 우정을 쌓은 촉매제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통해 이런 장밋빛 전망에 힘을 보탰다.
열악한 처우
하지만 이런 휘황찬란한 구호와 수치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창작 노동자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승기와 소속사의 음원수익 정산 관련 분쟁, 걸그룹 이달의 소녀 계약해지 분쟁, 저작권 분쟁에 따른 <검정 고무신> 원작자의 자살사건 등은 언론에도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대중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연예인이나 창작자들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언론의 제대로 된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어떨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JTBC와 EBS 등 방송사들은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OTT와의 경쟁 등으로 인한 경영악화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 섬유산업, 조선업, 반도체 산업 등 과거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많은 산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노동자들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관련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필독서 『안녕, 재피』 가 나왔다. 이 책은 청주방송 CJB에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당한 고 이재학 PD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청주방송과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플랫폼씨는 지난 6월 9일 청주방송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과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님 과 함께 『안녕, 재피』 책읽기모임을 진행했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중요한 투쟁과정을 담아낸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학은 2004년 스물 네 살의 나이로 청주방송에 입사해 PD 일을 시작했다. 조연출에서 연출까지 도맡아 가며 연평균 12개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중에는 <아름다운 충북> 이나 <쇼 뮤직파워> 와 같은 청주방송의 간판격인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각종 자잘한 행정업무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재학의 중·고등학교 친구이자 직장 동료였던 정현우는 “이재학이 방송제작은 물론이고 정산에서 외부회의까지 각종 업무들을 종횡무진하며 항상 바쁘게 지냈다”고 말한다. 이재학의 직장 후배 윤소영 작가는 “그가 촬영이 없을 때도 항상 편집실에 앉아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했다”고 증언했다. 동생 이대로가 모은 프로그램 제작현장 사진에서 형은 언제나 밝은 미소로 웃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그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청주방송에서 이재학의 삶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간부는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사적인 용무를 자주 시켰으며,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도 만연했다. 무엇보다 이재학 본인을 비롯한 사내 방송노동자 상당수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프로그램 하나를 제작할 때마다 PD는 40만 원, 작가는 30만 원을 받았다. 한 달에 기껏해야 120~16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돈이다. 휴가도 반납하고 야근을 이어가며 한 노동의 대가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본인도 14년지기 ‘프리랜서’ 노동자로서 어려운 처지였지만, 본디 남 챙기길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이재학은 동료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페이를 10만 원씩만 더 올려달라고 사측에 건의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4월, 그는 사측으로부터 참여중인 모든 프로그램으로부터 하차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그는 14년의 젊음을 바친 첫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억울해 미치겠다
이재학은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승리해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자신의 ‘승전보’ 가 청주방송을 넘어 전국의 방송현장 곳곳으로 퍼져나가 방송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신호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싸움을 준비했다. ‘방송계 갑질119’ 에 자신의 해고사실을 전달하고, 청주지방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접수했다. 소송기간 동안에는 배달 라이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사측은 집요했다. 그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불러다가 회유하고 협박했다. 진술서를 써줬던 동료들이 하나 둘 이름을 거뒀다. 그리고 이재학이 청부방송으로부터 해고당한 지 아홉 달 남짓 지난 2020년 1월 22일, 청주법원은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1심 판결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13일 후인 2월 4일, 이재학은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난 이후, 80여개 단체⋅노동조합⋅진보정당 들이 함께 결합한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충북 지역의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투쟁에 적극 연대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방송노동자들도 힘을 보태고, 추모문화제와 천막농성, 릴레이 시위가 계속 이어졌다. 이후 6월 22일 이재학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이PD 사망에 대한 청주방송 측의 책임을 명시한 진상조상결과서가 발표되었다. 7월 21일에는 가족, 대책위, 언론노조와 청주방송으로 이루어진 4자 대표자회의에서 ‘진상조사보고서 결과 이행과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21년 5월 13일, 청주법원은 이재학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1심 판결을 뒤집고 청주방송 측의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고인 사망 전까지 미지급된 임금 전액을 지불하도록 명령하는 내용의 항소심 판결을 선고했다. 그가 해고당한지 삼 년하고도 한 달, 그가 사망한지 일 년하고도 세 달이 지난 후였다.
뒤늦게 이재학 PD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지만, 이재학 PD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책위에 참가했던 활동가들과 방송 노동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재학 PD와 같은 사연이 방송노동계 곳곳에 만연하다고 말한다. 진재연 활동가에 따르면, 방송계는 한국 사회 불안 정 노동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프리랜서’ 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도 못되는 임금을 받으며 근로계약서도, 4대 보험도 없이 일하고 있다. 법정 근로시간인 52시간을 넘어서는 초과노동과 밤샘노동은 이미 일상이다. 방송제작의 특성상 촬영 장소 간 이동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지 않는 등의 꼼수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프로그램 개편’ 등을 이유로 말 한마디나 문자 한 통에 해고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이에 항의라도 해볼라치면 불랙리스트에 올라가는 등 ‘찍혀서’ 타 현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게 되기도 한다. 각종 갑질과 성폭력 역시 만연하다. 이러한 수많은 부조리들이 ‘관행’ ‘열악한 제작환경’ 등을 핑계로 시정되기는커녕 너무나 당연하게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 철저한 위계질서 문제가 놓여있다. 방송사 내 정규직-비정규직, 외주 제작사의 정규직-비정규직, 파견업체와 하청업체, 개인도급 등으로 노동의 거의 모든 과정이 철저히 이중구조화 되어있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의 부당한 처우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이 마찬가지로 부당한 처우에서 만들게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김기영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장에 따르면, 현재 한국 방송계의 노동구조는 소수의 성공 한 정규직 방송인과 대다수의 비정규직 스태프들로 이루어진, 귀족과 농노로 나누어졌던 과거 중세 봉건사회나 다름없다. 이러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 간극은 서로 간에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며 또 하나의 노노 갈등으로 진화해, 이러한 부조리한 구조를 만들고 유지한 사측사의 책임을 가리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재학 PD의 투쟁 이후, 목석같이 가만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방송현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무늬만 프리랜서였던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이 조금씩 정규직화되고, 근로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을 지급하는 현장도 늘어났다. 정해진 촬영시간 외 추가 근무가 필요한 경우 미리 회의를 통해 이를 정하기도 한다.
방송노동자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선례
무엇보다도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 가만히 있지 않고 이에 목소리를 내려는 방송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비정규직 방송 작가와 PD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 비정규직 방송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던 이재학 PD. 방송노동자가 싸워 이길 수 있는 선례를 만들고 싶다던 이재학 PD. 그는 약속을 지켰다. 이제 그의 뒤를 이어 보다 안전하고 평등한 방송노동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싸움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 김 원
교열 : 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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