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들이 일본 정치 바꾸자" - 피프티스 프로젝트(FIFTYS PROJECT)
2023년 5월 12일
지난 4월에 치러진 일본의 이번 지방 선거에서 그동안 선거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던 20~30대 여성이 직접 후보로 나섰다. 일단 여성 정치인의 숫자를 30%로 늘리자는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여 선거를 치렀다. 이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1998년생 노조 모모코이다. 올해 1월에 처음 열린 ‘피프티스 프로젝트 FIFTYS PROJECT’의 선거 준비 모임에 참가한 ‘주간 금요일’ 다테바 가츠지 작가가 작성한 기사를 번역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4월, 두 번(9일, 23일)에 걸친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정식 명칭은 ‘통일지방선거’ (우리나라는 ‘전국동시지방선거’)이지만 실제 선거를 치른 곳은 전체 지역구의 약 27.5%였다. 지자체 선거일이 모두 같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선거법상 의회 해산, 마을 합병, 의원 사임 등의 결원이 생길 경우 새로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선거일이 달라진다. 9일엔 도도부현 선거 즉, 도지사 및 광역자치단체선거가, 23일엔 기초자치단체선거가 치러졌다.
일본의 이번 지방 선거에서 주목을 끄는 정치세력이 등장했다. 그동안 선거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던 20~30대 여성이 직접 후보로 나서서 연대하여 선거를 치르자고 나선 것이다. 일단 목표는 여성 정치인의 숫자를 30%까지 늘리자는 것이다. 이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1998년생 노조 모모코(能條桃子)이다. 올해 1월에 처음 열린 ‘피프티 프로젝트 FIFTYS PROJECT’의 선거 준비 모임에 참가한 ‘주간 금요일’ 다테바 가츠지 작가가 작성한 기사를 번역했다.
《FIFTYS PROJECT》 성평등을 지향하는 여성 후보자를 밀어주자
2022년 8월 노조 모모코(能條桃子)(24세)는 같은 뜻을 가진 여성들을 모아 피프티스 프로젝트 (FIFTYS Project)를 시작했다.
FIFTYS PROJECT는 전국에서 뜻을 함께하는 50명의 여성후보를 내자는 뜻으로 지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29명의 후보를 냈고 광역시의원 한 명, 기초의원 23명이 당선되었다
노조는 이전부터 일본 젊은이의 낮은 투표율과 ‘이 사회가 청년이 살기 좋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체념이 젊은 층에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20대의 투표율이 80%를 넘는 덴마크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2019년부터 U30(*under 30의 약자로 30세 이하 세대를 가리킴) 세대가 정치에 참가하도록 촉구하는 ‘NO YOUTH NO JAPAN’(젊은 세대 없이는 일본은 없다)을 시작했다. 같은 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인스타그램으로 정치와 사회현상을 알기 쉽게 전하는 활동도 했다. 이번 2023년 4월 지방 선거에서는 ‘NO YOUTH NO JAPAN’가 직접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후보자 추천을 계획했다. 그런데 노조 주위에서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밝히는 사람은 남성들뿐이었다. 그녀는 ‘아무리 젊은 연령대의 정치인이 많아도 그들이 모두 남성 뿐이라면 윗 연령대의 정치가 반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20~30대 여성으로 지지 후보를 한정하여 이들의 입후보를 응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FIFTYS PROJECT에서는 2022년 가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활동자금을 모으면서 2023년 지방선거에 입후보할 사람을 모집했다. FIFTYS PROJECT는 후보 뿐만 아니라 후보 지지자(선거 운동 동참), 개인 후원(크라우드 펀딩 및 정기 후원), 기업 후원을 함께 모집하였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선거준비캠프 형태로 입후보 예정자들을 불러 선거를 위해 함께 학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프로젝트 활동의 두 가지 목표
1월 29일에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첫 모임’을 도쿄에서 개최했는데 입후보 예정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포함해 총 130여 명이 참여했다. 이 모임에서 노조는 FIFTYS PROJECT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일본 내각에 여성이 거의 없고 국회의원의 여성 비율도 20%를 밑돌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여성 의원 비율도 15% 정도인 현재 상황을 소개했다. 그리고 노조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의 기본 방침이 성평등을 위해 일하는 20, 30대 여성의 입후보를 응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활동 목표 중 첫 번째는 '입후보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예비 후보자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룹으로 활동 중인데 입후보의 문턱을 넘더라도 지역에서 고립되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더 넓게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함께 응원해주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다. 선거활동 자원봉사 참여, SNS 팔로우와 공유, 기부 등 “투표 외에도 많은 활동을 해 달라”고 했다. 노조는 “입후보자가 늘어나더라도 주위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적으면 용기를 내어 성평등 청년 정책을 내기가 어렵다. FIFTYS PROJECT 커뮤니티 이름으로 함께 응원해 나가자. 지역 곳곳에서 응원 활동을 늘림으로써 전국적으로 연대를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FIFTYS PROJECT를 운영하는 구성원들은 ‘성명서’도 발표했다. 제목은 ‘정치 분야의 젠더 격차, 우 리 세대에서 끝내자’이다. 일본은 “부부의 각자의 성(姓) 선택(*일본은 결혼할 때 서로의 姓 중 반드시 하나의 성으로 통일해야 한다. 대개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른다.)과 동성결혼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개인이 성교육, 긴급피임약, 임신중절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고, 성폭력 관련 형법에서 피해자의 입지는 매우 약하다. 남녀 임금 격차, 성희롱, 뿌리 깊은 성별 분업과 성적 규범도 사라지지 않았다.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존중하고 나 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지방선거의 목표는 ‘일단, 20대와 30대 지방의원의 여성 비율을 30%로!’라고 정했다.
노조는 ‘지금까지 선거를 보면 옆에서 보좌해 주는 사람을 따로 둔, 남성 정치인이 이끌어왔다. 이러한 남성 정치인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이 젠더 평등은 아니다’ 라며 기존 선거 활동 관행 자체를 바꾸어 갈 필요성도 언급했다.
시의원 28명 중 여성은 단 1명
모임의 후반부는 입후보 예정자의 소개 시간이었다. 회장 내에서 직접 연설하거나, 줌(zoom), 비디오 녹화메시지 형태로 모두 19명의 여성이 ‘정치인을 목표로 한 이유’나 ‘의원이 되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 19명이 입후보할 예정지는 홋카이도, 이바라키, 도쿄, 가나가와, 시즈오카, 니가타, 아이치, 미에,히로시마 등으로 전국에 걸쳐있다.
민간 컨설턴트로 개발도상국 지원 활동을 했던 한 여성은 “의사결정공간에 여성이 없는 것의 폐해가 심각하다. 회사 임원은 나이가 지긋한 남성뿐이라 젊은 직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불합리한 일을 많이 겪었다. 지금 여건이 주어졌을 때 할 수 있는 사람이 도전해야 할 것 같아 나서기로 했다”고 의원 도전 동기를 밝혔다.
히로시마현 오노미치 시의원 선거에 입후보할 예정인 여성은 “4년전에 오노미치로 이주해 왔는데, 28명의 시의원 중 여성이 1명밖에 없어서 놀랐다. 3살 짜리 아이가 있지만 문제 의식이 있는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도전한다. 의원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은 길을 걸으며 ‘정식으로 얘기할 여유가 어딨어, 누가 나 같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 라며 작게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런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 마을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스페인과 독일에서 화가로 생활한 39세 여성은 결혼을 계기로 일본 지방도시로 이주해 세 자녀 및 남편과 살고 있다. “이주하고 10년동안 누구도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은 이 지방도시에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어떻게든 지역에서 잘 지내보려고 분투해 왔다. 이제는 이곳의 복지 영역에서 예술 활동과의 연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예술 활동을 하다 만난 거리의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가운데 지금까지 점처럼 느껴졌던 인생의 경험들이 선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면서 결국 내가 마주해야 할 영역이 정치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복지와 예술을 연계한 정책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심쿵한 선거」를 목표로
'심쿵한'은 일본어 エモい(에모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일본 젊은이들의 속어로 emotional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정취있는','애수서린' 등의 의미로 2006년부터 젊은층에서 사용되어 2016년 산세이도 사전에 정식으로 실렸다. 직설적인 감정표현을 못하고 마음만 울렁대는 젊은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3월 6일에는 ‘여성 정치인을 늘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라는 제목으로 후보자를 응원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이벤트가 도쿄 시내에서 개최되어 온라인을 포함해 45명이 참가했다. 선거 조직부장 후타미 겐키는 “[심쿵한 선거]란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있는 선거라는 의미이며 자원봉사자들이 이 이야기를 표현하는 주체라고 강조했다.
FIFTYS PROJECT 운영 멤버인 대학 4학년생 오시마 아오이는 2022년 3월의 가나자와 시장 선거에서 체험했던 선거 자원봉사 경험을 전했다. 오시마는 젊은이가 많이 참가한 시장 선거 활동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여성 후보자에게만 엄마 또는 딸의 역할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내가 ○○씨를 응원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한 사람당 1분간 연설을 하는 워크숍도 있었다.
11년간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히가시 유키(33세) 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후 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쿄 시나가와구 의원 선거에 입후보할 예정이다. "의료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강했는데 환자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퇴직자가 많이 늘었다. 다들 환자를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제도가 받쳐주지 않아 자신의 천직을 그만둬야 할 정도로 내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정치인이 된 이유를 밝혔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육아 지원이라든지 여성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위해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 정치를 통해 이런 희망을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이번에 도전하게 됐다.”
4월 선거를 위해 날마다 아침저녁 역 앞에 서서 활동한다. “처음에는 혼자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동료들이 늘어나 응원해 준다. 지금은 40명 정도가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동료들이 점점 더 정치에 대해 관심이 높아져서 기쁘다. ‘열심히 하네요.’라는 말도 걸어 주고, 상상했던 것보다 시민들의 반응이 따뜻하다”라는 말 속에서 선거활동을 통해 많은 보람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FIFTYS PROJECT가 있어서 정말 좋다. 선거에 관한 설명회와 학습회를 열어주고 자원봉사자 교류의 장도 마련해 준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여성들과 연대하게 된 것은, 정말 의미있다.”고 말했다.
28명의 입후보 예정자
3월 초 시점에서 FIFTYS PROJECT가 추천하는 지방선거 입후보 예정자는 28명에 이른다. 노조는 “활동을 시작해 보면 가시화되지 않았던 후보자들이 나타나면서 같은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반년 정도의 준비 기간치고는 예상보다 많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국적으로 큰 움직임을 만들기엔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는 지역 거점을 만드는 것과 후원자 모금에 집중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FIFTYS PROJECT가 추천한 후보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1. 여성 정치인의 참여(트랜스젠더 포함)확대 및 성차별 반대 등의 FIFTYS PROJECT의 성명서 내용에 찬성
2. 쿼터제 등 차별을 반대하는 제도 개선(affirmative action)에 찬성
3. 트랜스젠더 차별에 반대
이에 동의하는 20~39세 여성이 추천후보가 될 수 있었다. 선거 결과 9일의 광역선거에선 입후보한 네 명중 한 명만 당선되었지만, 23일 기초의원 선거에선 25명 중 23명이 당선되었다. FIFTYS PROJECT에서는 위 세 가지의 조건만 충족하면 당적 여부는 따지지 않았기에 입헌민주당 소속이 가장 많았고(12명, 8명이 도쿄) 그 다음이 공산당(3명) 순이었다. 당선자들의 나이는 평균 33.7세였다.
이번 지방선거는 무투표 당선이 무려 30%에 달하고 평균 투표율도 역대 최저를 기록하여 50%수준이었으며 입후보자의 당선율은 어느 지역이든 50%가 넘었다. 즉 입후보하기만 하면 당선될 확률이 낙선될 확률보다 높았다. 그러나 FIFTYS PROJECT의 후보들이 ‘여성정치차별 반대’를 내세워 연대하여 선거를 치른 점은 의미가 있다.
특히 입헌민주당등과 같은 거대 당의 도움 없이 무소속 신입으로 입후보한 후보의 성적이 오히려 더 뛰어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선거에서 1위, 2위로 당선된 후보 5명은 모두 무소속 신입이었다. (나츠보리 메구미-구시로 시, 이시가와 카오리-히다치 시, 와타나베 요-후지미 마치, 스즈키 치히로- 고쿠분지 시, 이시와타 마리- 후쿠치야마 시)
노조는 언론 인 터뷰에서 책‘그렇다면, 남성 정치란’(さらば、男性政治, 미우라 마리, 이와나미신쇼)'을 자주 인용하였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남성 정치’는 남성이 움직이고 남성만이 참여하는 정치, 가끔 여성을 받아들일 때도 동등하게는 대하지 않는 정치’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여성 정치는 주체의 성별이 여성인 것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정치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젊은 층의 미투운동이 트위터등 인터넷 공간에서만 활발한 실상을 살짝 한탄하며 ‘해시태그만으로는 변하지 않아’가 출판되었지만 올해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직접 정치의 공간에 뛰어들어 나름의 성과를 낸 것이다.
다만 FIFTYS PROJECT 홈페이지에 게시된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에 기후 위기와 군사비 증액에 대한 입장이 거의 없는 것과 선거자금펀딩에서 기업 후원을 제외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각 정당이 여성 후보의 비율을 올리는 가운데 이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 세력을 구축한 이들의 행보가 주는 울림은 크다.
FIFTYS PROJECT의 당선자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어떻게 페미니즘을 실천해 나갈 것인지, 또한 기후위기 및 동북아시아 평화문제에 대해 어떤 연대를 이루어 갈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한다.
번역 및 정리: 박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