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48호에 실렸다.
“왜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만큼 여론화가 되지 않는 걸까요?”
지난 3월,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청중이 물었다. 이 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는 모든 일에서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 흐름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정부 주도의 재난 서사와 책임 회피 작업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여러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를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 대응의 후과 속에서 찾게 된다.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이 그렇게 크게 일어났는데, 매년 잊지 않겠다고 외쳤는데, 참사도 반복되고 참사의 의미를 축소하고 피해자를 함부로 취급하는 정부 대응도 반복되었다. 참사 직후 정부대응에 대한 분노가 작지 않았음을 생각해보면, 이 침묵은 일종의 무력감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이 무력감을 벗어날, 이태원 참사에 걸맞는 질문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로부터 9년, 이태원 참사를 생각한다.
유사한, 그러나 다른 두 참사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8년 6개월의 시간이 떨어져 있고, 또 진도 앞바다와 서울 도심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발생했으며, 선박침몰과 군중밀집이라는 그 원인이 전혀 다른 별개의 재난이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특히 골든타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던 정부기관이 임무를 방기해서 큰 희생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 회피와 전가를 위해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겹쳤다.
그러나 일견 유사해보이는 지점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차이들을 명확히 짚 으면서 질문을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골든타임’에 국가기관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골든타임’의 시점은 다르다. 희생자들이 구조를 요청한 ‘결정적 시간’을 기준으로, 세월호 참사는 구조 요청 이후의 101분(혹은 88분)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구조 요청 3시간여 전(18시 34분) 혹은 최소 1시간 20여 분 전(신고가 몰린 9시 전후)이 중요했다. 압사사고는 압박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데 비해, 인파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 세력이 사건 발생 장소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즉 경찰이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또한 이태원 참사보다 기술적 재난의 성격이 강하다. 세월호 참사의 기술적 재난으로서의 특성은 증거 확보의 지연, 기술 논쟁 해결의 어려움 등 원인 규명에 있어서 여러 곤란을 가져왔지만, 한편에서는 ‘인양을 통해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과학적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널리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검·경이 참사 골목에 설치된 CCTV 등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어 보이고, 참사를 촉발한 순간이 세월호 참사만큼 의문점으로 남아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좁은 골목에서 몇십 여분 간 15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소위 ‘군중유체화’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대체로 밝혀질 것은 밝혀졌다는 착시로 이어진다.
희생자들의 마지막이 여전히 블랙박스로 남아있는 유가족의 입장에서, 현장에 있었지만 자신이 겪은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생존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 밝혀져야 하는지 진상규명의 쟁점을 모르겠다’는 말은 그 자체로 큰 고립감을 안겨준다. 천천히 가보자고 하기에, 매일의 상처는 구체적이다. 게다가 재난조사가 늦어질수록 제대로 된 조사가 진행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쟁점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택하기 쉬운 선택지는 분노의 대상이 될 책임자를 특정하고, 극적인 서사를 강조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며 이태원 참사를 고민할 때, 가장 큰 화두는 이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중의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극적 서사를 강조하고 선정적 의혹을 제기했던 것과 달리, 어떻게 다음 참사를 막기 위한 ‘재미없는’ 질문을 가져갈 것인가?
비난의 정치와 구조를 바꿀 질문 사이에서
한국에서 재난 이후 비난의 정치는 크게 두 축에서 작동한다. 첫째는 말단으로 책임을 돌리는 비난의 정치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현장에 출동한 해경 123정장이 구조 실패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을 졌으며,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세월호 선장은 살인죄를 적용받았다. 이태원 참사 직후, ‘압사’위험이 있다는 112신고를 받고도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은 이태원 파출소 경찰관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했다. 그러나 최소한 세월호 참사 이후 말단을 향한 비난의 정치는 부분적으로만 성공하는 것 같다. 주로 책임 회피와 전가를 위해 일선 책임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재난의 특성 역시 고려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123정장과 세월호 선장·선원의 잘못이 워낙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가 상위책임자의 책임회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일선 경찰관이나 일선 소방관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이 즉각 일어났다.
두 번째 비난의 정치의 축은 최상층 책임자를 향한 책임 추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말단에게만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에 대한 정당한 반응인데다, 권력자를 향한 것이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분석하기가 더 어렵다. 문제는 책임 추궁의 욕망이 사실관계에 대한 선정적인 해석으로 이어지고, 추가적인 재난조사의 길을 막고, 재발을 막는 데 필요한 질문을 잊게 만들 때다. 대표적인 사례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7시간’은 세월호 참사 대응에서 양날의 검이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대중들의 관심사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지만, 재난대응에서 왜 대통령의 부재가 문제가 되는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힘으로써 재난대응체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보다 선정적 의혹에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극적 서사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거나,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황해문화에 실린 한 글은 “참사 전부터 현장에서 걸려온 112 신고 전화가 무려 120여 건”이었으나 국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10월 29일 당일 저녁 6시부터 10시 15분까지 ‘압사’를 경고한 112신고는 총 11건이었으며, 120여 건의 신고 전화는 10시 15분 경부터 11시까지 신고된 건수다.올해 2월 한겨레 ‘왜냐면’에는 ‘왜 2022년 핼러윈에만 인파관리 대책이 없었는가’라며 서울경찰청이 2017년부터 ‘핼러윈 인파관리‘를 위한 안전대책을 수립해왔고, 2020~2021년에 경비기동대를 배치했다는 사실을 들며 2022년이 유독 특수했음을 강조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그러나 2021년까지는 인파 밀집에 잘 대비했으나 2022년에는 대비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2021년 이전에도 경찰은 인파가 도로로 밀려 나오지 않는 교통사고 예방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고, 2022년과 유사하게 유흥시설 단속, 범죄 예방, 방역에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며 놀랄 사실들, 충격적인 사실들은 잠시 관심을 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재난조사의 질문은 이렇게 구성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이 수많은 신고를 무시할 수가 있지?’ ‘어떻게 작년까지는 제대로 하다가 올해는 안 했지?’라는 질문 뒤에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러지 말았어야지’하는 규범이 따라올 수 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중요한 증언을 핑계로만 취급하기 쉽다. 재난조사의 임무는 ‘어째서 이 신고들이 무시되었는지’를 충분한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압사위험을 경고한 신고를 포함하여 29일 18시부터 10시 15분까지 이태원 파출소에 배정된 112신고는 총 93건이라고 한다. 다른 신고들에 경찰관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28일에 인파 밀집을 우려한 유사한 신고는 없었는지, 만약 있었다면 경찰은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토요일 번화가에 위치한 파출소에는 항상 신고가 집 중될 것이며 앞으로도 경찰은 한정된 인원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위험의 위계를 설정해 대처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조사의 질문은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기 어렵다. 범인찾기를 위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현실은 더 복잡하다. 현실에서는 절대적 악인 없이, 극적인 서사 없이 재난이, 폭력이, 참사가 만들어진다.
어떤 사회를 상상할 것인가
책임 추궁을 위한 질문이 항상 민주적, 긍정적 재발방지대책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10.29이태원 참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질문 중 하나는 “왜 경찰기동대를 축제 장소에 배치하지 않았느냐”라는 것이다. 경찰기동대가 집회 장소에만 집중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찰이 위험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찰은 분명 축제에 참가한 시민의 안전보다 체제의 안전을 중요시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경찰기동대가 왜 축제에 없었느냐”는 질문은 앞으로 축제 때는 경찰기동대를 적극 배치하라는 요구로 이어지기 쉽다. 적정 수의 기동대가 필요하겠지만, ‘안전하면서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축제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기동대를 충분히 배치한다’를 충분한 답이 되진 못할 것 같다. 아무도 축제장에서 안전을 이유로 다수의 경찰기동대가 도열해있는 상황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정보경찰이 왜 이태원 축제 관련해서는 문건을 제대로 생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보경찰이 적극 활동하는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혹은 ‘안전사회’라는 말이 긍정적 의미, 또 시민의 권리로서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 ‘안전’은 다의적 용어다. 세월호 참사 이전 한국에서도 ‘안전사회’는 범죄를 사회의 대표적인 위험으로 여기고 형법을 강화해 ‘사회 안전’을 달성하겠다는 보수적인 담론이자 사회 통제를 위한 상징적 구호였다. 또한 2001년 9.11테러 이후 ‘안전’은 전세계적으로 사회 통제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안전사회’를 위한 요구는 언제든 보수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질문을 지금보다 더 미래지향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지자체에 지역 안전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의 질문을, 경찰에는 조직이 중시해 온 위험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행정안전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는 긴급구조국면에서의 조정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의 과제가 주어졌다. 재난은 사회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가시화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재난에 대한 응답 역시 현존하는 법과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라는 요구를 넘어,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제안이어야 할 것이다.
글 :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