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가 없던, 불법이 판치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2023년 4월 5일
노조를 원흉으로 몰아가는 정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3월 2일부터 건설현장에 만연했던 통칭 ‘월례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법 엄정 근절’을 내세운 정부 방침에 따라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이제는 월례비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와 함께 법에서 금지한 위험작업은 거부하겠다고 했다. 불법이 사라졌다. 건설현장의 ‘불법 폭력’ 행위가 드디어 멈추고 윤석열 정권에서 수도 없이 이야기한 법치가 실현되었음에도, 정부는 계속해서 불법을 언급하고 있다.
그에 앞서 2월 21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건설산업의 불법‧부당행위 근절은 노동개혁의 핵심이자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서, 타워크레인 월례비 등 ‘불법행위 점검‧단속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꼽았다. 언론에서는 연일 건설업 불법을 조장하는 ‘건폭’을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이어졌다. 정부가 말하는 건설노조의 불법·부정행위는 채용 및 장비 사용 강요, 월례비, 노조 전임비, 업무방해 등이다. 정부는 하나의 불법은 눈감은 채 다른 불법만 드러내고 있다.
사실 월례비는 건설사의 요구에 따라 일해서 지급된 돈이다. 소정 노동시간을 넘겨 오랜 시간 더 많은 일을 시켰으니 준 성과급이고, 특정 회사가 쓸 자재를 먼저 인양해달라며 지급한 급행료이며, 위험한 작업을 행한 대가의 위험수당이다. 또한 월례비는 건설사협회가 상한액을 결정한 일종의 임금이자 노동의 대가라고 최근 광주고등법원도 판결한 바 있다. 즉 월례비는 건설사의 이익을 위한 돈이다.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추가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건설자본과 이를 방치한 정부가 월례비에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에 대한 협박과 공격이 계속되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그간 건설현장에 만연했던 통칭 ‘월례비 ’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으로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작업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인양물이 명확히 보일 경우만 작업을 하고, 인양물을 사람 위로 옮기지 않으며, 땅에 박혀 있거나 불균형하게 매달린 인양물을 인양하지 않는 등 2021년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한 작업 내용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월례비 등을 핑계로 정부는 매일같이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압박해왔다. 3월 8일 하청건설사 단체인 전문건설협회를 찾은 원희룡 장관은 전문건설업계의 대표적인 문제 4가지인 페이퍼컴퍼니, 벌떼입찰(추첨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공택지 입찰에서 건설사들이 수십 개의 위장회사를 동원해 낙찰 확률을 높이는 행위), 임금체불, 외국인노동자 불법고용을 거론했지만, 도리어 업계를 감싸며 노동조합을 불법의 원흉으로 몰았다.
노조 때리기
국토부는 건설노동자만큼이나 ‘안전’을 말하지만, 실상은 건설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시민의 안전도 무시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인천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돌풍에 2톤짜리 갱폼(아파트 외벽에 설치하는 대형 거푸집)이 타워크레인의 조종석에 충돌한 사고가 있었다. 조종석 유리창이 모두 깨진 채 조종사는 탈을 당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타워크레인이 넘어가 중대시민재해도 발생할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노동자의 판단으로 위험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보장되어 있지만, 국토부는 작업중지권을 존중한다면서도 태업을 저지르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면허를 정지·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죽거나 말거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계속 일하라는 것이다.
3월 10일에는 믿기 힘든 국토교통부 자료가 나왔다. 건설현장에 배포한 ‘건설노조의 불법부당행위 집중 관리 대상 현장 추천’이라는 문건에는 노동조합 간부의 실명을 거론하며 “악명 높은 노조간부”를 색출하자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정부 부처를 가리지 않고 노동조합을 때리고 있다.
최근까지 서울, 인천, 군포, 부산, 광주, 원주, 전주, 성남 등 10곳이 넘는 건설노조 본부/지부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몇몇 노동조합 간부는 아침에 집 앞에서 기다린 경찰에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올해만 구속된 간부가 12명에 달하고, 지부마다 수십 명씩 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구속 현황이 얼마나 늘지 짐작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건설노조 때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고인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건에 과징금 2억 7천만 원을 때려 맞았다. 현재 심의·조사 중인 사건 6건을 합치면 앞으로 부과될 과징 금은 수십 억에 달할 수 있다. 공정위는 본래 재벌의 독과점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건설기계 노동자들을 사업주로 간주하고 건설노조를 사업주 단체라 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단체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공정위가 노동조합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탄압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노조법에 따라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받은 적법한 노동조합이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건설노동자들은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에 의해 노조 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노동자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또한 노동조합법에 명시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기업 내 노동조합 활동을 일정 수준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제도)를 문제 삼고 있다. 현재 노동조합법의 근로시간 면제는 단체협약으로 정한 경우, 회사로부터 시간을 지급받아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때 사업장별로 취업자 수 등을 고려하여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건설노조에서는 그 최소한도인 99명 이하의 '연간 최대 2,000시간 이내'로 지급받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정해진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고, 건설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사업장과 노동자 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일당직으로 계약하여 매일같이 현장과 취업자가 바뀔 수 있는 건설업의 특성을 간과한 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어디 소속 건설노조인지 제대로 명기하지 않은 채, 싸잡아 ‘건설노조’를 비난한다.
건설노조 이전, 불법이 판치던 일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 건설현장에는 불법이 판쳤다. 건설노동자는 ‘노가다’로 불렸다. 이는 건설노동자에 대한 분명한 멸칭으로, 사회에서 실패한 인생 막장이나 아무 기술도 없이 하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건설노동자는 대개 일용직이나 임시직으로 일하며, 공사가 시작되고 끝나는 데 따라 실업과 구직을 반복했다.
일자리를 좇아 전국 어디든 옮겨다녀야 했다. 당시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건설노동자가 외지에서 일하다가 혼자 쓸쓸히 저녁을 먹을 때가 많았다. 가족들과 함께 밥 한 끼 할 수 있게 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하다가 떨어져 죽고, 부딪혀 죽고, 끼어 죽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임금을 받아도 소개비라는 명목으로 중간업자에게 떼이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체불되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사가 여러 차례 하도급되면서, 시간과 돈이 깎여갔다. 그러는 가운데 건설자본은 막대한 이익을 챙겨갔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역별로 건설노조가 세워졌다. 건설산업 특성상 작업이 완료되고 나면 일터는 사라지고 건설노동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불안한 고용에 시달린 건설노동자들이 단결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역에 새로운 현장이 생기면, 지역 건설노조가 업체를 찾아가 조합원의 고용을 요구했다. 교섭이 쉽지 않았지만, 건설노동자의 고용이 점차 안정되었다. 임금 체불, 지급 유예가 당연시되던 현장이 바뀌었다. 고용이 안정 되면서 작업도 안정되었고, 기능인으로서 기술이 축적되어갔다. 이제 건설노조를 통해 숙련된 기능인력이 안정적으로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이 정부에서 말하는 채용 강요의 진실이다.
안전한 일터 만들어온 노동자들
건설노조는 고용 안정을 이뤄냈을 뿐 아니라 현장을 안전하게 바꿔왔다. 작년 7월 신축 아파트에서 인분이 발견되어 사회에서 큰 파장을 낳았다. 건설노동자를 ‘무식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취급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본질은 건설현장에 화장실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어떠한 법률에도 건설현장에 화장실, 휴게실 등을 설치하라는 내용만 있을 뿐, 세부적인 크기나 위치, 개수에 대한 기준은 명시하지 않았다. 수백 명이 일하는 건설현장에 화장실이 단 1개만 있는 것도, 그 화장실이 1층에 있기에 20층 높이에서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속적인 노동조합 투쟁의 결과로 올 1월 노동부는 건설현장에 남성 30명당 1개 이상, 여성 20명당 1개 이상 변기를 설치해야 함을 입법 예고했다.
2003년 가공할 강풍을 동반한 태풍 매미가 상륙하면서 수십 대의 타워크레인이 쓰러졌다. 원인은 한국의 기후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와이어 지지 방식 때문이었다. 현장 복판에 타워크레인을 세운다면 작업 반경이 늘어나서 더 적은 수의 타워크레인을 설치해도 된다. 다른 말로는 적게 설치된 타워크레인만큼 건설자본이 돈을 더 남겨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강풍이 불 때마다 타워크레인이 넘어가서 건설노동자뿐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해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더 이상 와이어로 지지하는 타워크레인은 안 된다는 절실함으로, 2013년 와이어 지지방식에서 벽체 고정 지지방식으로 타워크레인 안전기준을 개정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매미에 비견되던 작년 태풍 힌남노 때는 강풍에도 타워크레인이 안전하게 버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말 정부 부처합동으로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규제가 아닌 자율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영국의 <로벤스보고서>를 인용하며 노사자율로 중대재해를 막자고 말하지만 실상은 기업을 위한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우여곡절 끝에 제정되었지만, 아직 어느 사업주도 처벌되지 않았다. 단언컨대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법이 무용하다며 징역이 아닌 벌금으로 처벌을 개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한 해 800명이 넘고 매년 과반이 넘는 사망자가 건설현장에서 나오지만, ‘노가 다’의 죽음에 정부는 신경쓰지 않는다. 건설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시민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임에 틀림없다.
윤석열 정부가 노리는 건설현장의 미래는 뻔하다. 건설사가 자유롭게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현장, 노동조합이 없는 건설현장을 만드는 것이며, 가장 큰 걸림돌인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몰아내는 것이다.
다시 ‘일당쟁이 노가다’로 돌아갈 수 없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문제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임금 체불, 무리한 속도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건설현장의 진정한 ‘불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이 건설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건설사 불법 감시,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한 건설노조의 활동을 없애고 지금처럼 노조 때리기만 이어간다면, 이 땅의 건설현장은 미래가 없다. 건설노동자들은 이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없던 시절, 불법이 판치는 현장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글 : 박세중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