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100살까지 사회운동 하고 싶다는 어느 활동가

강원도에서 100살까지 사회운동 하고 싶다는 어느 활동가

활동가를 만나다 인터뷰 시리즈 이효성 ①

2023년 3월 16일

[읽을거리]인터뷰활동가, 인터뷰, 지역운동, 진보정당

활동가를 만나다 인터뷰 시리즈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10번째로 만난 사람은 강원도 춘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효성 회원이다. 한동안 배달 노동자로 일한 그는 최근 다시 상근 활동가로 나섰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100살까지라니…!

플씨 : 누구세요?

효성 : 이효성입니다. 춘천에서 3년 조금 넘게 살고 있어요. 정의당 강원도당에서 활동하고 있고,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를 하고 있습니다.

플씨 : 춘천에서도 한 곳에 계속 적을 두고 있다기보다 여러 현장에서 필요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스스로 어떤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효성 : 우선 저는 진보정당 지역활동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보정당운동을 사회운동 전체와 연결시켜 생각합니다. 정당의 기반은 지역에 있으니 지역사회의 변화도 꾀하고요. 진보정당 활동은 상근자, 당직, 일반 당원 등 다양하게 있거든요. 당직을 맡거나 출마를 하기도 하고, 퀴어문화축제 같은 지역사회의 운동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힘든 여건에 있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요. 정당 활동이 1순위이다보니 그 일을 꾸준히 하긴 어려워요. 그래서 직업은 유동적입니다. 저는 100살까지 운동하는 게 꿈이에요. 그만큼 운동에 애정이 있고 오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될 때도 있고, 생활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바짝 집중할 때도 있고 당직을 쉴 때도 있어요.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적절한 수위를 찾아가면서 하는 거죠. 2022년 올해 이루고 싶은 활동은 춘천 퀴어문화축제를 잘 진행하는 거예요. 이후엔 어떤 활동을 할지 길게 생각해봐야겠죠.

플씨 : 100살까지라니… 엄청나네요! (웃음)

녹색어머니회의 녹색아버지
녹색어머니회의 녹색아버지

사회운동으로서의 진보정당운동

플씨 : 2020년 정의당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언을 하셨는데요. 지역 활동가의 입장에서 쓰신 것 같더라고요. 정당운동과 지역운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구상을 듣고 싶습니다.

효성 : 사회운동으로서의 진보정당운동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의당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본 정의당의 가장 부족한 모습은 중앙중심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모습이었어요. 스타 정치인 중심의 이벤트성 사업을 많이 하고,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죠. 2012년에 통합진보당이 무너지고 정의당이 출범하면서, 운동권 이미지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하기 위해 정의당이 의도적으로 운동권의 이미지나,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된 대중조직 운동'과도 거리를 뒀던 것 같아요. 그러한 방향 하에서 대표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줬죠.

그런데 선거를 몇 번 치르고 나니까, 당이 너무 의회 중심으로 되고 지역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거예요. 오히려 지역의 역량이 중앙에 동원되는 방식으로만 운영되더라고요. 당장의 양적 확대보다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조직력을 탄탄하게 갖추는 게 중요한데, 질적으로는 당의 정체성이 매우 흔들리는 과정을 겪었죠.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당의 공식 입장 표명에 대한 내부 갈등이 심했어요.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의도적으로 지역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죠. 정의당을 봤을 때 가장 필요한 얘기가 지역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요.

플씨 : 그렇군요. 지지 기반이 탄탄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죠. 당시 혁신위 활동의 다른 한 축은 청소년 당권 보장이었다고 생각해요. 관련해서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계신가요?

효성 :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소속으로 청소년 후보들이 출마하기도 했고, 혁신위에서 논의를 통해 청소년 참정권을 당내에서 어느 정도 보장받게 되었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정의당 ‘예비당원’ 협의체 허들이라는 조직이 열심히 활동한 결과죠. 예비당원은 정의당 안의 청소년 당원을 지칭하던 단어인데, 당원이지만 당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든요. 당원 자격이 없는 당원이 당원의 자격을 갖추게 해야 된다는 아주 단순한 주장이었는데, 이 사안에서 기성세대 활동가들이 현행법상의 가부를 따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법 이전에 운동의 차원에서 명백하게 지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당권을 보장하자는 얘기인 거잖아요. 그래서 시민 불복종 차원에서 정의당이 당 차원에서 정당법을 어겨서라도 청소년들한테 참정권을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어요. 당장 법적인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길게 보면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의당이 시민의 자격을 얻지 못하고 참정권을 갖지 못한 청소년 활동가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고, 실제로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길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청소년 인권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기 때문에 그건 당연히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조직 측면에서도, 혁신위 이전에는 청소년 ‘특별위원회’였어요. 당대표나 시도당 위원장이 선거 시기에 잠깐 자리를 만들어주고, 실질적 권한은 없는 기구들이었죠. 예비당원협의체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활동가들이 열심히 참여를 했지만, 당권이 없었던 거죠.

혁신위 이후 청소년위원회가 특별위원회가 아닌, 다른 부문위원회와 동등한 상시 기구로 자리 잡았어요. 혁신위 이전에는 정당법 문제만 따지고 있었는데, 강경하게 밀어붙이니까 참정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예요. 당권 보장 문제에 있어서도 제가 내세웠던 안보다 많이 후퇴되어서 당대회에 상정됐어요. 그때 청소년 당원들이 수정안을 내서 수정안이 통과되고, 당내 선거에서는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죠. 그 중심에는 청소년 동지들의 예비당원 동지들의 활동이 있었던 거고, 저는 혁신위원으로서 같이 움직인 거죠.

제주와 강원의 차이

플씨 : 과거에는 제주도에서 당 상근자로 활동했고, 3년 전부터는 춘천에서 활동하고 계시죠?

효성 : 네, 맞아요. 제주도는 언론 환경이 비교적 좋아요. 온라인 1인 미디어들을 포함해 40여 개의 지역언론들이 있고요. 도민들도 제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기자회견하면 효능감이 좋죠. 언론들은 많고, 제주도 땅에서 일어나는 이슈는 많은 편은 아니니까 저희 이야기가 기사화 될 수 있는 거죠.

제주도가 넓긴 하지만, 서귀포랑 제주를 오갈 때 산너머 1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춘천은 다소 다른 것 같아요. 일단 강원도의 3대 주요 도시인 강릉·원주·춘천이 서로 멀어요. 언론환경의 측면에서도 작은 지역 언론들이 거의 없어요. 제주도와 반대로 언론은 많지 않고, 면적은 넓어서 취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거죠.

게다가 강릉·원주·춘천 저마다 특색과 지역정서가 강해서 같은 강원도지만 다른 점이 많아요. 강원도 전체를 볼 때, '강원퀴어문화축제'를 하는 게 가능할까 싶어요. 지역들이 서로 연대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모이기 쉽지 않고 정서도 서로 다르죠. 기존의 지역정서와 특성에 맞추어 사회운동을 잘 꾸려나가야 하는 과제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삶과 운동의 기반, 지역운동을 넓게 볼 때

플씨 : 이런 질문드리기 좀 죄송하긴 한데, 어떻게 하면 지역운동을 더 크게 강화하거나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비전이 있으신가요?

효성 : 사회운동은 생활 현실에서 어려움이 닥친 곳을 집중 조명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확장시켜 그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연결된 다른 문제들까지 해결하면서 사회를 바꿔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사회운동이 시작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공간이 지역이라는 것은,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확인해서 그것들로 사회운동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춘천에 오면 춘천 레고랜드 문제가 보일 거잖아요. 이게 춘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무분별한 개발의 문제가 있을 거예요. 그럼 춘천 레고랜드 문제를 확장시켜서 다른 지역의 난개발 문제를 같이 얘기할 수 있죠. 그러면서 운동을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할 일, 발견할 일이 정말 많아요. 지역 운동은 사회운동의 하부로 분류되기보다는, 운동의 현장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춘천 주민의 입장에서는 춘천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신의 문제잖아요. 지역운동은 단순히 기초자치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현안을 해결하는 운동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운동의 토대, 운동이 벌어지는 현장, 운동을 발견하는 장소, 운동을 이루어가는 ‘땅’인 거죠.

하나 더 추가하면 지역 주민과 함께 결합한다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운동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러니까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뭔가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지역을 바꿔 나가려면 지역 주민들과 마음을 맞춰가면서 해야죠. 여기에서 주민은 말 그대로 주민 전체를 의미해요. 주거문제만 해도 세입자인 주민이 있을 거고, 건물주인 주민이 있겠죠. 진짜 어려움을 겪은 세입자와 함께 지역의 문제를 풀어나가면서도 그 과정에서 건물주를 아예 배제하고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해요. 어차피 같은 동네에서 계속 얼굴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세입자의 권리를 유지하는 게 건물주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라는 걸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역에서의 기후정의를 논의할 때 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논의 참여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죠. 지역 주민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 운동에 들어올 수 있냐의 문제인 것이죠. 주거를 갖고 있건, 사업을 하고 있건, 건물을 갖고 있건 여기에 삶의 터전이 있는 건 마찬가지이니까요. 지역의 주변에 있는,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운동의 호흡을 맞춰갈 것인지 긴밀하게 생각해보자라는 걸로 요약할 수 있겠어요. 주변 사람이 누구건 간에 그들과 동떨어진 활동은 운동이 되기가 어려우니까요.

플씨 : 지역운동에 대한 좁은 인식 틀을 깨주는 좋은 답변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강원지역 차별철폐대행진 선포 기자회견
2021년 강원지역 차별철폐대행진 선포 기자회견

나의 첫 운동 경험

플씨 : 앞에서 효성동지가 경험한 지역운동과 정당운동에 관해서 계속 물어봤다면 이번에는 효성동지가 어떻게 사회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먼저 듣고 싶은 것은 ‘나의 첫 운동경험’이에요. 집회 사회, 발언, 성명, 활동비, 휴가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효성 : 제가 신학대학교를 나왔는데, 원래 보수적인 신학관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술과 담배는 악마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예수님 안 믿으면 되게 불쌍하게 생각하고요. 신학교니까 연애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근데 동아리를 잘 만났죠. 도시 빈민선교회라고, 제가 1학년 끝날 때쯤 도서관 한 편에 놓여진 홍보책자를 보고 들어가게 됐어요. 책자에 “갈릴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어디로 향하실까”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갈릴리라는 동네가 빈민촌이거든요. 예수님이 가난하고 어려운 데서 활동하셨다는 거죠. 그럼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면 어디로 향하실까”는 신학생들에게 화두가 될 수 있는 질문이잖아요. 궁금해서 그 동아리로 들어갔는데, 90년대에 철거촌 현장을 다니면서 야학을 하던 동아리였어요. 2002년 월드컵 때 노숙인들을 주요 거리에서 다 내쫓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노숙인 인권 활동을 했었죠. 그러니까 선교라는 이름을 붙인 도시에 사는 빈민에 대한 사회운동 동아리였던 것이죠.

그렇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첫 집회를 나갔어요. 한-칠레 FTA 반대 농민 집회였는데, 선배들이 같이 가자고 할 때 저는 가슴이 떨렸죠. 빨갱이들에 물들어서 내가 안 좋게 변하는 거 아닌가 하는? (웃음) 그런데 농민 분들이 어려우신데 외면할 수 없고. 그렇게 3일을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따라갔어요. 집회 현장에서 길에 앉아있는데 옆에 앉아계신 농민분이 와줘서 고맙다고 소주를 따라주신 거예요. 제가 그때 여전히 술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독이라고 생각해서 안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안 먹을 수도 없게 많이 주시네 (웃음) 그걸 보면서 이건 술이 아니고 농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 들던 생각이, ‘내가 모르던 세상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살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전혀 보지 못했던 세상과 환경 속에 왔는데 여기는 금기시되는 술을 주시네? 그러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많고, 농민분이 나에 대한 마음으로 술을 주시는 건데, 내가 그걸 거부하는 건 어떤 형식이나 현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매트릭스의 알약 먹은 것처럼 그때 제가 술을 처음 먹었어요. 그 이후부터는 학교에서 술 먹고 담배 피고 난리가 났죠 (웃음) 신학교 안에서는 담배가 저항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동아리 방 안에 보면 소주병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플씨 : (웃음) 재밌는 저항이네요.

효성 : 정말이에요. 그 때 만난 선배들이 저를 포함한 후배들에게 물어봤어요. 너 예수님이 있다고 생각하냐, 구원이 뭐라고 생각하냐,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냐, 하느님이 계시는데 지금 여기의 빈민들은 왜 계속 힘든 거냐, 너는 찬송을 왜 부르냐? 이런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한참 던지는 거예요. 그 질문을 받고 세상을 생각하면서 받았던 혼란스러움이 아직도 생각나요. 제가 그동안 가져왔던 신학적인 도그마나 허례허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서 진짜로 고민하게 된 거죠.

신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활동으로

플씨 : 그런 질문을 받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듣다 보니 신학교에서의 반빈곤 연대 활동이 어떻게 진보정당 활동으로 이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효성 : 저는 원래 빈민 목회를 하고 싶었어요. 노숙인 인권 활동할 때, 저희는 시의회 앞 지하차도에서 활동을 자주 했어요. 그런데 바로 위의 지상에서, 그리고 시의회 지하도를 다니는 정치인들은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예요. 너무 열 받았죠. 당시에 진행되던 장기 농성장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농성장, 재능교육 농성장 등이 있었어요. 그 때 계속 정치가 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숙인 의료비를 반값으로 삭감하고, 그 예산으로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서울시장 홍보를 했어요. 우리는 그 돈이 생존권의 문제인데, 그걸 그냥 홍보비로 쓰는 걸 보면서 정치가 뭔지 고민하다 보니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때 사회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사를 할 사람들은 많고, 난 여전히 빈민들에 연대하고 싶은데 사회운동에 더 마음이 갔던 거죠. 그래서 진보정당에 들어갔어요. 좀 더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들어가서 활동하다 보니 진보정당 활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진보신당 용산당협에서 상근을 하게 되었어요.

플씨 : 그렇게 시작하게 된 진보정당 활동이더라도, 기복도 있었을 거고, 중단을 할까 고민한 시기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계속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그 사이에 마음을 다잡은 계기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들이었는지 궁금해요.

효성 : 저희 아이가 생겼을 때였어요. 결혼보다 임신을 먼저 했거든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니까 조금 막막했죠. 아이가 오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생활해야 하고, 돈도 더 많이 필요하니까요. 그때 같이 일하던 진보신당 용산당협 위원장님이 저에게 노동조합 상근 자리를 소개시켜줬어요. 그분 입장에서는 아끼는 사람을 떠나보낸 거죠.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이 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위원장님도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당시 제 벌이로는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해서 소개해주신 거죠. 그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노동조합 상근 활동을 시작했어요. 벌이가 그래도 생활할 만큼은 되더라고요.

2021년 미얀마 8888항쟁 연대 캠페인에 동참한 효성과 진수
2021년 미얀마 8888항쟁 연대 캠페인에 동참한 효성과 진수

삶과 활동 사이의 균형

플씨 : 정말 치열하게 사신 것 같습니다. 활동과 일상을 조율하는 건 모두의 고민인 것 같아요. 그런 과정 속에서 활동가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셨나요?

효성 : 제가 감히 어떤 자질이 있다고 얘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활동을 할 때 내가 나 스스로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있죠. 근데 활동을 하기 위해서 특정한 자질을 갖춰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계속해서 생활과 활동 사이에서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저는 100살 당원이 목표이기 때문에 긴 호흡을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때에 따라 무게 중심이나 우선순위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플씨 : 활동하다 보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데, 말씀하신대로 완급 조절을 하면서 쉴 때 얼마나, 어떻게 재충전을 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효성 : 예전엔 활동하다가 열 받을 때도 많고, 스트레스 조절이나 건강 관리에 미숙했던 측면들도 있었어요. 머리가 아프고 피곤할 때가 많았죠. 자고 일어나면 더 피로하고, 잘 때조차 온 몸이 긴장해 있었어요. 누군가 저를 진찰하더니, "장이 나쁜 것도 아니고, 심장이 병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의 균형이 안 맞아서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낭떠러지에 매달린 사람처럼 몸이 굳어 있다나. 저보고 울거나 웃거나, 노래를 부르래요. 신체적인 운동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몇번 했는데, 진수(아이)가 “아빠가 이상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막상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니까 생각보다 잘 안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진수가 종종 노래를 틀어주면, 그 노래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운동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웃음)

인터뷰어 : 김현빈, 보리, 정인영

인터뷰이 : 이효성